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우주인, 우리가 외면한 이야기

규정 위반한 남자보다 임무 수행하고 온 여자가 더 미운 사람들

2023.05.30 | 조회 8.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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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익명이었던 여성들 - 우리의 불만을 기록합니다

어린시절 구독자님은 어떤 꿈을 갖고 계셨나요? 어떤 이는 하나의 꿈을 오래동안 소망했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여러개의 꿈을 갖고 있었을 수도 있겠죠. 그 꿈 중에서도 유독 반짝이는 꿈이 있습니다. 기회가 있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고 싶을 일, 바로 우주비행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우주인이 있었죠. 2008년에 한국인 최초로 우주에 나갔던 이소연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동시에 여러 논란과 비난에 휩싸였던 인물이기도 하고요. 오늘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기도 하고, 잘못 알고 있었던 우주인 이소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그럼 잊혀진 여성들 69번째 뉴스레터, 지금 시작 해볼게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지구와 교신하는 이소연 박사와 동료 우주인들 @출처 : SBS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지구와 교신하는 이소연 박사와 동료 우주인들 @출처 : SBS

"안녕하세요, 여기는 우주입니다."

15년 전, 2008년 4월 8일. 대한민국은 환호로 가득했습니다. 우주에서 한국어 인사가 생방송 카메라를 통해 처음으로 전해졌을 때였죠. 우주인 이소연은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에 도착해* 지구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발사 몇 달 전만 해도 이 인삿말은 그가 아닌, 한 남자가 전할 인사였죠.

2000년 12월 러시아와 한국이 공동으로 우주비행자 양성 계획을 수립하고 8년만의 일이었습니다. 2006년 한국 우주인 배출사업의 우주인 모집공고에는 총 3만 6천여명이 지원했고, 최종 후보로 2인이 선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소연은 탑승 우주인이 아닌 예비 우주인으로 선발되었습니다. 여성과 남성이 나란히 최종 후보에 오르고, 남 후보자가 최종 선정 된 모습에 국민들은 기뻐했습니다. 여남 차별 없이 공정하게 선정하였다는 느낌을 주지만, 결국 듬직한 청년남성이 최초의 한국 우주 비행사가 되는 것이어서였을까요? 한국 최초 우주인이 이소연으로 바뀌자 이를 부정하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2008년 3월, 비행을 한 달 가까이 앞두고 전 국민의 관심 속에서 선정되었던 남 후보자가 중대한 보안 규정 위반으로 자격이 박탈되었고 최종 탑승 우주인은 이소연으로 교체됩니다. 하지만 예비 우주인으로 발탁된 후에도 최고의 예비 우주인이 되기 위해 1년여간 훈련을 열심히 한 덕분에, 이소연은 바로 대처하여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우주인 프로젝트의 목표가 우주정거장에서의 과학 실험이었기 때문에, 기계공학과 바이오시스템을 전공한 박사인 그는 아주 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 도착했다는 표현은 이해를 돕기 위해 쓴 표현으로, 국제우주정거장과 우주선이 도킹했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실험을 수행하는 이소연 박스 @출처 : SBS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실험을 수행하는 이소연 박스 @출처 : SBS

그의 우주비행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남 후보자의 자격이 박탈되기 전 이미 사용할 물품이 화물로 보내졌고, 개인 물품 허용량마저 실험 장비와 정부에서 요구한 로고 패치 및 스티커로 가득차 그는 우주에서 사이즈도 성별도 다른 사람의 옷을 입어야 했죠. 미국인 우주인의 옷을 빌려입기도 했고요.

그리고 그가 예비 우주인으로 선정되었을 때 이미 정해졌던 18가지의 실험을 우주에 머무르는 11일간 수행해야 했습니다. 러시아 담당자를 비롯한 다른 우주인들이 우주인 한 사람이 수행하기엔 무리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고도 많은 양의 임무였죠. 예를 들어 무중력 환경을 이용해 균일하게 입자를 합성하는 '결정 성장 실험' 같은 우주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물질을 생산하는 산업에 연결되는 기초 연구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머무르는 동안 그는 실험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국의 우주인 프로젝트의 단계에 따라 정부가 바뀌었고 담당 정부부처의 이름이 바뀌어서 비행복에 새겨진 부처의 패치를 고쳐달아야했기 때문이었죠. 바쁘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바느질까지 해야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맡은 모든 실험을 수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카자흐스탄 초원에 비상착륙 후 구조팀이 찍은 사진 @출처 : 위즈덤하우스
카자흐스탄 초원에 비상착륙 후 구조팀이 찍은 사진 @출처 : 위즈덤하우스

그는 우주로 나가기 전 러시아 훈련소에서 생활하며 비행 시뮬레이션을 하고 생존 훈련을 받았습니다. 특히 해양 생존 훈련은 흑해에 소유즈 우주선을 던져놓고 빠져나오는 연습을 하는데, 같이 우주에 나갈 우주인 여럿이 한 팀을 이뤄서 함께 탈출 훈련을 했습니다. 파도에 넘실대는 좁은 우주선에서 탈출을 하다보니, 체력적으로 몹시 지치고 체중도 2~3시간 만에 5kg 가량 줄었다고 하죠.

이소연은 실제로 지구로 귀환할 때 사고가 있었습니다. 목숨을 위협할 사고였습니다. 우주선에서 모듈 분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대기와 마찰 때문에 귀환 캡슐이 화염에 휩싸였고 카자흐스탄의 평원에 떨어졌습니다. 이는 예상 지점보다 420km 정도 벗어난 곳이었고, 지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구조대가 아닌 하늘에서 연기가 나는 물체가 떨어지는 걸 본 유목민이 그와 동료들을 구했습니다. 캡슐을 감싼 화염의 열에 5초만 더 노출되었어도 다 불에 타 고통조차 못 느끼는 채로 목숨을 잃었을 아찔한 사고였습니다. 캡슐에서 나와서도 그들은 동료에게 의지하며 몇 시간동안 구조대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영화로 만들어지거나 영웅담으로 두고두고 회자 될 만한 최초 한국 우주인의 지구 귀환 이야기는 우주나 과학에 관심을 두는 이가 아니면 알기가 어려운 수준입니다. 만약 자격이 박탈되지 않았던 남 후보자가 겪은 일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영화로, 드라마로, 어쩌면 음악이나 그림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지 않았을까요.

 

국제우주대회(IAC) 홍보대사 이소연 박사와 우주소년단 어린이들과 기념촬영 @출처 : 연합뉴스
국제우주대회(IAC) 홍보대사 이소연 박사와 우주소년단 어린이들과 기념촬영 @출처 : 연합뉴스

우여곡절 끝에 우주인 이소연은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대한민국 우주인 배출사업은 일회성 사업이었기 때문에 우주인 또는 우주 실험과 관련 된 후속 사업이 계획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이소연 역시 이 사업이 3년 기한 프로젝트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수 백 억에 달하는 예산이 들어간 엄청난 일에 '정말로' 후속 계획이 없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죠. 

그럼에도 지구 귀환 후 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에서 최소 2년간 근무하는 것이 우주인 이소연에게 부과 된 임무였고, 그는 그 두 배인 4년 동안 수 백 회의 강연, 행사, 전시 그리고 대중매체 홍보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자신이 우주에서 한 실험들의 후속 실험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예산 확보 방안을 모색하거나 지상 실험을 위해 공군 시설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주인 프로젝트 자체가 일회성으로 마무리 되었기 때문에, 그가 혼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죠.

한 인터뷰에서 그는 정부 부처의 한 인사로부터 '우주 갔다 와서 이 정도로 유명해졌으면 됐지 왜 자꾸 뭘 더 하려고 하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출처 : Wikimedia
@출처 : Wikimedia

그는 항우연에서의 추가적인 연구 없이 우주에서 있었던 11일 간의 비행 이야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우주인 이소연으로 할 수 있는 후속 프로젝트가 마련되기란 너무나 먼 이야기였죠. 항우연과의 의무 계약 기간이 끝난 후에도 연구직으로 남아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지만, 그는 남은 생을 2008년 4월의 11일에 가두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는 미국 유학을 결정하게 되죠.

하지만 대중들은 그에게 먹튀라며 비난을 했습니다. 심지어 그가 공부한 공립 고등학교와 국립 한국과학기술원을 졸업한 경력마저, 국가 세금으로 키워준 것이 괘씸하다고 구상권이라도 청구해야한다며 비난했습니다.

반면, 중대한 규정 위반으로 우주인 자격이 박탈 된 남 후보자의 경우 항우연과 의무계약기간을 마친 후 미국에 갔고, 우주인으로서의 삶을 살지 않고 일반적인 회사 대표로 있지만 사람들은 격려와 응원을 보냈습니다. 이소연에게와는 사뭇 다른 대중의 반응이죠.

 

국제우주정거장에 들어가는 이소연의 모습 @출처 : NASA TV / Reuters
국제우주정거장에 들어가는 이소연의 모습 @출처 : NASA TV / Reuters

한국의 우주인이 더이상 배출되지 않는 것이 마치 이소연의 책임인 양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기사는 아직까지도 많습니다. 이소연이 한국을 떠난 것에 대해서도 비난과 조롱이 가득하고, 심지어는 억측까지 난무합니다. 

하지만 당시 우주에서 그가 수행한 실험 중 일부는 연구자들이 후속 연구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이소연의 비행 이후 한국 마이크로중력학회라는 연구단체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가 우주에서 진행한 18가지 실험이 마이크로 중력 연구였기 때문에 그때부터 발족하고 연구가 이어온 것이죠. 이렇게 우주인 이소연의 발자취는 연구를 통해 그리고 강연을 들었던 수 많은 아이들을 통해 남아있습니다.

 

"언젠가 대한민국도 우주 강국이 되어서 각자 맡은 일을 우주에서도 수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0년 전 우주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을 통해 '이소연이라는 사람이 우주에 있다는 건 대한민국 사람인 당신이 우주에 온 것과 같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다시 우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인공위성 서비스 스타트업에 몸담아 국제협력 파트를 담당하고 있죠. 우주인이 배출되기까지의 성공 스토리를 넘어, 우주개발과 과학기술의 성장 스토리를 들려주고자 하는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의 이야기. 앞으로 그가 들려줄 이야기가 조금은 궁금해지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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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그

    0
    11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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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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