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함의 역치

2024.01.08 | 조회 1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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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소일기 안부 편지

매주 월요일 안부 편지를 보냅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새해 첫 주 잘 보내셨나요, 뭘 했다고 벌써 1월 8일인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2024년의 한 주가 지나가버렸습니다, 저는 작년의 마지막과 비슷하게 보내고 있는데, 그래도 사람들은 해가 바뀐다는 것에 많은 의미 부여를 하고, 새롭게 다짐을 하고, 도전 과제를 얻고, 서로를 격려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새해 목표는 있습니다, 함께 즐겁게 일하는 동료들과, 건강, 재미, 이 두 가지를 얻는 한 해가 되자고 다짐했죠,

새해가 되면서 그래도 확실히 생생하게 다가오는 차이 중의 하나는 '아이들'이 나이 먹는 것을 보는 일 같아요, 어느 정도 어른이 된 이후로는 분명 나이가 드는 것에 조금 더 덤덤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아이들에게는 6살에서 7살이 되는 일도, 12살이 13살이 되는 일도, 모두 어른들보다는 더 크게 다가오니까요, 그런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는 마음에도 감회가 새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숫자로 보면 38살에서 39살이 되는 일은 숫자가 겨우 2~3% 증가하는 것이지만, 6살에서 7살이 되는 일은 무려 숫자가 15% 증가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니 '큰 일'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자녀를 키우지 않지만 주변의 지인들이 자녀를 키우는 것을 보면 확실히, '벌써 학교에 갈 나이가 됐어?', '벌써 중학교 3학년이 됐어?' 이런 놀라움이 있죠, 

최근에는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지인 분의 자녀에게 독서논술 상담을 하고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가르칠 기회가 있었습니다, 명실공히 저는 그런 분야에서 제법 비싼 선생님인데다가 아무나 쉽게 수업을 하지 않습니다만, '벌써 너가 그렇게 컸니?' 하며 너무도 즐겁게 흔쾌히 선생님이 되어주었죠, 감사한 것이 많고 친한 분의 자녀이니까요, 나중에 번잡한 사회적 일들을 걷어낼 수 있을 만큼 성공하게 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자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며 시간을 보내며 살겠다는 꿈을 조금 연습해본 셈입니다, 

연말 연시에는 저 자신을 둘러싼 변화 뿐 아니라, 저와 관계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변화가 확 다가온 일도 있었습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인데 갑자기 전국구 유명인이 된다거나, 오랫동안 같이 연구해온 스승님이 유명 기업의 대표가 된 일 같은 것이지요, 어떤 식사 자리에서 지인 분이 그런 얘기를 듣고, '너랑 친한 사람들이잖아, 기슬이랑 친한 사람들은 다 잘돼' 같은 얘기를 해서, 제가 농담 삼아 이렇게 대답했죠, '제가 기회주의적인 면이 있어서, 잘 될 것 같은 분들이랑만 친하게 지내는 겁니다' 라고요, 물론 이건 거의 농담인데, 빛나는 재능을 보이는 분들(이라고 쓰고 좋은 관상이라고 읽어도 될 때도 있지만)을 좋아하긴 하지만, 제가 대단한 식견이나 안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기준으로 사람을 가려 만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한 가지 분명 인간관계에서 제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사람들과 잘 친해지는 재능이죠, 

이것이 타고난 기질인지 형성된 능력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양쪽 모두겠죠, 그런데 이십 대 어느 시절을 보내며 저에게 여러 사람과 두루 친하게 지내면서도 많은 사람들과 깊게 친해질 수 있는 성향이 제법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K라는 인물이 있다고 치죠, K는 평범했거나 어려웠던 시기를 거쳐서 10년 정도만에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외적인 면에서 많은 인정을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10년 사이에, 한 때에 가까웠거나 친했던 사람은 수없이 많았겠죠, 저도 그 중 하나였을 수도 있고요, 여러분 주위에도 그런 분들은 한 둘 있을 겁니다, 학교를 다니며, 일을 하며,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과 마주칠 일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그 K와 '친한 사이'라고 서로 부를만큼의 그 '친밀함의 역치'를 넘지 못합니다, 그건 사실 장래에 대단한 사람이 될 K라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 평범한 사람인 관계 사이에서도 어려운 일이죠, 

'역치'는 물리에서든 생물에서든 어떤 속성이 변화하는 기점 혹은 그 기점까지 필요한 자극을 뜻합니다, 그런데 미시적인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나 사회적 활동 같은 거시적인 세계에서도, 보통 그 역치까지 가거나 그 역치를 넘어서서 속성이 변화한다면, 그 이전으로 쉽게 돌아가지도 않죠,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저는 그 원리를 꽤 어렸을 때부터 알았던 것 같고, 또 그 역치까지 도달하는 방법을 좀 더 잘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대단한 사람을 많이 알아서라거나, 대단해질 것 같은 사람과 일부러 친하게 지내서가 아니라, 굳이 따져서 차이점이 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 어느 순간에 대단한 사람 혹은 대단해질 사람을 마주치는데, 이후로도 서로 삶이 바뀌어도 계속 '우리는 친한 사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 '친밀함의 역치'를 넘어섰느냐, 이런 데에 인간 관계의 발전이라는 데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그 '친밀함의 역치'까지는 긴 시간(단지 짧은 몇 개월이 아니라 수 년 동안 알고 지낸 것)과 그러면서도 압축적인 시간(특정 몇 개월 혹은 며칠 정도는 아주 가깝게 보낸 시간), 그리고 공통 성장의 사건(함께 어떤 일을 해냈거나 어려운 시간을 보낸 일) 등등 여러 함수가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그들 '개인'의 삶을 사려 깊게 바라보고, 진심으로 응원하며,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신뢰의 태도가 물론 모든 상황에 필요하겠고요, 저도 모든 사람들과 그런 친밀함의 역치를 넘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언제 연락해도 반가운 사람'의 총량이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 많은 것 같긴 합니다,

저는 종종 취미로 드럼을 치는데, 한동안 전혀 드럼 세트 앞에 앉지 못하다가 최근에 오랜만에 스틱을 잡을 일이 있었습니다, 무척 어색하거나 손과 발이 잘 돌아가지 않으면 어떨까 하고 내심 스스로 긴장함 세트에 앉았는데, 또 조금 몸을 풀다보니 금방 예전처럼 돌아오더라고요, 하지만 딱 그 예전에 치던 만큼까지의 실력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또 신체적 능력의 속성인데, 우리가 자전거 타는 방법이나 수영 하는 방법은 한 번 배우면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신체적 능력에 관한 훈련도 특정 역치를 넘으면 쉽게 뒤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인간 관계나 친밀함 역시 선형적인 점진적 발전 단계에 있다기보다는, 분명 어느 시점까지는 그렇겠지만, 결국 대부분은 그 역치까지 도달했느냐 아니냐로, 친구들 만나고 인맥을 쌓으려 했지만 허송세월했던 시간들과, 또 인생 어느 순간에든 서로 연락하여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지인들을 얻는 시간이 갈라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최근에는 어떤 유명인들이 방송에 나와서, 젊을 때에 친구들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지 말아라, 혹은 인맥이나 지인들 사이에서 처신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신경을 쏟지 말아라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몇 번 보았습니다,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이것도 사람의 성향이고 재능이고 온전한 답은 없겠지만, 제 경우에는 지금 제 삶의 안정감을 이루고 있는, 심지어는 사업적인 부분이나 경제적인 면에서까지 도움을 주는 대부분의 관계들이, 좀 더 시간이 많고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에 쌓아둔 친밀함 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새해에는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 친밀함의 역치를 넘고, 또 오랫동안 내 삶을 지탱해주었지만 최근 챙기지 못했던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 주를 시작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은 어렵지만, 또 삶은 기니까, 사회생활하며 만나서 지금부터 친해진 지인도 다시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난 후에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있을 수도 있으니까, 저는 짧은 시간 동안에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긴 시간을 돌이켜보면 운율이 되는 것들을 늘 믿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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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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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준규

    0
    8 months 전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연소편지 구독해놓고 글이 너무 길어서 안 읽고 있었는데 최근 슈카 코믹스 영상을 보고 긴 글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각 잡고 연소편지 읽었는데 너무 재밌습니다. 친밀함의 역치는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역치를 어떻게 판단하시나요? '아, 이제 이 사람과의 친밀함의 역치는 넘어섰다!'하는 순간이 있나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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