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이 한국에 진출했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수많은 사람이 줄을 서고, 시간별 붐비는 정도를 알려주는 인스타그램 계정까지 등장할 정도로 주목받았죠. 맛과 분위기에 집중하는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요. 최근 한국 진출을 선언해 화제가 된 또 다른 브랜드가 있습니다. 스페셜티 커피 열풍의 시작을 함께한 브랜드, 인텔리젠시아(Intelligentsia)입니다. <최진수 에디터>
INDEX
1. ‘없으면 우리가 만들자’라는 다짐에서 시작하다
2. 과정에 담긴 진정성이 남다른 맛으로 이어지다
3. 인텔리젠시아의 공간은 지역을 담는 캔버스이자 ‘커피 대학교’다
4. 고객이 원하는 정보를 깔끔하게 전달하는 게 최고의 마케팅이다
5. 조용히, 꾸준하게 한국에서 자리를 잡아오다
‘없으면 우리가 만들자’라는 다짐에서 시작하다
인텔리젠시아는 1995년 더그 젤(Doug Zell)과 에밀리 맨지(Emily Mange)가 창업했습니다. 더그는 아이스티 사업을 하다 실패했지만, 원두 고유의 맛과 향을 살리려는 흐름에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진한 맛 일색인 기존 커피에 반발한, 새로운 물결이었죠. 둘은 대도시이지만 신선한 커피를 만드는 브랜드가 없었던 시카고에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로스팅 머신 한 대만으로 매장을 열었죠. 신선한 원두를 로스팅한 커피를 만드는 곳이 없으니, 직접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겁니다.
그들의 과감한 도전정신은 브랜드 이름과 로고에도 담겼습니다. 진보적인 지식인을 뜻하는 러시아어 단어 ‘인텔리겐차(интеллигенция)’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커피를 제안하겠다는 의미를 넣었죠. 더 나은 커피에 대한 열정을, 날개를 단 커피잔이 별을 향해 날아가는 상징으로 표현했습니다.
과정에 담긴 진정성이 남다른 맛으로 이어지다
인텔리젠시아는 커피 농가로부터 직접 원료를 구매하는 다이렉트 트레이드(direct trade) 원칙을 지킵니다. 원료 생산자를 정당하게 대우해야, 가장 신선한 커피로 이어진다는 철학을 지키기 위해서죠.
1995년 바리스타로 합류한 제프 왓츠(Geoff Watts)는 커피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2003년부터 전 세계를 돌아다녔습니다. 과테말라를 시작으로 멕시코, 온두라스 등을 돌아다니며 농부들의 믿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죠. 이 과정만 6년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뢰 네트워크’는 인텔리젠시아의 맛을 유지하는 핵심 기반입니다. 우선 바이어들이 농장을 찾아 커피 경작 지식을 제공하고, 최소 1명이 상주하며 유대를 쌓죠. 이후 경작 상태를 꼼꼼히 따져 원두 구매를 계약합니다. 원두의 풍미를 지키기 위해 수확 시기, 국가별 제철 시점까지 고려하죠.
이외에도 관계자 워크숍 (ECW, Extraordinary Coffee Workshop) 등을 열어 생산자들이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다양한 커피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인텔리젠시아는 지금도 모든 생산 과정에서 신뢰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취급하는 원두의 99%를 직거래로 공급받고 있습니다.
인텔리젠시아의 공간은 지역을 담는 캔버스이자 ‘커피 대학교’다
브랜드의 철학을 따라, 인텔리젠시아의 공간은 각자 다른 매력을 보여줍니다. 할리우드 커피 바는 꽃 그림으로 지역에서 유명했던 화가의 작품을 모자이크로 재해석했죠.
텍사스 오스틴 매장은 ‘도시 속 오아시스’라는 컨셉을, 뉴욕 JFK 공항의 TWA 호텔에 입점한 카페는 1960년대 감성을 보여줍니다. 브랜드가 시작된 시카고 매장은 창업 직후 쓰인 옛 로고와 1975년을 자랑스럽게 뽐냅니다.
인텔리젠시아의 커피 바는 바리스타들이 도전하며 성장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모든 직원은 입사 후 매장 근무와 교육 과정을 병행합니다. 바리스타뿐만 아니라 로스터, 구매 담당 매니저, 판매 관리자 등 모든 구성원이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커피 제조의 기초부터 고객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겸손함, 인성까지 교육받죠. 손님을 배려하는 바리스타만이 좋은 커피를 만들 수 있다는 브랜드의 철학이 적용됐습니다. 이러한 트레이닝 프로그램은 업계에서도 평가가 좋습니다. 인텔리젠시아에서 일하던 바리스타들이 월드 챔피언십 등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하기도 하죠.
탄탄한 실력을 갖춘 인텔리젠시아 구성원들은 새로운 도전에도 적극적입니다. LA 베니스(Venice) 매장에서 열린 슬로우 바(Slow Bar)에서는 바리스타들이 돌아가며 실험적인 메뉴들을 선보였어요. 꿀과 배 향을 끌어낸 에스프레소, 재스민과 열대과일 향을 은은하게 입힌 커피 등 개성 있는 음료들이 고객과 만났습니다. 사람들은 기꺼이 줄을 섰고, 바리스타들과 커피에 대한 대화도 나눴죠. 이처럼 인텔리젠시아는 꼼꼼한 훈련과 개방적인 문화로, 고객과 연결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고객이 원하는 정보를 깔끔하게 전달하는 게 최고의 마케팅이다
인텔리젠시아는 대규모 광고나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은 팔로워 19만 명이 넘고, 자체 블로그는 콘텐츠 마케팅의 고전으로 평가받죠. ‘커피를 맛있게 마시고 싶은 사람들에게, 인텔리젠시아의 인사이트를 전달한다.’는 단순 명확한 목표가 있기에 가능한 성과입니다.
인텔리젠시아 공식 블로그는 굉장히 깔끔합니다. 배너도, 팝업 광고도 없죠. 대신 브랜드에서 선보이는 원두들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 다양한 커피 도구 활용법 등이 맨 앞에 있죠. 원두별 공급 과정과 이전에 진행된 교육 프로그램들, 바리스타 컨퍼런스 등 방대한 정보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나만의 커피를 만들고 싶거나, 커피를 더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죠. ‘인텔리젠시아는 이 정도로 커피에 진심이다.’라는 메시지도 자연스럽게 전달되고요.
브랜드 소셜 미디어도 블로그를 닮았습니다. 영상으로 쉽게 따라 하는 시즌 음료 제조법, 바쁜 와중에도 맛을 유지하는 바리스타들의 비결 등 유용한 정보에 초점을 맞췄죠. 인텔리젠시아를 모르는 사람들도, 커피에 대한 유익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니 덜 거부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고객을 타겟이 아닌, 함께 커피의 즐거움을 나누는 친구로 바라보는 인텔리젠시아의 관점은 ‘사람들이 찾아보는 마케팅 콘텐츠’로 이어졌습니다.
조용히, 꾸준하게 한국에서 자리를 잡아오다
사실 인텔리젠시아는 다른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보다 한국에 일찍 진출했습니다. 이후 2015년 MH파트너스와 계약해 신사동 바리스타 트레이닝 센터, 판교 현대백화점 내 매장을 열었습니다. 원두도 직수입해 삼성웰스토리와 컬리 등에 납품 중이죠.
인텔리젠시아는 대중 고객과의 만남도 꾸준하게 진행해 왔습니다. 2012년 11월, 매거진B 11월호로 소개되며 일반인들에게도 이름을 각인시켰죠. 이후에도 인텔리젠시아 원두를 이용한 커피 시음회를 열고, 글로벌 커피 트렌드가 모이는 서울카페쇼에도 참여하며 ‘최상급 품질의 커피 브랜드’라는 존재감을 유지해 왔습니다.
오랫동안 커피 애호가들이 진출을 기다려 온 브랜드인 만큼, 인텔리젠시아의 정식 매장 오픈은 많은 관심을 모았습니다. ‘미국 3대 커피’ 중 마지막으로 한국에 온다는 점도 있고, 블루보틀이나 스타벅스와도 완전히 다른 매력을 가진 브랜드니까요. 늦어도 올해 11월 팝업스토어를 열고 오프라인 공간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동시에 컬리와 협업해 온라인 제품군도 다양화할 계획이죠.
비슷한 시기, 캐나다의 국민 커피 브랜드 팀 홀튼(Tim Horton)도 들어올 예정입니다. 다시 한번 치열해질 한국 커피 시장 속에서, 인텔리젠시아는 어떤 브랜드로 기억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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