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사람은 뭐라도 찾게 되어있다. 어떻게든 당첨되고 싶은 마음은 당첨유형을 찾아낸다. 역대 로또 당첨번호들을 들여다보면서 일정한 규칙이나 다음 당첨번호를 예상하는 것이다.
여태까지 1 2 3 4 5 6 이렇게 일렬로 여섯 개의 숫자가 나온 적은 없다. 1 2 3 4 5 6이나 사람들이 골머리를 썩으면서 표기한 숫자 여섯 개나 당첨확률은 동일한데, 우리는 느낌상 자신이 찍은 번호가 당첨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1 2 3 4 5 6을 연속으로 표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로또당첨이 우연에 불과하다는 걸 철두철미하게 자각한 합리주의자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기계처럼 숫자를 대할 수 없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당첨될 가능성이 높은 번호를 찾게 된다.
로또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1등으로 당첨된 번호조합을 쭉 나열한 뒤 일정한 규칙을 찾아내려고 눈에 불을 켠다. 짝수의 숫자와 홀수의 숫자가 3:3일 때 당첨가능성이 올라간다든지, 저번엔 앞쪽에서 숫자가 몰려나왔으니 이번엔 뒤쪽에서 몰려나올 차례라고 하는 등등의 자기만의 규칙을 만들어낸다.
규칙을 찾으려는 현상은 뇌에 탑재된 기능 때문에 벌어진다. 우리에겐 현상과 현상사이를 인과관계로 엮는 본능이 있다. 아울러 특정한 유형을 찾아내려는 본능이 갖춰져 있다. 아주 옛날에 조상들 가운데 숲을 지나가는데 덤불이 흔들렸을 때 무덤덤하게 그냥 지나치는 사람보다는 덤불 뒤에 야생동물이 있을 거라고 예측하고 경계하는 사람의 생존확률이 높았다. 그저 바람에 덤불이 흔들려도 자동으로 무서워하는 부작용이 발생했지만 혹시라도 진짜 맹수가 숨어있을 수 있었다. 외부 현상에 무덤덤하기보다는 과도하게 반응하는 쪽이 생존확률이 높았다. 그 결과 우리는 세상만사에 어떻게든 인과관계를 부여하게 됐다.
외부 현상을 관찰하고 유형을 포착해서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건 연어탐정의 몫이다. 우리 머릿속에 살고 있는 연어탐정은 관찰되는 것을 거꾸로 추리해서는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는지 원인을 밝히려 한다. 강을 거꾸로 거스르는 연어들처럼 연어탐정은 결과들을 한참 들여다본 뒤에 원인의 작동규칙을 찾고자 거침없이 움직인다. 우리가 현실에서 혼돈을 느끼지 않는 건 연어탐정이 소란스러운 세상을 나름 질서정연하게 분석해서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덕이다. 연어탐정의 추리가 생뚱맞을 때도 있다. 언어탐정이 자기만의 세계에 머무는 사람들은 주위에서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사실 우리 모두는 현실감이 떨어진다. 인간은 세상 그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연어탐정이 분석하고 추리한 내용을 세상이라고 믿고 산다. 오해는 필연이다. 연어탐정은 세상만사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눈에 불을 켜는데, 연어탐정의 해석이 옳은 건 아니다. 현상과 현상 사이의 연관성을 나름 탐지할 때도 있지만 아무런 연관성이 없거나 숨겨진 의미가 없는데도 우리의 연어탐정은 어떻게든 의미를 제조한다.
아주 옛날부터 연어탐정은 어둠 속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면서 그 그림자를 만든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어둡고 조금 무서운 상황에서 저기 멀리 그림자가 있다면 연어탐정은 그림자라는 결과를 만든 원인이 무엇인지 추리에 몰두해서는 도깨비나 귀신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달빛에 그림자가 진 것인데도 말이다.
또한 하늘 위에 떠있는 구름을 보더라도 거기서 특정한 신호나 상징을 어떻게든 찾아냈다. 구름이 저렇게 보이는 건 그냥 우연이 아닐 거라면서, 하늘이 자신에게 계시를 전하고자 저런 모양이 형성됐다고 연어탐정은 추리했다. 연어탐정의 환상적인 추리는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지기 십상이고, 우리는 뒤늦게 당황하면서 자신이 착각했고 오판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다고 연어탐정을 해고하지 못한다. 연어탐정은 우리와 일심동체이기 때문이다.
연어탐정의 활약 속에서 인간은 로또 1등 번호를 추리한다. 우리의 추리는 어김없이 빗나간다. 인생의 의미와 세상의 방향을 열심히 탐색하지만, 우리의 노력이 자주 어긋나듯이 말이다.
<로또를 향해> 글쓴이 - 이인
인문학 강사이자 작가. <나의 까칠한 백수 할머니>, <고독을 건너는 방법>, <남자를 밝힌다> 등등 여러 책을 저술했고, 많은 곳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재미있으면서도 산뜻한 글을 쓰려고 해요. 언젠가 그대와 반갑게 뵐 날을 상상하며, 오늘도 싱싱하고 생생하게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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