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는 매력적인 시각 장치들이나 부르기 좋은 구호만으로는 이 거대하고 복잡한 관계성이 있는 도시를 브랜드화하기의 어려움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런 이유로 도시 브랜드는 일반적인 브랜드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고 그 핵심은 도시가 가진 콘텐츠를 발굴해 가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브랜딩에 있어서 심벌이나 상징, 로고나 그래픽 또는 슬로건이 중심이 아니라, 도시가 보유한 콘텐츠 중심의 브랜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럼 이번 2편에서는 그걸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있던 것들을 어떻게 연결할지를 고민하는데서
콘텐츠라고 하면 보통 무형의 콘텐츠를 많이 떠올립니다. 하지만 콘텐츠는 유형의 건물이나 시설물 등이 될 수도 있죠. 무엇보다 강력한 도시의 콘텐츠가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파리의 에펠탑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런 랜드마크를 세우는 일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합니다. 사회적인 협의도 필요하고요.
그러므로 도시 브랜딩 출발은 이런 하드웨어적인 성격의 콘텐츠를 만들고 세우려하기보다는 원래 있던 것들을 어떻게 연결할지를 고민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프트한 콘텐츠 관점에서 도시라는 브랜드를 점검하고 방향성을 수립해야 합니다. 도시에 원래 존재했던 것들, 가지고 있던 것들은 굉장히 다양하겠죠. 하드 한 것들의 연결(꼭 공간이 아니라도)이 아니라 소프트한 것 (사람, 공연, 볼거리 등등)도 있을 것입니다. 따로따로 있던 것들은 연결이 되면 새로운 의미가 생기고 확장됩니다. 브랜딩을 통해 끊어졌던 도시 콘텐츠들의 맥락을 연결하고 활성화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연결의 사이사이에 꼭 필요한 것들, 더 필요한 것들은 계속해서 채워가고 보강해 가는 방식으로 도시 콘텐츠를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국가 브랜드를 빼고 세상에서 거대한 이 도시라는 브랜드를 바꾸는 일은 일반적인 회사나, 제품, 서비스 브랜드처럼 접근하기는 어렵습니다. 훨씬 규모도 크고 중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제품 브랜드처럼 로고를 바꾸고 디자인을 바꾸고 포장을 바꿔서 될 일은 아닌만큼 신중하고 장기적인 기획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연결의 방법들
한 번은 서울 종로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의 동남쪽 끝까지 버스 여행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답답한 지하철보다는 훨씬 볼거리가 많아서 좋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이 버스길이 서울의 시장들을 연결하는 코스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면서 동시에 이 서울이라는 도시가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제가 탔던 버스에 몸을 실으면 국내 최대 시장인 남대문 종합시장에서 시작해 답십리 자동차 시장까지 우리나라 산업의 줄기를 타고 서울을 관통하고 있었으니까요. 보통 시장을 '전통시장의 관점'에서 분류한 콘텐츠들은 많지만 이렇게 '산업별로 연결'해서 묶어내니 기존에 생각할 수 없었던 재밌는 흐름이 생깁니다. 이 코스로 하나의 관광상품도 기업 홍보 프로그램도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떠오릅니다. 시장을 연결해서 생각해 본 이 새로운 '연결'이 가능성이 다른 도시나 지역들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연결을 통해 지역의 아이덴티티를 잘 드러내고 있는 곳은 이미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중에 가장 잘하는 곳이 제주가 만든 올레길 아닐까 싶습니다. 지역이 브랜딩 했던 콘텐츠 중 지금까지 가장 인상적인 기획이었습니다. 올레길은 길이라는 큰 맥락을 통해 제주의 여러 콘텐츠(관광지, 상품)들을 연결합니다. 이렇게 연결된 유연한 도시 콘텐츠들은 건물처럼 한 곳에 서 있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 움직이고 작동합니다.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저는 올레길을 전부 다 가 본 것도 아니지만, 일부 올레길 코스에 있어도 올레길 표식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다음의 코스를 상상해 보게 되더군요. 제주라는 도시를 더욱 입체적으로 상상하게 되고요.
이렇게 기대하고 상상하게 하는 콘텐츠보다 좋은 콘텐츠가 있을까요? 결국 이런 콘텐츠를 완성하는 건 사람들이 직접 경험하고 활동을 통해서입니다. 상호 작용이 있는 콘텐츠는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합니다. 스스로 찾고 사랑하게 되면 그 대상에는 애정이 점점 더 커지게 됩니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진 제주만이 이런 게 가능하다고요? 사실 이런 유의 연결은 도심에서도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주의 관광자원과 자연 공간의 연결을 흉내 낸 도시 주변의 각종 생태길, 산책로들보다 도시의 매력을 한층 올려주는 요소들이죠. 그 길의 시초 격인 신사동 가로수길을 시작해 경리단길, 망리단길, 송리단길까지 도심의 한 공간을 길이라는 흐름이 있는 개념의 연결은 도시 브랜드의 색깔을 한층 다채롭게 만듭니다.
힙지로라 불리는 서울 을지로 3,4가의 골목길들의 매력은 발견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기존에 있던 것들이 더 매력 있게 홍보되고 사람들이 스스로 콘텐츠를 만드는 공간이 됐습니다. 연트럴파크를 포함한 마포에서 용산까지 6.3Km로 길을 따라 만든 경의선 숲길이 그렇게 인기 있는 이유는 그 공원길이 옛 기찻길이었다는 게 큰 이유일 것입니다. 그 거닐 때면 열차가 다니던 풍경이 상상이 됩니다. 그 공간을 오갔던 열차를 타고 오가던 사람들이 가진 이야기가 ‘콘텐츠’로 더해집니다.
부산에서 숙소를 달맞이 고개 근처로 잡은 적이 있습니다. 언덕이 이름에서 오는 지명의 이미지가 해 질 녘에 산책을 해보고 싶을 만큼 좋았습니다. 그렇게 대도시 바로 옆에 해변가 언덕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름만으로도 도시의 일부 지역을 상징하게 하고 그에 맞는 숙소와 가게들이 생겨난다면 참 멋진 곳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선탠(Suntan)의 의미를 가져와 문텐로드(Moontan Road)라는 위트 있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갔던 경주는 십 년 전에 갔을 때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그때 없었던 황리단 길이 있어서였습니다. 도시의 고전적인 면모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함께 있더군요. 천년 고도를 걸으며 현대의 먹고 마시고 즐길거리가 있어 감각 좋았습니다. 오랜 옛날 신라시대 경주를 드나들던 상인들과 귀족들, 왕가의 사람들이 이 길을 거닐었을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결국 이 길을 만든다는 건 사람들의 기대와 기억, 연결하는 라인을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서울 인사동의 쌈지길은 실제 길도 아니지만 길을 타고 오르는 건물의 콘셉트를 심어 각각의 상점들과 먹거리 볼거리들을 연결해 줍니다. 주말이면 여전히 발 디딜 틈이 없는 인사동의 명소가 됐습니다. 연결뿐 아니라 그 안의 상점들도 초반보다 훨씬 풍성하고 매력적으로 채워져 사람들의 발길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길의 형태로 도시 구석구석의 콘텐츠를 연결하는 건 가장 효과적인 도시 브랜딩의 방법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커피의 도시가 된 강릉
예전 강릉이라는 도시는 저에게 경포대라는 거대한 호수가 있고 광활한 동해가 바로 앞에 있던 도시였습니다. 동해안 최대 관광도시답게 물가도 비싼 도시로 인식됐습니다. 그러다가 두 번째 방문에는 오죽헌을 다녀가면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도시 자연의 풍광이 함께하는 선비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도시가 됐습니다. 몇 년 전 테라로사를 방문하고 나서는 커피의 도시가 됐습니다. 제가 좀 늦은 거죠.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강릉은 경포해수욕장의 소나무향이 아니라 커피 향으로 기억되는 도시가 됐습니다. 우리나라 인구 만 명당 평균 카페수는 14개라고 하는데 강릉은 거의 2배에 가까운 25개라고 합니다. 안목해변 카페거리에 가보면 500m 사이에는 카페가 빽빽 들어서 있는 걸 보면 실감하게 됩니다.
강릉이 커피 도시가 되기까지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이 맞아 떨어져겠지만 사기업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제가 강릉의 커피에 반한 곳도 '테라로사'라는 커피전문점입니다. 제가 그때까지 가본 카페를 통틀어서 가장 맛있는 커피와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 곳이었습니다. 이런 특별한 경험은 2시간 운전을 해서라도 커피를 마시러 강릉에 가고 싶을 만큼 인상 깊은 경험을 줬습니다. 그전까지는 제 머릿속에 경포대, 오죽헌, 순두부로 기억되던 곳이 커피로 각인됐습니다. 제 머릿속에 강릉이라는 브랜드의 콘텐츠 지형도에 변화를 일으키게 된 거죠.
강릉의 예를 들어 설명드렸지만, 각 도시들은 도시에 맞는 콘텐츠가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길이든 골목이든 공간이든 광관지든, 먹고 마실거리든지 찾아보면 분명 그 도시만의 장점들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래도 만약 없다면 강릉처럼 도시의 분위기와 역사에 맞는 콘텐츠를 찾아보고 천천히 키워가 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단번에 만들어지긴 쉽지 않죠. 강릉도 커피시대가 태동했던 게 2000년 초반이니 거의 20년이나 걸려 제 기억 속에 '커피'라는 도시로 남았으니까요.
도시라는 이 거대한 브랜드를 단번에 바꾸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누구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도 아니죠. 오래 길게 해야 하고 여럿이 함께 해야 하는 어려운 일입니다. 단기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계획하고 실행해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당장 뭘 만들고 세우려는 생각보다는, 원래 있던 것들을 연결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건물이나 관광지를 연결하는 차원이 아니라, 사람, 분위기, 문화 등 소프트한 것들을 어떻게 연결할지를 고민해 보는 것입니다. 그런 연결을 통해 사람들이 도시가 하나의 흐름과 리듬을 가진 콘텐츠로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로 생각되면 좋겠습니다.
이야기가 부족하다면 그 사이사이를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 넣는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요? 강릉의 커피처럼요. 거기에 도시만의 히스토리가 더해진다면 공간을 넘어 정서적인 상상력까지 불러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도시라는 유형의 세계는 무형으로까지 확장되어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글. 우현수 @woohyunsoo
브랜드 컨셉 빌더 [브릭] BRIK.co.kr을 설립해 브랜드 스토리와 스타일 구축을 돕고 있습니다. 저서 <일인 회사의 일일 생존 습관>을 실천하며 더 나은 미래를 차곡 차곡 쌓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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