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는 한적한 카페를 찾아 다닌다. 핫한 곳을 가면 아는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고, 그들은 한때 우리 카페의 손님이었던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인사를 해도 어색하고, 어떤 말을 주고받아도 민망하다. 가끔은 민망함을 넘어서는 단골손님을 만날 때도 있지만, 다른 문제가 생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외로운 마음이 사라진다는 점이 문제다. 외롭지 않으면 나는 골몰하기 어려운 타입이다. 그래서 글 쓰는 날은 사람이 없는 공간을 찾아 낯선 골목을 돌아다닌다. 조금 과장하자면 밤하늘을 헤아리듯 구석구석 돌아다닌다.
어떤 여행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카페는 정말이지 밤하늘의 별처럼 구석구석 존재한다. 때때로 간판도 멀쩡하고 매장에불이 켜져 있지만, 막상 문을 밀어보면 잠겨져 있는 경우도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카페는 어떤 비밀이 있을 것 같아서 다음번에도 찾게 된다. 그러나 대게 문이란 열리는 법이고 충분히 발품을 판다면 한적한 공간을 차지할 수 있게 된다. 들어선 낯선 공간의 조금씩 다른 커피 향을 나는 좋아한다. 흐름이 적은 카페는 대게 그 계절의 감각을 조금씩 가지고있다. 여름에는 조금은 습한 듯하고, 겨울에는 조금은 싸늘하다.
그러나, 그것도 좋다. 나와 대화하는데, 쾌적할 필요는 없으니까. 오히려 그 계절을 느끼면서 뭔가를 찾아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 생각한다. 낯선 공간에서 조금은 외로워하며, 동시에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카페 구석을 너무 살피면 실례인 것 같아서, 밖의 풍경이 보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자리를 잡는다. 커피는 기본적인 것으로 두 세잔 정도를 미리 결제한다. 서너 시간 정도 앉아 있을 생각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돈을 써야 마음이 편하다.
글을 쓰는 과정은 초등학교 시절에 즐겨 했던 모래놀이와 비슷하다. 나는 내 팔이 올려져 있는 단단한 책상이 모래로 만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리고는 손은 자판기를 두드리지만, 마음으로는 모래를 판다. 파다 보면 무엇이 나올지는 스스로도 모르기 때문에, 얼마나 파야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은 긴장된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는 손에 땀이 난다. 하지만, 대부분 믿고 앉아 있으면 결국 무엇이든 나온다.
어떤 날은 언젠가 잃어버린 구슬이 나올 수도 있고, 의외의 결정을 가진 돌멩이가 나올 수도 있고, 고무처럼 끈적거리는검은 흙덩이가 나올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허공 위에 가지런히 띄워놓는다. 그리고 이것들이 글로 남겨질 만한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러나 또 그렇게 오래 생각하지는 않는다. 너무 골몰하다 보면 허공에 흩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을 붙인다.
글을 쓰는 날에만 담배를 피운다. 쓴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은 쓰는 것이 힘들어서라기보다는 삶이라는 모래더미에서 찾아낸 이미지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직장 생활의 피곤을 감내하기 위해서, 땡볕의 노동에 수긍하기 위해서, 누군가가담배를 피우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 까짓것 살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건져낸 것을 문장으로 치환한다. 담배 몇 모금은 그런 용기를 주기도 한다.
그렇게 문장이 써지고 문단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삶의 조각들을 하나의 줄에 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어떤 날은 각각의 문단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저 따로 떨어져 있는 비밀처럼 느껴진다. 실망스럽지만 그런 날도있다. 하지만, 또 다른 어떤 날은 그것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마치 새로이 발견한 별자리처럼 보인다. 흘려버렸으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을 것들이고, 그렇게 살아가지 않았으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들이다.
초안이 만들어지면, 나는 미리 주문했던 커피 중에서 마시지 않은 것을 모두 달라고 바리스타에게 말한다. 그리고 이따금시계를 보며 그것을 다듬는다. 지나치게 튀어나온 감정은 잘라내고, 이어지지 못한 문단은 다음에 다시 떠오르길 바라며지운다. 지우는 작업과 다시금 생긴 빈 곳을 매끄럽게 잇는 작업은 목이 마른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줄어들수록 초조해진다. 그 초조함에 어떤 날은 항복하고 허전한 마음을 간직한 채 패잔병처럼 낯선 카페를 살며시 빠져나오는 날도 있다. 그러나 또 어떤 날은 합당한 무엇인가가 완성된다. 그런 날은 어떤 여행에서 괜찮은 추억과 사진 몇 장을 남긴 기분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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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10년째 ‘좋아서 하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낮에는 커피를 내리고, 밤에는 글을 쓴다. 2019년부터 2년 동안<경남도민일보>에 에세이를 연재했고, 2021년에 『너를 만나서 알게 된 것들』을 썼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jung.in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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