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라예요 🎀
한계 단어 보자마자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연관 검색어로 극복, 돌파, 최고, 무한, 체력, 이런 것들이 주르르 떠오릅니다. 요즘의 저는 그렇게 치열한 개념들을 다시 돌아보고 있어요. 왜 그렇게 맹렬하려고 애를 썼는지, 사실 얻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딱히 맥락은 없는데, 맥주 한캔 칙~ 따야 할 것 같은 그런 생각들이요.
과거를 시간 순서대로 늘어놓고 보면 나름 여러가지 한계를 넘어오긴 했어요.
바이올린 하는 동안에는 0.1%의 재능을 갖지 않더라도 노력으로 탁월함의 어디까지 쫓아갈 수 있는지 정말 여한 없이 해봤습니다. 그러고는 20년지기 악기를 때려친 것도 모자라 건너 건너 테크 스타트업까지 와서 잘 먹고 잘 놀고 일하고 있고요.
평생 사업하는 배우자, 아직 갈 길이 먼 어린이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11년차 워킹맘이기도 합니다. 혼자 집 구하고 업체 구하고 아이 맡기고 하는 이사를 다섯 번도 넘게 했고, 아이 돌봐줄 아주머니 면접은 대략 300명 넘게 본 것 같아요.
또 뭐가 있을까요? 귀도 뚫지 못할 정도로 겁이 많은데 마취하는 외과 수술을 네 번 했습니다. 아직도 혈관 주사는 싫어요. 운영하던 사업이 어려워질 때는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 덕분에 온갖 집기와 함께 비 오는 날 길바닥으로 끌려난 적도 있습니다.
윗 분이 잘못한 일에 휘말려 경찰청에 검찰에 재판장까지 가 보기도 하고요. 증인으로 선 저에게 판사님이 추가 발언 시간을 주며 하고픈 말 하라고 하셨을 때, 덜덜 떨면서도 한 때 가장 존경했던 리더에 대한 배신감을 쏟아냈던 일은 어제처럼 생생하네요.
아이에게, 배우자에게, 회사에서, 집에서, 예상치도 못한 막막하고 아찔한 일들은 갑자기 그리고 주기적으로 찾아왔습니다. 그 때마다 어찌 어찌 견뎌내며 여기까지 (캐나다까지!) 왔죠 🙄
딱히 뭔가 도전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다짐하며 지내본 적은 없습니다. 그냥 고비마다 밀려 쓰러질 수는 없어서 꾸역꾸역 버텼고, 최상은 커녕 최하만 아니면 좋겠다 생각하며 한계의 능선을 간신히 기어서 넘었어요. 대신 절실하게 제 '한도'를 깨달았습니다.
왜 이번 편지가 한계 한도 어쩌구 저쩌구 하냐면, 여기 온지 꽉 채워 2개월이 지나가니까 슬슬 한도가 찰랑 찰랑 차오르는 것이 느껴져서요. 용량 거의 다 채웠다는 빨간 불, 더 이상 결제할 금액이 안 남았다는 한도 초과 메시지.
저는 새로운 것이 주는 자극을 좋아합니다. 엄청난 최신기술 말고, 가까이 있는데 미처 몰랐던 것을 만나는 거요.
그래서 다가오는 일들을 큰 고민 없이 덜컥 받아들곤 했습니다. 덤벼라 세상아, 뭐 이런 태도는 아니지만, 한계를 넘는 기쁨이란 건 있었어요. 차근차근 퀘스트 깨면서 무한 확장을 하고 싶었습니다. 깊은 한우물이 되기를 포기했으니, 대신 끝없이 넓혀가보자.
그런데 사람도 신용카드처럼 한도가 있더라고요.
매일 1만원 정도 쓰던 사람이 한 번에 1백만원 결제를 하려면 심리적 한계를 넘어야 합니다. 그래도 카드 한도가 1천만원이라면 그냥 '큰 마음' 한번 먹고 하면 돼요. 1백만원 팍 긁으면서 생전 처음 짜릿함도 느낄 수 있겠죠! 하지만 어느 순간 한도를 초과하면 결제 자체가 막힙니다. 아예 동작하지 않아요.
꾸준히 오래 가려면 무리하지 않고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두 가지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내 눈 앞에 보이는 장벽이 그동안 익숙했던 한계인가, 아니면 한도인가. 그리고 지금 내게 남은 잔여 한도는 얼마인가, 과연 한도가 남아있기나 한가.
스스로를 파악하는 감각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떡이 아니고, 치이고 깎이며 경험으로 쌓아야 하는 것이어서 어렵습니다. 아프기도 엄청 아프고 지나고 나야 알게 되는 것도 정말 정말 많습니다.
지난 2주 정도는 오래간만에 제 한도의 끝에 거의 다다른 걸 실감하며 하루 하루 넘겼습니다, 행여나 초과될까 조마조마 하면서요 📦 계약한 집 열쇠 받은 날, 서울에서 짐 들어온 날, 나머지 가구를 위해 실측하고 인터넷 신청한 날, 박스 1/4 간신히 오픈해서 정리한 날이 모두 따로 따로인데요,
그 사이에 (100% 제가 라이드 하는) 아이의 일정 변경이랑 회사에서의 인터뷰 프로젝트가 겹쳐 잠깐 숨쉬기가 어려웠어요 하하하 😵💫 그래도 3월에는 인스타 스토리에 새로 이사한 집 한바퀴(?) 보여드리고 싶은데 가능할까 모르겠네요 🤭
여기서 스스로 기특한 포인트 하나 자랑하자면요 👏
'고객님 지금 한도에 거의 도달했습니다' 메시지를 스스로에게 보내고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성장했다는 것!
마지막 덧붙임 -
이 편지는 분명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잘 안 써지는 편지였어요. 그래서, 척 하면 착 해주실 고마운 분들에게 기대어 얼기설기 담아 그냥 보냅니다 📮
댓글 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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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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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토끼
저도 서비스 시작했어요.... ^^ https://blog.naver.com/maehok/223028762018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173)
오 역시 거침없이 새로운 것을 도입하시는!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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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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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173)
우리 같이 힘내자요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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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a
코라님에 대해 더욱 알게해준 글이었던 거 같아요 :-)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173)
제가 의외로(?) 양파처럼 속 얘기가 많은 사람이랍니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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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토끼
첫 레터를 발행했습니다... ㅋㅋ https://maily.so/maehok/posts/7bdc3a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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