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TALK ABOUT #3 국악에 대하여

전통과 더불어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여정

2023.09.19 | 조회 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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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KEH

음악/공연 문화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문화 이야기들을 전해드리는 BOKEH입니다.

TALK ABOUT #3 국악에 대하여

<TALK ABOUT>은 BOKEH의 두 에디터가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다양한 문화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비정기적으로 진행되는 대담 기획입니다. 

대담을 시작하기 전에.

 BOKEH의 두 에디터, 슬과 상욱은 BOKEH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각자의 분야에서 음악과 관련된 크고 작은 활동들을 통해 다양한 경험들을 쌓아왔다.

 그 중 슬 에디터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국악 연주자로서의 역사를 착실히 쌓아온, '반평생을 국악과 함께 한' 국악인이다. 두 사람의 인연도 국악방송의 창작 국악 공모전인 <21c한국음악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슬 에디터의 팀에 상욱 에디터가 기타리스트로 참여하며 시작되었다. 

 단발성으로 끝날 수 있던 작업이었지만 이후 상욱 에디터가 국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슬 에디터의 공연을 포함한 여러가지 공연들을 관람하게 되고, 마음이 맞아 BOKEH를 함께 시작할 때에도 언젠가는 국악과 관련된 이야기를 꼭 한 번 다뤄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오랫동안 적절한 때를 기다리던 중, 마침 상욱 에디터가 한예종의 타악전공 정기연주회를 슬 에디터의 초대로 관람 할 수 있었고, 공연을 본 뒤 연주를 마치고 나온 슬 에디터와 이제는 우리가 BOKEH에서 국악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놓아 볼 만 하겠다는 이야기를 나눈 뒤 바로 다음 주 주말 대담을 진행하였다. 

 충분한 이야기가 쌓일 때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경험을 쌓고 또 기다린 만큼, BOKEH가 이제까지 게시한 모든 글 중 가장 길고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세 번째 TALK ABOUT을 소개하려 한다. 

-두 사람의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위의 포스팅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먼저, 국악은 어려운가?

2022년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입생 연주회 <봄이 오는 소리>
2022년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입생 연주회 <봄이 오는 소리>

슬: 나는 늘 국악에 대해 애정이 있고, 국악 연주를 전공으로 하고 있는 국악인으로서 사람들이 더 많이 국악을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만큼 주변에 국악을 자주 소개 하는데 종종 국악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물론 상욱은 음악을 해 왔던 사람이고 다양한 장르를 많이 듣는 사람이기에 기준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협업을 하거나 공연을 관람하며 국악에서 느껴지는 진입장벽 같은 것이 있나?

 

상욱: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악이 안 익숙해서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지 듣기에 난해하거나 어려운 장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주로 만나 어렵다는 인상이 생긴 게 아닐까 싶다.

 흔히 말하는 국악이 ‘옛 것’을 다루는 장르라는 인식은 좀…어느 정도 편견이 섞인 시선이라고 느껴진다. 정말 많은 시도와 변화를 꾀하는 장르다. 외부인의 시선이라서 더욱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국악인들은 단순히 전공이나 직업 이상으로 자신의 장르를 정말 사랑한다는 인상을 많은 공연들에서 받았다(웃음). 또, 비단 전통/창작 국악 공연 뿐만 아니라 국악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음악인들도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나. 당장 내가 국악에 대해 설명을 듣기 전부터 좋아했던 팀만 해도 잠비나이, 해파리, 씽씽이 떠오른다.

 정리하자면, 국악에 대한 진입장벽은 그냥 익숙하지 않아 느껴지는 어려움이고, 공부를 해야 들리고 난해하다는 것은 사실 낯선 장르에 대한 부담감에 가깝지 않나 싶다. 새로운 소리들을 활발히 연구하고 있는 장르기도 하고.

 

슬: 잠비나이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나는 잠비나이를 정말 좋아하지만 이 팀의 장르가 '국악'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국악기를 사용하는 포스트록이라고 늘 생각했는데, 어떤 음악을 국악으로 느끼게 되는 부분이 무엇일까? 이것도 국악에 익숙한 나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상욱의 판단 기준이 궁금하다. 

 

상욱: 국악에 대한 고민과 별개로, 어떤 점이 음악의 장르를 결정하는 요소인지에 대해 개인적으로도 오래 고민을 해 왔다. 가장 간단하게 말하자면, 보통 타악기의 질감과 리듬이 곡의 장르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2022년 4월, 슬이도 기억하겠지만 같이 창작 국악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채점 기준을 봤을 때 ‘국악적 요소’ 라는 항목이 있었다. 그때 처음 ‘국악적 요소’는 어떤 것일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 팀은 국악 현악 주자/국악 타악 주자/기타리스트/베이시스트로 이뤄져 있었다. 함께 작업하는 과정에서 나는 우리가 포스트록의 문법 위에 국악기를 덧씌운 방식으로 곡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리드 기타의 역할을 철현금과 해금이 맡고, 타악 주자가 드러머가 되어 운라와 장구를, 그리고 플로어 탐과 심벌을 더한 드럼 세트에서 연주를 했다. 그때 함께 만든 음악을 나는 좋아하지만 그 곡에 ‘국악적 요소’가 있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도된 대로 나온 바였지만, 국악기가 가미된 포스트록이었지.

슬: 개인적으로, 곡의 첫 인상에서 이 음악이 국악이라는 느낌을 주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시김새라고 생각한다. 시김새란 선율을 이루는 골격음*의 앞이나 뒤에서 그 음을 꾸며주는 역할을 하는 장식음, 혹은 음길이가 짧은 잔가락을 뜻하는 말인데, 흔히 국악하면 많이 떠올리는 떨고 꺾는 소리들이 시김새다. 이러한 특징적인 소리가 음악의 장르적 첫 인상을 많이 좌우하지 않나. 그런 국악적 특색이 당시 우리에게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고.

골격음: 곡의 주된 선율을 이루는 음.

 

상욱: 물론 어떤 아티스트가 단순히 레게의 억양과 추임새를 따라한다고 레게 음악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듯이, 장르를 장르답게 하는 데에는 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요소들이 있겠지만 국악을 어떤 ‘장르’로서 받아들이게 하는 특징적인 요소들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예컨대 앞서 말한 시김새 같은 요소들.


국악 공연의 첫 인상

 

슬: 작년 4월부터 지금까지 상욱이 나를 따라서 꽤 많이 국악 공연들을 챙겨보았는데, 완전히 관객의 입장으로 본 국악 공연의 인상이 궁금하다. 아무래도 연주자의 시선으로 보는 공연들과는 조금 다르지 않나.

 

상욱: 내가 스스로에게 놀랐던 점은(웃음), 국악을 잘 모르지만 공연을 보면서 이 음악은 어느 부분이 매력인지 금방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냥 본능적으로 아는  것인지, 아니면 속성으로라도 슬을 통해 공부했던 배경 지식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풀이 연습>
<풀이 연습>

 특히 창작 국악극인 <풀이 연습>이 인상 깊었다. <풀이 연습>에서 마포 로르 배우가 중간에 프랑스어로 흥보가의 가난타령을 부르시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에서 판소리를 번안하는 과정을 상상해보며 공연이 끝난 뒤로도 한참동안 즐거웠다. 언어가 달라지니 어순도 달라지고, 가사의 음절도 달라지고, 그러는 동시에 시김새 같은 판소리의 특징적인 소리들도 문맥에 맞게 같이 번안되어야 하는 과정을 대체 어떤 메커니즘으로 만들어 내셨을지, 말맛을 살리는 일은 같은 언어끼리도 어려운 일인데. 내가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았다면 더 즐거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스스로 곡을 쓰면서 굉장히 많이 신경 쓰고 고민도 많이 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발음 구조라서 더더욱 그런 것도 있다.

 창작 국악 공연들이 이런 연출가의 의도를 찾아보는 맛이 있다. 공연을 만든 사람들이 이것을 준비하며 어떤 음악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집중했고, 이 음악의 어떤 점들을 사랑하고, 관객들에게 그 점을 어떻게 전달하고 싶었는지 눈에 보여 즐거웠다.

 전통 국악 공연들은 좀 압도적인 느낌이 있다. 특히 관악영산회상 중 상령산을 보며 소리가 파도치듯 움직인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가 깊고 연구가 오랜 시간동안 쌓여 온 음악인만큼 무엇을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어떤 점이 이 음악의 중요한 소리이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살려내야 하는지 연주에 명확한 지향성이 있다 느꼈다.

 

슬: 사실 굉장히 기뻤던 게(웃음), 인디밴드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국악을 되게 낡은 것으로 취급을 하지 않을까, 하는 좀 부정적인 편견이 있었다. 그래서 공연에 초대하면서도 걱정을 많이 했다. 혹시 졸거나 재미없어 하지 않을까…

 

상욱: 우리 할 거 하기 바빠서 국악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겨를까진 없다(웃음).

 

슬: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장르를 소개하는 일이니 그런 걱정들이 있었다(웃음). 그런데 생각보다 즐겁게 공연을 보고, 진심으로 좋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되게 뿌듯했다. 국악은 정말 현장에서 듣는 게 좋다니까? 악기의 생생한 질감과 연주자들이 하나가 될 때 느껴지는 유기체 같은 감각은 다른 공연들이 그렇듯이 국악에서도 현장에서 훨씬 크게 다가온다. 

 

상욱: 상령산에서 그 많은 연주자들이 거대한 파도 같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 그 순간은 경이로웠다.

 

슬: 그 곡이 멋있는 이유다. 파도처럼 악기마다 치고 빠지는 부분이 이어지는 점. 그걸 연음 형식이라고 표현하는데, 주선율을 연주하는 악기인 피리가 쉬는 사이에 대금과 해금 등의 악기가 이어서 연주하는 형식이다. 모든 악기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방금 말한 ‘파도같다’ 라는 인상이 이런 형식에서 오는 매력이다.

 나도 전통 국악 공연과 창작 국악 공연을 볼 때 비슷한 생각을 한다. 상령산 같은 정악을 볼때면 연주가 웅장하고, 소리가 쏟아진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또, 산조를 비롯한 민속악 공연을 볼 때는 단전에서 흥이 끌어올려지는 기분이 든다. 한국인이라서 그런가(웃음).

창작 국악을 보면 공연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캐치해 나가는 재미가 있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나도 창작 국악 공연을 참여하거나 관람하면서 같은 재미를 느낀 적이 많다. 그런데 연주자의 입장에서, 조금 아쉬운 말들을 하고 싶은데…

 

상욱: 내가 괜히 좀 긴장되는데(웃음).

 

 

슬: 일단 음향 공부의 필요성을 매번 느낀다. 그러니까 악기가 가진 고유한 소리, 그리고 그 매력이 객석에 선명하게 전해지는데 신경을 더 써야 할 것 같다. 그때 공모전을 준비 할 때 후시 작업을 베이시스트의 작업실에서 함께 하지 않았나. 그때 믹싱 과정에서 장구 소리에 리버브를 걸었는데, 그 소리가 정말 예쁘게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걸 들으면서 나도 공연장이나 녹음 과정에서 이런 소리를 구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음향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느꼈지. 내가 알아야 엔지니어에게 요구라도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무대 위에서 악기에 마이크를 설치하는 마이킹과 관련된 이야기도 하고 싶다. 나는 운라의 마이킹이 항상 아쉬웠다. 운라라는 악기 자체가 마이크를 대기 까다로운 면이 있긴 하다. 악기를 구성하는 쇠의 두께에 따라 음이 달라지는데, 쇠가 얇으면 낮아지고 두꺼우면 높아지는 구조다. 그러다보니 높은 음이 음량이 작고 소리가 깨지는 경우가 많은데, 마이크를 통해서 송출이 될 때 그런 현상이 좀 더 심해진다. 또 운라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그 몽글몽글하고 예쁜 소리가 라이브에서는 마이크를 타고 잘 표현이 안 되기도 하고. 마이크의 배치와 수음 방식에 대해서 기술적으로 조정하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물론 운라라는 악기를 창작곡에 쓰게 된 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아 현장의 경험이 쌓여야 하는 부분이 아직은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테크라이더*에 필요한 장비들을 적어서 제출했는데도 불구하고 현장에 가면 적절한 장비가 없다거나, 이러한 상황들은 공연자의 입장에서 많이 아쉽다. 이런건 기본적인 부분이니까. 

테크라이더 : 공연에 필요한 음향 장비나 조명 장비, 소품 등을 나열해놓은 리스트.

그 외에도 객석에서 들었을 때 소리가 조화롭게 들리지 않을 때가 많은 것도 아쉽다. 특히 관현악을 할 때 피리 소리만 지나치게 크게 들릴 때가 많다. 국악인들은 정말 좋은 연주에 공을 많이 들이고, 합을 맞추는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그런만큼 녹음이나 공연 현장의 음향이나 객석으로 송출되는 소리에 대해 좀 더 신경 쓸 수 있으면 좋겠다. 현재 학부에 있는 젊은 국악인들에게도 그런 음향과 관련된 교육이 커리큘럼 안에 포함이 될 수 있으면 좋겠고. 연주를 정말 잘했는데, 정작 객석에 전달되는 소리가 그만하지 않으면 너무 아쉽지 않나. 연주자로서 공연을 하면 할수록 내게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상욱: 나도 동의한다. 지난 번에 이어령 예술극장에서 진행된 공연에서 수음된 운라의 특정한 음역대가 전부 깨져서 전달되는 것을 관객석에서 들었을때는 정말 아쉬웠다. 다른 곳도 아니고 홈 그라운드에서 이런 기본적인 음향 실수가 나온다는 건 많이 안타깝지 않나. 

 역사적으로 악기의 마이킹 방식과 공연장에서의 소리 밸런스에 대해 연구된 자료들이 정말 많다. 그런 지식들에 접근하기 어려운 시대도 아니고. 물론 국악기에 대한 자료들은 많지 않을 수도 있고, 금전적 지원과 인력,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나아지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소리가 깨져서 나는 상황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그 정도는 리허설에서 엔지니어 팀이 조금만 신경 썼으면 조정이 가능한 수준이었을 텐데. 관객인 나도 이렇게 아쉬운데, 연주자들은 정말 화가 날 법한 일이다.

 더 아쉬운 건 그 날 공연이 정말 좋았다. 그러니 자꾸 옥의 티가 신경 쓰이는 것이다. 그 부분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지 아쉽고.

 어쩌면 내가 창작 국악극에 대한 좋은 인상이 더 강했던 것도 이런 음향의 영향일수도 있다. 한예종 내부의 상자무대에서 진행된 소극장 공연이었기에 마이크를 설치하지 않아, 객석에서 악기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좋은 요리사가 재료에 담긴 풍미와 다양한 맛을 잘 살려내어 조화로운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알맞은 환경이 국악이 가진 매력들을 풍요롭게 살려낸 경험이었다.

 분명 레코딩이나 라이브에서 국악에 알맞은 음향 기술을 연구하시는 분들이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실 것이다. 그런만큼, 국악에 적용 할 수 있는 음향 지식과 노하우 등을 교류할 수 있는, 국악인들 뿐만 아니라 국악 공연이 많이 진행되는 현장의 엔지니어 분들도 모시고 진행되는 세미나들이 더 활발히 개최되면 좋겠다. 이런 부분들은 서로의 노하우와 지식이 모이면 금방 개선 될 수 있는 지점이니까.

 또 연주자가 생각하는 음향의 방향과 공연장의 사운드 엔지니어들이 생각하는 음향의 방향이 다른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도 더 많은 소통이 있으면 음향과 관련된 문제들은 충분히 해결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슬: 덧붙여서 말을 하자면, 같은 밴드의 공연을 다른 공연장에서 봤을 때 관객석에서 들리는 디테일의 정도가 확연히 차이 나서, 평소에 잘 들리지 않던 세밀한 부분들이 전달되며 이 밴드의 음악이 이렇게까지 좋았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국악도 비슷한 상황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또는 국악인들도, 좀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음향에 있어서 좀 소홀히 하지 않았나, 반성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어찌 되었건 연주를 잘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너무 강하지 않나 싶다.

 

상욱: 국악인들에게 어찌 보면 좀 연주에 대해 외골수적인, 학자적인 면모가 강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학자적 면모에서 오는 연주에 대한 완벽주의가 국악의 큰 매력이라고도 생각하고. 하지만, 어쨌든 큰 공연장에서는 보통 마이크를 설치하고, 그런 상황에서 좋은 공연을 만들려면 반드시 신경써야 하는 부분인 건 확실하다.

 

슬: 기술적인 문제 외에도, 연주자의 입장에서 몇 마디 더 하고 싶다. 연주자들도 음향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의 연장선인데, 내가 내 소리를 잘 들으려면 모니터 스피커가 무대 어디에 있어야 효과적인지, 악기는 그러면 어떻게 배치를 해야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소리를 조정해야 관객한테 잘 전달이 되는지, 연주자들 사이에서 이런 이론적인 부분들이 정리가 되고, 기록을 남길 수 있고, 더 발전 시킬 수 있다면 더 좋은 퀄리티의 공연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또, 국악 대학 내에서도 라이브 현장의 음향 뿐만 아니라 레코딩 세션 같은 기술적인 부분들에 대한 수업이 더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국악 공연과 기획

슬: 각각 연주자와 관객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했으니, 기획자로서 그 동안 본 공연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번 말해보면 어떨까. 상욱도 크고 작은 기획 공연 경험이 많지?

상욱 에디터가 기획자로 참여한 <등나무축제>
상욱 에디터가 기획자로 참여한 <등나무축제>

상욱:  나는…기획자로서 정말 배울 게 많지. 나를 너그러이 이해 해 주시고 무대에 오르셨던 분들이 프로고(웃음). 이 주제가 아까 음향에 대한 주제보다 말을 얹기 더 조심스럽긴 하다. 관객 입장에서는 음향은 어느정도 듣고 알 수 있지만 내부적으로 기획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예 알 수 없잖아.

다만 외부에 드러나는 홍보 방식, 포스터, 팜플렛들을 보고 느꼈던 건 오히려 난 이 점에 있어서는 전통 국악 공연의 기획들이 더…마음을 움직였다고 해야하나(웃음). 클래식 공연의 인쇄물들과 비슷한 면이 있어 익숙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리고 전통 국악 공연은 큰 공연장에서 열리는 것을 많이 봤고, 그 정도 규모의 공연은 내가 열어본 경험도 적고 하니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창작 국악 공연들의 기획의 홍보 면에서 조금 아쉬웠던 점은 있다. 너무 마케팅에 있어 힘이 이상한 방향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종종 받았다. 자꾸 뭔가 유행에 맞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느껴지는 홍보 방식이라고 해야 할까?

 연주자의 입장에서는 몇 명의 관객이 앞에 있던 내 연주와 공연이 훌륭하기만 하면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무대에 임하는게 가장 좋겠지만, 기획은 조금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획자에게 내가 함께 한 공연을 최대한 많은 관객들에게 퍼트리는 것은 하나의 의무다. 홍보는 그 의무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고.

 공연의 성격과 분위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공연에 관심을 가질 법한 수요층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그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법한 방식으로 공략하면 좋은 공연들이 더 멀리 퍼져 나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극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슈게이징 공연의 홍보 방식으로 틱톡 댄스 챌린지를 선택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홍보에 있어서 순간순간의 유행을 굳이 안 따라가도, 아니, 오히려 따라가지 않아야 국악의 매력이 더 살아나지 않을까. 우연히 흘러왔고 또 금방 흘러갈 유행들과 달리 국악은 깊은 역사를 가진, 그 시간동안 계속 발전해 온 문화 아닌가(웃음). 자신들의 멋있는 부분과 매력을 나보다는 국악계에 몸 담고 계신 분들이 더 많이 느끼고 계실텐데, 내가 공연장에서 느꼈던 아름다운 향취가 홍보물에서는 크게 느껴지지 않아 안타깝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국악을 보러 오고, 더 많은 공연들이 곳곳에서 열렸으면 좋겠다.  국악이 내가 생각했던 거에 비해 그렇게 진입 장벽이 높지 않고, 그 매력을 크게 느껴보는 경험을 한 사람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맛있는 게 있으면 나눠먹고 싶은 마음과 같다. 그리고 모든 문화에서 양적 팽창은 질적 양화를 가져오니까.

 좀 “잘 했으면 좋겠다!” 류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된 감이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느낀 국악의 역동적인 소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어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온 말이니 너그러이 용서 해 주시기를(웃음)...

2019/12/14 국립국악원 공연. 사진 : 연합뉴스
2019/12/14 국립국악원 공연. 사진 : 연합뉴스

슬: 국악인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국악은 상업적으로 매력이 없다라는 어떠한 고정관념이 있을지도 모른다. 국악계, 특히 젊은 국악인들과 활동을 하며 늘 하는 생각인데, 나는 국악의 연구가 투 트랙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통 음악의 가치를 고증을 통해 보존하고 재현하는 방식과,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로 다양한 시도를 하는 창작 국악의 방식이 좀 더 전문적인, 세부 학문으로 나누어질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전통은 전통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보존하는 게 후손들, 새로운 세대의 국악인들의 몫이라고 느낀다. 전통 곡들을 연주하는 공연이 계속 기획되고, 국악인들도 이에 활발히 참여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창작에 있어서도 보다 전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대중음악으로서의 국악을 고민하고, 다른 장르를 연구하여 국악 창작에 접목시키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국악으로서의 정체성을 살려내고 또 그런 결과물을 어떻게 세상에 잘 선보일지 고민하는 분야는 전통 국악과는 다른 방향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이다.

 전통 음악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정부 지원도 다양한 편이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국악인들이 지원 사업과 함께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이런 이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까 내가 연주자도 어느정도 음향을 공부 해야 한다고 느낀 것처럼, 연주자도 어느정도 기획을 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는 소리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어떻게 더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는지, 연주가 아닌 포장의 면에서 고민하는 모습도 필요하다고 느낀다.

 

상욱: 아무리 문화계가, 특히 음악이 슈퍼스타 경제화로 돌아간다고 해도, 어떤 철인 한 명이 전체를 먹여 살릴 수는 없고, 그게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또, 최근의 R&D 사태처럼 정부의 지원이 영원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내부적으로 자생 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그 토대가 되는 것이 기획력이지 않나.

젊은 국악인들의 다양한 시도가 오랜 시간동안 국악계에 몸 담고 계셨던 OG들의…

 

슬: 선생님이라고 해야지, 선생님(웃음).

 

상욱: 죄송합니다. 오랫동안 국악계에 몸 담고 계신 선생님들의 연구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장르인데, 더 크게, 자생할 수 있는 양적 팽창을 위해서는 이런 결과물들을 예쁘게 포장하여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기획력이 더 필요하다.


마무리하며

 

슬: 마지막으로 각자 한 이야기를 좀 정리해보자. 먼저, 나는 나와 같은 젊은 국악인들이 기획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공연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는게 아니잖아? 국악계에 종사하는 동료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어 보면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많았는데, 좀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지원 사업이나 자체적인 기획 등을 통해 보다 전문적인 공연을 꾸려나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기존의 기획자들도 국악 자체의 매력에 좀 더 중심을 맞춰 좋은 기획과 마케팅을 통해 국악 고유의 매력을 좀 더 대중들에게 어필하기를 바란다.

 

상욱: 나는 음향적인 부분에 좀 더 신경 쓸 수 있는 교육이나 세미나가 더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현장 엔지니어와 연주자들, 그리고 공연을 꾸리는 기획자들이 같이 좀 이렇게 어우러져서 고민하고 교류할 수 있는 행사가 학회나 세미나처럼 더 있다면 좋지 않을까. 좋은 음악들이 좋은 환경을 만나 더 널리 퍼져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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