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이 회사에 입사한 지 세 달이 접어들자 이제 온보딩 기간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해졌다. 정연은 자연스럽게 태스크 몇 가지를 들고 있었고, 어설프지만 그 태스크 안에서 PM의 역할을 제법 능숙하게 해내고 있었다. 정연이 현재 집중하고 있는 일은 작은 피쳐를 개선하며 그에 맞는 데이터 로깅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제법 커다란 스타트업이었지만 데이터 분석팀이 최근에 생겨 내부 데이터 로그들은 형편없이 관리되고 있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QA를 했는지 모르는 이벤트 로그들과 누더기처럼 붙어있는 이벤트들을 확인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전에 다니던 대기업에서 항상 최신으로 관리되던 이벤트 로그들을 잠시 회상했다가, 그것이 곧 월 2000만 원의 컨설턴트 비용으로 가질 수 있었던 문서임을 깨닫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큰 스타트업이라 해도, 스타트업이다. 헛된 망상을 고갯질로 풀풀 날려 보내고 정연은 슬랙 채널에서 별 이모지부터 시작하는 밝은 글을 써 내려가기 위해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접니다! 이벤트 로그 관련 질문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혹시 히스토리 파악을 도와주실 개발자분이 계실까요?]
밝게 써 내려가는 메시지를 따라 정연도 함께 미소를 흉내 내고 있었지만 표정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정연은 몸에 남아있는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최대한 같이 업무 하는 사람들이 협조적인 마음이 들 수 있도록 불쌍하고 밝게 글을 만들고 있었다. 누가 PM을 mini CEO라고 했던가. PM은 귀여운 전령새다. 매일 같이 사기를 북돋아주고, 일정이 어떻게 틀어지는지, 이슈는 없는지 이곳저곳을 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한다. 요 전령새가 귀엽지 않으면 스쿼드원들은 쉽게 정보를 주지 않고 경계한다. '나의 퍼포먼스를 평가하는 중인 건가?' 경계 어린 그들은 자연스럽게 업무에 방어적으로 변하고, 어느 한 분야에 전문성도 없어 보이는 -그럴 수밖에 없는- PM을 폄하한다. '설명해드려도 좀 어려우실 거예요.' 정연은 그런 상황을 최대한 적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불쌍하고 귀여운' PM으로 포지셔닝하는 것이 답처럼 보였다.
쓰레드를 올린 지 한참이 되었지만 개발자들은 엄지 이모지나 힘 이모지를 찍고 유유히 사라졌다. 댓글은 달리지 않았고, 쓰레드에 이모지 수는 점점 늘어났다. 정연은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쓰레드를 유심히 보았다. 혹시 같이 할 업무를 상세히 적어놓지 않아서 내 이니시가 실패한 걸까?
[이거 철용님한테 물어보시면 잘 아실 것 같아요 @철용]
정연은 새롭게 올라온 댓글이 없는지 이 채널 저 채널을 오고 가며 쓰레드를 주시했다. '포기해야 하는 걸까'하고 읊조리는데 지나가던 개발자 하나가 눈치도 없이 누군가를 태그 했다. 정연은 환해진 얼굴로 혹시 댓글이 지워질까 빠르게 '감사하다'는 댓글을 달았다. '합장' 이모지로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연은 철용의 프로필을 찾아 DM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철용님 :) 얼마 전에 새로 입사한 PM 이정연이라고 해요. 이벤트 로그(쓰레드 링크) 관련해서 여쭤볼 것이 있는데 잠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슬랙에서 '철용 is typing'이라는 안내가 보였다 멈췄다. 그리곤 DM방은 한동안 잠시 적막이 찾아왔다가 곧 다시 같은 안내 메시지가 보이더니 철용이 정연의 인사에 답했다.
[네 말씀하세요.]
저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여러 번 글이 쓰이고 지워졌구나 싶어 정연은 살짝 허무함을 느꼈다. 오랜 시간 무언가를 쓰고 지웠던 노력에 비하면 김 빠지는 문장이다. 어쨌든 벌써 DM에 답장이 오다니! 정연은 생각보다 쉽게 풀리는 일에 싱글벙글 철용의 무미건조한 메시지에 답을 했다.
[이벤트 로그를 다시 설계를 하기 위해 기존 설계 히스토리를 파악하고 있어요. 이 문서(링크)에 나와있는 이벤트 로그의 설계자분을 찾고 있는데 혹시 철용님이 아실까 해서 여쭤보아요. 슬랙과 노션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거나 다 퇴사자분들이시더라고요. ]
[어떤 로그 말씀이시죠?]
[이 문서에 나와있는 아무 로그나 다 좋아요! 지금 전혀 실마리가 없어서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을 찾아서 하나하나 추적하고 있어요.]
정연은 언제나 그렇듯 최대한 밝게 메시지를 보냈다. 업무를 위해 작은 부탁을 드리는 상황이지만 첫인상인 만큼 협업이 즐거운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었다. 어딘가 살짝 정신 사나워 보일만큼 여러 이모지를 사용하여 밝은 분위기를 꾸며냈다. 별, 힘, dancing_pepe. 정연이 화려한 이모지들로 DM방의 건조함을 조금이나마 없애려 할 때 '철용 is typing' 다시 한번 DM방의 안내 메시지가 보였다. 이번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떤 로그인지 정확하게 말씀해주세요.]
응? 딱딱하게 되돌아온 철용의 답변에 다음엔 어떤 이모지로 답을 할까 즐겁게 방황하고 있던 정연의 손가락이 멈췄다. 맥북 자판 위에서 허공에 떠있는 정연의 손가락은, 지금 정연의 표정만큼이나 당황스러워 보였다.
'내가 아무 로그나 다 괜찮다고 하지 않았나?'
정연은 떨떠름하게 자신이 처음 보냈던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벤트 로그를 다시 설계하기 위해" Background에 대한 설명, "기존 로그의 설계자분을 찾고 있다." DM을 건 목적에 대한 설명, "슬랙과 노션을 찾아보았지만" 기존에 해왔던 노력에 대한 덧붙임. 나쁘지 않은 메시지였다. 아무것도 찾지 않고 다짜고짜 멘션 해서 '내놔라'하는 식의 요청도 아니었고, 혹시나 맥락 파악이 더 필요할까 전달드린 스레드, 문서 링크도 있다. 정연은 꽤나 당황했지만, 나쁘지 않게 쓰인 DM 메시지에 자신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답을 보냈다.
[넵. 특정 로그에 대해서 찾고 있진 않았는데요, 혹시 그렇다면 50번~100번 이벤트 중에 혹시 어떤 분이 설계하셨는지 혹시 철용님이 아실만한 부분이 있으실까요?]
조심스러워 보이고 최대한 정중하게 작성하느라 문장이 이리 꼬이고 저리 꼬여버렸다. "50-100번 이벤트 중에 히스토리 아시는 것 있나요"라는 질문 하나가 괴랄하게 꼬여 완전한 비문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비문으로 변해버린 문장이 꽤나 '정중함'과 '죄송함'을 뿜어내고 있어 정연은 내심 마음에 들었다.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거죠?]
[앗 네! 50번이랑~100번이요! 51번 행부터 101번 행이요!]
[아니요 '혹시 철용님이 아실만한 부분이 있으실까요' 이 부분이요.]
정연의 손이 다시 한번 멈췄다. 대화에서 기이함이 느껴졌다. 그 전 메시지를 보면 어떤 부분을 말하는지 알게 되지 않을까? 자신이 이해가 어렵게 글을 썼었는지 다시 한번 제 글을 읽어보았다. 이번에도 제 글은 무죄 판결이 났다. 정연의 글은 나쁘지 않았고, 대화를 하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캐치할 맥락이었다.
'응? 가만 대화를 하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정연은 제 생각의 흐름에 작은 이질감을 느끼고 천천히 마우스를 움직여 철용의 프로필을 클릭했다. 아까 급하게 보느라 놓쳤던 부분이었다. 철용이 뭐하는 사람인지, 어느 TF에 속해있는지. 그저 실마리라도 제공해줄 사람 같아 반가움에 헐레벌떡 말을 걸기 바빴다.
[한철용 | Front-end Developer, 탐색 TF ]
Front-end Developer라고 멋지게 써 들여진 그의 직책이 단번에 눈이 들어왔다. 정연은 저도 모르게 '역시'하고 읊조렸다. 개발자라는 단어는 영어로 표현해도 한글이 가지고 있는 강한 이미지가 상쇄되지 않는다. 개발자라니, 그들을 표현하니 너무 완벽한 단어이지 않은가? 개발, 발자, 개자, 개, 발, 자. 음절 하나하나도 그들을 표현하는 각기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타 팀과 협업이 많은 만큼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코드 실력보다 많이 본다는 정연의 회사의 프론트엔드 개발자 채용공고가 함께 떠올랐다. 개발팀의 문화를 소개하며, 'UX 하는 프론트엔드 개발자'에 대한 인터뷰에 철용도 있었을까? 잠시 고민하다 정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괜히 쓸데없는 생각의 꼬리에 빠지지 말자. 세상을 너무 뾰족하게 보지 말자. 이 스타트업 씬의 개발자를 뾰족하게 보자면 끝이 없다. 정연은 작게 심호흡을 하고 부디 자신의 침묵이 오래 지나지 않았길 기도하며 철용의 물음에 말을 이었다.
[아 넵. 51번과 101번 행의 이벤트를 설계하신 분들을 철용님이 혹시 아실까 해서요.]
[히스토리 내역에 안 나오나요?]
[넵? 엑셀에도 히스토리가 있었군요! 거기까진 못 찾아봤어요.]
[히스토리 없는 소프트웨어도 있나요?]
묘한 질문들이 철용에게서 돌아오고 정연은 이 일련의 대화들이 양방향 소통 같지 않다고 느껴졌다. 이제 슬랙의 DM방은 제법 길어서 오른쪽에 조그맣게 스크롤바가 생겼지만 대화의 '목적'이라는 것들은 전혀 이루질 못했다. 정연은 처음 인사하는 이 개발자와 왜 이런 의미 없는 대화를 하고 있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그에게서 그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업무 히스토리를 파악해봐야겠다. 아니면 아예 기존 히스토리를 싹 다 무시하게 아예 맨땅에서부터 설계를 시작해야겠다. 정연은 철용과의 대화를 마무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 넵넵 그런가요. ㅎㅎ 잘 몰라서요. 넵 답변 감사합니다. 그러면 다른 분한테 여쭤서 잘 찾아볼게요.]
[네]
정연은 이제 타자를 치던 손을 멈췄다. 저가 보낸 메시지는 단어가 무려 14 단어, 공백 포함 55자의 글이다. 대화가 마무리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55자의 문장에 한 글자 답변을 하는 것은 차갑다는 생각을 했다. 철용이 정말 협업을 중시하는 프론트엔드 개발자라면, 어떻게 히스토리를 보는지, 혹은 히스토리 추적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지, 혹은 이 문서의 히스토리를 아는 또 다른 사람들은 없는지 오버 커뮤니케이션(overcommunication)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정연은 발끈하던 마음을 멈추고 철용의 '네'에 :힘: 이모지로 답했다. 개발자를 적으로 두어서 좋을 것 하나 없는 PM 정연은 오늘도 분한 마음을 삭히고 이모지의 힘을 빌려 겨우겨우 사회적 가면을 썼다.
* * *
정연의 '이벤트 로그 재설계' 업무는 큰 진척이 없었다. 철용을 만나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히스토리를 파악해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챗봇과 이야기하는 것 같았던 철용과의 대화 이후 정연은 굳이 본인의 쓰레드를 다시 작성하거나 끌올 하지 않았다. 에너지가 항상 넘치는 것이 정연의 장점이자 단점이었으나, 이 짧은 쓰레드 하나를 다시 작성하기가 싫어졌다. 철용과의 대화 이후 무언가가 달라졌다. 아니, 매주 월요일에 열리는 dev day를 눈팅하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몸에 힘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었나 보다고 정연은 생각했다.
Dev day는 개발자들에게 수요일을 온전히 자기개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날이다. 개발자 직군을 제외하고는 다른 직군들은 모두 업무를 하는 날이라, 보통 이날은 비개발 직군끼리 회의를 하거나 혹은 기획을 하는 날로 쓰인다. Dev day라고 해서 개발자를 멘션 하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급한 일이 아닌 것에 개발자를 멘션 하면 마치 폐관수련을 하며 고통 속에서 성장하기 위해 수련하고 있던 그들을 득도의 문 앞에서 다시 바깥세상으로 불러내는 느낌이라 정연은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장애로 번질 수 있는 상황에서 빠른 대응을 위해 개발자를 멘션 했었던 지난주를 떠올리며 정연은 쩝 하고 마른 입맛을 다셨다.
'다음부터는 웬만하면 목요일에 멘션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의 문화인 dev-day가 유야무야 사라질 수도 있어서요. cc. @dev_team'
개발자가 댓글을 올리고서 채널로 전체 전송을 했다. 굳이 정연에게만 하는 말은 아닌 듯했다. 개발자님의 신성한 전언이 채널에 공개적으로 올라가자 다른 개발자들이 빠르게 이모지로 화답했다. 이모지는 마치 세포가 증식하듯 끊임없이 달렸다. 그러나 곧 정연이 찾은 문제가 장애급의 에러라는 것이 밝혀지고 나서는 이모지 증식은 멈추게 되었다. 열개 정도 찍혀있던 :힘: 이모지도 문제가 개발팀에 있었다는 게 밝혀지고 개발팀에서 재발방지 방안을 공유하고 나서 여섯 개 정도로 줄어 있었다. 정연은 이모지에 마우스를 올려 누가 고집스럽게까지 남아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마음 한편에서 움찔거리는 것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도대체 dev day란 뭘까? 정연은 문득 궁금해졌다. 너무 당연하게 '개발자들과 연락할 수 없는 날'로 생각하고 있던 이 dev day를, 그러고 보니 단 한 번도 제대로 이해해본 적 없었다. 정연은 면접을 끝내고 나서 다시 들리지 않았던 채용 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리곤 개발자 채용 페이지에서 dev day에 대한 설명을 찾았다.
'일주일에 하루, 업무와 관련된 공부를 하며 개발 관련 자기개발을 하실 수 있어요. 또 타 팀에서 비효율적인 업무를 제보하여 아이디어를 주신다면, dev-day의 주제로 고민하기도 해요!'
dev-day에 대한 설명을 읽다 보니 '댕'하고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유레카! 그렇구나 이 dev-day는 업무의 비효율성을 줄이기 위한 목표도 있었구나. 이렇게 좋은 dev-day의 존재 이유를 그동안 개발자란 편견에 갇혀 제대로 찾아보지 않고 있었구나! 정연은 자신의 좁은 시야를 나무랐다. 진작 이 dev-day의 이유를 알았더라면 많은 고민들이 쉽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이게 바로 개발자들이 진정으로 타 팀과 협업하는 방식이구나, 우리 회사의 열려있는 개발 문화이구나. 정연은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한껏 풀이 죽어있던 지난 며칠과 달리 오랜만에 기분이 고양되었다. 그렇지. 맞지. 내가 우리 회사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었어. 타자를 치는 손은 가벼웠고, 타자음은 정연의 부풀어진 기대감을 경쾌한 소리로 재현해주는 듯했다.
[@dev_team dev-day 스쿼드원을 모집합니다!
저와 함께 이벤트 로그의 새 지평을 모실 스쿼드원을 모집합니다!
지금까지 비효율적으로 설계되어있던 이벤트들을 전부 리팩토링하여 아름다운 자동화 로그 수집 시스템을 만들어 보아요!
참여해주신 분께는 매주 스타벅스 커피를 쏩니다! cc. @pm_team]
한참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general 채널에 정연은 반짝이는 눈으로 쓰레드를 올렸다. 그리곤 지난 며칠간 이 회사의 개발 문화를 속으로 흉봤던 것을 사과하고 회개하고자 했다. 개발 중심의 회사, 열려있는 개발 문화, 그런 것들을 정연은 너무 대기업의 시선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잘 작동하고 있는 문화에서 정연은 용기 내 의견만 제시하면 되는 일이었다. 반짝반짝, 기대에 차 쓰레드에 어떤 이모지가 달릴지 어떤 댓글이 달릴지 기다리고 있는데 마치 슬랙이 멈추기라도 한 듯 채널은 그대로 멈춰있었다. 혹시 이모지가 안 달리나 싶어 '별' 이모지를 슬쩍 찍어보았다. 쓰레드에 홀로 :별: 이모지가 찍혔다. 정연은 아까보다는 조금 느려진 손으로 마우스를 잡고 '힘', '손', '박수'등 여러 이모지를 찍었다. 이렇게 이모지를 찍어놓으면 습관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이용해서 쓰레드를 홍보할 셈이었다. 아무래도 이모지가 없어서 슴슴해진 쓰레드가 개발자들 눈에 잘 띄지 않는 듯했다. 이모지를 여러 개 찍고 정연은 미리 잡혀있던 회의에 참석했다.
정연이 한 시간 회의를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쓰레드는 아까와 달라지지 않았다. 이모지는 저가 찍어놓은 서너 개의 이모지가 전부였고, 매시간 장난 같은 글로 넘쳐나던 채널에는 마치 누가 영구적으로 권한이라도 회수한 듯 그 누구도 글을 올리지 않았다. 개발팀 다 같이 참여하는 회의가 있나? 정연은 생각했다. 그리곤 몇몇 개발자들의 일정을 구글 캘린더에서 검색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회의 중이지 않았다. 코딩을 하느라 바쁜가. 정연은 힐끔 눈을 돌려 옆 옆자리에 앉아있는 개발자를 훔쳐봤다. 다들 개발하면 저렇게 집중하니까, 그래서 쓰레드를 볼 시간이 없었을 거다.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저 개발자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딩동]
쓰레드에 새로운 알림이 떴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정연은 다시 화면을 응시했다. 이건 분명 아까 썼던 글에 대한 댓글이다! 댓글을 단 사람은 CTO였다. CTO와 함께하는 프로젝트라니 첫 시작부터 순풍이다. 정연은 잔뜩 설레는 가슴을 부여잡고 쓰레드를 클릭했다.
[dev-day에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연님.
그러나 dev-day는 개발팀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문화입니다. 아쉽게도 지금까지는 개발자의 제안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개발자의 제안으로 스터디를 시작했습니다. 타 팀의 제안을 처음 받아보는 상황이라 어떤 영향이 있을지 면밀히 고민부터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해당 고민은 조금 시간이 걸릴듯하여 정말 재미있고 의미 있어 보이는 태스크이지만 dev-day가 아닌 정연님의 스쿼드 내에서 진행하시는 게 더욱 빠를 것 같습니다. 저희가 도와드릴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cc @dev_team]
완곡한 거절에 정연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모두가 다 보는 채널에서 거절당했다는 부끄러움과 마치 '우리의 신성한 dev-day는 그런 게 아니야'라며 어린애를 나무라는 듯한 CTO의 댓글이 조금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타 팀에서 비효율적인 업무를 제보할 수 있다며! 정연은 프로젝트를 하진 못하겠지만 제 자존심이라도 얻어보자는 생각으로 채용사이트에 들어가 dev-day의 설명을 찾기 시작했다. dev-day의 설명을 복사 붙여 넣기 하여 쓰레드에 참조하고, 자신이 왜 이런 의견일 냈는지 말하자. 적어도 CTO의 '개발자가 아닌 넌 빠져'식의 댓글이 개발자스럽게 방어적이었다는 오명이라도 씌우자. 마우스를 급히 클릭하여 dev-day의 설명을 찾고 있던 정연은 한 페이지에 도착하고 나선 멈칫, 움직일 수 없었다.
'일주일에 하루, 업무와 관련된 공부를 하며 개발 관련 자기개발을 하실 수 있어요. 또 개발자들이 스스로 비효율적인 업무 아이디어를 내며 dev-day의 주제로 고민하기도 해요!'
채용 페이지에 나와 있는 dev-day의 설명에 정연은 헛것을 본 것 마냥 눈을 비볐다. 살짝 얼빠진 표정으로 힘겹게 마우스를 잡고 '페이지 히스토리'에 커서를 올려놓았다. 클릭할까, 말까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올린 지 일분도 안되어서 열몇 개씩 빠르게 CTO 댓글에 붙고 있는 '기도' 이모지로 눈길이 갔다. 하나, 둘, 그리고 여섯, 일곱, 여덟. 빠르게 늘어가는 '기도' 이모지를 보며 정연은 왼쪽 눈을 비볐다 오른쪽 눈을 비볐다.
그리곤 두 눈을 꾹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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