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옆에 방이 있다. 방문이 열린 채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다. 밖에서 들어온 것은 오직 빛이다. 빛이 방 안에 들어와 있다. 빛은 그림자를 만든다. 방은 한순간 빛과 그림자를 모두 품는다. 그런데 어쩐지 쓸쓸하다. 방은 다름 아닌 하나의 존재다. 하지만 방은 그 안에 타인을 불러들일 마음이 없다. 바다는 바깥에 존재하고 방은 바다를 마주 보고 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다.
존재는 방이 필요하다.
자기만을 위한 방!
나만의 방을 제대로 가져 본 적이 없다. 태어날 때부터다. 단 한 번 대학을 졸업하고 타지역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채 한 달을 살지 못했던 방이 있었다. 조금 외진 곳에 있던 이층집이었다. 건물 옆으로 난 좁은 계단을 오르면 작은 싱크대가 있는 주방이 달린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방이었다. 남쪽으로 난 제법 넓은 창 하나가 있었지만, 있는 대로 창문을 열고 그 밖을 내다본 기억은 없다. 내가 거기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 가져보는 나만의 방에서 내가 안온함을 느낀 시간은 너무 짧았다.
이층집의 관리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의 방문이 그 방의 존재를 허물어버렸다. 그는 아주 잠깐 방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나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20대의 나는 그 상황이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그가 계단을 내려가고 난 뒤 사진 한 장이 사라진 것을 알아챘다. 방 안 거울의 틈새에 꽂혀 있던 내 사진이었다. 나는 더는 그 방에서 편안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방은 낯선 타인의 방문으로 한순간 사라졌다. 나는 며칠 뒤 친구의 원룸으로 들어갔고 친구와의 동거 이후 결혼으로 남편과 함께 살게 되었고 지금도 나만의 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방은 어떤 의미인가? 내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나만의 방. 인간은 외롭다. 그 지독한 외로움을 잊기 위해 무리 속을 파고들지만 또다시 고독을 갈망하고 혼자만의 방을 찾아 들어간다. 방은 오롯이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지 모른다. 방 한 칸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욕실이나 하다못해 변기만 놓인 화장실 한 칸이라도 간절한 것이 인간이다.
호퍼의 방은 비현실적인 구석이 다분하다. 어쩌면 초현실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방이 하나의 존재처럼 거기 있기 때문이다. 오롯이 혼자만의 공간에서 안온함을 찾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하나의 존재로서 거기 있다.
에드워드 호퍼는 미국 뉴욕 출생으로 20여 년간 삽화 작업을 해왔고, 1920년대 중반부터는 본격적으로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세계대전과 경제대공황을 거쳐 미국의 산업화 속에서 삭막하게 변해가는 도시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을 그림에 등장시켰다. 그림 속의 사람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지 않는다. 각자 자기 안에 갇힌 사람들처럼 무표정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의 건물 또한 어둡고 차갑게 묘사했다. 그럼에도 호퍼의 그림에서 주목할 것은 언제나 빛이다. 빛과 함께 그림자가 공존한다. 인간의 내면처럼.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소통 불가능한 것으로서의 가슴 밑바닥에 내려앉은 각자의 불안과 고독이 호퍼의 그림 속에는 있다.
호퍼는 언젠가 해안지역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햇볕이 잘 드는 스튜디오를 지었다고 한다. 〈바다 옆의 방〉은 스튜디오에 달린 방을 그린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어쩐지 이 그림 속의 방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아무도 살지 않을 것만 같다. 방은 그저 방으로 존재하고 바다는 방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도구일 뿐. 호퍼는 빛이 들어오는 이 바다 옆의 방을 자신과 동일시했을지 모른다. 12세 때 벌써 키가 190cm가 넘는 마르고 말수가 적었던 아주 내성적인 호퍼 자신 말이다. 이런 나의 생각을 뒷받침한다는 듯 호퍼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미국의 단면을 그리고자 했던 적이 없다. 나는 내 자신을 그리는 중이다.”
마크 스트랜드의 시 「그대로 두기 위하여」는 호퍼의 그림 〈빈방의 빛〉과 닮았다고 한다. 〈빈방의 빛〉과 내가 베껴 그린 〈바다 옆의 방〉 또한 서로 닮아 있다. 여기 시의 일부를 옮겨 본다. 전문은 『빈방의 빛』 역자 서문에 적혀있다.
호퍼의 그림은 나를 사로잡는다. 그의 그림은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어두운 심연에서 떼어 내 눈앞에 그대로 펼쳐 보여주는 것만 같다. 알 수 없고 설명할 길 없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의 실체를. 고독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스스로를 무장하지만 결국 무너지는 것은 언제나 무시로 찾아오는 지독한 외로움. 그 외로움을 똑바로 마주할 최소한의 조건인 나만의 방이 여전히 내겐 없다.
나만의 방에서 나는 사라지고 싶다
글쓴이 : 오랑
양치할 때마다 거울 속에 비친 나의 선인장과 달을 응시한다.
오른손 손목뼈 아래 새긴 내 고독의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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