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프런에서 개인과 조직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기(개발자 취업, 이직, 역량향상, 팀 리딩)이라는 주제로 1월부터 멘토링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는지는 이 글을 참고해주세요. 커리어에 고민이 있는 여러 엔지니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2022년 12월 29일 오후 4시. 운전하면서 여느때처럼 MBC FM4U를 틀었습니다. <4시엔 윤도현입니다>가 막 시작하는 참이었죠. 인트로에서 대략 이런 말이 나왔고, 이후 공감하는 견주들의 문자메시지가 줄을 이었습니다.
저는 견주도 아니고 강아지에 큰 관심은 없지만 일견 흥미롭고 일리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생각해보면 강아지의 성격이 품종별로 유사하다는 말은 ‘황인종은 다 얌전해’ 같은 선입견과 같은 수준일 테니까요. <팩트풀니스>에서도, 인간 집단의 문화 연구를 보면 집단 내 차이가 집단 간 차이보다 훨씬 유의미하게 크며 집단 간에는 유사성이 더 보인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듯하게 들린다고 꼭 사실은 아니죠. 몇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 개의 성격은 어떻게 정의했을까? (타고나는 기질이 아닌) 성격에는 성장과정에서의 경험도 크게 영향을 미칠텐데 유전자만으로 ‘성격과 품종이 별로 상관없다’고 말하는 게 타당할까?
- 개의 ‘성격 결정 유전자’를 어떻게 알아냈을까? 개도 엄연히 고등 포유류인데, 유전자 지도가 완벽히 밝혀졌단 말인가?
- 결론적으로, ‘강아지의 성격과 품종이 상관없다’는 말은 진실일까? 출처가 있다면, 그 출처는 정확히 해석한 것일까?
평소같았으면 그냥 대충 넘어갔을텐데 호기심이 생겨 팩트체크를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올해는 더 깊이 있게 글을 읽자”는 모토를 따른 것이기도 합니다. 읽고 정리하면서 ‘일반화 본능’을 내 삶에 유리하게 적용하는 몇 가지 실천법도 떠올랐습니다.
이하는 블로그 내용을 그대로 옮깁니다.
유전자 지도?
우선 ‘개 유전자 지도’로 구글 검색을 해보니 이미 2005년에 개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굉장히 놀라웠다. 개의 어떤 유전자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까지 모두 드러났단 말인가? 그러면 내가 들었던 인트로 같은 게 이제서야 화제가 될 리가 없을텐데? 그러고보니 정작 ‘유전자 지도’가 정확히 뭔지도 모른다.
이렇게 된 김에 검색을 통해 약간의 학습을 했다. 생물학도 유전학도 잘 모르지만 대강 이해한 바를 적어보자.
- ‘유전자 지도’는 염색체의 어느 위치에 어떤 유전자(DNA 시퀀스)가 있는지 매핑해둔 지도다(출처). 따라서 유전자 지도가 각 유전자의 의미(e.g., 개체에게 어떤 기능을 발현시키는지)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 하지만 염색체상에 물리적으로 가까이 위치할수록 다음 세대로 함께 유전될 확률이 높으므로, 유전자 지도가 있으면 개체에게 발현된 기능을 관찰함으로써 유전자의 의미를 파악하기 쉬워진다.
- 익히 들어왔던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인간의 유전자 지도와 더불어 그 의미까지 파악하려는 프로젝트였다.
그러니까 개의 유전자 지도는 오래전에 밝혀졌지만 각 유전자의 기능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찾아보니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개 게놈 프로젝트도 있었다.
출처 찾기
이쯤에서 원출처를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4시엔 윤도현입니다 홈페이지에 인트로의 출처가 있는지 확인해봤지만 그런 정보는 없어 보였다. ‘다시듣기’로 내가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는 정도만 가능했다.
다음, 구글에 “개 품종 성격”을 검색해봤다. 사이언스타임즈에서 2022년 5월에 개의 품종과 성격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라는 기사를 발행해두었다. 보아하니 라디오는 이 기사를 토대로 얘기한 것 같았다. 기사에는 출처 연구도 적혀 있었다.
논문 링크는 없었기에 scholar.google.com 에서 Kathleen Morrill 을 검색해봤더니 2022년에 사이언스에 게제된 논문인 Ancestry-inclusive dog genomics challenges popular breed stereotypes 가 바로 나왔다. 나는 생물학도 유전학도 잘 모르지만 일단 사이언스 논문이면 신뢰할 만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나 논문 자체의 신뢰도와 별개로 ‘사이언스타임즈의 기사가 논문 내용을 제대로 옮겼는지’를 비롯해 처음 가졌던 의문들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기에 논문을 좀 더 읽어보았다.
출처 논문 읽기
초록과 그래프 위주로 훑으면서 간단히 요약해보았다.
- 1800년대 이전의 개는 주로 사냥, 경비, 방목과 같은 기능적 역할을 위해 선택되었다. 근대의 견종은 이상적 외형과 순수 혈통으로 정의되는 최근의 발명품이다.
- 일반적으로 ‘품종’을 통해, 조상 개체군의 알려진 기능에 기반하여 기질 및 행동 성향을 예측할 수 있다고 가정해왔다. 연구진은 이 가정이 진실인지 탐구해보기 위해 커뮤니티 기반 프로젝트인 Darwin’s Ark에 다양한 애완견 집단을 등록해 설문조사를 받았다. 설문조사는 행동 특성과 외형 특성에 대한 117개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견주들은 자신의 강아지에 대한 설문조사에 응답하고, 원한다면 DNA 키트를 제출하여 분석받을 수 있다)
- 연구진은 개 18,385마리(49%가 순종)를 조사하고 그중 2,155마리의 DNA를 시퀀싱했다. 분석 결과, 대부분의 행동 특성이 유전되긴 하나(e.g., 하울링 빈도나 인간과의 사회성 등의 행동 성향이 11가지 주요 영역 + 136가지 암시 영역과 유의미한 연관이 있었음) 행동으로 품종을 구별하기는 어려웠다. 품종의 개체의 행동에 대한 예측력은 고작 9%였다. ‘방향 및 명령에 대한 반응성’(아래 그림에서 3️⃣)과 같이 더 유전적이고 품종별로 차별화된 특성이라면 행동 예측이 다소 정확해질 수 있으나 ‘불편한 자극에 의해 얼마나 쉽게 도발되는가’(아래 그림에서 5️⃣)와 같이 덜 유전적이고 덜 차별화 된 특성은 거의 품종으로 예측할 수 없다. 반면 외형적 특성은 품종으로 높은 확률로 예측 가능하다.
셀프 답변하기
논문도 읽었으니 내 질문에 답변을 해보자.
Q1. 개의 성격은 어떻게 정의했을까? (타고나는 기질이 아닌) 성격에는 성장과정에서의 경험도 크게 영향을 미칠텐데 유전자만으로 ‘성격과 품종이 별로 상관없다’고 말하는 게 타당할까?
- ‘성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건 사이언스타임즈이고 라디오는 이를 그대로 쓴 것 같다. 논문에서는 성격 대신 행동 특성(Behavioral characteristics)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우리가 흔히 ‘성격’이라고 말할 때 떠오르는 개념은 인간을 평가할 때 쓰는 개념이며, 당연히 이는 성장과정에서 많이 변한다.
- 그래서 이 인간화된, 추상적인 개념을 개에 적용할 수 있는가 의문이 들었는데 논문에서는 행동 특성이라고 하니 이해가 잘 되었다. 실제로 우리가 개의 생각이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어쩌면 개에 대해서는 행동 특성이 곧 성격이라고 단순히 얘기해도 된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으나 어느정도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단어선택이었다고 본다.
- 따라서 논문이 개의 성격을 정의한 건 아니고, 개가 자주 보이는 행동 패턴을 분류한 것이다.
Q2. 개의 ‘성격 결정 유전자’를 어떻게 알아냈을까? 개도 엄연히 고등 포유류인데, 유전자 지도가 완벽히 밝혀졌단 말인가?
- 개의 유전자 지도는 이미 2005년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유전자 지도가 밝혀졌다는 게 유전자의 의미까지 밝혀낸 건 아니다. 내가 유전자 지도와 게놈 프로젝트 개념을 헷갈렸기 때문에 오해한 것.
- 개별 유전자의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여전히 여러가지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연구의 저자들은 Darwin’s Ark를 통해 견주들에게 개의 외형 및 행동 특성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함과 더불어 DNA를 받아서 분석했다.
Q3. 결론적으로, ‘강아지의 성격과 품종이 상관없다’는 말은 진실일까? 출처가 있다면, 그 출처는 정확히 해석한 것일까?
- "개의 성격과 품종이 상관없다"는 말은 Q1에서 썼던 바와 같이 '성격'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따라 모호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 다만 ‘성격’을 ‘행동 특성’으로 치환해서 본다면 지옥견이니 악동견이니 천사견이니 하는 것들은 ‘특정 품종이 특정한 행동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논문에 따르면 행동 특성은 품종과 거의 관련이 없으니, "‘3대 지옥견’은 허구다"라는 말은 진실이라고 봐도 되겠다.
내 삶에 적용하기
사이언스타임즈에서 ‘개의 행동 특성’을 ‘개의 성격’으로 치환해서 해석한 걸 보면서 학부생 때 신인식 교수님께 들었던 수업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프로그래밍에서 '타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셨고, 여러 답이 나왔지만 교수님은 “타입이란 특정한 연산에 대해 닫혀 있는 원소들의 집합이다”라고 답하셨다. (위키피디아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A type system dictates the operations that can be performed on a term.”)
내게 이 순간이 상당히 인상깊었는지 종종 이렇게 기억이 올라오는데, 언젠가부터 이 이야기를 좀 더 넓은 의미로도 확장하게 되었다. ‘연산’이라는 단어를 ‘행위’로 추상화한다면, 연산으로 집합을 정의내린다는 말은 “개인 또는 집단의 정체성은 그 개체가 일관되게 취하는 행위로 정의내릴 수 있다”는 말로 바꿔볼 수 있다. 기사에서 '성격'을 '행동'으로 일반화했듯, 이는 일반화하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본능과도 맞닿아 있다.
이 일반화 본능을 곱씹어보면 내 삶에 유리하게 적용해볼만한 지점이 몇 개 생긴다.
- 수학 세계와 달리 실제 세계에서는 행위에 일관되게 닫혀 있는 집단은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품종이면 이렇게 행동할 것이다”도 틀렸고 “이렇게 행동하면 이런 품종일 것이다”도 틀렸다. 품종으로 행동 특성을 특정할 수 없듯, 누군가가 어떤 집단에 속해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거나, 어떤 행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어떤 집단에 속해있으리라 쉽사리 판단하지 말아야 본능에 휩쓸리지 않고 현명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 일반화 본능이 인간에게 내재된 것이라면, 나는 남을 행동으로 섣불리 판단하려 들지 않으려고 노력하겠지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대개 내 행동 한두 번만으로 나를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좋은 말을 하고, 좋은 글을 쓰고, 좋은 행동을 하도록 노력하자.
- 생각이 행동에 영향을 미치듯, 행동도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바람직한 행동을 자주 하면 바람직한 생각이 뇌에 자리잡고, 바람직한 사람이 될 것이다. 평생 착한 척을 하면 그 사람은 그냥 착한 사람이다.
- 내게 들어오는 자극과 그 자극에 대한 1차적 반응은 통제할 수 없지만, 그걸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반응하여 행동할 것인지는 내가 통제할 수 있다. 내 사고와 행동 과정을 세분화해서 인식하고, 몸과 마음에 대한 통제력을 기르자.
출처 논문을 찾아보고 읽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그로부터 느낀 점을 정리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논문을 통해 사실을 체크하는 건 확실히 즐거운 경험이었고, 내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음과 동시에 새로 알게 된 지식도 많았다. 무엇보다 일반화 본능에 대해 더 깊이 사고하게 된 게 반갑다. 에너지가 많이 들어서 항상 이렇게는 못하겠지만 출처와 논문을 찾아보는 걸 더 일상화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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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환
생각을 재점검하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이 멋지네요.
삶의 밀도를 높이는 여정
감사합니다 바환님. :) 오랜만이네요. 궁금해서 찾아보는 논문은 재밌게 읽을 수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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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k
생각하는 과정과 실제 실행 방법을 자세히 보여주셔서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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