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중한 사람을 좋아한다. 점잔을 빼거나 격식을 차려 거리감을 주는 사람이 아닌, 상대의 품위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한다.
‘정중하다’는 표현이 무언가 묵직하고 엄숙하게 다가오지만 내가 사랑하고 지켜가려는 ‘정중함’ 이란 ‘무례함’의 대척점에 위치한 태도로서의 정중함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의 품위를 지키려는 태도, 누군가를 함부로 대할 권리가 내게 없음을 깨달은 태도로서의 정중함이다. 존중이 마음의 태도라면 정중함은 그 마음에 형식을 갖춰 드러내는 태도라고 느껴진다.
내게 정중함을 가르쳐준 이들이 있다. 내가 가장 비참한 상황이었을 때 함부로 충고하거나 같이 흥분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이토록 못난 나 자신도 충분히 존중받고 사랑받을만한 존재라고 알려준 이들이다. 이들이 건넨 신뢰의 눈빛, 부드럽지만 절제 있는 태도, 나를 재발견하도록 돕는 다정한 질문, 정성스럽게 대접하는 음식을 받아 누리며 ‘정중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나의 어디를 보고 이렇게 말해주는 거지? 나는 지금 너무 비참하고 수치스러워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데 이 사람은 무슨 근거로 나를 이토록 믿어주는 거지? 어안이 벙벙했다.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섬세한 지지, 내 모자란 모습까지 소중하게 돌보던 그들의 손길은 어느새 ‘내가 정말 귀한 사람인가? 나를 다시 사랑해도 될 것 같다’는 마법 같은 처방을 건넸다. 이후에도 여러 번 그런 사랑에 기대 성장하면서 ‘사랑과 정중함은 함께 오는 거구나. 사랑한다면서 무례할 수는 없는거구나.’ 를 깊이 새겼다.
사랑하는 사이니까 이 정도는 용인되겠지라는 태도, 이게 다 사랑해서 하는 말이라며 쏟아내던 무절제한 말들, 사랑이란 이름 아래 자행되던 수많은 무례함이 새롭게 조명되었다. 진짜 사랑을 맛본 사람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닌 것을 사모하지 않는다. 그들이 내게 보여준 사려 깊고 다정한 태도, 너그럽고 품위 있는 사랑을 배우고 싶어졌다.
살다 보면 가장 가까운 사이에 정중한 사랑을 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큰 소리를 내고, 가볍게 협박을 하고, 보상을 걸어 복종시키면 보다 빠르게 상황을 제압하고 상대를 조종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란 걸 안다. 남편과 아이들, 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사랑하며 살고 싶어 오늘도 정중함을 장착한다. 알면서도 해내지 못하는 날은 속상하지만 오늘 조금 부족하더라도 내일이 있으니 괜찮다. 속도는 느리지만 방향이 맞으니 이 사랑 괜찮은 거다.
* 매달 13일, 23일 ‘마음 가드닝’
글쓴이 - 이설아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를 썼고 얼마 전 <모두의 입양>을 출간했습니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입양가족의 성장과 치유를 돕는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 대표로 있으며, 가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손에 잡히는 디자인으로 만드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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