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쇼’는 계속 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 생각 근육 키우기

2020.09.27 | 조회 1.15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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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의 시선

[넷플릭스가 쏘아올린 뇌과학] 소셜 딜레마에 놓인 뇌

씨헤븐(Seahaven) 섬에서 삼십 평생을 살아온 보험회사원 트루먼(짐 케리), 평범하기 그지없는 출근길 아침 난데없이 하늘에서 조명이 떨어진다. 의아한 것도 잠시, 어릴 적 죽은 아버지를 길거리에서 만나는가 하면, 우연히 맞춘 라디오 주파수에서는 그의 일상이 낱낱이 들려온다. 이 모든 게 가짜라고 말하며 떠나버린 첫사랑까지,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내막은 충격적이다. 한 방송사가 트루먼을 프로그램 일정에 맞게 입양해 30년동안 거대한 세트장에서 그의 일상을 생중계 해온 것. 트루먼은 쇼 디렉터인 크리스토프(에디 해리스)가 기획한 작은 세상에서 살아온 것이다. 1998년에 개봉한 영화 <트루먼 쇼>의 이야기다.

여기 21세기형 ‘트루먼 쇼’가 있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27억명의 사용자가 각자 본인의 쇼에 자발적으로 출연하고, 동시에 다른 프로그램의 시청자가 되기도 한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소셜 딜레마 (Social Dilemma, 2020)>, 굴지의 IT 업계들을 이끈 전직 개발자와 투자가, 경영진들의 인터뷰를 통해 인터넷 서비스의 속사정과 그들이 만들어낸 세상을 고발한다.

우리는 SNS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소셜 딜레마>
우리는 SNS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소셜 딜레마>

우리는 IT 서비스를 움직이는 알고리즘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심지어 그것을 개발한 사람들 조차도 말이다. 그 거대한 알고리즘은 인간이 통제 가능한 영역을 떠났고, 이제는 인간 본성 깊숙한 곳에서 자라난다. 여러분이 쥐고있는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켜보자. 굳이 엄지손가락으로 쓸어 올릴 것도 없다. 당신이 보고있는 썸네일이 당신이 보고싶은 영상이다. 당장에 보고싶은 것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보고 싶어질 영상이다. 다시, 알고리즘은 당신의 본성 깊숙한 곳에서 만들어진다. 어쩌면 알고리즘은 이미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을지 모른다.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1906-1975), 20세기 나치즘을 온몸으로 경험한 이 유대계 독일 철학자는 평생을 전체주의에 천착했다.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이념이나 체제가 아닌 대중에서 탄생한다고 진단한다. 개인의 존재가치가 전체로 귀결된다는 이 위험한 생각은 시대의 불안과 인정받지 못한 결핍된 자아를 먹고 자라났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상사회를 약속했던 지도자와 이를 맹종했던 개인은 전세계를 전쟁터로 만들고 인종청소라는 명목 아래 600만에 이르는 유대인을 학살했다. 왜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나치즘에 독일 전체가 열광했던가.

문제는 ‘생각’이다. 다시 <소셜 딜레마>로 돌아오자. <트루먼 쇼>에서 크리스토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는 ‘27억개의 트루먼 쇼’에는 짜여진 각본도 특수효과같은 속임수도 없다. 가짜가 아닌 실제 사용자의 진짜 인생이 데이터라는 형태로 생중계되는 셈이다. 데이터는 자본을 낳고, 그 자본은 결국 거대한 권력으로 재탄생한다. 전체주의적 시나리오가 반드시 정치 시스템으로 재현될 필요는 없다. 어쩌면 지금의 인터넷 서비스는 그보다 강력하다. 알고리즘에 한번 빠지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밖에 없다. 생각의 저울이 기울어간다. 무게를 맞추려면 있는 힘껏 반대편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여러분이 올린 게시물에 좋아요가 눌리고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면 인정 욕구가 채워진다. 그 평가가 긍정적이기라도 하면 뇌 안에 있는 보상 시스템이 춤을 춘다. 그럼 우리의 뇌는 더 강력한 보상을 받는 쪽으로 작동한다. 게시물도 늘어날 것이고 좋아요와 댓글 수도 늘어날 것이고, 여러분은 인터넷 서비스를 떠날 수 없는, 즉 중독 상태에 이른다. 중독된 사람에게 비판적 사고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나치즘이 몰락하고 소련의 스탈린이 죽었다고해서 전체주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아렌트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죽은 물고기만이 강물에 순응할 뿐이다.

30년 동안 거대한 세트장 안에서만 살던 트루먼, 거친 항해 끝에 만들어진 세상 끝에 다다른다. 쇼 디렉터 크리스토프의 만류에도 트루먼이 택한 것은 문 밖에 펼쳐진 진짜 세상이었다. <트루먼 쇼>
30년 동안 거대한 세트장 안에서만 살던 트루먼, 거친 항해 끝에 만들어진 세상 끝에 다다른다. 쇼 디렉터 크리스토프의 만류에도 트루먼이 택한 것은 문 밖에 펼쳐진 진짜 세상이었다. <트루먼 쇼>

눈 뜨자마자 SNS를 켰다면 가벼운 아침인사와 함께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자. 좀더 용기가 생긴다면, SNS에게 미리 인사를 건네자. “굳 에프터눈, 굳 이브닝, 굳 나이트”, 트루먼 쇼를 스스로 마무리하는 트루먼처럼 말이다. 진짜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테니, 스마트폰을 잠씨 꺼두고 생각 근육을 키워보는거다. 될 수 있으면 내 생각과 반대로 가보는거다. 영 껄끄럽다면 적어도 이유를 묻고 의심해야한다.

인스타그램 @brain_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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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라

    0
    over 3 years 전

    트루먼이 택한 것은 문 밖에 펼쳐진 진짜 세상이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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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쏘아올린 뇌과학] 소셜 딜레마에 놓인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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