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그러진 소주팩을 발로 차며 제기랄, 죠가 울부짖었다. 만약 눈앞에 복권의 악마가 나타난다면 난 당장 놈에게 영혼을 팔 거라네. 만약 코앞에 부동산의 악마가 서 있다면 일년이고 이년이고 놈의 좆을 빨아주겠네. 이렇게 살 바에야... 이렇게 살 바에야 말일세. 부동산의 악마가... 여자면 어쩌지, 생각도 들었으나 나는 말없이 죠를 울도록 내버려두었다.
박민규, 『더블 sideB』
-인생의 광복을 찾아
2021년 광복절은 일요일이었다. 입추가 지난 지 한참이었지만, 여전히 더웠다. 축축 처졌다.
대체휴일제도가 시행되었다. 8월 16일인 월요일이 빨갛게 되었다. 쉬는 날이 이어지자 여유로움이 생길 법도 한데, 이상하게 쉰내가 났다. 아직 쉰 살이 되지도 않았으나 너무 많이 쉰 것 같았다. 1945년 한반도엔 광복이 왔는데, 현재의 나에겐 광복이 오지 않았다. 빛을 찾기 어려운 나날이었고, 숨만 쉬어도 잔뜩 빚을 진 것만 같은 인생이었다.
경제학의 시조라고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건강하고 빚이 없으며 양심에 꺼릴 게 없는 사람의 행복엔 무엇 하나 더할 게 없다고 호언했다. 나는 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금융권에 빚이 없으며,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별로 없기에 행복한 편이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반짝인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쥐구멍에도 볕 뜰 날이 있다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디어나가지만 평생 빛 구경을 하지 못하리라는 걸 각오한 상태이다. 인생은 짧은 한편의 달콤한 꿈같은 것이다. 머지않아 세상에 하직인사 할 날이 어김없이 찾아올 예정이다.
세상과 사뿐히 작별하기에 앞서 파국의 조짐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예전처럼 살 수 없다는 심각한 경고인데, 우리는 여전히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욕망을 부르짖으며 내달리고 있다. 경기침체를 막고자 정부가 자금을 왕창 풀자 시중의 화폐가 넘쳐났다. 증시로도 유동자금이 흘러들어가 역대최고의 주가를 올렸다. 그런데 자금이 적절한 투자처에 공급되기보다는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갔다. 집값이 폭등했다. 주택가격 상승은 한국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난 현상이지만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이기 벅찰 만큼의 충격을 일으켰다.
집 장만하겠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접은 나조차도 집값 폭등에 마음이 곤두박질쳤다. 날마다 쏟아지는 기사와 부동산공인중개소 앞에 붙어있는 호가를 볼 때마다 칼바람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볼을 꼬집었다. 꿈이라면 얼른 깨어나고 싶었다. 꿈이 아니었다. 곳곳의 복덕방이 복을 주기는커녕 집 없는 사람들을 대놓고 모욕하는 현실이었다.
얼마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집이었다. 집 내부구조나 위치가 변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몇 억이 우습게 뛰었다. 이 말은 수중의 화폐가치가 엄청나게 떨어졌다는 뜻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어렵사리 모은 돈의 가치가 약탈당한 것처럼 하락했다. 집을 구매하지 않은 사람들은 한순간에 벼락거지가 됐다. 삽시간에 몇 억이 오른 집값은 한 푼 두 푼 저축한 사람들의 뒤통수를 삽으로 후려치는 효과를 일으켰다.
시대가 변했다. 은행이자는 물가상승률보다 훨씬 적다. 알뜰살뜰하게 돈을 모아 적금통장을 채우는 건 성실함의 증거가 아니라 망하는 지름길처럼 되었다. 오랫동안 대출이자에 허덕이더라도 빚을 내어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이 한국인들의 표준행동이 되었다. 다수의 사람들이 무리하게 부동산을 사들였고, 부동산 가격은 미친 듯이 올랐다. 누군가는 웃고 있을지 모르지만, 실물경기를 받쳐주지 않은 상황에서 부동산경기만 호황일 수 없다. 거품이 꺼지는 순간 파국이 도래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 하늘의 계시처럼 복권판매점이 눈에 띄었다. 한 번도 들러본 적 없는 장소이다. 복권에 관심이 전혀 없어서 동네에 복권판매소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어두운 저녁에 복권판매소는 환히 붉을 밝힌 채 외롭고 괴로운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바라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들락날락했다.
어쩌면 내 삶의 서광이 복권을 통해 비출지 모른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다. 다들 로또 한방을 통해 인생역전을 하고 싶다고 말을 하는데, 그 말이 새삼스레 내 귓가에 맴돌았다. 심장박동소리가 커졌다.
<로또를 향해> 글쓴이 - 이인
인문학 강사이자 작가. <나의 까칠한 백수 할머니>, <고독을 건너는 방법>, <남자를 밝힌다>, 등등 여러 책을 저술했고, 많은 곳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재미있으면서도 산뜻한 글을 쓰려고 해요. 언젠가 그대와 반갑게 뵐 날을 상상하며, 오늘도 싱싱하고 생생하게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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