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다는 것은 그리움을 말하는 것이 아닐지요. 그리움이 그림이 되기도 하고 혹은 그림이 그리움을 낳기도 하지 않는지요. 그리운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자꾸 떠올라 그를 그리게 되니 그리움은 그림이 되고, 또한 그 사람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잊고 있다가도 그 사람이 다시 그리워지니 이는 그림이 그리움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린다는 것은 그리움을 말하는 것이 아닐지요."
오늘은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문근영 분)이 스승인 김홍도(박신양 분)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사로 시작해 봤어요.
저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을 아주 좋아하는데요, 언젠가부터 12월이 오면 먹먹한 물기를 느끼곤 해요. 아마도 12월 19일, 그날이 있어서 아닐까 싶어요.
오늘은 마이 샤이니 월드 관람기와 언제나 그리운 멤버 고(故) 종현, 그리고 그에 앞서 그리움을 담은 제가 아주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주절주절]
시간처럼 내 곁을 영원히 흘러간 사랑
얼마 전에 '3일의 휴가' 육상효 감독 인터뷰를 하고 왔는데요. 하루가 멀다 하고 하는 인터뷰지만 육 감독 인터뷰는 일정이 잡혔을 때부터 엄청 기대가 됐어요.
왜냐면 제가 육상효 감독님이 작사한 '푸른 옷소매'라는 노래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푸른 옷소매'는 육상효 감독이 연출한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이라는 영화의 OST예요. 조정석 배우가 진짜 더없이 찰떡인 목소리로 불렀으니까 혹시 모르는 노래라면 한 번 들어보세요. 멜로디는 '그린슬리브즈(Greensleeves)'라는 영국 민요에서 따왔습니다.
이 노래는 육상효 감독이 젊었던 날을 생각하며 쓴 곡이라고 해요.
가사가 진짜 예술인데요. 제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오오, 내 사랑 시간처럼 영원히 내 곁을 흘러갔네'라는 구절이에요. 강물도 흘러가고 세월도 흘러가지만 '시간'이라고 하면 어쩐지 더 찰나 같은 느낌 들지 않으시나요. 또한 한 번 흘러가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것이 시간이니 이 담백한 한 구절만으로도 마음에 파도가 몰아치는 것 같습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며 저도 역시 어린 날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떤 시간을 지나간다는 것은 그 순간과 영원히 이별하는 것과 같잖아요. 그게 사람이든 부나 명예와 같은 지위이든, 또는 그저 밝고 어둡고 방황했던 어떤 젊은 날의 순간이든지요.
'푸른 옷소매'는 이미 그 시절을 떠나온 상태로 추억하며 부르는 노래이기 떄문에 가사가 절절하기 그지없어요. '여름 날의 소나기처럼 내린 사랑', '시간처럼 영원히 내 곁을 흘러갔네'라는 구절에서는 아름다웠던 그 때가 순간처럼 느껴져서 더 먹먹함이 남는 듯해요.
'그대 없으면 내 마음 저물녘 빛처럼 스러지고 그대 없으니 내 마음 꽃처럼 떨어지네'라는 가사에서는 화자가 그때를 얼마나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지가 느껴지죠. 몇 년째 듣고 있는 노래인데 아무쪼록 형아들 마음에도 들었으면 좋겠어요.
[Alog]
반짝하고 사라지지 않길, 언제나 여기에
이 '저물녘 빛처럼 스러지고'라는 표현이 떠오른 순간이 있었어요. 샤이니의 데뷔 15주년을 맞은 다큐멘터리 영화 '마이 샤이니 월드'를 보러 갔을 때인데요.
지난달 메가박스 코엑스에 가서 '마이 샤이니 월드'를 보고 왔어요. 이 영화는 샤이니가 데뷔 이래 가졌던 콘서트 실황과 멤버들끼리 나누는 대화 등의 영상으로 구성돼 있었어요.
슬픈 마음으로 갔던 극장이 아니었고, 멤버들이 차지게 말도 잘해서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요. 그때 어떤 글귀가 나오더라고요. 콘서트에서 공개됐던 종현이의 손글씨 글귀였습니다.
'반짝하고 사라지지 않길, 언제나 여기에'
이 말을 본 순간 갑자기 눈물이 나왔어요. 평소에도 이따금씩 "아, 종현이 보고싶다"라는 말을 하곤 했지만, 늘 슬픈 기분이었던 건 아니었거든요. 아마 그리움이었겠죠.
2017년 12월 19일. 그날은 지금 생각해도 정신이 없고 무척 혼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 슬픈 와중에도 지면 기사를 마감해야 했고, 샤이니의 팬인 걸 아는 데스크로부터 지시를 받아서 추모의 글도 썼어야 했죠. 그렇게 감정을 꾹꾹 눌러담고 집에 왔는데 눈물이 나는 거예요. 하염없이. 마치 제 마음 속에 있는 여러 전구들 중 하나가 꺼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마침 전 직장 동료에게 전화가 왔고, 저는 그냥 울고 있는 채로 전화를 받았어요. 동료가 "다행이다. 네가 울고 있지 않으면 어떡하나 했는데"라고 하더라고요. 그 목소리가 아직도 흐릿하게 기억납니다.
종현이가 떠나가고 마음에는 빛이 하나 꺼진 느낌이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존재감이 모두 사라지겠어요. 종현이가 어떻게 반짝하고 사라질 수 있겠어요. 여전히 자주 종현이가 남긴 노래를 듣고, 쓴 글을 찾아 읽어보곤 하는데요.
벌써 종현이가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됐네요. 혹시 어딘가에서 보고 있다면 알려주고 싶어요. 아직도 이렇게 당신을 기억하면서 살고 있고, 당신이 남긴 노래를 들으며 위안을 얻는다고 말이에요. 당신은 반짝하고 사라지지 않았고, 우리의 순간은 언제나 그곳에 남아 있다는 것을요.
오늘 레터는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세모는 다음 주에 또 읽을만한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다음 주부터 날씨가 아주 추워진다고 하니까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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