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BOKEH 특집 3부작 [우리의 에테르를 찾아서] #2

우리 안의 에테르를 찾아가는 세 번의 이야기, 그 두 번째.

2024.06.28 | 조회 1.0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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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KEH

음악/공연 문화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문화 이야기들을 전해드리는 BOKEH입니다.

우리의 에테르를 찾아서 

BOKEH의 새로운 기획, 에테르 3부작 특집 [우리의 에테르를 찾아서]에서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 등장하는 심상, '에테르'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기획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시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에테르'를 파고 들어 '우리 안의 에테르'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본 기획의 제목은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의 토속 민요들을 소개 해 온 MBC 라디오의 프로그램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와 웹진 [weiv]에서 연재 되었던 포스트록 칼럼 우리의 포스트록을 찾아서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마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지난 [우리의 에테르를 찾아서]에서 우리는 '에테르'를 노스탤지어에 기반한 심상이고, 이는 추억 뿐만 아니라 그 시간으로 돌아 갈 수 없다는 현실에서 오는 고통과 허무함이 함께해야 한다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에테르'를 만드는 노스탤지어는 현실의 어떤 순간에 우리에게 다가오고, 어떤 시대의 흐름을 통해 만들어져 우리에게 슬픔과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우리의 에테르를 찾아서]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우리의 포스트 록을 찾아서〉의 저자 나원영 대중음악 비평가를 모시고 함께 이와 관련 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우리의 '에테르'를 찾아보기 위해서. 

 

서문: 상욱


릴리 슈슈, 어떻게 봤어? 《 작성자 : 나원영 

상욱: 먼저, BOKEH의 독자들에게 간단한 소개와 인사 부탁 드린다. 

나원영(이하 원영): 2016년부터 대중음악 비평가로 활동 중인 나원영이다. 〈우리의 포스트 록을 찾아서〉《대체 현실 유령》을 썼고, 최근에 「우리의 포스트-록을 이해하길 멈출 때」라는 글을 발표했다. 잘 부탁 드린다.

「우리의 포스트-록을 이해하길 멈출 때」 는 문학과사회 하이픈(2024년 여름)에서 읽어 볼 수 있다.
「우리의 포스트-록을 이해하길 멈출 때」 는 문학과사회 하이픈(2024년 여름)에서 읽어 볼 수 있다.

상욱: 먼저, 이번 기획의 주제인 ‘에테르’가 나온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하 〈릴리 슈슈〉)에 대한 감상이 궁금하다.

원영: 사실 〈릴리 슈슈〉가 나에게는 좀 보편적인 교양 같은 영화라고 느껴졌는데, 내가 보편교양을 잘 안 챙겨보는 타입이다(웃음). 그래서 항상 미루다가 대담 일정이 정해지고 나서 봤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는 점이 많았다.

 특히 오키나와 여행 장면 등에서 핸드헬드로도 두드러지는 영상의 빛 번짐 같은 요소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듯한 질감이 많이 느껴졌는데, 그런 기술적 요소들이 현대의 우리가 창작물에서 흔히 말하는 Y2K 감성이나 2000년대의 노스탤지어를 떠올리게 하는 것에 큰 영향을 끼치는것 같다. <릴리 슈슈>가 이제 사람들에게 어떤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그런 기술적 요소가 현재의 관객들에게 와닿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한 기술적, 디지털적 요소들이 영화 내에서 어떻게 시각적으로 드러나는지 살펴보는 것도 영화의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였다. 예를 들어, 작품 초반 온라인 채팅창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표현할 때에는 실제로 컴퓨터에 접속을 하고, 마우스를 움직이고, 타자를 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텅 빈 검은 화면에 〈매트릭스〉처럼 글리치 섞인 자막으로 처리한 채팅들이 마구 뜨는 방식으로 연출한 것처럼.

 그렇게 굉장히 추상적인 형태로 인터넷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 안의 공간을 현실과 상관없는 가상의 세계, 혹은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리겠다는 의도가 느껴졌다. 그랬기에 릴리 슈슈를 좋아하는 마음을 따라 모두가 인터넷에서 만났지만 결국 흩어지고 무너지며 결말의 그 사단이 난 것이 아닐까 싶고... 그런 점에서 나는 <릴리 슈슈>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인 파란 하늘 아래의 푸른 논에서 홀로 이어폰을 끼고 음악 듣다가 막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아주 인상 깊었다. 같은 것을 좋아하지만 함께하지는 못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 장면이니까.

 결국 모든 등장인물들이 릴리 슈슈를 좋아하지만 자기 멋대로 듣고 자기 멋대로 생각을 하다보니 다들 더 외로워지고...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설득력을 가진다. 현실에서 좀 덜 외롭고 싶어 온라인 속으로 도피해 보았지만 거기에서도 외로움은 똑같이 느껴지는, 그렇게 돌고 도는 현실이 흥미로웠다.


흘러간 기술을 곱씹으며 분해하기

윤: 디지털 카메라의 특징 중 하나인 빛 번짐 같은 과거의 기술적 특징을 현대의 기술력으로 복각하려는 시도들이 문화 전반의 유행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을 ‘디지털 풍화’ 시켜주는 어플리케이션이나, 과거의 음향 장비들을 재현하는 가상악기처럼.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상욱 에디터의 반려견 사진을 플레이스테이션 2의 그래픽과 같은 디자인으로 변환한 모습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상욱 에디터의 반려견 사진을 플레이스테이션 2의 그래픽과 같은 디자인으로 변환한 모습 

원영: 의도적으로 ‘풍화된’ 사운드를 사용하려는 시도들은 오래 전부터 많이 찾아 들을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에는 그런 목적을 위해 이펙터나 플러그인들을 이용하는 방식이 DAW(Digital Audio Workstation, 디지털 신호처리를 통해 음악/소리를 제작 및 편집 하는 소프트웨어) 바탕의 전자음악의 영역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밴드 음악으로 그 흐름이 넘어가 전자음악의 소리를 채용하고 그 방식이 2020년대 유행하고 있는 인디 록의 하위 장르들인 슈게이징, 포스트록, 이모(EMO) 등의 구체적인 음색 자체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상욱: 말씀하신 것처럼 DAW 안에서 만들어지는 가상악기의 소리를 현실에 가져와 구현하려는 시도들이 사운드메이킹에 관심이 많은 밴드들에게 오랜 과제로 꾸준히 이어져 온 것 같다.

원영: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에 사람들이 약간은 피곤함을 느껴 과거로 회귀하는 경우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 너무 화질이 좋은 사진을 보면 종종 징그럽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물론 큰 시장을 겨냥하는 사람들에게는 보편적으로 좋게 들리는 소리를 만드는 것이 좋겠지만, 굳이 대중성을 너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이런 요소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과거에는 기술의 한계점을 명확히 느꼈는데, 실제로 기술이 발전하고 단점을 한 단계 뛰어넘은 뒤에는 생각보다 우리가 과거의 오류나 제한으로도 해볼 수 있는 게 많았다는 걸 좀 늦게 깨닫는 것 같다. 기술의 발전이 너무 빨라졌고, 당장의 기술이 최대한 활용되기 전에 곧바로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진다. 그에 대한 아쉬움으로 사람들이 기술적 제한이 있는 환경에서 만들어진 훌륭한 작품들을 계속 기억하며 이상화, 혹은 낭만화하고 있다 생각한다. 플레이스테이션 2 시절의 폴리곤 기술이 이렇게 훌륭했다, 아니면 디지털 카메라에는 이런 특징이 있었다, 더 과거로 가면 그 시절에는 CBT 모니터와 픽셀 아트로 이런 게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최근 슈게이징을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는데, ‘슈게이징’ 이라는 용어가 나온지 이제 거의 20~30년이 다 되어가며 장르의 밀도와 농도가 굉장히 낮아졌다고 느낀다. 처음에 이 장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항상 “큰 노이즈가 좋아!” 라는 마음으로 좋아했어서(웃음), 항상 슈게이징은 전기기타의 노이즈를 어떤 방식으로 생산할지,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소음으로 어떻게 록과 팝 양쪽을 분해할 것인지 고민하는 그 과정이 중요한 장르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이제 시간이 흐를수록 슈게이징에서 노이즈라는 장르적 특징이 조금 줄어드는 대신 공간계 기타 이펙터나, 보컬이 중얼거린다거나, 특징적인 리듬 등 장르를 만들었던 요소들이 다 해체되어 개별 요소 하나하나가 전부 ‘슈게이징’이라는 이름을 달고 퍼져나가는 것 같다.

상욱: 한 장르의 특정한 요소를 중심으로 삼아 극대화시키는 해피코어, 혹은 글리치 같은 장르들이 크게 주목받고 있는 흐름들을 생각해보면 창작자들이 그런 ‘코어’ 적인 요소에 집중하는 것이 최근의 음악적 사조라는 생각도 든다.

윤: 보통 슈게이징에 입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음반으로 가장 대표적인 슈게이징 밴드인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loveless〉를 추천한다. 나의 경우 콕토 트윈스Cocteau Twins〈Cherry-coloured Funk〉였지만. (웃음) 취향의 세분화 현상이 그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또 하나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원영: 생각보다 요즘은 “슈게이징 하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loveless>지!”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웃음). 특히 2020년대로 온 뒤 슈게이징 사운드의 참조점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에서 스윗 트립Sweet Trip〈Velocity : Design : Comfort〉 쪽으로 바뀐 것 같다. 그 음반에서도 전자적인 사운드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노이즈를 만드는 방식도 페달을 한 50개 두고 스튜디오에서 다 쌓는 것보다는 조금 더 DAW 내의 플러그인을 사용하는 등 디지털 친화적인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고.

상욱: 홈레코딩 기술의 발전이 그런 흐름에 큰 몫을 했다.

원영: 맞다. 그러니 이런 변화가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을 따라하려면 일단 장비가 엄청 많이 필요하고, 그 장비를 보관할 만한 부동산이 필요하고, 민원을 넣지 않을 이웃 주민들이 필요할 텐데 그게 한국에서는 애초에 불가능했으니까(웃음).

 그리고 그런 장르의 새로운 하위 요소들이 재정립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슈게이징을 계속 예시로 들자면, 2010년대의 슈게이징은 일단은 그냥 마이너하고 시끄러운 음악이었다는 인상이 있었다. 그런데 2020년대로 들어오며 소위 말하는 ‘찐따음악’이라는 이미지가 붙고 거기에 사람들이 또 반응하여 새로운 문화적 요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꽤 재미있었다.

윤: ‘찐따음악’라는 수식어로 나타나는 사회와 어울리지 못하고, 마이너한 취미에 몰두하는 인간적인 면도 자신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장르적 성질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이 아이템을 입으면 거기에는 또 어울리는 다른 무언가를 갖춰 입어야 하는 패션처럼 음악도 듣는 장르에 따라 어떤 태도를 갖추고 있어야 하고, 어떤 옷을 입어야 하고, 삶을 전반적으로 디자인하는 한 축이 되었다. 이른바 ‘코어’가 된 셈이다.

원영: 좀 심한 말일 수도 있는데, 결국에는 취향을 자기정당화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자신이 만든 자아에 일관성을 부여하기 위해 음악이나 패션 같은 문화를 집어넣고 있는 것 같다. 그런 현상은 옛날부터 대중 문화와 서브컬쳐를 가리지 않고 있어왔다.

 일관성 있는 자신을 꾸미고 싶어서 패션과 삶의 방식을 일치시켰고 그런 움직임 중 하나가 고스족, 펑크족 같은 집단의 문화였을 테다. 그러나 과거에는 어떤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공통된 요소를 가진 모임이 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세부적인 요소가 너무 많이 나누어지다보니 그 문화에서도 특정한 부분을 골라서 즐기는 방식으로 바뀐 것 같다. ‘발레코어’ 같은 단어도 장르가 아니라 어떤 요소를 뜻하는 ‘코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이런 현상을 방증하지 않나.

윤: ‘그럴듯한 요소만 챙겨가고 싶은 포저(poser)냐, 아니면 진정으로 이 장르를 좋아하는 마니아냐’. 장르 팬들의 오래된 논쟁거리인 것 같다(웃음).

원영: 앞서 말한 하나의 공통된 요소를 즐기는 큰 집단이 있던 시기에는 특정한 계급이나 특정한 문화권, 아니면 어떤 상황에서 그 장르를 즐기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며 일관성을 갖게 되었다면, 지금은 그런 흐름을 가능케 했던 조건들이 거의 대부분 무너지고 세분화된 문화가 불안정하고 유동적으로 흐르고 있다. 누구든 흘러가다가 잡히는 문화를 하나씩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해진 시기다.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를 제외하면 그간 ‘코어’ 단위로 집단이 나뉘어질 할 만큼 세분화된 장르가 많지 않았던 한국에서도 근래의 흐름을 보면 개인이 어느정도 ‘코어’를 흡수하고 일관성을 만들어가는 문화가 생긴 것을 보면 많은 것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상욱: 그런 ‘코어’를 선택하고 자신을 꾸미는 개인이 늘어나고, 문화의 흐름이 달라져 생긴 변화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고 느껴지는 상징적인 순간을 하나 꼽자면 브로큰티스의 온스테이지 무대가 생각난다. 사운드클라우드의 슈게이징 씬에서 활발하게 음악을 만들던 아티스트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넘어 청자들에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에테르'는 어디에서 왔을까

윤: 이번 기획을 시작하면서 한국의 에테르에 대해 고민을 했다. ‘한국에도 ‘에테르’라는 특정한 정서가 존재할까? 그렇다면 그건 무엇이고 어디에서, 어떤 과정으로 발현될까?’

원영: 요새에 그런 2022년의 과정들을 복기 해 보는 것 같다. 2021년 초에 파란노을의 2집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이 발매되고 한창 주목을 받으며 RYM 인터뷰도 나오고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워졌을 즈음 아시안글로우처럼 웹 상의 슈게이징·이모 음악가들이 여럿 등장하며 데뷔 음반이 많은 관심을 받았고, 2022년 5월에 브로큰티스의 온스테이지 영상이 올라오고 몇 달 뒤 당시 크게 주목받은 아티스트들이 함께한 기획공연 Digital Dawn이 열리지 않았나. 그 일련의 과정은 온라인에 있는 줄로만 알았던 사람들이 사실은 현실에도 존재하고 현실에서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DIGITAL DAWN〉
〈DIGITAL DAWN〉

 한국의 에테르라고 하면 이런 디지털에서 출발해서 오프라인의 현장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오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한국의 서브컬쳐들이 대부분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나.

 90년대에 대해 찾아봐도 PC 통신 속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만나 장르 음악의 영역에서 컴필레이션 음반을 만들고, 레이블을 만들었다. 인디 록뿐만 아니라 전자음악 씬의 사람들도 그런 방식으로 Techno@kr나 PLUR 컴필레이션 앨범을 냈고, 힙합도 하이텔에서 서로 이야기 나누던 사람들이 모여 BLEX - 검은 소리 같은 컴필 앨범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들이 2000년대까지 음악 장르 음악 씬을 견인했다. 그 이후로는 나의머리카락뭉치, 500원 프로젝트 같은 아티스트들이 활동하던 밀림 닷컴이 있었고, 더 시간이 지나서는 사운드클라우드 같은 전세계인들이 애용하는 사이트까지 생겼다. 이렇게 인터넷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창작자들이 커뮤니티와 홍대 사이를 오가며 서브컬쳐 씬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한국에서 90년대 후반부터 유행했던 하위 장르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인디 씬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홍대의 어떤 공연장에서 언제 모여서 무엇을 했다, 이런 물리적인 현장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기반 중 하나가 인터넷 커뮤니티라고 생각한다. 이를 같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한국에서의 에테르가 어떻게 흐르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주류 가요에는 속하지 않을 여러 장르 음악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하나의 씬으로 삼고 자라난다는 점이 한국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윤: 〈우리의 에테르를 찾아서〉의 지난 글에서 겪어보지 않은 과거에서 오는 노스탤지어가 에테르를 만드는 큰 요소 중 하나라고 정리했는데, 앞서 말한 지금은 사라진 인터넷 커뮤니티나 직접 보지 못한 밴드와 그 밴드들이 활동하던 시기를 글과 영상으로 접할 때에도 경험해본 적 없는 시대와 환경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을 느끼게 된다.

원영: 나도 돌이켜보면 〈우리의 포스트록을 찾아서에서 다루었던 밴드들을 대부분 당시에 실시간으로 따라잡거나 직접 공연을 보면서 들은 것은 아니다. 글을 쓸 시점에는 거의 대부분의 밴드가 활동을 중단한 상태였고, 그 때문에 종종 음원 사이트에 업로드 되지 않은 음반의 파일을 찾는 것만이 유일한 청취 방법이었으며, 공연은 후에 재결성하여 다시 활동했을 때만 드물게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글에서 분류한 것과는 약간 다르게 실제 활동할 당시에는 밴드들이 스스로를 포스트록, 혹은 슈게이징 밴드라고 명명하고 활동한 경우는 적기도 하고, 음반 외의 다른 환경에서 활동했던 기록들은 반영을 못한 것도 있었는데 이 점이 언제나 아쉬웠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있었던 음악과 밴드를 한데 묶어 정리하고 그 흐름들을 재구성하며 그럴싸한 이야기를 다시 만든 것이 나 스스로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나에게 있어 노스탤지어는 〈우리의 포스트록을 찾아서를 썼던 과정처럼 지나간 일들을 관측하며 이야기를 만들거나 재구성하려 할 때 많이 느껴지는 감정이다.

윤: BOKEH가 〈우리의 에테르를 찾아서의 지난 글에서 ‘에테르’가 느껴졌던 한국의 작품으로 꼽았던 〈고양이를 부탁해도 비슷한 면이 있다. 세기말에서 세기초, 그리고 인천. 나는 겪어보지 못한 시대와 장소를 다루고 있지만 그 속의 이야기들을 읽고 재구성하며 노스탤지어를 느낀다. 국내에서도 <릴리 슈슈>가 보다 디테일한 요소들에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전반적으로 유사한 사회적 분위기도 있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공연 문화를 향유하면서, 또는 청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공론장인 SNS나 커뮤니티를 사용하며 동시적으로 느끼는 한국 인디씬만의 에테르도 분명히 존재하지 않나.

원영: 그렇다. 먼저 2010년대 중후반부터 온라인에서 좋다는 소문이 웅성웅성 퍼지다가 갑자기 큰 인기를 끌며 확 주류 방송까지 떠올랐던 혁오, 새소년, 실리카겔 같은 밴드들이 생각난다. 위의 팀들 모두 과거의 경우와 달리 인터넷 안에서 분명한 팬덤이 뭉치고 커지면서 밴드의 위치도 같이 견고해지는 점이 재미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일 좋아하며 흥미롭다 생각하는 팀이 전자양인데, 그 온라인의 흐름을 정말 재밌게 탄 것 같다. 2001년 원맨 밴드 시절 홈 레코딩을 통해 나온 1집 〈Day Is Far Too Long〉은 발매되고 정말 좋은 평을 받았는데, 2010년대로 들어서며 지금의 멤버 구성으로 탈바꿈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 않나. 2000년대 당시의 원맨 밴드/홈 레코딩 프로젝트와 비교해 보면 이만큼의 지속력이 정말 유일무이하다는 느낌이다. 지금 10대 후반, 20대 초반인 청자들이 전자양의 초기 작품들을 듣고, 그 음악에 빠져 팬덤을 꾸리고, 어떤 자신들의 컬트적인 문화를 만들어내는 점이 흥미로웠다. 전자양도 온라인 상에서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고, 오히려 홈 레코딩 시절의 2000년대 당시보다도 현 시점에 이렇게 가시적이고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이 인상적이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온라인 내의 커뮤니티 문화가 크게 만들어지면서 그 안에서 활동하던 뮤지션들은 늘 다음 단계인 오프라인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거쳤다면, 2010년대 중후반 이후에는 굳이 온라인 활동을 벗어나 오프라인을 주무대로 삼는다고 선언하지 않고 양쪽에 발을 디딘 채로 활동하는 팀들이 많아진 것 같다.


우리의 '에테르'와 함께하기

윤: 에테르가 느껴지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의 에테르를 찾아서의 지난 글처럼 음악에서 느끼는 에테르를 서로 공유했을 때, 비슷한 음악을 고르면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이 느껴지고 왠지 모르게 중첩된 정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개인적이기 때문에 서로 비슷한 분위기나 장르의 음악만 추려지지 않았다. 상반되는 음악들도 나왔고. 그럴 때 아주 가까워지며 또 아주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웃음).

원영: 나에게 ‘에테르’는 취약한 감정들, 1부에서 언급하셨듯이 위태로운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음악적인 요소들을 활용하여 그 감정을 극단적으로 잘 쏟아내는 순간에 느껴진다. 그냥 슬픈 것을 넘어서 내가 슬프다고 대놓고 말해버릴 때 더 슬퍼지는 순간이 있지 않나.

 에테르가 느껴지는 음악인들을 생각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는데, 일단 〈릴리 슈슈〉를 바탕으로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푸른새벽이었다.

 최근에 오미일곱의 음반도 듣고, 개인 블로그에서 따로 말씀하신 걸 읽어 보며 한 생각인데, 2000년대 한국에서 우리가 슈게이징이나 드림 팝이라고 생각했던 장르가 다르게 보자면 슬로코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쓰루 더 슬로, 트레몰로, 탁류한, 500원 프로젝트 같은 밴드부터 시작해 조금 더 비약하면 데이슬리퍼, 라비앙 로즈 같은 밴드들이 나름의 분위기와 흐름을 형성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음악적 흐름의 대표적인 주자가 푸른 새벽이지 않았나. 한 번 톡 건드리면 다 깨질 것 같은 정서적인 취약함을 음향으로 잘 구현하고 있는 팀이고, 특히 푸른 새벽의 1집 〈Bluedawn〉은 기타의 깨질 것 같은 톤이나 종종 삽입되는 잡음들과 더불어 보컬 한희정의 목소리에 ‘에테르’가 느껴질 만한 떨림이 있다.

 정반대의 방향으로 ‘에테르’가 느껴지는 팀은 할로우 잰. 조용하게 찰랑이는 기타에 흥얼거리고 중얼거리는 푸른 새벽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강렬한 슬라이드와 함께 곡이 시작하자마자 “영원!”이라고 울부짖는 난폭한 언클린 보컬이 위태롭고 취약하고 무너질 것 같은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에테르’가 느껴지는 것 같다. 이건 소위 말하는 ‘지르는’ 음악으로 감정 해소를 하는 개인적인 취향에서 오는 추천이기도 하다(웃음).

 시대를 좀 더 뒤로 돌려보면 정태춘박은옥의 92년 장마, 종로에서도 떠오른다. 제6 공화국이 출범한 직후, 오랫동안 투쟁하던 사람들의 허망한 마음이 담겨 있다. 60~80년대의 한국은 사회적으로 무언가 바뀔 것 같다가도 결국에는 무산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고, 그런 시기의 상실감이 당시의 가요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많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뽕끼'가 있다고 욕 먹던 통속적인 가창도 사실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비애를 훌륭하게 전달하고 있는데 말이다. 조금 비약일 수는 있지만, 이 시기의 가요에 담겨있는 텅 빈 애상도 ‘에테르’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불후의 명곡에서 알리가 커버한 버전도 많이 들었는데, 알리의 굉장한 목소리를 듣다 보면 그 시대의 ‘에테르’라 할 수 있는 공통된 공허함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분명하게 이어져 내려오는 있는 것 같다.

상욱: 오늘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에테르'를 느끼게 하는 것들을 음악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각도로 알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나원영 대중음악 비평가에게 '에테르'란 무엇인지 정리하자면?

원영: 에테르는 위태로움에 대한 취약함을 드러내는 정서고, 지금은 위태로움과 불안정성이 만연해 있는 시대다. <릴리 슈슈>처럼 극단적인 갈등들이 터져 나오는 이야기에서 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만큼 위태롭고 취약한 사람들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위태로운 기분을 혼자서 느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고립되지 않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에테르’를 이야기하고,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포스트-록과 인접한 인디 록을 청취하고 글을 쓰다 보니, 요새 이에 대한 생각이 그 쪽으로 귀결되어 가는 거 같아 언젠가 이에 대해 잘 써보고 싶다.

 

《 작성자 : BOKEH, 나원영 》


한국의 '에테르'를 느낄 수 있는 자료들

 

슬픔의 케이팝 파티

BOKEH의 에디터들과 나원영 대중음악 비평가가 함께 추천하는 한국 '에테르'의 정수. 지나간 한국의 케이팝을 떠올리면 슬픈 감상에 빠지기 좋은 음악들을 소개한다는 기획진의 의도처럼, 슬픔의 정서로 엮여 있는 신나는 음악들이 우리를 울며 춤추게 만든다. 

 

슬픔의 케이팝 파티 인스타그램 계정

 

나원영 대중음악 비평가가 추천하는 '에테르'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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