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 여군, 그리고 여자 소방관 무용론 (2)

편견에 맞서는 여성들 그리고 그 역사의 파편

2023.06.20 | 조회 2.26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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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익명이었던 여성들 - 우리의 불만을 기록합니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자랐습니다. 여기서 성 역할 고정관념이란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여, 성별로 다른 사회적 역할을 기대하는 특정 사회나 문화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이나 신념'이라고 심리학에서 정의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여자는 분홍', '남자는 파랑'으로 규정지어 알려주는 게 바로 그 예시죠. 이런 고정관념이 특히나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바로 '직업'입니다.  

'직업에 귀천 없다'는 말이 있지만 현실에서 여성에게 허락되는 직업은 굉장히 제한적입니다. 그중에서도 군인, 경찰관, 소방관은 위계질서를 중요시하고 몸을 움직이는 직업은 여성의 진출이 적은 분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직업을 가진 여성을 향한 비난이나 논란은 끊이질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논란 뒤에 본질적인 문제가 숨어있다고 지적하는데요. 이러한 현상은 기존 여성이 진출하지 않던 분야에 다수 진출하여 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발생했으며, 기존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던 일자리에 여성의 비율이 늘어나 경쟁이 치열해지자 반발감이 생겨 발생한 문제라고 분석했습니다.

반발이 거세진 만큼 여성의 파이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니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드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지난 뉴스레터에 이어 그중에서도 '여성 소방관'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잊혀진 여성들 71번째 뉴스레터, 여성 소방관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바로 시작해 볼게요.

ⓒ TheGuardian
ⓒ TheGuardian

전 세계적으로 남성만의 직업이라는 '소방관'

여성 소방관을 검색했을 때, 위키백과에서 볼 수 있는 첫 문장은 바로 '소방은 역사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남성 직업이었다.'입니다. 물론 1970년대 이래로 여러 나라에서 여성들이 소방관이 되었다는 문장으로 이어지지만, 현재 여성 소방관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에서도 20% 미만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문단의 끝을 맺습니다. 

초기 소방서는 군대에서 시작되었기에 강력한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방관을 홍보할 때 '남자 중의 남자'라고 묘사할 정도라고 하니 어느 정도였는지 아시겠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소방관이 남성에게 적합한 직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전 세계적으로 남성만의 직업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던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 소방관의 역사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1970년대까지 수백 명 혹은 수천 명의 여성들이 화재진압을 했더라도 그 어느 곳에서도 보고되지도, 취합되지도, 보존되지도 않았을 확률이 큽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소방서에서 소방훈련을 받고 있는 소방대원들. ⓒ 여성신문
경기도 성남시 분당소방서에서 소방훈련을 받고 있는 소방대원들. ⓒ 여성신문

여성 소방관의 탄생

세계 최초의 여성 소방관으로 알려진 몰리 윌리엄스(Molly Williams)는 1815년 소방대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당시 소방대 또한 권위 있는 직업이었고 몰리는 11번 자원봉사자라고 불리는 용감한 여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엠마 버넬(Emma Vernell)은 50세에 소방대원이 된 인물이며, 뉴저지주에서 소방관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여성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 대전에는 전국의 많은 여성이 소방대에 합류했습니다. 군대에 소집된 남성들을 대신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지원했고, 심지어 일리노이에 있는 두 소방서는 전쟁 기간 여성들에 의해 운영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홍콩에서는 1980년대부터 여성 소방대원을 모집했지만 1994년에 여성 소방관이 등장했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2018년에 2명이 사우디 방화협회의 전문 자격 기준을 충족하는 여성 소방관이 되었다고 합니다. 인도에서는 2003년 소방 구조대 최초로 여성 대장이 임명되었으며, 일본은 세계에서 두 번째 규모인 도쿄 소방국에 2003년을 기준으로 전체의 3.8%의 비율인 666명의 여성 소방관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 소방관의 역사는 어떨까요?

1982년 서울시에서 최초로 여성 소방공무원을 공개 채용을 시작했으며, 2003년 최초의 여성 소방간부후보생으로 3명의 여성(진광미, 한선, 김현정)이 소방위로 임용되었습니다. 여기서 김 소방위는 필기, 체력, 생활태도 등 종합평가에서 1000점 만점에 947.82점을 얻어 남자 동기생들을 제치고 최고 영예인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2003년 기준 국내 소방공무원 중 여성은 3.4%에 불과했다고 하니 더욱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2015년에는 횡성소방서 서장으로 부임한 원미숙 서장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소방서장이 되었고, 2019년 제32회 전국소방기술경연대회에서 여성최강소방관 경기 분야에 단독 출전한 김다연 소방관이 있습니다. 

김다연 소방관 ⓒ 경향신문
김다연 소방관 ⓒ 경향신문

화재 현장 진압은 여성이 하기 힘든 분야?

김다연 소방관은 '전국 소방기술 경연대회'에 출전해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 대회는 전국 18개 시도 소방본부의 예선을 거쳐 선발된 소방 공무원들이 화재진압, 인명구조, 응급처치, 구조 전술 등 11개 종목에 출전해 기량을 겨룹니다.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최강 소방관'을 뽑는 종목인데요. 헬멧, 특수 방화복을 착용한 상태로 호스 이동, 장애물 통과, 타워 계단 오르기 등 총 5가지 코스를 통과해야 하고, 남성 소방관도 체력적으로 힘든 코스로 알려져 있는데 김다연 소방관이 완주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여성 소방관이 출전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기를 바란다는 김다연 소방관의 바람은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까지도 동기부여와 가능성을 전해줍니다.

김다연 소방관은 임용 후 지금까지 화재 진압반에서 일하고 있으며 화재 현장에 출동해 선두에서 불길을 향해 물을 뿌리는 '관창수'를 보조하고 호스를 끌어주는 '관창 보조'를 맡고 있습니다. 인터뷰에 따르면 근무를 시작한 지 3~4달 뒤 김다연 소방관은 여성은 행정업무를 선호한다는 주변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당황했다고 말하는데요. 보통 여성 소방관은 내근직 등 힘을 쓰지 않는 곳에 배치된다고 합니다. 화재 현장 진압은 여성이 하기 힘든 분야라는 인식이 있으며 임용 후 몇 개월간은 화재 진압 업무를 진행하지만, 그 후 내근직으로 빠진다는 편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 다른 여성 소방관의 인터뷰에서도 편견에 대한 어려움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소방 조직  특성상 여성 소방관에게 현장 근무 기회가 적어 행정업무를 할 수밖에 없었고, 현장에 더 있고 싶지만 여성은 현장에 갈 기회가 제한되며, 여성은 내근을 원하고 힘이 약할 거라는 편견 때문에 일에서 제외된다는 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똑같은 직업인데 왜 여자만 편견에 맞서야 하나

"여자들은 뭐했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여자들", "여자는 뽑지 말자", "남자가 나서서 일하고 뒤에 숨어서 월급만 받아가는 기생충들." 2017년, 충북 제천에서 발생한 화재 소식을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화재 진압 현장에서 여성 소방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게 비판의 시발점이었고 비판은 도를 넘어 여성 소방관을 흡집 내기 바빴습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소방공무원 총 5만 6639명 중 여성 소방공무원은 5299명 이라고 합니다. 그 중 화재진압, 구급, 구조 상황실 등에서 근무하는 외근자는 3918명, 내근을 하는 행정요원은 1381명이며, 이중 화재진압 여성 소방공무원은 734명입니다. 소방관이라고 하면 대게 화재 현장에서 호스를 들고 화재를 진압하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의외로 화재 출동은 업무 비중이 가장 적고, 구급 출동이 소방관 업무의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여성 소방관들은 주로 구급 소방관으로 많이 근무하며 주취자, 노숙자부터 사고 현장에서 부상을 입은 환자를 관리하는 게 구급 소방관의 임무입니다. 적은 인원임에도 불구하고 맡은 분야에서 맹활약하고 있지만, 남성에 비하면 현저히 비율이 적기 때문에 위와 같은 논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여성과 남성의 비율과 동일하게 뽑으면 해결될 문제 같은데 말이죠.

또 다른 이유는 여남의 기준을 다르게 둔 소방관 채용 체력 시험 때문입니다.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형평성 논란이 일어 소방청은 여성 소방공무원의 채용 체력 검정 기준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체력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쉽게 소방관이 되었을까요? 정답은 '전혀 아니다'입니다. 여성 채용 비율을 제한해 소수의 인원만 뽑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루기 어려운 목표이기도 합니다. 선발 인원이 적으니 여성 지원자의 필기시험 경쟁은 유난히 치열하며, 체력시험 또한 마찬가지로 거의 만점 가까지 맞아야 합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알면 알수록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체력시험 기준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이 이상하지 않나요? 문제는 체력시험이 아니라는 것을 독자분들은 알고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 Unsplash
ⓒ Unsplash

여성 소방관은 사회적인 편견이나 잣대에도 불구하고 매년 높은 경쟁률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남들이 정한 기준에 맞춰 한계를 정하지 않고 꿈을 이뤄나가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앞으로 소방관의 역사에 더 많은 기록과 발자취를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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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외전 - 두 번째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깨어나라, 여신이라는 정형적이고 뒤틀린 틀에서.
이 책은 신화 속 열두 여성의 권능을 되찾으려는 여정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 외전 - 두번째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소개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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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en

    0
    3 months 전

    여성인력도 우수하다는 예로 03년 임용1등 김현정 소방위, 19년 전국소방기술경연대회 출전한 김다연 소방관의 경우를 들었는데 이럴 경우엔 *남자와 똑 같은 조건이었다.*를 명시할 수 있어야 글에 힘이 붙을 수 있습니다. 김다연 소방의 경우도 단독출전이 되는 경우라면 남자부문으로 출전했어야거나 여자부문으로는 참가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맞겠죠. (스포츠 경기에서는 남녀를 구분해 경기를 치르지만, 화마/강도/폭행/전쟁 현장에서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으니까요. Top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평균 자질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인질상황과 화마 속에서 신속히 상황을 이겨낼 능력과 신속한 구출능력을 바라는 것입니다. 본인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경찰과 소방대원에게 내가족 내국민 의 목숨이 배정되어지는 건 싫다는 얘기입니다. 현 경찰소방 인력 상황에서 일반 국민에게 출동 성별을 선택할 옵션이 주어진다면 아마도 여성보다는 남성을 선택할 확률은... 관계부서에서 연구용역 태우면 답은 금방 나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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