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고 거친 인생도 아이처럼, 추위를 이겨내는 따뜻한 소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읽고 이 서신을 보내네

2024.11.18 | 조회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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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우서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벗이 되고 싶습니다

  사진: Unsplash의 Mikael Kristenson
  사진: Unsplash의 Mikael Kristenson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어요. 마이크 타이슨의 펀치처럼 피할 새도 없이 겨울의 한파가 코 앞에 다가와 것 같아요. 한낱 인간이 겨울을 어떻게 피하겠어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죠!

추운 겨울을 즐기기 위해서 우리 문우들에게 따뜻한 소설 한 권을 추천하려고 합니다. 집 밖은 추우니 집 안에서 독서등을 켜 책상에 가만히 앉아 이 책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는 우리가 아는 많은 것들을 반으로 뚝 잘라 나눠 볼 수 있어요. 음과 양, 빛과 어둠, 선과 악, 자석의 N극과 S극, 착하거나 나쁘거나, 더럽거나 깨끗하거나.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그럴까요? 누구의 삶이 깨끗하거나 더럽거나 둘 중 하나일 수 있을까요? 이 세상을 사는 수많은 인생은 저마다 음과 양, 빛과 어둠이 뒤섞이며 그럭저럭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요.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거지.

소설 '자기 앞의 생'에서

젊을 적 엉덩이로 빌어먹던 창녀가 나이가 들고, 창녀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일을 합니다. 이 로자 할머니가 봐주는 아이들은 거의 모두 아버지가 누군지는 불분명하지만, 어머니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이 사회에서 떳떳하게 직접 돌봐줄 수 있는 형편은 안 됩니다. 창녀가 아이를 기른다는 말이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면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아이는 더욱 나은 환경을 위해 보호소로 가기 때문이죠. 그래서 창녀들은 로자 할머니에게 불법적으로 아이를 맡겨요.

로자 할머니는 비공식(불법)적으로 이 사업을 운영합니다. 오랫동안 갖은 시련을 겪으며 형성된 유대인 간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확보한 각종 허위 문서와 그만의 노하우로 말이죠. 그가 맡은 아이 중 가장 나이 많고 불행한 아이는 이 소설의 화자 '모모'임이 틀림없습니다. 로자 할머니에게 맡겨진 아이들에게도 불행의 레벨이 각기 다르거든요. 주말마다 아이를 보러 오는 엄마, 매달 양육비를 놓치지 않고 챙기는 부모님, 형편이 어렵지만 아주 가끔 엄마가 일을 쉴 때 보러오는 아이들은 모모와 비교하면 행운아입니다. 모모는 단 한 번도 엄마를 본 적이 없어 부모님이 누군지도 모르는 데다 결국 친구들은 입양 가거나 엄마가 다시 데리고 가지만 이 아이만은 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가 될 때까지 로자 할머니와 지내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로자 할머니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는 '모모'입니다. 모모는 할머니를 도와 아이들을 돌보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보다 앞장서서 똥을 싸지르며 할머니를 골치 아프게도 합니다. 남다른 감수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졌어요. 친구도 없어 우산에다 초록색 풍선을 매달고 상상의 친구를 만들고, 학교도 가지 않고, 할 일도 없어 사창가를 걸어 다니거나 물건을 훔치기도 합니다. 물건을 훔치다 걸려 가게 아주머니가 뺨을 한방 후리는 날이면 행복하다고 하죠. 누군가 자신을 혼내고 바로잡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요. '어쩌면 저 아줌마가 내 엄마일지도 몰라'라는 생각도 하면서요.

로자 아줌마는 바나니아를 빈민구제소에 보낼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 아이의 미소만은 떠나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와 아이의 미소를 떼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별 수 없이 둘 다 데리고 있을 수 밖에.

소설 '자기 앞의 생'에서

뉴스는 차갑고 딱딱합니다. 모모의 인생이 신문 기사로 실렸다면, '부모에게 버려진 10살 아이, 양육비마저 끊기고 돌보는 할머니는 갈수록 늙어가'라는 제목과 함께 꾀죄한 모모의 얼굴이 실리겠죠. 창녀 출신의 할머니가 불법으로 창녀의 아이들을 기르고 있었고, 위생이나 영양 면에서 제대로 챙겨지지 않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민자들이 꾸역꾸역 껴 살고 있는 낡은 아파트에서 똥을 싸지르며 살고 있다니,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고 사회는 엄청나게 비판하겠죠? 뉴스로 보면 비참하지만, 소설로 읽으면 이 아이의 인생은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어린아이가 겪기에는 너무나 험난한 현실이지만 이를 이겨내기 위해 암사자를 상상으로 불러내 자기 뺨을 핥게 한다거나, 모든 것들이 거꾸로 돌아가는 공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이겨내는 모습은 우리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게 하면서도 가슴 깊은 곳을 찌르는 천진난만함이 있어요.

주변에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소설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도 사실 자기가 비참한 아이라는 것을 알아요. 세상 물정도 빠삭하죠. 하지만 어른들은 모모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불쌍히 여깁니다. 하지만 모모는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려고 하지 않아요. 끝까지 자신만의 존엄성을 지키려 공상도 하고, 도피도 하고, 친구도 만들고, 때로는 거리를 배회합니다. 현상을 알기 위해 뉴스를 읽는다면, 사람을 그리고 인생을 알기 위해 문학을 읽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에밀 아자르의 이 소설을 우리 문우에게 소개하고 싶은 이유를 꼽으려면 참 다양할 것 같습니다. 많은 매력을 가진 소설이기 때문이죠. 하나만 말하자면, 바로 '재미'입니다. 이 소설은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모모와 함께 파리의 외진 한 동네를 누비게 됩니다. 안타까워하면서도 깜찍한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추운 겨울에 힘들어할 이웃을 생각하고, 좀 더 따뜻한 사회가 되기를. 그리고 이 소설을 통해 우리도 따뜻해지고 아이 같은 감수성을 지킬 수 있길 바랍니다.

죽고 싶어질 때는 초콜릿이 다른 때보다 더 맛있다.

소설 '자기 앞의 생'에서

*에밀 아자르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 재미를 곁들인….

에밀 아자르는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콩쿠르상'을 수상했습니다. 원칙상 한 번 수상한 사람은 다시 수상할 수 없죠. 그런데 사후에 2번 받은 것으로 밝혀졌어요!

에밀 아자르는 소설가 로맹 가리의 또 다른 필명이었습니다. 로맹 가리로 활동하던 그는 자기에게 이미 쓰인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작품을 출시하고 싶었어요. 로맹 가리는 '하늘의 뿌리'라는 작품으로 이미 콩쿠르상을 받은 유명 작가였거든요.

사후 유서로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의 내막이 밝혀지자, 평단은 큰 충격에 빠졌답니다. 기성 작가인 로맹 가리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여론이 많았거든요. 로맹의 역량은 끝장났고, 에밀 아자르를 따라 하는 수준에 그친다니, 로맹 가리는 퇴물이라니 등등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도 읽어봤는데 '자기 앞의 생'과 또 다른 매력을 지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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