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는 잘 보내고 계신가요?
아무리 긴 연휴라도 이런저런 일을 하다보면 시간이 금세 지나가버리고는 하죠.
구독자님은 이번 연휴를 어떤 시간으로 채우고 싶으신가요?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명절 음식을 나눠먹으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일 수도 있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휴식을 갖고 마음을 채우는 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떤 연휴를 계획하셨는지 저는 알 길이 없지만 부디 충만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연초 스퍼트로 소진된 체력을 채우기 위해 꽤 멋진 휴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 휴가의 화두는 비움인데요. 정확히 풀어쓰면 '비움으로써 채운다'에 가깝습니다. 해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움을 이야기하고 휴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아직까지도 작년의 연장선에 머물러있을 누군가를 위함입니다.
잘 쉬어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합니다. 역설적이지만 비울 때야 비로소 채울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기 때문인데요. 오늘은 구독자님의 마음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고민과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비워낼 수 있는 공간과 활동들을 소개해 보려 합니다.
이번 어프로치(Approach)에는 광고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 티룸, 맥파이앤타이거
누구나 타인과 말을 섞지 않고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향긋한 찻내음과 함께 오직 차를 마시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이곳은 신사동에 위치한 <맥파이앤타이거> 티룸입니다. 이 공간을 메우는 것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와 찻잔이 달그닥거리는 소리, 간간이 대화를 주고받는 소리뿐입니다.
동아시아의 다양한 차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호스피탈리티 면에서도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혼자 방문하더라도, 여럿이 방문하더라도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의 환대를 받을 수 있으니 방해 없이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지인과 비밀스러운 담소를 나누고 싶을 때 이곳을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인스타그램] 맥파이앤타이거 (링크)
🎍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사유의 방'이라는 상설전시관이 마련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보인 반가사유상 두 점이 유리장도 없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으로, 2015년 이후로는 첫 전시입니다. 천장은 마치 금방이라도 별이 떨어질 듯한 우주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한 선상에 놓인 불상은 관람객의 눈높이와 시선을 맞춰 오묘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황토로 된 벽면과 의도된 1도의 경사에는 건축가의 치밀한 의도가 숨어있겠지만 이에 대한 해석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정답이 없는 이 공간에서만큼은 긴장을 풀고 충분히 멍 때리고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웹사이트] 국립중앙박물관 / 관람료 무료 (링크)
🧘🏻 마음챙김을 위함, 클라
'마음 챙김'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명상을 통해 과거나 미래의 불안에서 벗어나 현재에 집중하는, 몸과 마음의 감각을 깨워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과정입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 사이에서 명상은 일상적인 행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아침에 눈을 뜨면 5분에서 10분가량의 시간을 투자해 몸과 의식을 깨우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명상이라고 하면 다소 거창해 보이기도 하지만, 눈을 감고 편안한 자세로 스스로 내뱉는 숨소리에 집중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처럼 단순한 사실에 집중하다보면 머리와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압박감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명상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해 보았지만, 최근 클라(KLAR)라는 앱 서비스에 정착했습니다. 연간 구독 결제 없이도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을 체험해볼 수 있고, 초심자를 위한 7일 챌린지 프로그램 역시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이 서비스의 장점인데요.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이용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앱 다운로드] 클라 (링크)
🎧 By This River, Brian Eno
앰비언트 음악의 선구자로 불리는 브라이언 이노의 곡입니다. 이 곡은 영화 <아들의 방>의 사운드트랙으로 삽입된 곡으로, 실험적이면서 전위적인 그의 여타 곡들과는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과 허밍을 닮은 보컬이 겨울의 밤하늘을 연상시키지요. 가만히 누워 이 곡을 듣다 보면 왜 그의 딸이 이 곡을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꼽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곡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셨다면, 류이치 사카모토와 알바 노토가 콜라보레이션으로 발매한 앨범인 <Summvs> 에 실린 'By This River'도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아티스트의 개성이 녹아있는 곡의 해석이 한껏 새롭지만 원곡과 맥은 같이 한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불면으로 시달리실 때 들어보셔도 좋습니다. 곡을 듣다 보면 캄캄한 망망대해를 부유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일기도 합니다.
🎬 영화 데몰리션(Demolition)
최근 잘 사용하고 있던 헤어 드라이기가 고장이 났습니다. 얼마 전부터 전원을 켤 때면 미세하게 달라진 소리에 이상하다 싶기는 했지만 이렇게 덜컥 고장이 날 줄은 몰랐습니다. 평소 물건을 험하게 사용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고장의 원인을 찾으며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 말리는 동안 이루 설명할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왔습니다. 분명 이전에 어떤 낌새가 있었을 텐데 또 눈치채지 못했구나 싶었습니다. 이런 제 무심함이, 비단 물건을 대하는 태도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닌지라 후회가 배로 밀려왔습니다.
차라리 새로 구입하거나 고쳐쓰기라도 가능하다면 다행일 텐데 사실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어떤 이와의 기억은 쉽게 대체하거나 대체될 수 없는 단종된 부품과도 같아서, 다시는 전과 같이 돌아갈 수 없음을 너무 늦게 깨닫기만 합니다. 그런 상실감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을 비우고 치유합니다. 영화 <데몰리션> 속 남자 주인공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내를 잃고 평소와 같은 일상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집니다. 시간은 무심하게 흐르고, 둘러싼 환경은 무엇 하나 변한 게 없는데 자신만은 어딘가 고장 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며 규칙적으로 살아가던 그는 출처 모를 공허함에 시달리며,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부수고 분해하기 시작합니다.
"바쁜 척만 하지 말고 나 좀 고쳐줘요."
이 세상에 고장 나지 않는 물건은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괜찮은 척 태연하게 넘겼지만 저녁만 되면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일들도 있지요. 종국에는 시간이 약일 테지만, 지나는 시간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데몰리션은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티빙,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022-01-31 기준)
✍🏻 Editor's Note
이번 뉴스레터는 어떻게 보셨나요? 구독자님의 휴식에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글을 작성하며 휴식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어요. 당락을 좌우하는 것은 역시 절대적인 시간과 비용일까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만큼 만족도도 이에 상응할 확률이 높겠습니다만, 최근에는 그보다도 더 중요한 요소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인정'입니다.
온전한 휴식은 스스로에게 쉼을 허락할 때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아주 최근에 깨달았습니다. 비우는 시간만큼은 현실의 무게를 모두 내려놓고 나 자신을 충분히 인정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도닥여도 주시고, 고생했다 소리 내어 위로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비워내는 방식에는 정답이 없으니 부디 자신만의 비워냄을, 채움을 찾아보시는 기회가 되셨으면 합니다.
그럼 다음 편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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