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The Artist #6 - 규리 QURI
싱어송라이터 규리를 만나기 전에.
밴드 모스크바서핑클럽의 키보디스트와 또 한 명의 보컬로 익숙한 규리가 싱어송라이터의 모습으로, 솔로 EP <유일한 무기를 찾아서>와 함께 찾아왔다. 섬세한 공간감이 느껴지게 다듬어진 여섯 개의 음악이 담긴 이번 EP에서 규리는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외로움을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완연히 여름이 찾아온 6월, BOKEH의 에디터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온 싱어송라이터 규리와 함께 <유일한 무기를 찾아서>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이 EP의 목소리처럼 덤덤하고 솔직하게!
글/인터뷰: 슬, 상욱, 윤, 주연
슬: 먼저, BOKEH의 독자들에게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 드린다.
규리: 안녕하세요, 밴드 모스크바서핑클럽 그리고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규리 입니다. 첫 솔로 인터뷰를 BOKEH에서 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반갑습니다. 🙂
상욱: 솔로 EP가 나오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하다. "지금이다!" 라는 기분이 있었을지?
규리: 시기적으로는 경제적인 이유가 컸다. 작년에 한 3개월 정도 인턴을 하면서 돈을 벌었는데, 그 전까지는 회사에서 꼬박꼬박 돈이 들어오고 이런 적이 없다 보니 이 수입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미래의 내 앨범에 투자를 하기로 결정하고 통장을 하나 따로 만들어 놨다.
그 이후로도 내가 버는 돈의 일부를 무조건 그 통장에 저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통장을 만들기 전까지는 음반을 만들면 편곡도 내가 다 하고, 비주얼적인 요소들도 내가 다 디자인 해야 하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돈이 쌓이니까 그냥 전문가한테 다 맡겨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웃음). 그러니까 이 돈을 써야 내가 음반을 내겠구나, 나 혼자서 하려고 들면 영원히 안 내겠구나 싶어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아졌다. 프로듀서인 은결 씨와 그 후 바로 연락을 했던 것이 어쨌든 다른 사람과 약속을 만들면 책임이 생기지 않나.
EP에 들어간 곡들을 만든 건 3~4년도 넘었다. 앨범을 만들 생각은 안 하고 그냥 만든 곡을 모아두다가 어느 순간부터 이 곡들을 모아 발매하고 싶어져서 혼자 편곡도 해 보고 프로듀서도 찾아보고 그랬다. 그 과정을 여러 해 동안 겪다가 2023년 8월에 프로듀서이신 은결씨가 같이 해보자고 제안 해 주셔서 그때부터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곡들을 솔로 앨범으로 만들까, 아니면 편곡을 해서 모스크바서핑클럽의 이름으로 낼까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너무 오랫동안 품고 있던 작품은 다른 작업자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좀 힘들어진다. 모스크바서핑클럽의 2집 <짙은햇살>에 수록 된 내 곡인 <아파트>는 그나마 최근에 만든 곡이라 자유롭게 편곡을 맡길 수 있었는데, 그 전에 썼던 곡들은 내가 생각하는 방향에 맞지 않는 제안들을 수용하기가 어렵다고 느껴 따로 솔로 앨범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윤: 밴드로 일하는 것과 솔로로 일하는 것에 좀 차이가 있었을 것 같다.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규리: 일을 기획하고 꾸려나가는 점에 있어서는 딱히 크게 다른 건 잘 모르겠다. 근데 이런 답을 원하시는 게 아닐 것 같은데(웃음).
음악적으로 다른 점은 사소한 편곡부터 전반적인 기획까지 부담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없고 혼자 다 해야 하니 그만큼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예를 들면 밴드에서는 고민이 되면 일단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그럼 이제 누가 좋다, 별로다 하면 '그런가?' 하고 그냥 따라간다. 그런 상황이 모여서 모스크바서핑클럽의 색깔이 되기도 하는 것 같은데, 이제 솔로로 일하게 되면 대부분 내가 다 결정을 해야 되기 때문에 좀 부담이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또 내가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슬: BOKEH도 다함께 무언가를 기획하고 글을 쓸 때와 혼자 기획을 짜고 글을 쓰는 건 꽤 큰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혼자 지키면 되는 마감이다 보니 마음에 안 들면 자꾸 미루게 되고, 제때 무언가를 내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다. 솔로 앨범 제작 과정에도 이와 비슷한 힘든 점들이 있었을 것 같다.
규리: 엄청 많았다(웃음). 팀을 이뤄 협업을 많이 한 게 도움이 되었다. 모든 일을 혼자 다 하면 진짜 지구 끝까지 미루다가 안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내가 그 분들에게 드린 마감일이 있고 결국 나도 결과물을 받고 피드백을 드려야 함께 일하는 분들이 뭔가를 더 만들어 주실 수 있는 거니까 작업이 지치고 하기 싫어도 그래도 결과물들이 메일로 날아오면 많이 설렜다. 도파민도 좀 팡팡 터지고(웃음). 작업 할 의지가 나는 좋은 피드백이 있어야 지치고 미루는 과정이 줄어든다는 생각이 있는데 협업을 통해 그런 피드백을 주고받을 기회가 많았던 것 같다.
상욱: 이번 앨범을 기획 단계에서부터 실제 발매까지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분들이 제작에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함께하셨던 팀을 한 번 소개 부탁 드린다.
규리: 일단 프로듀싱에서는 앞서 말씀드렸던 밴드도 하고 계시고, 솔로 활동도 하고 계신 은결씨가 편곡부터 믹싱, 마스터링까지 다 맡아주셨다. 앨범도 먼저 제안을 해주셔서 공동 프로듀싱처럼 작업을 했다. 세션으로는 이제 밴드 청요일의 한돌씨가 베이스를 대부분 맡아주셨고, 트럼펫은 예전 모스크바서핑클럽의 온스테이지 <Through Her> 영상을 찍을 때 인연을 맺었던 정다운님이 맡아주셨다.
음악 외적으로는 사진, 앨범 아트워크, 디자인을 전부 따로 맡기려고 했는데, 예산상의 문제로 하나를 잘 만들어서 그걸 최대한 활용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앨범을 만드는 기간 중 싱어송라이터 손서정님의 세션으로 활동했는데 그 분이 사용하시는 사진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어떤 분이 찍어주셨냐고 여쭤보았더니 사진가 유연 씨를 소개 해 주셔서 사진은 그 분과 함께 하게 되었다.
앨범과 굿즈 디자인은 옛날부터 같이 일해보고 싶었던 디자이너 효원씨에게 이런 것들을 함께 하고 싶다고 이번 기회에 연락을 드려 함께 할 수 있었다. 나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들을 되게 좋아한다. 특히 뜨개질처럼 손으로 하는 취미를 좋아해서 지금 들고 온 가방도 직접 만든 물건인데, 실물 앨범도 기념품보다 좀 더 의미가 있는, 소장하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물건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디자인 과정에서 촉각으로 느낄 수 있는 디테일을 넣고 싶다고 부탁 드렸더니 효원씨가 잘 구현해주셨다. 그 외에도 사진작가님께 스타일리스트 분도 소개받았고, (손)서정님이 헤어 디자이너도 소개 해 주셔서 머리도 좀 특이하게 해 봤다(웃음).
상욱: 세분화 된 팀으로 원하시는 이미지를 꾸려내는 과정이 인상 깊다. 방송국 같은 느낌이다.
규리: 스스로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려고 하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냥 전문가한테 돈 쓰고 맡기는 게 제일 좋더라(웃음). 그게 마음이 편하다. 나도 할 게 되게 많은데 하나하나 내가 다 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화끈하게 많이 모셔왔더니 너무 만족스럽게 잘 되었다. 첫 앨범이라서 더 잘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아, 서류를 작성할 일이 정말 많았다. 앨범을 내 본 적은 있지만 실무를 볼 일이 없어서 이렇게 서류가 많은 줄 몰랐는데...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밴드가 블루탠저린레이블에 들어간 뒤 음악 자체에 대한 고민 외에도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들어주고, 어떻게 홍보를 해야 하고, 어떤 사람들에게 광고를 해야 하는지 실무적인 고민도 많이 했다.
옛날에는 내가 음악을 만들거나 공연을 해도 되게 소극적이었다. 올 사람은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웃음). "이런 거 만들었어요!" 하는 게 약간 부끄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약간 뻔뻔해지기도 했고 그냥 자아를 분리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티스트로서의 자아는 그냥 다른 사람이고, 나는 이 사람의 매니저로서 이런 활동을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홍보를 해 줘야 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슬: 홍보와 마케팅이 참 어렵다. BOKEH도 정말 고민을 많이 하는데, 어디에서부터 시작 해야 할지, 어디에 어필을 할 지, 하나 하나 다 골치 아픈 주제다(웃음).
앨범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이야기 해 보았으니, 이제는 앨범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 싶다. 이전 BOKEH에서도 다루었지만 모스크바서핑클럽의 1집과 2집을 들었을 때는 인터뷰의 서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정교한 수공예품 같은 음악이라는 생각을 했다.
모스크바서핑클럽의 음악에서는 감정과 메시지를 굉장히 섬세하게, 곡의 구조와 소리의 질감을 통해서 전달한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는데, <유일한 무기를 찾아서>는 소리가 말을 꾸며주고 받쳐주는 역할을 하며 감정과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 같아 앨범에 담긴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에 집중하며 들었다.
규리: 감사합니다(웃음). 사실 나는 소리를 만들거나 꾸미는 일에 특화되어 있는 사람은 아니다. 모스크바서핑클럽에서 곡을 만들 때는 보통 잼으로 시작을 하다 보니 초기 단계에서 특정한 소리가 곡의 전반적인 심상을 만들어내고, 그대로 가사가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 앨범 같은 경우는 과정이 그 반대에 가까운 것 같다.
곡을 쓸 때 어떤 소리를 구현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음악을 만드는 경우는 잘 없고, 그냥 거의 멜로디와 가사 위주로 만든 뒤 그걸 앨범의 형태로 꾸릴 때 그제서야 전반적인 소리를 고민하는 편이다.
보통 작업이 진행되는 순서는 이렇다. 혼자 피아노 앞에서 뚱땅거리다가 멜로디가 괜찮게 나온다 싶으면 아무 말이나 흘러나오는 대로 붙여 가짜 가사를 만든다. 그 후에 마음에 들면 그 가사를 말이 되게 바꾼다. 일단 건반과 목소리로 그렇게 곡의 골격을 만든 뒤 그걸 컴퓨터로 옮기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편곡을 한다. 그 후에 이제 프로듀서인 은결 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다른 편곡을 해보기도 하고, 살을 덧붙여보기도 하면서 진행된다.
작업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져서 그런지, 싱어송라이터 인터뷰를 보면 어떤 메시지를 꼭 세상에 전하고 싶어서 음악을 만들었다는 분들 있지 않나. 그런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고 내가 딱히 하고 싶은 말도 없는 것 같다. 곡을 쓰고 나면 그제서야 내가 뚜렷해지는 기분이다.
윤: EP의 제목이 <유일한 무기를 찾아서>인 만큼 유일한 무기가 무엇일지 앨범을 들으면서 많이 생각해보았는데, 결국 이 음반 자체를 만든 게 그 유일한 무기를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했다. 아까 말씀하신 외로움이나 개인적인 경험에서 오는 괴로움, 그런 고통을 이제 극복 하고 그런 나를 방어할 수 있는 무기가 이 EP와 함께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었다.
규리: 맞다. 나도 이 무기라는 게 무엇일지 오래 고민했다. 일단 무기라는 말을 쓰긴 썼는데, 이게 엄청 센 단어다 보니 어떻게 그 의미를 풀어내야 할지 생각이 많았다. 솔로 앨범을 꼭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을 한 것이, 어디 가서 나를 소개할 때 뭔가 명함 같은 게 없는 느낌이더라. 항상 "저는 이런 음악도 하고요, 저런 일도 하고요, 이렇게 살고 있어요"라고 설명하는 게 어딘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인데(웃음), 나에게 중요한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타이틀 곡이자 EP의 제목인 <유일한 무기를 찾아서>의 가사도 지금은 네가 아무것도 없지만 언젠가 무언가 할 수 있는 힘이 생겨 다시 길을 찾아 돌아올거라는, 나 자신에게 응원을 건네는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무기라는 말을 참 잘 고른 것 같다. 무기는 나를 지키기 위한 도구가 되어 줄 수도 있지만 동시에 내가 누구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또 이미 무기를 꺼낸 상황 자체가 이미 신뢰가 무너지고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 아닌가. 요즘은 굳이 내게 무기가 있어야 하나, 없어도 잘 살 수 있는데, 그때는 왜 무기를 필요로 했지, 그런 고민들을 많이 하고 있다.
슬: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앨범 전체를 관통하고 있고, 그 감정의 농도가 점점 끝으로 향할수록 짙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규리: 앨범의 곡들을 쓸 때는 외롭다는 감정을 많이 못 느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내가 감정을 딱히 언어화 한 적이 없어 느끼지 않았다는 생각도 한다. 외로웠지만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 줄도 몰랐다고 해야 하나? 당연히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고 외롭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늘 외로웠고 늘 결핍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곡을 쓰고 앨범을 꾸리면서 그 감정을 다시 확인 한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많이 풀린 것 같기도 하고.
주연: 앨범에서 말이 흐르는 방식도 재미있었다. 처음 두 트랙인 <알면서도> 와 <에코>에서는 '나' 가 나오고, 세 번째 트랙인 <닮은꼴>에서는 '우리', 그리고 네 번째 트랙인 <유일한 무기를 찾아서>부터는 '너' 가 나오는 점이 흥미로워 앨범이 트랙을 쭉 타고 흘러가는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처럼 들린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흐름을 만들기 위해 트랙을 배치하고 앨범을 꾸리며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이 있다면?
규리: 나는 평소에도 트랙 순서를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앨범 단위로 음악을 듣는 게 더 익숙한 사람이기도 하고. 이번 앨범에서는 가사보다는 소리를 기준으로 트랙의 순서를 정했던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앨범을 딱 재생했을 때 한 2~3번 트랙까지만 집중해서 듣고 좀 별로다 싶으면 그 뒤는 잘 안 듣지 않나. 나도 그렇고(웃음). 그래서 밝은 곡들을 무조건 초반에 배치하고 뒤로 갈 수록 텐션을 낮추는 것이 전략적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앨범을 들을 때 가장 집중해서 듣는 트랙의 구조를 참고했다.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끝으로 갈수록 외로움이 진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구조가 만들어 낸 인상이 아닐까 싶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다 넣고 보니 우연찮게 가사에도 흐름이 생겨서 잘 됐다 싶다(웃음).
윤: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괴로운 시간을 그리워 할 정도로 외로운 시간이 찾아오는 걸까' 라는 구절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특히 이 가사가 평소에 많이 하는 생각과 닮아 있어서 더 인상 깊었는데, 마침 곡의 제목도 <닮은꼴>이다(웃음). 외로움을 굳이 언어화 하지 않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드는 이 구절이 어떠한 생각의 흐름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규리: 혼자 있으면 외롭고 같이 있으면 괴롭고, 이렇게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마다 나는 항상 차라리 외로운 게 낫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갈수록 과연 정말 그런지 의심이 든다. 어느 정도 외로운 기분을 곱씹는 건 스스로 살면서 굉장히 중요하고 꼭 필요한 기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종종 너무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 때에는 차라리 누군가랑 함께 있어 괴롭기를 택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또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늘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 괴로운 시간이 그리워질 정도로 외로운 시간이 찾아오면 어떡하나 싶은 불안감도 있었고. 나는 외로운 게 더 익숙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와 함께 하는 괴로운 순간을 좀 더 소중하게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쓴 곡이다.
슬: 앨범 전체적으로 비슷한 심상을 가진 단어들이 한 곡에 연이어서 배치되어 있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이미지를 가진 두 단어가 연달아 나올 때의 어감이 좋았다. 예를 들면 첫 번째 트랙인 <알면서도>에서는 햇빛과 그림자라는 단어가 한 쌍이 되어서 나온다거나. 말 맛과 표현이 좋은 가사가 많았는데, 곡을 쓰고 가사를 붙일 때 특별히 고민하는 점이 있을까?
규리: 사실 <알면서도>는 굉장히 옛날에 쓴 편에 속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어설프게 느껴진다. 햇빛과 그림자처럼 누가 봐도 비유적인 표현을 대비 시킨 게 별로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아서(웃음).
음악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어떤 장면이 떠오르길 바라며 가사를 쓴다. <알면서도>를 예로 들면 이 곡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나 눈으로 손을 가리고 있는,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가사를 썼다.
슬: 이번 앨범에 수록 된 곡들이 꽤 오래 전에 쓰였다고 말씀하셨는데, 옛날 일기를 다시 열어봤을 때 그때의 감정들에서 너무 멀어져 이건 내가 아닌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지 않나.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규리: 그런 고민 엄청 많이 했다. 옛날에 만들었고, 그때의 내가 최선을 다해 만들었고, 지금 들어도 괜찮아서 발매는 하고 싶은데 이게 지금의 나라고 세상에 말하기 싫더라. 너무 옛날의 감정이라 지금의 나와는 너무 달랐다. 아주 솔직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내가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런 나를 공개하는 것을 오래 고민하다가 그냥 자아를 분리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의 나는 아직 외롭고 미성숙한 모습을 최대한 잘 다듬어서 세상에 내놓는 일을 하는 사람인 셈이다. 실제로 내가 이제 그렇지 않아도(웃음).
또 한편으로는 나의 어떤 모습이 세상이 비춰지는지 너무 많이 신경을 쓰는 것도 자의식 과잉이지 않나 싶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내게 관심이 없더라. 사람들이 음악만 듣고 내 모습을 판단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슬: 많은 음악인들이 솔로 앨범에서는 아무래도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담게 되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내 이야기들을 다듬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이 있는 것 같은데,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풀어 낼 때 지키는 원칙이나 신념이 있는지 궁금하다.
규리: 그런 규칙이 엄청 많은데(웃음), 요즘은 그걸 좀 깨고 싶다. 종종 내 안에 필터가 있다고 느낀다. 이런 이야기는 써도 되고, 이런 이야기는 아직 쓰면 안 될 것 같고.
특히 내가 잘 할 수 없는 종류의 이야기를 풀어 낼 때 많이 고민하는데, 그런 걱정에 갇혀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최근에 좀 하게 되었다. 최대한 솔직하게 쓰고 싶다는 바람은 있는데 마음처럼 잘 안 된다(웃음). 드러낼 수 있는 정도의 모습만 가사에 쓰고 있지만, 그래도 평소 일상 생활 속의 내 모습보다는 가사를 통해서 드러나는 내가 보다 솔직한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윤: 마지막으로, <유일한 무기를 찾아서>를 듣고 계실 팬 분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 드린다.
규리: BOKEH 독자 분들 & 팬 분들 안녕하세요. 발매 이후로 많은 축하를 받아서 조금 얼떨떨하면서도 앨범 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조금 가까워졌길 바라요. 앞으로 준비된 일정이 많으니 여러 방면으로 찾아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더위 조심하시고 시원한 여름 되시길 :>
아티스트의 말
<유일한 무기를 찾아서>는...
공동 프로듀싱/편곡/믹싱/마스터링으로 ‘순이우주로’, ‘은결’의 음악가 은결 님이 저와 대부분의 작업을 함께해주셨고, 베이스 세션으로 ‘청요일’, ‘이만총총’의 한돌 님이 참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2년 전 모스크바서핑클럽 온스테이지 촬영으로 인연을 맺은 정다운 님이 ‘에코’의 트럼펫을 연주해주셨습니다.
비주얼 면에서는 그래픽 디자인뿐만 아니라 제품 디자인, 패브릭 작업까지 하시는 디자이너 최효원 님께서 아트워크, 실물 앨범과 MD 디자인을 총괄해주셨어요, 이번 앨범엔 꼭 청각뿐 아니라 촉각적으로도 감각할 수 있는 요소를 넣고 싶었는데요, 효원님께서 가사 배치나 엠보싱 로고 같은 재밌는 요소들을 함께 고민하고 또 훌륭하게 구현해주셨습니다.
싱어송라이터 손서정 님께서 연결해주신 덕분에, 프로필 사진으로 사진작가 이유연 님과 헤어디자이너 김경연 님, 보조 촬영을 도와주신 황윤림 님과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음악이든 청자의 고유한 시간 속에서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음악을 위한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하고요, 온전한 청자로서 누군가가 20분 남짓의 멋진 산책을 할 수 있다면 기쁠 것 같아요.
팀 멤버 인스타그램
-은결 @silvervvave3
-한돌 @ffandoore
-정다운 @dawoonito
-최효원 @at.hyowon
-이유연 @yuyeonlee.kr
-황윤림 @hwangyunlim
-김경연 @k.kye0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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