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본 서울은 흰 눈에 폭 쌓여있다. 찬바람 부는 계절이다. 손 끝이 얼어붙는 날씨에는 유독 길에서 폐지 줍는 노인들이, 그들 등 뒤의 구루마가 커다랗게 보인다. 마치 달팽이처럼, 당신 덩치의 몇 곱절이나 되는 짐을 지고 천천히 움직인다.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진다. 뒤에 차가 쫓아와도 천천히, 앞에 차가 마주 서도 천천히 움직인다. 도시의 다른 것들과 속도가 전혀 맞지 않는다. 도시의 달팽이들은 나이가 많다. 주름이 끼어있다
도시의 달팽이를 발견하면 마치 꿀이라도 발라놓은 양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러다 이내 뜨거운 주전자라도 만진 듯, 시선에 감각이라도 달렸다는 듯 황급히 두 눈을 뗀다.
나는 무엇을 부끄러워하며 살아야 할까? 무엇이 자랑스러울까?
내가 할머니보다 조그마한 아이 었을 시절, 할머니를 비롯한 어른들은 나에게 많은 걸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정작 내 혼을 쏙 빼놓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 질문을 하는 방법마저도.
내가 서핑을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하게, 요리도 내게 그 질문을 마주할 여유를 길러주는 것 같다.
요리와 나의 악연은 아마도 머리털 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머니의 구전설화에 따르면 나는 동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입 짧은 아이였다. 당시 나의 마음 속이야 알 길이 없으나, 추측컨대 입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뭘 먹으라고 해봐야 소화시키는 것도 피곤하고, 씹는 것도 번거롭고, 그냥 다 귀찮아! 가 하루 세 번 반복되었을 것이다.
먹는 즐거움이 없는데 먹을 걸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울 리가. 주변에 요리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입을 모아 '본인이 맛있는 요리를 먹는 걸 좋아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요리를 '유용한 삶의 기술'로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유용한 건 맞지 않나. 하지만 방금도 편도 먹고 왔다.
미맹인지 의심도 해봤다. 미식가라는 선배와 콜라별 설탕 구분하기 내기를 했다. 내가 이겼다. 콜라라서 그랬나? 맛을 구분할 수는 있지만 즐거움과 연결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남들은 맛있는 치즈케익 한입에 행복해진다는데, 나의 행복으로 가는 길은 왜 이렇게 구불구불하고 찾기가 어려울까 원망도 해봤다.
아무튼 요리는 귀찮았다.
요리를 몰라도 한국에서 이십여 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다. 문제는 반년 간 미국에서 인턴 생활을 하던 때였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미친 물가에 밖에서 밥을 사 먹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그렇다고 편의점 도시락이 있는 것도 아니고. 냉동식품은 너무 짰다. 그래서 '가열'을 시작했다. 마트 물가는 한국보다 쌌다. 납작하고 평평하게 생긴 온갖 것들을 사다 구워 먹었다. 영어 이름 읽어봐야 모르기 때문에 주로 숫자를 보고 샀다. 하루는 막상 구워 먹어 보니 맛있어서 이름을 찾아봤는데 아구찜으로 먹는 아구였다. 눈송이 부서지듯 알알이 부서지는 아구 살이 찜도 구이도 맛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마치 불을 처음 발견한 인류의 조상처럼, 이때부터 '구워 먹기'를 시작했다.
몇 해 전 노마딩을 처음 시작하고 치앙마이에 갔을 때,
태국에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맛있는 음식, 따뜻한 날씨, 친절한 사람들, 부담 없는 물가. 특히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아무 음식이나 시켜도 기가 막히게 맛있다는 게, 이 모든 걸 오천 원도 안 하는 예산 안에서 만들어 낸다는 게 충격이었다.
잠깐, 당신 맛있는 걸 잘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태국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이런 맛을 만든 거지? 태국은 혀로 연금술을 하나?
무엇보다 나의 요리 인생을 열어준 것은 미국 북부 산악마을에서 사는 한 노부부였다. 그들은 쥐꼬리만 한 월세를 내는 내게 집 한켠 뿐 아니라 마음 한 켠까지 내어줬고, 나는 미국식 가족애와 요리를 배웠다.
여기까지가 서론이다. 스압주의
내가 요리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나의 연애 기간 내내 내가 수입이 없는 흑수 백수였기 때문이다. 때 되면 한 번씩 가줘야 하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그 때라는 건 왜 이리 자주 오는지. 나는 동네 맛집 가는 돈도 아까웠다. 애인이 나의 쫌생이력에 지쳐가는 게 보였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요리! 시간과 정성을 녹여 만든 요리!! 이건 무조건 가산점을 받는다. 맛이 없더라도!
게다가 요리는 애정표현에 포함된다. 더할 나위 없다. 애인으로서 나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초절정 고수의 경지에 오른 무뚝뚝함? 애정표현 이란 노래 제목일 뿐 (feat. 플라워) 동사는 아니지 않나.
그러나 나의 드라이한 매력과는 상관없이 적극적인 애정표현에 대한 오더가 떨어졌다. 이를 어쩐다. 그러다 요리를 만났다. 게다가 유튜브만 켜면 온갖 산해진미 만드는 방법을 쉽게 쉽게 깍둑썰기해서 알려준다. 그대로 따라만 하면, 로맨틱 성공적!
요리 초반에는 요리라기보다 정체불명의 촉감놀이 및 화학실험에 가까웠다. 유튜브 보고 똑같이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왜 안되지? 더 맛있게 먹으려고 요리를 하는 것 아닌가? 재료를 그냥 따로따로 씹어먹는 게 더 맛있을 것 같은데? 의문을 품은 채 몇 달을 존버하니 그럭저럭 입에 넣을 만한 것들이 탄생했다. 이 자리를 빌려 자기 전 침대에 누워 볼 정도로 재밌는 유튜브 만들어주신 셰프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엊그제서야 깨달았다. 요리가 나의 취미라는 걸. 할 필요 없는 데 시간 쓰는 것 1위인지는 꽤 됐는데. 왜 이렇게 스스로 깨닫는 데 오래 걸렸을까?
내가 시간과 관심을 쏟는 대상이 점점 일이나 성취와 멀어지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이 것이 우주 먼지 본연의 일이라 할지라도. 이 것이 나이 듦인가? 이렇게 꿈꾸는 젊은이는 변화를 싫어하는 노인이 되는가? 치과가 무서운 어린아이에서 심리 상담이 두려운 어른으로 자라났다. 요리를 하면 다시 어린아이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안주고 안받자'가 신조인데, 가끔 눈치없이 뭘 주는 애들이 있다. 그런 애들을 불러모아 신메뉴 기니피그 품평회를 한다.
주말에는 느지막이 일어나서 오늘 뭐 해 먹을지 고민하고 점심 만들어먹고 치우고 낮잠 한 판 때리고 일어나 저녁 만들어먹고 치우고 밤 산책을 다녀온다. 일상을 함께하는 사람이 생긴 후의 변화다. 하지만 이게 내가 꿈꾸던 주말인가? 이게 지금의 일상이다
내일이 인류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오늘 무엇을 할까?
소중한 사람들 불러 모아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서 같이 먹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걸 보면, 요리는 내게 중요한 질문에 답할 용기를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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