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잠시 암스테르담에 다녀왔습니다. 프랑스 파리에 머물다 보니, 그곳을 갈 때 '잠시'라는 말을 쓸 수 있게 되네요. 암스테르담은 저에게 특별한 순간이 있는 곳입니다. 파리에 머물며, 반쯤은 여행자가 아닌 거주하는 이방인이 되어 버린 저에게 그 시작점은 암스테르담이었습니다. 2015년 4월 중순이었어요. 아직은 찬 바람이 불었고 봄이 오려면 먼 듯 어둑했습니다. 그 풍경과 함께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나설 때의 기온이 제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중앙역으로 분명 넘어왔었을 텐데 낯선 환경에 날이 서 있던 터라 그 기억은 없습니다. 따라서 마치 시공간을 뛰어넘은 듯, 앞의 모든 과정은 생략이 되고 그저 암스테르담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것은 2층의 먼지 앉은 호스텔의 공용침실입니다. 긴 사다리 창 너머로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청소차가 나타나서 간밤의 흔적들을 치워가곤 했어요. 그 덜커덩거리는 쓰레기통 소리와 사람들의 움직임, 좁은 암스테르담 골목을 위해 딱 맞게 줄어든 청소차. 그것이 매일의 아침을 열고 있었습니다. 호스텔은 중앙역과 매우 가까웠는데 1층에 술집을 운영하고 있어서 늘 테이블과 카운터 사이를 관통해 올라가야 했어요. 술꾼들이 가득했다는 기억은 어쩌면 퇴색된 것일 거로 생각합니다.
그때의 저는 제가 이 순간에도 유럽에 있을 거란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당연할 거예요. 그때의 저는,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삼 개월의 여행을 생각하는 데에도 바빴으니까요. 그 때알지 못 했던 것들은 다시금 그 때가 되어도 알지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고 나서야 보일 뿐이죠.
이번엔 암스테르담에 오 일간 머무르며 주말을 보내고 평일의 나머지를 덧붙였습니다. 주말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기에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녔어요. 그게 아주 좋았습니다. 학업에 의해 오게 된 여정이었기에 일요일에는 다른 학생들과 합류하게 될 뻔도 했으나 내성적인 성격은 쉬이 고쳐지지 않고 저 또한 굳이 고칠 생각이 들지 않아, 혼자 있기를 선택했습니다.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대신 평일은 군중 속에 계속 머물러 있었습니다. 힘들었어요. 자전거를 사흘 내내 탔는데 그렇게 오래도록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녀 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첫날이 지나고 엉덩이를 잃은 줄 알았어요. 다리는 이미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근래에 들어 헬스장을 끊고 운동을 조금 하게 된 덕에 그나마 이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재작년 가을에 그로닝겐이라는 네덜란드의 마을을 방문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겨우 네시간 밖에 자전거를 타지 않았는데도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때보다 나이가 두 살은 더 들었는데도 괜찮았던 걸 보면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겠네요. 체력이 좀 붙었거나, 암스테르담 지형이 좋아 자전거를 타기 수월했던가, 혹은 둘 다이거나.
이제 저는 다녀왔던 기억을 통해 어떠한 창작물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학교 과제예요. 여행을 다녀 온 후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것보다 더 깊은 고뇌가 필요하고 시간은 더더욱 필요하지만 어쩐지 이번 주말은 내내 쉬고 싶은 생각이 커서, 그 욕망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그저 지난주에 소식을 전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고 또 암스테르담 사진을 한 장 보내고 싶어 이 편지를 씁니다.
오랜만의 여행이라 좋았는데 그것이 짧아서 아쉬웠습니다. 여행이란 늘 그런 것이겠지요. 길면 또 금방 지루하다 할 테고 짧으면 방금과 같이 말하게 될 것입니다. 파리에 머물면서 한 가지 아쉬워진 점은 더 이상 여행자로서 왔던 그 낯섦과 이질적인 감각을 느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가지고 있었던 과거의 느낌도 사라졌어요. 그저 제가 잊게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제 구석 어딘가에 구겨져 있을 수도 있어요.
파리에 있으면서 때때로 어색해지고 싶어서, 모르고 싶어서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때의 감정을 다시 알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하지만 완전했던 옛 감정은 잘 돌아오지 않네요. 흐른 시간만큼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눈치라는 것이 늘어가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익숙함'이라는 것은 결국 '상실'과 닮아 있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 보며 두서없는 이 편지를 또 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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