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한국을 떠났고 적어도 2년에 한번씩 한국에 들어오고 있다. 친구는 내가 들어올 때마다 기꺼이 시간을 내 주는 사람이다. 지난 방문엔 방역때문에 차 한 잔도 제대로 못하고 머물고 있는 친정 아파트 단지에서 잠시 얼굴을 마주하고 말았는데, 몇년만에 친구와 마주앉았다. 열 살 짜리 아들을 키우고 있는 우리는 초보 엄마로서의 설움을 함께 나눈 동지이기도 하다. 아이를 낳았다고 반드시 엄마로서의 준비가 된 것은 아니었던 우리는 나만 바라보고 있던 작은 아이를 앞에두고 어쩔줄을 몰라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과 한참 모자라보이는 서툰 나의 모습 사이에서 생기는 고민을 풀어놓았다. 이렇게나 나를 희생하는데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그때의 우리 마음에 가득 차 있었다.
안아들지 않으면 잠들지 않는, 초 예민 등센서를 장착한 아이를 보며 졸리면 자면되지 왜 투정이냐고, 아이에게 대놓고는 하지 못하는 말들을 털어놓고는 했다. 육아서에 나오는 수많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 목록을 보며 엇갈리는 정보를 어떻게 소화해나가야하는건지, 우리를 키웠던 30년 전 육아 방식을 고수하려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엄마와의 미묘한 신경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런지 우리는 매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파스타 바에 앉아 와인을 고르며, 생면 파스타가 눈 앞에서 반죽되어 나오는 것을 보며 친구를 처음 만났던 대학원 건물 학과 사무실이 떠올랐다. 등록금에 보탬이 되어보겠다며 매학기 과사 근무를 하며 친해졌다. 우리 중 누구도 교수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 필요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살고 있다. 콤콤한 침냄새가 나던 아이를 품에 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게 전쟁같다는 얘기를 했던 것도 어느덧 옛 일이 되어버렸다. 공부도, 결혼도, 육아도, 모두 내가 원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늘 캄캄한 곳에서 헤매는 느낌이었다. 여기저기 부딪혀 멍든 서로의 마음을 보듬으며 언젠가는 빛이 있는 곳으로 나갈 수 있을거라고 서로 주문을 외듯 하루하루를 버텨왔던 느낌이다.
우리의 이 편안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에 대해 한참을 얘기했다. 몇 시간을 떠들었지만 뚜렷한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다만 우리 둘은 10년 전, 15년 전의 나를 만났다면 ‘그렇게까지 안간힘을 쓰며 살 필요는 없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는데 동의했다. 매일 매일을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실패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눈앞에 주어지는 과제를 하나하나 해치우며, 그렇게 채워진 시간들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새로운 기회들이 던져주는 과제들을 풀어나가며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무엇이 되겠다는 거창한 마음보다는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일들을 어떻게든 잘 해내고자 하는 마음을 기억하려 한다.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사소한 건 대충 넘어가자는 마음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믿고 기회를 준 이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이들에게 대만족까지는 아니라도 실망감만은 안겨주지 말자는 마음으로 쌓아올린 하루하루가 징검돌이 되어 우리를 한발자국씩 이끌었던 것은 아닐까.
‘좋은 엄마’도, 성공한 ‘커리어 우먼’도 아닌 우리가,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어쩌면 ‘잘 이루어내지 못한 사람들의 자기 위안’으로 비춰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로 오랜만에 찾아온 쫓기지 않는듯한 느낌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 앞으로 또 거대한 산이 나타날지도 모르지만, 사방이 꽉 막힌 깜깜한 방에 갇힌듯한 느낌을 또 받게될지도 모르지만, 오늘을 잘 이겨내면 언젠가 내 앞에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거라는, 그리고 지금까지처럼 나는 그 일들을 묵묵히 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작은 믿음을 잃지 않을거니까. 오늘의 나는, 그리고 우리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 매달 17일 ‘일상의 마음챙김’ 진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뉴스와 시사 인터뷰를 맛깔나게 진행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미국 수도에 있는 한 국제기구에서 참여자들의 의미있는 경험을 비추기 위해 행사 진행을 돕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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