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Meet The Artist #2 - 인주

작가 인주를 만나다.

2023.03.19 | 조회 1.5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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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KEH

음악/공연 문화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문화 이야기들을 전해드리는 BOKEH입니다.

Meet The Artist #2 - 인주

<Meet The Artist>는 BOKEH의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창작자들을 만나, 작품에 대한 생각과 함께 창작에 대한 깊고 넓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작가 인주를 만나기 전에.

 '외로움을 덮는 농담'

 우리가 90살까지 산다고 가정해보자. 아주 긴 시간을 살아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간 살아온 날들에 비추어 짐작해보면 살아있는 90년의 시간 중 대략 80년 가량은 우울하고, 다른 8년은 극히 우울하며, 나머지 2년은 소소하게 즐거운 일로 채워지리라는 예상이 된다.  

 이런 삶이란 이름의 고해(苦海)에서 현명하게 항해하는 법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답을 내놓았다. 인주 작가도 유머 에세이 <한녀랩소디>를 통해 그런 답을 내놓았다. 고통의 바다를 헤쳐나가는 방법으로 '농담'이라는 수단을 제시한 작가 인주를 합정동의 카페에서 만나보았다.

녹취/인터뷰: 슬

글/인터뷰: 상욱

유머 에세이 <한녀랩소디>의 작가 인주.
유머 에세이 <한녀랩소디>의 작가 인주.

-책에 나와있는 내용이지만, 아직 책이 없을 독자들을 위해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린다.

인주: 저는 한이 많구요(웃음), 저처럼 한 많은 여자들한테 한풀이도 하고, 웃겨도 주고 싶어서 <한녀랩소디>라는 책을 쓴 인주입니다.

-인주라는 필명이 인상적이다.

인주: 고등학생 때 문예창작 입시를 준비했는데, 그때 처음 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 '인주'였다. 처음 소설을 쓴 사람들의 특징인데, 보통 주인공이 죽는다(웃음). 처음 고등학생 때 썼던 인주도 자살을 했다. 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고(웃음), 그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처음 만든 인물의 이름이라 정이 많이 붙어 쓰고 있다.

그 뒤에 음악 만들기 워크숍도 들었는데, 워크숍 발표 무대에서 사용할 이름을 정해야 해서 '인주'라는 이름을 무대명으로 정했다. 거기서 쓴 가사 중에 '구질구질하게 매달려 달라, 내 이름을 당신의 손등에 새겨버리겠다'고 말하는 좀 소름끼치고 음침한 내용의 가사가 있었다. '인주'가 가지는 잘 지워지지 않는 빨간 지장의 느낌이 좋아서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다.

-책을 내신 이후 굉장히 바쁘셨던 것 같다. 많은 오프라인 서점에 입점 되었고, 차후 예정된 여러 행사에도 참여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가로서의 하루 작업과 일상을 지키는 일과가 어떻게 되시는지 궁금하다.

인주: 그런걸 나한테 물어보면 안된다(웃음).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서점에 많이 입고된 소식부터 설명하자면, 독립출판을 한 사람들은 보통 서점에 보낼 입고 신청 양식을 만든다. 그걸 작성한 후에 이력서처럼 서점에 보내는데, 감사하게도 많은 곳에서 입고를 해보자는 회신을 보내 주셔서 입점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그 외에는 내가 혼자 불안해서 하는 일이 많다. 카페 가서 '브런치에 글을 써 볼까?' 하고 작가 신청을 하고, '인스타에 뭐 올려야 할 것 같은데? 뭐 올리지?' 하고 올릴 것들을 고민하는 정도지, 막 대단하게 바쁘게 보내고 있진 않다. 대부분의 날들은 누워 있고, 요즘은 친구들과 만든 새로운 책이 곧 나올 예정이라 그 작업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책을 낸 이후에 마음은 불안해도 할 일이 많지는 않은 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안티테제같다(웃음). 이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한녀랩소디>의 이야기들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한 가지 꼽으라면 ‘농담’ 이라고 생각하는데, '농담'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주된 수단으로 이용하는 작가에게 농담을 하는 행위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인주: 농담이란...너무 거창한데(웃음). 나는 애초에 말을 되게 많이 하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보다 수치심의 역치가 낮아 부끄러움을 잘 모른다. 항상 나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그걸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고, 그 말에는 항상 자조가 숨어들어 있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도 죽고 싶다고 혼자 생각하면 너무 괴로운데 친구에게 "야, 죽고 싶다"라고 말하면 "와, 나도 죽고싶다" 하고 깔깔 웃을 수 있는 농담처럼 되지 않나. 그것은 분명히 슬프지만.

농담을 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모른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 것 같다. 또 블랙코미디가 아닌 농담을 내가 모르고...똥이나 방귀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일종의 블랙코미디지 않나? 방귀를 뀌어서 수치스러웠던 경험이 웃긴 것이니까. 글로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쓰면 내 괴로운 이야기들이 전부 농담이 된다고 생각한다.

"농담을 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모른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 것 같다"

-<관객이 있을 땐 맘껏 가지고 놀던 개그 소재들이 홀로 남게 되자 현실이라는 무게를 가지고 제 방을 꽉꽉 메워버려> 라는 문장이 책의 도입부에 나왔을 때, 이 책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겠다고 느꼈다. 웃음으로 희석되지 않는 외로움과 불안감에 대해 쓴 문장으로 이해했는데, 마침 또 위에서 책을 쓰는 것이 불안해서 한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불안과 외로움 속에서 글을 써낸 집필 과정이 궁금하다.

인주: 예전에 문예창작과 대입 준비를 하다가 정말 크게 망했기 때문에 글을 쓸 생각도 없었고, 정말 쳐다도 안 봤고, 쓰고 싶다는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뭔가 계속 하고 싶은 얘기는 있고, 사랑받고 싶었다. 나는 애초에 말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노래를 배우면 가사 쓰는 건 좀 쉽지 않을까 싶어 노래 만들기도 찔끔찔끔 시도해봤고, 친구들이 유튜브를 해 보라고 추천하길래 혼자 동영상도 찍어봤는데, 하나도 안 웃기고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계속 실패하다가 다시 글을 쓰게 된건,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이라는 에세이를 쓰신 양다솔 작가님이 서울문화재단에서 여신 글쓰기 수업을 하는 글방에 참여할 때부터였다.

그때는 내가 하는 일도 없고, 글방이 공짜였고, 좋아하는 작가를 매 주 만날 수 있게 해 준다고 있다니까 갔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무조건 글을 써 와야 참가가 가능하다더라. 작가님도 보고 싶고, 같이 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이 글을 썼는데 거기서 잘 한다는 칭찬을 들어봤다.

처음으로 잘한다는 칭찬을 들어본게 에세이라서 '진짜로 내가 잘하나?' 싶어 신나서 계속 썼다. 그래서 처음 쓸 때는 '책으로 내야지' 하는 대단한 목표도 없었고, 그냥 쓰다 보니까 어느정도 원고가 모였다. 그리고 따로 살고 있어 내가 뭘 하는지 전혀 모르시던 부모님이 그 무렵에 "너 도대체 뭐 하면서 사는거냐" 라고 물어보시기도 했고.

<한녀랩소디>가 작년 12월에 펀딩을 받아서 올해 1월에 나온 책이다. 이게 작년 9월~10월 즈음에 엄마가 점집에 갔다가 "그 집 딸이 큰 일이 났다. 올 해 아무 것도 안하면 거지가 된다. 나이 마흔에 밖에서 먹고 자게 된다. 그런데 올 해 뭐라도 하면 그래도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라는 말을 듣고 조급해지셨다. 나는 그때 그냥 글방만 다니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글 쓰고 있었는데, 엄마는 내가 뭘 하는지 모르시니까 전화를 하셔서 "너 빨리 당장 반려견 미용 학원에 가자"라고 하시더라. 등록을 해주시겠다면서.

-갑자기(웃음)?

인주: 우리 엄마가 내가 고등학생때 문예창작 입시를 할 때부터 반려견 미용을 진로로 밀었다. 문예창작 입시 하지 말고 그냥 '강아지 미용' 하자고. 이제 또 그 카드가 나온거다. 반려견 미용 학원에 등록시켜줄 테니까 너 빨리 가자고. 그래서 내가 "싫어! 내가 올해 안에 뭐라도 하면 되는거잖아? 그치, 엄마? 그럼 내가 알아서 해볼게. 기다려봐" 하고 허겁지겁 전화를 끊었다. 뭔가 나도 점집 말이 무서웠다. 저주처럼 자꾸 그 말이 쫓아다니고, 나이 40에 길거리에 나앉는다는게...(웃음)

그래서 '진짜 뭐라도 해야 되는데, 뭘 할 수 있지' 하고 봤을 때, 내가 해둔게 그간 써온 에세이 원고밖에 없었고, 그래서 뚝딱뚝딱 책으로 냈다.

-점을 보러 간 사람한테 그렇게까지 악담을 했나(웃음).

인주: 그랬다니까(웃음). 올 해 안에 빨리 그 집 딸 뭐라도 시켜라, 계속 그랬다고 한다. 엄마가 계속 겁에 질려있으니까 나까지 겁에 질려버렸다.

-무서울만한 이야기다(웃음).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한녀랩소디>는 작가가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고, 동시에 작가의 사랑하는 방식이 담겨있다. 특히 세 번째 장인 <내가 사랑한 모든 여자들에게>는 앞서 말한 사랑의 이야기와 그 방식으로 꽉 채워진 장이기도 하고. 책을 읽고 느끼는 독자의 감상과 별개로, 인주 작가가 생각하는 자신의 사랑 방식이 궁금하다.

인주: 모르겠는데요(웃음)? 나는 의존이 정말 심한 사람이다. 혼자 있는 걸 못 견디는 사람이고, 혼자 있는 걸 너무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혼자 있으면 절대 안 웃고, 웃을 일이 없고, 친구를 만나면 재밌게 해주고 싶고. 왜냐면 같이 웃어야 나도 재밌으니까!

그래서 대단한 사랑을 하는 방식은 없는 것 같다. 그냥 같이 있는 일이 좋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인주 작가는 자기고백적 글쓰기의 달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비결이 있는지(웃음).

인주: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작품들이 보통 미친 사람들이 '빤쓰' 하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자신의 날 것을 보여주는 것들을 너무 좋아했었다.

자아가 생기기 시작한 무렵인 고등학생 때부터 관계를 맺어 온 친구들은 또 비슷한 작품을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모였고. 그러면 애초에 안전장치가 필요가 없다. "너 이거 좋아해?" 하면 "너도?" 하고. 다들 속으로 '아...비슷하구나, 너도 이런 애구나?' 하니까 딱히 조심할 것이 없다. 하면 안 될 말과 해도 될 말을 잘 구분하는 것 아닐까?

-이런 개인사를 풀어놓는 글쓰기는 많이들 ‘위험하다’고 말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등장인물들과의 도의와 창작적 허용의 균형을 지키기 까다로운 방식이기도 한데, 작가로서 이런 방식의 글쓰기에 가지는 원칙, 혹은 신념이 있다면?

인주: 허락 받는 것? 나온 친구들에게는 전부 글을 보여주고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스쳐지나간 인연들도 나오지 않나? 레즈비언 번개모임에 나갔다가 만난 사람들에게 갑자기 연락해서 허락을 구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그런 부분들은 인물과 대화를 각색하고...

<한녀랩소디>에 쓰여있는 감정은 진실에 가깝지만, 사건은 절대 진실이 아니다.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소설은 가짜라고 말하면서 진짜를 얘기하고, 에세이는 진짜라고 얘기하며 모두 가짜를 쓴다고 한다. 이 책에도 내가 아는 감정에 대해 썼지만 모든 사건이 진실은 아니고, 분명히 '뻥'과 과장이 뒤섞여 있다. (정리하자면)여기서 깊게 다룬 사람들에게는 다 글을 보여주고 허락을 받았고, 허락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 가공처리를 했다.

"<한녀랩소디>에 쓰여있는 감정은 진실에 가깝지만, 사건은 절대 진실이 아니다"

-영화에서 <이 영화는 전부 사실에 기반된 내용입니다> 라는 문구가 시작부터 나오면 전부 거짓말이고, <이 영화는 실존하는 어떤 단체, 인물, 사건과도 관련이 없습니다> 라는 말이 나오면 완전히 사실이라는 농담같다(웃음).

인주: 정말 그렇다(웃음).

-인주 작가가 직접 홍보 계정에 올린 주변인들의 감상 중 <페미니즘, 퀴어, 정신병… 내가 힘들어하는 것만 담았다>라는 문장이 있었다(웃음).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라는 생각과 동시에, 감상에서 표현된 것처럼 작가의 개인적 면모들이 이 책에 정말 많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모습은 보여주고 싶다는 판단 기준이 있나? 이미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날것이 담긴 작품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인주: 뭐, 나는 이제 못 보여줄 모습은 없고(웃음). 저기 쓰인 모든 원고는 내가 술자리에서 써먹던 이야기다. 나는 말로 정리되지 못한 것은 글로도 쓰지 못한다. 술 먹을 때마다 "우리 고등학생때 이러지 않았냐?", "우리 대학생때 이런 일 있었지?", "우리 클럽 갔을 때 말인데", "나 옛날에 레즈비언 번개모임 갔을 때 진짜 웃긴 얘기 있었는데" 하면서 꺼낸 이야기들이어서, 대단하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다기보다는 내가 생각하기에 재미있는 이야기, 반응이 제일 좋았던 이야기들, 말하면서 신났던 이야기들을 주로 글로 옮긴다.

-그렇다면 <한녀랩소디>는 에세이적 성격이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 모음집 같은 책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까?

인주: 애초에 에세이라고 말하는게 너무 무거워서, 소개할 때 항상 '블랙코미디'라는 말을 끼워넣는다(웃음).

-책에도 '인주 유머 에세이'라고 적혀 있다(웃음). '유머 에세이'라는 이름이 붙은 배경설명을 듣고 나니, 표제작 <한녀랩소디>가 콩트인 것이 이해된다.

인주: 그것도 원래 유머집으로 할까, 뭐라 할까 고민하다가... '깔깔산문집'. 이것까지 후보에 있었다. 고민하다 유머 에세이/깔깔산문집/유머집을 후보를 두고 친구들에게 투표를 받아 유머에세이로 결정했다.

-혹시 깔깔산문집에 투표를 한 분들이 계셨는지...

인주: 없었다. '깔깔산문집' 이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웃음)

-BOKEH도 깔깔산문집이 제일 마음에 들어서 여쭤보았다(웃음)

인주: 애들이 재미없다고 해서, 뭐, 그랬다.

-독자로서, <영원이 아닌 영영>이 정말 좋았다. 인간관계에 집착하고 의지하는, 너무 내밀한 모습을 그린 이야기라 '내가 이런 이야기를 읽어도 되나' 싶어 당황스러웠다. 동시에, 내가 못난 모습으로 사랑했던 수많은 친구들이 생각나, 조금 울었는데(웃음).

인주: 감사합니다(웃음).

-그러다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 '나도 그랬다는 한 마디가 듣고 싶어서 이 글을 썼다'는 말을 보고 완전히 당했다는걸 알았다(웃음). 작가로서 이렇게 독자의 감상을 의도하고 쓴 부분들이 있다면, 작가가 의도했던, 혹은 기대했던 독자들의 감상이 있는지 궁금하다.

인주: 원래 책을 내기 전에 계속 원고들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러다 트위터에서 잠깐 화제가 되면 댓글들이 엄청 달리는데, 다 비슷한 이야기를 해 주신다. <너무 놀랐어요, 제 얘기인줄 알았어요>, <어떻게 이걸 다 아셨어요?> 등등. 어떤 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본문보다 더 길게 댓글로 적어주셨고(웃음). 그런데 난 이런 댓글들이 너무 좋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다들 똑같구나, 이런 반응들. 나는 그런 반응을 볼 때마다 제일 기분이 좋고 짜릿하다. <한녀랩소디>를 쓸 때에도 '어차피 너희들도 다 그랬을 거 안다' 라는 마음으로 썼고(웃음).

당연히 내가 겪은 사건을 모두가 겪진 않았겠지? 뭐, 레즈비언 번개에 나가는 사람들도 있을거고, 한 번도 안 나가는 사람도 있을거고. 원나잇스탠드를 미친듯이 하는 사람도 있을거고, 아닌 사람들도 있을거고. 근데 그 순간에 느끼는 미묘한 감정이나, '아, 나 저거 뭔지 알아' 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모두에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여자들한테.

그래서, 그냥, 여자들이 보면서 '흠칫!' 했다면 그걸로 너무 행복하다.

"그냥, 여자들이 보면서 '흠칫!' 했다면 그걸로 너무 행복하다"

-<한녀랩소디>에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부분이나 문장이 있나?

인주: 어, 나 생각 안 나는데(웃음)? 내 책에서 애착이 가는 부분이나 문장...일단 표제작인 <한녀랩소디>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을 가난했었고*...하면서 농담들로 다 만들어 낸.

또 <수치심의 역사>도 좋아하고. <한녀랩소디>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원고들을 공개했다.

책 제일 마지막에 있는 떠나간 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좋아한다. 그동안 정말 많이 그 이야기를 써 보려고 노력했는데 매번 실패하다가 전혀 상관 없는 사물의 시점을 가지고 나서야 다 쓰게 되었다. '아휴, 그래도 쓰긴 썼다!' 하면서 뿌듯하고 좋았다.

*표제작인 <한녀랩소디>의 도입부는 인용한 god의 <어머님께>를 포함한 한국가요들의 가사를 이어붙어 만든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스타그램의 포스팅으로 독자들에게 전달받은 감상을 많이 공유하고 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감상이 있는지 궁금하다.

인주: 인스타그램에도 공유한 <영원이 아닌 영영>의 주인공, '영영'이 남겨준 감상. 얘한테 이 책이 나오기 전부터, 아예 <영원이 아닌 영영>을 쓰자마자 보여줬다. 근데 진짜 반쯤 흐린 눈을 하고 "어, 봤어. 좋다", 그러고 넘겨 버리더라(웃음). 다음부터는 글이 올라간 링크까지 보내주고 "너 얘기 쓴 건데 좀 봐라" 라고 했더니 "응, 볼게, 볼게. 근데 못 보겠어" 이러고 안 봤다. 정말 끝까지!

그래서 나중에 <한녀랩소디>가 나오고 나서 책을 전해줬을 때에도 영영이 절대 내 책을 안 볼거라고 생각했다. 진짜 보기 싫어해서. 너무 간지럽고, 그런 이야기들만 있다고...그리고 좀 징그럽지 않은가. 이건 나의 심연이고, 얘도 나에 대해서 모든 걸 알고 싶진 않고.

그랬는데 영영이 읽고 나서, "너무 좋았어. 야, 씨, 좋더라?" 라고 했다. 일단 걔가 읽어줬다는 사실 자체에 감동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다른 형식의 글을 쓰는 욕심이나 더 다뤄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인주: 일단, 에세이를 계속 쓸 것 같다. 나는 '작가로서 위대해지겠다!' 이런 목표를 가진 사람이 절대 아니고, 글을 안 쓰면 죽을 것 같은 사람도 아니다. 글 안 쓰고도 너무 잘 살고, 글 쓸 때는 하나도 안 즐겁고 너무 싫고 너무 힘들다. 관심받는게 좋은거지 글쓰기 자체는 괴롭다. 그래도 주위에서 쓰라고 많이 독려를 해 주시니까 박수 쳐 주면 열심히 춤 추는 것처럼 찔끔찔끔 계속 쓸 예정이다.

쓰고 싶은데 못 쓴 이야기들은 당연히 많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서, 부모님을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몇 번 써 보려고 했다. 사실은 우리 부모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써 보려고 했는데 항상 마지막에는 '엄마 미워, 아빠 미워, 나한테 왜 그랬어' 로 끝나버리더라. 분명히 처음에는 우리 부모님의 귀여운 모습을 써 보려고 했는데. 그 외에 또 사랑하는 친구들에 대해서도 더 얘기하고 싶고. 뭐 많이 생각했었는데...(웃음)

작가로서의 활동 계획은...글쎄. 책이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웃음). 당장 6개월 뒤에 이력서를 들고 돌아다닐지, 책을 들고 돌아다닐지 아직은 모르겠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일이지만(웃음), 작가로서 해 보고 싶은 활동이나 일이 있다면?

인주: 책을 만들면서 기대했던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많은 장소에서 만나는 일이였다. 만약에 책이 잘 된다면 팟캐스트라던가, 북토크라던가, 아니면 내가 모임을 만들어서 운영한다던가, 아무튼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하고 싶다. 대단하게 하고 싶은 일이 있는건 아니고.

-어느새 마무리 질문이다. <한녀랩소디>를 사랑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작가의 한 마디 부탁드린다.

인주: 티 좀 내주세요(웃음). 제발. 누군가 제 얘기를 보고 있다는 게 진짜 하나도 실감이 안 나구요, 점점 가난해지고 있기만 합니다. 진짜로.

-BOKEH도 같이 부탁드린다(웃음). 부디 BOKEH의 글을 읽고 마구마구 티 내주시길!

인주: 1쇄 찍고 나서 책이 동났는데, 아직 정산이 안됐다. 그래서 지금 돈도 없고 책도 없다. 2쇄를 찍기 위해 요즘 알바를 열심히 구하는 중이다. 어제도 임상실험 아르바이트 찾아보고(웃음).

재고가 얼마 안 남았으니까 2쇄를 빨리 만들어야 하는데, 책과 관련된 행사 일정 때문에 제주도도 가야 하고, 여러 사정이 있어 고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계속 단기알바만 하고 있다. 그 와중에 맨날 SNS에 <한녀랩소디>를 검색해보는데, 간간히 독자 후기를 올려주신 걸 보고 '그래, 해야지' 하고 버티고 있다.

책이 분명히 나가고 있고, 누군가한테 닿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아직 실감이 안 난다. 많이 많이 이야기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웃음).

-마지막으로 인주 작가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린다.

인주: 친구들한테 책을 보내줄 때는 편지를 같이 썼는데, 마지막 멘트는 항상 같았다. '부디 저와 함께 오래 해 주세요'. 다 죽지 않았으면 좋겠구요.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구요. 제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덜 아팠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덜 아팠으면 좋겠습니다"

BOKEH가 추천하는 <한녀랩소디> 속 이야기:

상욱: <영원이 아닌 영영>

슬: <가장 보통의 여자>

야키: <한녀랩소디>


 

<한녀랩소디>는 위 서점들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한녀랩소디>는 위 서점들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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