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일주일간 건강하고 평안하셨나요?
이전 글에서는 삶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가치있는 선택지를 적은 시간과 에너지로 획득하는 정보 환경 구축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이 정보를 실제로 더 나은 삶으로 연결하기 위해선 발견한 선택지 중 내게 더 큰 효용을 가져올 만한 것을 골라내어 행동으로 옮겨야겠죠. 어업으로 비유했을 때, 이 뉴스레터가 대략 이런 흐름으로 진행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고기를 골라내려면, 즉 어떤 일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려면 의사결정의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거시적으로 보면 간단한 기준입니다. 그 일에 들어가는 자원과 그 일로 얻는 가치죠. 저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작업하는 걸 좋아하니까, 이렇게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 이 일을 하는 데 나에게, 내 협력자에게 시간과 에너지가 얼마나 들까?
- 이 일에 나와 협력자의 자원을 그만큼 투자하여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충분히 클까?
이 효용의 예측값이 높은 일들을 위주로 선택하면 될텐데, 문제는 정확한 예측이 언제나 어렵다는 것입니다. 가치가 높은 일일수록 뻔하기보다는 불확실성이 높은 일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한번에 완벽한 선택을 하기보다는, 작은 단위로 실험해보고 학습하여 제대로 결정하는 구조가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일의 목표를 설정하고 효용 초기값 예측하기
우선 이 일을 함으로써 내가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의합니다.
- 이 일이 나에게 왜 중요한가? 이 일이 잘 끝났을 때 내가 어떤 상태가 되어있기를 바라는가?
- 내가 원하는 상태로 가까이 가고 있다는 걸 어떻게 스스로 인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일이 내게 주는 가치는 어떨지, 이 일에 들어가는 자원은 어떨지 상상합니다.
- 내게 가치있다고 정의한 다섯 가지(영향력 넓히기, 지혜 습득, 기술 숙달, 감정적 충족, 물질적 충족)에 얼마나 도움되는 활동인가?
- 지금 다른 일 대신 이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대체재가 없는 종류의 일이거나,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거나, 이후의 활동에 복리 이득을 줄 메타 패턴에 속하거나)
- 이 일을 하는데 나의 자유시간과 정신적 에너지가 얼마나 소모될까?
어떤 일을 가치있게 여기는지 판단의 축을 세웠으니 이제 그 축에 값을 채워넣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 값들은 터무니없이 틀릴 수도 있고, 아예 초기값을 채우기 어려울 정도로 정보가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 간극은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실험하여 예측값 조정하기
예측값 조정 실험의 3단계
내가 일의 효용을 옳게 예측했는지 판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일의 핵심이 되는 활동을 실제로 작게 해보면서 효용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중요하게는 느껴지지만 핵심 활동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 경우가 대부분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핵심이라고 생각한 게 체험해보니까 사실은 아니었던 경험도 허다할 거예요.
이는 가치가 높고 불확실한 일이라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핵심 활동을 파악하는 훈련이 덜 되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실험을 세 단계로 쪼갭니다. 1) 핵심을 이해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탐색하는 실험을 먼저 해봅니다. 2) 핵심 활동을 작게 체험합니다. 3) 핵심 활동 과정에서 학습하여 예측값을 조정합니다.
이 때 ‘어떻게 실험해야 학습이 더 잘 될까?’도 중요하지만, 실험을 잘 하는 것보다는 실험하려는 마음먹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레터에서 ‘질문을 잘하는 것보다는 질문하려는 마음먹기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던 것과 유사한 맥락입니다.
실험 비용을 아까워하지 말자
이렇게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에 실험부터 해본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면, 의외로 나 자신이나 지인들이 이미 많은 실험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 어떤 분야나 기술로 딥다이브하기 전에 신뢰하는 커뮤니티에서 필터링해준 정보나 큐레이션으로 요약된 정보를 읽습니다.
- 유용해보이는 서비스라도, 바로 연간구독하는 대신 월별 구독으로 가치를 체험해봅니다.
- 채용을 결정하기 전에 실제 회사 구성원들이 참여하여 실제 회사 업무에 가까운 미니 프로젝트를 해볼 것을 요구합니다. 미니 프로젝트는 구직자 입장에서도 그 회사의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 본인에게 맞는 필라테스 선생님을 구하기 위해 센터 내의 모든 선생님에게 한번씩 수업을 받아본 지인도 있었습니다.
이런 실험들에는 당연히 비용이 들어갑니다. 요약된 글을 읽으며 잠깐 시간을 보내는 건 큰 비용이 아닐 수 있지만, 사람을 구하거나 서비스 이용 전 체험쯤 되면 시간과 돈과 에너지가 훨씬 많이 소모되겠죠. 그렇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그 실험 비용은 큰 의사결정을 잘못 내렸을 때 들어가는 비용보다는 적으리라 믿습니다.
실험을 제때 멈추는 방법
사전 체험이나 실험은 각 선택지의 가치를 조금 더 정교하게 예측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예측값 조정이 충분히 되었다면 반드시 어디선가 멈춰야 합니다. 그러나 실험에는 묘한 매력이 있어서 쉽게 멈추기가 어렵습니다. 누가 봐도 쉽게 결정할 수 있을 만큼 크게 성공/실패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대부분의 실험 결과가 애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실험 횟수를 미리 정해두고, 실험이 한 번 끝날 때마다 지난 번 대비 ‘예측값에 대한 확신 수준'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회고해보는 게 실험을 제때 멈추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개 확신 수준이 70-80% 정도로 올라온 느낌일 때 멈추면 되더군요. 확신 수준이 잘 올라오지 않으면 미리 정한 횟수보다 실험을 더 해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내가 핵심이 아닌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는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게 뭐였더라?’부터 다시 시작해보는 게 좋습니다.
조금 별개 맥락이지만, 다른 사람과 협력하면서 진행했던 실험은 내가 원할 때 멈추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실험을 도중에 중단할 수 있는 충분한 권한을 가진 채 시작하거나, 실험의 완료 범위/기준을 합의한 채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실험 도중에라도, 우리가 이렇게 일하고 의사결정하는 게 궁극적으로 더 효율적인 방식임을 함께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부족한 정보로 거대한 의사결정을 해놓고 그게 최적이었을 거라고 애써 정당화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실험 명목으로 구현한 최소기능제품이 몇 년째 시장에 그대로 나가있는 걸 보며 마음아파할 수도 있고요.
선택을 도와줄 평가표 만들기
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하여 제가 개인 시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평가하는 표를 만들어봤습니다. 초안을 완성한지는 꽤 됐는데, 실제로 이 평가표를 기준으로 할 일을 선택하여 실험하고 실행하다 보니 개선점이 여럿 보여서 계속 업데이트하는 중입니다. 예를 들어 ‘영향력' 점수가 ‘감정적 충족'안에 포함되어 있다가 밖으로 빠졌고요. 제가 중요하며 일찍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도 상위에 올라오지 않는 일이 꽤 많아서 이를 보정하기 위해 ‘일찍 스케일'의 최대 점수를 1.5에서 2.0으로 올렸습니다.
평가표 구성
평가표에 나오는 WTSTTCPW라는 말은 What's The Simplest Thing That Could Possibly Work? 의 약자입니다. “동작할지도 모르는 가장 단순한 버전이 뭘까?”라는 질문이고, 일의 핵심을 포함하는 작은 버전을 상상하고 실험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예시
아래는 합계 점수로 정렬하여 상위 5개만 뽑은 시트입니다. 요즘 개인시간에 할 일은 거의 이 안에서 선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시간과 에너지는 들어가는데 습관화됐거나, 너무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은 빠져있어서 제 자유시간을 완전히 반영하지는 못하고 있는 게 살짝 고민이긴 합니다. 예를 들어 요즘은 개인시간에서 높은 비중이 뉴스레터 준비에만 들어가는데,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이 목록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래는 이걸 토대로 2월에 완료한 일들입니다. 완료 후에는 보통 회고를 해서 글로 남겨둡니다. 마지막 항목은 아직 블로그 글로 정리를 못해서 스프레드시트 안에만 써있네요.
요약
나에게 주어진 여러가지 선택지 중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각 선택지의 가치와 비용을 탐색적으로 예측합니다. 그리고 평가표를 만들어 제가 개인 시간에 할 일을 선택하고, 실험하고, 실행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 생각한 가치 기준을 떠올리며 내가 이 일을 함으로써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일의 효용의 초기값을 예측합니다.
- 일의 핵심 활동이 뭔지 파악하여, 핵심 활동을 작게 실험하고, 여기서 학습하여 예측값을 조정합니다.
- 이 실험과정에 드는 비용은 아까워하지 않으며, 예측값에 대한 확신 수준이 충분히 올라왔다면 실험을 멈춥니다.
3주에 걸쳐 일의 선택에 대한 얘기를 했으니 이제 드디어 본론으로 갈 수 있겠네요. 다음 레터에서는 선택한 일들을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을지, 그래서 결과적으로 삶에서 어떻게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낼지 고민한 결과물을 공유하겠습니다.
당신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지난 레터에서는 구독자님이 가치있는 정보 및 선택지를 습득하는 경로와, 그걸 환경으로서 구축하려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지 여쭤봤습니다. 이번 질문은 일의 핵심 활동을 파악하고 작은 버전으로 실험하는 연습을 하실 분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Q. 구독자님이 지난 2주간 완료했던 가치있는 일 한두 가지를 떠올려보세요. 그 일들의 핵심 활동은 무엇이었나요? 그 활동이 그 일의 핵심임을 구독자님이 확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그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한다면, 단 핵심 활동이 포함된 가장 작은 버전으로 하려면 어떻게 설계해볼 수 있을까요?
Q. 구독자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지만 아직 시작하지 못한 일 한두 가지를 떠올려보세요. 이 일의 핵심 활동을 파악하는 실험과, 핵심 활동이 포함된 가장 작은 버전의 실험을 설계한다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까요?
Q. 아직 시작하지 못한 일들은 구독자님이 이미 완료한 일과 어떤 점에서 달랐기에 선택되지 못했나요? 그 ‘다른 점'들을 기반으로, 구독자님이 할 일의 우선순위를 평가하는 질문을 몇 가지 만들어본다면 무엇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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