영겁의 둘레를 한토막 짤라_마냥 행복하지 만은 않은 이야기_영원

2023.02.21 | 조회 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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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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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새해가 밝았다. 이번에는 2023년. 2022년이 호랑이의 해라고 떠들썩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도 참 빠르다. 언제부턴가 나는 새해 첫 날을 축하하지 않고 살았다. 가족들과,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러 가는 사람도 있었고, 집 안에서 오붓하게 1월 1일의 0시 00분을 축하하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이 모든 게 다 무슨 의미’냐며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다였다. 시간은 순환하는 게 아니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밖에 가지 못한다. 직선이다. 시간은 게다가 연속적이다. 그러나 나는 2022년 12월 31일 오후 11시 59분까지는 23세였고, 1분 후인 2023년 1월 1일 오전 00시 00분에는 24세가 되었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큰 부조리였다. 한 살 더 먹었다며, 또 한층 늙었다고 SNS에 게시물을 올리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바보라고 생각했다. ‘그래봤자 하루 지난 건데 늙긴 뭘 늙어, 나이란 건 사실 다 가짜인 걸.’ 나는 영겁의 시간을 다시 재생의 순간으로 만드는 인간만이 가진 이 풍습이 기괴하다고 생각했기에, 1월 1일만 되면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동들에 토할 듯이 어지럼증을 느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그 친구는 나와 많은 정신세계를 공유했기에, 내가 왜 새해 첫 날을 기념하지 않는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친구는 1월 1일이 되자 새해 인사와 함께 내게 시 한편을 보냈다. 

모든 것이 뒤바뀌어 질서를 잃을지라도성진(星辰)의 운행만은 변하지 않는 법도를 지니나니
또 삼백예순날이 다 가고 사람 사는 땅 위에
새해 새아침이 열려오누나.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이 영겁(永劫)의 둘레를
뉘라서 짐짓 한 토막 짤라
새해 첫날이라 이름지었던가.
뜻 두고 이루지 못하는 한(恨)은
태초 이래로 있었나보다
다시 한번 의욕을 불태워
스스로를 채찍질하라고
그 불퇴전의 결의를 위하여
새아침은 오는가.
낡은 것과 새것을
의와 불의를
삶과 죽음을 --
그것만을 생각하다가 또 삼백예순날은 가리라
굽이치는 산맥 위에 보랏빛 하늘이 열리듯이
출렁이는 파도 위에 이글이글 태양이 솟듯이
그렇게 열리라 또 그렇게 솟으라
꿈이여!

새 아침에 / 조지훈

- [새해 복 많이 받아 영원아]

 

‘다시 한 번 의욕을 불태워 스스로를 채찍질하라고 그 불퇴전의 결의를 위하여 새아침은 오는가’라는 대목에서 나는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옛날에 읽었던 엘리아데의 저서 <성과 속>이 생각났다. <성과 속>의 2장에서 ‘시간’에 대한 고대인간의 시각을 다루는 부분이 있다. 학문적, 과학적 발전이 전혀 없었던 시대에, 인간이 실존에 대한 두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신을 모방하는 것뿐이었다. 신년은 그런 의미에서 시간을 그 시초부터 반복한다는 것, 따라서 창조의 순간 그대로 태초의 시간을 회복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신들의 우주 창조의 순간을 매번 모방하는 것이다. 따라서, 새해 첫 날엔 정화의 의미가 있다. 결국 시간을 365일로 나누어 다시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정화와 재생, 그리고 새롭게 꿈을 꾸는 것까지 확장이 된 것이다. 생각해보니 간단한 문제였다. 새해 첫 날이 오면 사람들은 금연에 성공하겠다, 다이어트에 성공하겠다, 올해는 꼭 연애를 하겠다 등등의 제각각의 목표를 세우기 시작한다. 소원을 빌기도 한다. 자유나 사랑같이 추상적인 꿈을 이루게 해달라는 허무맹랑한 소원부터, 우리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를 보내게 해달라는 등의 기본적인 것들까지 아주 다양하다. 손에 손을 꼭 붙잡고 길을 걸어간다. 분명 얼마 전엔 싸우기도 했을 텐데, 토라져서 한동안 말도 섞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오늘 만큼은 그 모든 것을 잊고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며 손을 꼭 잡고 서로를 바라본다. 그렇게 새 아침을 맞는다. 재생의 순간이고, 정화의 순간이며, 모두의 꿈이 다시 솟아나는 순간이다. 

인간적이지 못한 바보는 바로 나였다. 나는 세상엔 두 가지 형태의 영원-하나는 직선의 형태의, 되돌아올 수 없는 영원, 또 하나는 동그란 형태의 순환하는 영원-이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 니체의 영원회귀사상에 크게 빠졌던 때부터, 이 허무한 세상 속에서 둘 중에 하나를 고르자면 순환하는 영원을 선택하리라, 그것이 더 인간적인 삶일 거라 굳게 믿었다. ‘새해 첫 날’이라는 것은 되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인간이 직접 ‘순환하는 형태’로 만든 것이었다. 이제 인간은 비로소 다시 결심할 수 있다. 다시 사랑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다시 꿈꿀 수 있다. 

시의 마지막 문단처럼 또 삼백예순날은 가겠지만, 내년 새해에는 또다시 새 아침이 올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우리는 또다시 의욕을 불태워, 스스로를 채찍질 할 수 있다. 꿈은 그렇게 솟는다. 그렇게 열린다. 솟았다가 내려앉았다가, 또다시 솟고, 또다시 살아간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다시 한 번 살아내는 것.

1월 1일, 참 소중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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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26일 -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야기 '

글쓴이 - 영원 

음악 공부를 하고있는 대학생입니다. 이유있는 예술을 하는 것이 꿈입니다. 

브런치 https://brunch.co.kr/@d8aec389643a4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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