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성, 판도라 신화 다시 읽기

여성의 호기심은 과연 죄악인가?

2022.11.01 | 조회 1.76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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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익명이었던 여성들 - 우리의 불만을 기록합니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신화 좋아하시나요? 신화는 한 나라, 혹은 한 민족으로부터 전승되어 오는 예로부터 섬기는 신을 둘러싼 이야기로 세상 최초의 철학으로도 해석되며 오늘날 다양한 창작 작품에 이용되어 왔습니다. 기원전 8세기부터 그리스와 유대 땅에서 훗날 신화로서 힘을 얻게 될 창조 설화가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이들 설화는 신에게 대항하다가 타락한 인간을 이야기했고, 여성의 유약함이 어떻게 인류에게 크나큰 재앙을 불러일으켰는지 설명합니다. 여전히 대다수 사람이 진실이라고 믿는 유대인의 경전인 <창세기>에 따르면 인간 세상 불행의 원흉은 이브였고, 그리스 전통에 따르면 판도라였습니다. 오늘은 최초의 여성 중 하나인 판도라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판도라, 1896년,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작품 ⓒPublic
판도라, 1896년,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작품 ⓒPublic

 

여성이 없는 생식?

프로메테우스는 거인인 타이탄족이었으며, 이 타이탄족은 인간을 만드는 일과 또 인간과 다른 동물들에게 그들을 종속 보존을 위하여 필요한 능력을 부여하는 직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남동생인 에피메테우스가 동물들에게 필요한 능력을 부여하고 나면, 이에 따라서 여러 가지 동물들에게 용기와 기운, 민첩, 지혜의 천품을 주고, 또 어떤 것에는 발톱, 또 어떤 것에는 갑옷을 주는 등의 일을 해나갔습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자원을 탕진해, 다른 동물보다 우월해야 할 사람에게 어떤 특수한 천품을 주어야 할 차례가 왔을 때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올림포스 산 꼭대기에서 을 훔쳐서 인간에게 줍니다. 이에 격분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 산꼭대기에 쇠사슬로 묶고,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벌을 받도록 만들죠. 그리스 전통, 그리고 훗날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믿음은 신이 동물과는 별개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때까지는 인간 여성의 존재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이 부재한데 생명이 계속 유지되어 왔다니요. 모든 종교는 불가능한 것을 믿으라고 요구합니다. 여성 없이도 생식이 가능하다고 보는 남성 자주성에 관한 환상이 바로 그 예입니다.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판도라가 등장하기 전까지, 남성들은 생식에서조차 여성이 불필요하다는 불가능한 주장을 했습니다.

판도라의 탄생, 제임스 베리 작품 ⓒManchester Art Gallery
판도라의 탄생, 제임스 베리 작품 ⓒManchester Art Gallery

 

판도라의 탄생

프로메테우스가 올림푸스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자, 제우스는 이 축복에 맞먹는 불행을 주기로 합니다. 그래서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스토스에게 인류를 고통스럽게 할 ‘여성’을 만들라고 명령합니다. 헤파이스토스는 흙으로 여자를 빚었고, 신들은 각자 모여 이 최초의 여성에게 가장 좋은 선물들을 주었습니다. 아프로디테는 판도라에게 아름다움과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을, 아테네는 방직 기술을 주었으며, 헤르메스는 재치와 마음을 숨기는 법, 설득력 있는 말솜씨 등을, 아폴로는 음악을 선사했습니다. 이리하여 ‘모든 선물을 받은 사람(All-gifted)’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판도라(Pandora)가 탄생하게 됩니다. 판도라는 어떤 일이 있어도 열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와, 금박을 입히고 정교하게 조각된 상자를 받아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판도라의 상자, 찰스 에드워드 페루지니 작품 ⓒPublic
판도라의 상자, 찰스 에드워드 페루지니 작품 ⓒPublic

 

판도라의 상자

판도라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과 결혼하여 살다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제우스의 선물 단지를 열었습니다. 단지 속에서 이후 인간을 괴롭히게 될 질병, 가난, 슬픔, 증오, 전쟁 등의 모든 불행이 뛰쳐나왔고, 희망만이 상자 바닥에 덩그러니 남게 되었죠. 이로써 판도라는 인간 삶의 모든 불행의 원천이 됩니다. 이로부터 인간은 이전에는 겪지 않았던 고통을 영원히 떨쳐 버릴 수 없게 되었으나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간직하며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판도라의 상자'는 '밝히거나 공개하면 엄청난 혼란이 야기되는 사안'을 비유하는 말로 쓰입니다.

이와 같은 신화의 기능은 왜 악이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나온 일종의 신정론(theodicy)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화가 여성이 인간의 타락을 주도하는 존재임을 강조하며 창조 행위의 원천이 되는 여성의 호기심을 악의 근원으로 전락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 왔음을 부정할 수 없죠. 이러한 신화들 덕분에 중세 말의 수많은 성직자, 신학자, 철학자들은 여성은 악에 빠지기 쉽고 세상의 모든 죄악을 모아 담는 그릇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아담의 후예인 남성은 ‘항상 여자의 유혹을 조심하라’는 과제를 수행하는 반면 판도라와 이브의 후예들은 아직도 ‘재앙의 근본인’이라는 오명을 걸치고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신이 인간에게 붙인 가장 큰 죄악이 호기심임을 주목해봅시다. 호기심은 “앎을 향한 욕망”으로 행위성을 포함합니다. 호기심이야말로 신을 위협할 수 있는 인간의 가장 큰 무기이며 불복종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죠. 역사 속 혁명의 중심에는 예상치 못했던 변화를 이끌며 신의 권위에 반격하는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21세기에는 판도라와 그의 후손들의 누명이 벗겨지길 바라며, 그 한걸음에 Almost Famous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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