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선보연입니다. 무척 오랜만이지요. 종종 소식 전하기로 했는데, 게을렀던 저는 이제서야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뜬금없이 받아보는 편지도 나쁘지 않겠지요…?
아무튼 선생님들… 가을이 왔어요. 가을….이 ㅠㅠㅠ 이번 가을이 유독 더워서 나무들도 힘들어하는 것 같았는데요. 그럼에도 단풍은 아름답게 거리를 메우네요. 참 대단한 힘이라고 다시금 느꼈습니다. 저희 옆 동네에는 가을을 기다리게 하는 멋진 거리가 있는데요. 올해에도 역시나 벅찰 만큼 빛나더라고요. 알록달록.
잠시 지구인이라는 행복감에 스며들었습니다.
8월부터 10월 초까지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시를 쓰는 일도 미뤄두고 읽는 일도 걷는 일도 돌보지 않았어요. 그나마 조깅에 재미를 붙여가던 시기라 몸과 마음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은 유지가 됐어요. 다행이었지요. 아슬아슬, 위태롭게 탑을 쌓는 기분으로 두 달을 보냈네요. 그러다 『칸칸』을 만들면서 생활이 많이 안정됐어요. 『칸칸』은 제가 이번에 만든 시집이랍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시를 쓰면서 ‘방에 대한 시를 자주 쓰는 것 같은데…’, ‘그런 시들을 모아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그 생각들이 고아지고 걸러지면서 마침내 ‘(방에 있는) 식물에게 쓴 시를 모으자‘로 귀결되었답니다. 그리고 그 시들을 (방에 있는) 수동타자기로 쓴다면 더 좋겠구나 싶었어요.
『칸칸』을 만들면서 다음 시집에 대한 설렘도 느꼈는데요. 『칸칸』을 제작한 일이 제게도 환기가 되는 일이었나 봅니다.
며칠 전에는 주문받은 『소품시집01』을 만들었어요. 다 만들고 나니까 초록색 제본실이 동났더라고요. 마침맞게 쓴 것이 신기했답니다. 무엇보다 한 타래의 실을 모두 쓴 것이 마치 한 시기를 잘 보낸 것 같아서 괜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처음 실을 구매했을 때는 이걸 다 쓸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다 썼네요. 『소품시집01』을 제작한 지 거의 1년이 되어가니까… 음, 한 타래를 쓰기엔 1년은 충분한 시간이긴 하네요..ㅎㅎ
곧 연말이라며 거리가 반짝반짝해질 걸 상상해 봅니다. 저는 종종 지구인이라는 것이 공포스럽고 슬프고 죄스러울 때가 있어요. 그럼에도 가끔 드는 감사함이 너무 커서, 그 행복에 모든 게 뒤덮일 때가 있어서, 잘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거리가 알록달록하고 반짝일 때도 어느 곳에는 슬픔이 모여들어 기다리고 있지요. 그 자리들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선생님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다음 편지도 잊을만할 때쯤 다시 부칠게요.
건강하시고 귀한 가을 많이 끌어안고 보내셔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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