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를 실시한지도 어느덧 2년이 넘어간다. 나도 일명 '살천지 확찐자'가 되어버렸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다가 한참 즐기다가 시들해졌던 실외러닝을 다시 시작해 볼 마음이 생겼다.
이사 온지 몇달 만에 집 앞 호수를 끼고 있는 산책로를 발견했다. 처음엔 산책로 한바퀴정도만 쉬지 않고 뛰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점점 늘어 이제는 10킬로미터 정도는 가볍게 뛴다. 놀라운건 이 러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운동화를 신고, 모자를 쓰고 현관문을 나설 마음이 굳어지는 그 순간이라는 점이다. 일단 호수가 보이면 다리가 저절로 움직인다.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를 따라서 뛰는 순간엔 힘들다는 느낌보다는 뿌듯함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산책로에서 만나는 반갑지 않은 존재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집 앞 호수에는 오리들이 산다. 그래서 호수를 끼고 달리는 약 500미터 정도 되는 구간에 다다르면 속도를 줄이고 오리 똥이 있지는 않은지 바닥을 잘 살피며 조심 조심 한발씩 내딛어야 한다. 비가 온 다음 날은 젖은 나뭇잎을 밟고 미끌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뛰어야 한다. 조심의 순간을 넘어서는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도 존재한다.
바로 산책중인 강아지를 만났을 때다. 목줄을 잘 잡고 있는 주인과 함께 있는 경우라면 속도를 조금 줄이고 비켜서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한 손엔 목줄, 시선은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는 주인을 만날 때나, 너무 어린 아이가 목줄을 잡고 있을 때면 나는 그 일행이 지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 멈춰서야 한다. 겨우 유지하고 있던 페이스를 늦춰야 할 때는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그럴때마다 내가 '여기에 왜, 무엇을 하러 왔는지'를 생각하며 다시 부지런히 다리의 움직임에 집중하려 애쓴다. 몇달을 뛰다보니 산책로에서 지켜야할 매너도 조금은 익히게 되었다. 내 앞에서 천천히 걷고 있는 사람에게는 "왼쪽으로(혹은 오른쪽으로) 지나갑니다." 라고 말한다거나, 마주오는 사람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해주거나, 적어도 눈을 마주치고 짧은 미소를 지어준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마음챙김 명상을 시작하고 자세의 불편감이나 잠이 오는, '신체적' 고비를 넘기고 나면 마주하게 되는 새로운 어려움이 있다.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머릿속에서 하나씩 떠오르게 되는 마음의 조각들을 발견하게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힘차게 달려가는 생각 기차(Train of thought), 원숭이가 마구 날뛰는 것처럼 통통 튀어다니는 멍키 마인드(Monkey mind)라는 비유를 사용하거나 배회하는 마음(wandering mind)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마음챙김 워크숍이나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명상을 경험해봤는지,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지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기차와 날뛰는 원숭이를 만난 경험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처음엔 “이러한 상태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호흡으로 의식을 돌려보면 좋아요.” 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되풀이했었다.
그러다가 문득, 명상을 지도할 때 참여자가 이런 마음의 상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적절한 수준에서 참여자 스스로 이런 생각을 ‘처리(process)’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지도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면 명상이 머릿 속 잡생각을 모두 소환하는 괴로운 순간으로 나의 머릿속에 새겨지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내가 걷고 있는 산책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을 다지는 것이다.
페르시아 시인 루미(Rumi)의 시, <여인숙(The Guest House)>에서는 우리가 시시각각 마주하는 마음의 조각들을 마치 여인숙을 찾은 손님처럼 대하라고 한다. 기쁨도, 우울도, 비열함도, 순간적인 깨달음도, 모두 환영하고 환대하라고 말이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마음의 조각들을 인정해주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들여다보는' 일이 마냥 기쁘고 즐겁지많은 않다는 것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이 시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고, 마음챙김 워크숍에서 널리 인용되곤 한다. 그러나 준비가 안된 나의 마음에 모두를 극진히 환대하고 안으로 모시는 건,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든 필요하면 명상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인지시키는 것을 우선적으로 권한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별것 아닌 일'일 때도 있지만, 마냥 모든 것을 무시하고 냅다 달리기에는 위험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명상을 하는 나와 산책길 위의 나를 동일하게 놓고 생각해보면,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오늘의 산책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다. 대부분 저마다의 길을 걷고 있는, 모르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나 또한 오늘치의 운동을 위해 운동복과 운동화를 챙겨 집을 나선 것이기에 '내가 당신이 지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정도의 목례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사람의 산책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내가 조깅중임을 알리고, 그들이 비켜서주면, 고마움을 표시하고 지나가면 그만인 것이다. 곳곳에 지뢰처럼 놓여있는 오리 똥을 발견하면, 밟지 않으려 조심하며 지나가면 된다. 비가 많이 와 미끄러운 낙엽이 있는 날엔 뛰는 대신 조심해서 걸으면 된다. 데리고 있는 개의 목줄을 놓칠 것 같은 주인에게는 멈춰서서 눈짓으로 '나는 저 개가 무섭습니다.'라는 신호를 주고 잠시 기다려 주면 된다.
그런데 명상 중 마음속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만나는 모든 것에 멈추어 서서 악수를 하고, 안부를 물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입은 티셔츠가 무슨 색깔이었는지 기억하려 애쓰거나, 만나는 강아지마다 이름이 뭔지, 몇살인지 묻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산책로에 걷거나 뛰러 나온 것이지 타인의 산책을 방해하거나, 타인의 생김새를 조사하기 위해 집을 나서지는 않았다. 물론,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친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친구가 나와 만나 얘기를 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정도는 먼저 확인을 해주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다짜고짜 아는 얼굴이 보인다고 손을 부여잡고 10년치 근황을 풀어놓는 오지라퍼가 될 필요는 없으니까.
명상을 하려고 앉으면 깜빡하고 넘어간 일, 해놨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일들이 떠오르거나, 오늘 저녁엔 뭘 먹지? 내일 출근하면 부장님에게 뭐라고 말하지? 등등을 계획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해야 ‘맞는’ 건지 모르겠다는 고민섞인 질문들을 받을 때도 있다.
단 하나의 정답은 없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명상을 시도한지 오래되지 않았을 땐 ‘오늘의 명상’을 완주하는 경험에서 얻어지는 무언가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는 얘기를 해주곤 한다.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명상을 시도할 때 시간단위가 아닌 호흡의 횟수를 목표로 삼아보는 것이다. 호흡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때, 일반적으로 1분에 약 12회에서 20회 정도의 호흡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마음챙김 명상에서는 호흡에 주의를 기울이는 과정을 통해 평소보다는 조금 느리고 깊은 호흡을 시도하기 때문에 1분에 10회 미만의 호흡을 하게 된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 숫자를 세는 것은 뇌에 일정한 ‘임무’를 부여해 잡생각이 덜 떠오르도록 도와주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다. 아울러 들숨과 날숨의 길이와 깊이를 균형있게 맞추는데도 도움이 된다. 10분, 15분의 명상을 한번에 시도하겠다는 마음 대신, 평소보다 길고 깊은 호흡을 스무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2분 정도가 지나갔을 것이다. 이렇게 호흡의 횟수를 차차 늘려가다보면 5분정도는 무리없이 고요한 명상의 상태에 가까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몸과 마음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느낄 정도의 효과를 느끼기 위해서는 한 번에 약 8분에서 10분 정도의 명상을 하는 것을 권장한다.
걸음마를 막 배운 어린아이가 찻길로 뛰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손을 잡아주듯, 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내 마음속 원숭이를 내쫓으려 하지말고, 손을 잡은 채로 한발 한발 내딛어 천천히 걸어서 오늘치의 마음 산책을 완주하는 것, 그렇게 하루하루 스스로의 명상을 돕는 지도자가 되어보는 경험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
* 매달 17일, 27일 ‘일상의 마음챙김’
글쓴이 - 진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뉴스와 시사 인터뷰를 맛깔나게 진행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미국 수도에 있는 한 국제기구에서 참여자들의 의미있는 경험을 비추기 위해 행사 진행을 돕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
<____>을 출간했습니다 라는 소식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 속 소망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읽고, 쓰는 하루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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