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사람은 잠들지 않고, 읽고, 긴 편지를 쓰고_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야기_영원

외로운 세상에서 서로 이어지는 법

2023.07.11 | 조회 1.59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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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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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당신은 왜 글을 씁니까?”라 묻는다면, 나는 “고독을 견디기 위해서입니다.”라 답하곤 했다. 지금 당장의 문제를 쓰지 않으면 영원히 알지 못한다. 나의 고통은 얼핏 보면 외부의 사건들 때문에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외부를 해석하는 나의 내면에 그 이유가 있다. 결국은 다 ‘나’의 문제이다. 나를 외롭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나다. 아무도 내 삶을 살아본 적 없기에, 나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은 모두 홀로 태어나 찰나를 함께하고, 느슨히 연대하며, 다시 홀로 죽어가지 않는가. 나는 나만을 알 수 있다. 나의 친구는 그의 삶만을 알 수 있다. 온전한 이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것이 사람이 평생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이유이다. 

오스트리아의 시인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시 <가을날>에서는 이러한 고독이 전면으로 드러난다. 


가을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긴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 위엔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

마지막 열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숙케 하여

마지막 단맛이 진한 포도주 속에 스며들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에도 오래오래, 고독히 살며

잠들지 않고,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레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이 글에서의 계절(가을, 겨울, 등)은 인간 삶의 메타포로 쓰인 것을 미리 밝힙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고들 한다. 봄여름에 알게 모르게 자라났던 과일이, 벼가, 온전히 익어 드디어 열매를 맺는 계절이다. 한마디로, 실존(實存)의 계절이다. 열매가 맺힐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던 생명체들이 꽉 찬 열매로 이 땅에 존재하게 되는 계절이다. ‘실존’에서의 ‘실’은 ‘열매 실’인데, 이는 가능태나 이름 등 관념적으로의 존재 말고, 이 땅에 ‘열매’로써 온전히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릴케가 보기에 가을은 실존의 계절인 것이다. 자의식이 없는 식물들은 실존의 계절이 오면 완숙히 익는다. 그러나 인간은 자의식이 뚜렷한 존재다. 인간은 실존의 문제에 부딪히는 순간, 고독에 몸부림치게 된다. 릴케의 시에서, 가을이 오니 열매는 익지만 사람은 더욱 고독히 살게 되는 것은 이런 맥락 속에 존재한다. 어떤 이는 겨울이 올 때 까지만 버티자는 마음으로 가을의 풍성함을 견뎌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을이 매년 찾아오는 것처럼, 외로움도 끊임없이 찾아온다. 고독한 시기를 견뎌냈다고 생각하던 사람은, 이후 갑자기 스며드는 고독에 또다시 몸부림 칠 것이다. 우리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실존의 고통을 온몸으로 맞으며 또다시 견뎌낼 수밖에 없는 것일까?

맨 처음에 이야기 했던,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다시 말할 때가 된 듯하다. 나는 고독을 견디기 위해 글을 쓴다. 이는 나조차 모르는 나의 내면의 깊은 심연을 마주하려는 의지다. 나는 또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읽는다. 철학서에서는 선인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고, 이를 근거로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문학에서는 인간으로 살며 어쩔 수 없이 맞는 고통들에 관한 깊은 내면의 탐구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온전한 이해를 바라며 편지를 쓴다. 내가 상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상대에게 어떤 존재로 비춰지기를 바라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읽고, 쓰는 일은 이처럼 온전히 연결될 수 없는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것이다. 내면을 마주하면, 그리고 이로 인한 글을 쓰면, 그래도 조금은 타자와 이어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렇게 긴긴 밤을 견뎌내고 나면, 편히 잠에 들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 

인간은 모두 홀로 태어나, 찰나를 함께하고, 느슨히 연대하며, 다시 홀로 죽어간다. 그러나 우리는 온전히 혼자인 삶 속에서, 잠들지 않고, 읽고, 긴 편지를 쓸 수 있다. 그렇게 불안스레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헤매고 나면, 또 다른 고독한 자는, 후에, 잠들지 않고, 내가 쓴 글과 내가 쓴 편지들을 읽으며 또 다른 활자를 한자, 한자, 써 내려갈 것이다. 완숙한 열매가 가득 열린 계절에, 우리는 그렇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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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야기 '

글쓴이 - 영원 

음악 공부를 하고있는 대학생입니다. 이유있는 예술을 하는 것이 꿈입니다. 

브런치 https://brunch.co.kr/@d8aec389643a40f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78Z2dXevYPh4j0BMAhX-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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