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브랜딩 해부 - 1편

사는 곳의 의미와 공간의 브랜드화

2023.02.14 | 조회 9.0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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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 브릭

시선의 높이가 다른 브랜드 리포트

’사는 곳‘의 의미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사는 곳'의 의미에 대해 떠올리게 됐습니다. 이런 대화가 오가는 장면이 재밌었습니다. 한 친구가 앞에 있는 친구에게 묻습니다. '너 성남에 살지?'라고 하니 벌쩍 뛰며 ‘아니야, 나 분당 살아!’, 옆에 있는 다른 친구에게 '너네 집 용인이지?' 그랬더니 ‘아니 난 수지야.’, 인천 사는 친구에게 '너 집이 인천이지?' 그랬더니 ’아니, 나 송도라니까 ‘라는 단호한 대답이 오가더군요. 자신이 사는 동네 부심, 지역 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공간을 더 좁혀서 생각해 보자면 이런 대화도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네 집 강남이지?‘ 그러면 ‘아니, 나 청담이야.’ ‘너 송파 살지?라고 물으면 ‘절대 아니지, 나 잠실 살아’, '너 집이 양천구지? 아니 나 목동'이야라는 대답을 들을지도요.

살아본 적이 없어 실제 그럴진 모르겠지만 뉴욕에 사는 분들도 '너 뉴욕에 살아?'라고 물으면 아니 '난 맨해튼에 살아', ‘난 햄프스테드(런던) 살아’, '난 마레(파리)에 있어’라고 굳이 자신의 동네 이름을 붙여 설명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가상의 대화까지 생각하며 제가 강조하고 싶은 얘기는 내가 사는 지역과 공간은 나를 대변해 주는 하나의 ‘브랜드’가 아닐까라는 생각때문입니다. 내가 먹고, 마시고, 듣고, 즐기고, 공부하는 것만큼 내가 '사는 곳', '내가 살아왔던 곳'도 나를 규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 아파트 사람들은 다 나 같아

얼마 전 예전 직장 동료들과의 모임에서 어떤 한 친구가 한 말이 인상깊었습니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 사람들은 다들 '나 같다'는 겁니다.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비슷한 환경에서 엇비슷하게 살아간다는 것처럼 보인다고합니다. 그래서인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친구 가족을 포함한 대여섯 가족이 친척들보다 더 가깝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친구 생각에는 그렇게 된 이유가 아파트의 위치도 영향을 많이 미쳤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의 많고 많은 아파트를을 다 제쳐 놓고 이렇게 외지고 한적한 곳으로 왔다는 것 자체가 같은 생각과 취향의 사람들이라는 가능성을 높게 한다는 거죠. 위치가 외지긴 해도 그 일대 아파트 가격보다 낮지는 않다고 하는데 말이죠. 그런데도 일부러 그곳까지 찾아들어온 이유가 평범하지는 않을걸로 보입니다. 그걸 딱 보여주는 게 아파트 주차장에 서있는 차 종류라고 하더군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흔치않는 브랜드가 많다고 합니다. 같은 금액이라면 일반적으로 구입하지 않을 차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어떤 동네를 선택하고 동네 부심을 갖는 게 집값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개인의 정체성과 취향도 반영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간이 사람들의 아이덴티티를 규정하고, 이 주거 공간을 선택하는 기준을 보면 개인과 가족의 아이덴티티를 엿볼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라는 복잡한 관계망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주거 공간뿐 아니라 여러 목적의 공간이 모여있는 도시라는 거대한 공간은 사실 우리가 한눈에 파악하거나 단번에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품이나 서비스는 실체가 금방 드러나죠. 일대일로 상호작용하며 금방 파악이 됩니다. 크기도 한눈에 들어올만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도시라는 공간은 그렇지 않죠. 우리가 그 공간이라는 요소 안에 들어가 생활하고 있으니까요. 제품-사용자, 서비스-수요자는 수평구조의 대등한 관계로 연결되어 있지만 공간은 병렬구조로 다양한 요소들인 관광지, 공원, 유적지, 쇼핑센터 등과 연결되죠. 기업 등의 시장관련자들과도 연결됩니다. 또한 다른 큰 도시와 연결되기도 합니다. 시장이라는 울타리에 속한 제품과 서비스과는 영역안에서 맺는 관계의 양과 복잡도에 있어 차이가 큽니다. 사람, 공원, 도로, 각종 환경, 기업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집합을 이루는 도시에 비하면 제품이나 서비스는 상대적으로 단순해 보일 정도입니다.

이런 이유로 공간을 브랜딩 하려고 할 때 특히 '도시'라는 거대한 공간을 '브랜딩'해야 할 때의 어려운 점이 아닐까 합니다. 일반 제품이나 서비스는 일대일의 대등한 관계에서 바라보고 분석해 브랜드를 규정하면 충분하지만, 공간은 공간과 사람, 공간과 여러 가지 도시 자원들이 함께 관계를 맺고 규정되어야 하니까요. 거기에 더해 연결된 타 도시들과도 더 넓게는 국가와의 관계도 정의 내리고 브랜드화합니다.

세계 유명 도시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욕은 뉴욕의 공간만이 뉴욕을 이루는 게 아니죠. 뉴요커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이미지까지 ‘뉴욕’이라는 브랜드에 담겨있습니다. 파리도 ‘파리지앵’이라고 불리는 파리만의 무드를 느끼게 해 주는 사람들이 우리의 인식 속에 있습니다. 뉴욕과 파리 안에 있는 각종 관광지들과 공원들 쇼핑센터들도 이 도시를 이루는 요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나 도시 브랜딩이라고 했을 때 단순히 듣기 좋은 메시지 하나로,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디자인과 로고 하나로 도시를 브랜드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도시를 담은 그래픽의 한계

 

도시브랜딩의 잘 된 사례를 찾으면 매번 단골로 등장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포르투(포르투갈 제2 도시)입니다. 아이콘과 현대적인 그래픽이 세련감이 느껴지는 디자인입니다.

도시의 정체성을 해석해 예쁘게 잘 표현한 그래픽인데 저는 이런 디자인 요소들이 과연 포르투라는 도시까지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예쁘고 아기자기한 그래픽들이 보기에는 즐겁고 매력적인데 포르투라는 도시라는 공간 안에 있는 공감각적인 매력까지도 같이 담아낼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잘못하면 그래픽들만 머릿속에 남아있지 포르투라는 도시가 내포하는 공간과 사람의 매력은 그 강한 그래픽에 묻히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도시 브랜딩의 잘된 사례로 많이 드는 것이 또 하나는 멜버른입니다. 멜버른의 M을 가지고 현란한 그래픽으로 유연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래픽적으로 화려하고 훌륭한 디자인이지만 저는 이 그래픽이 이 멜버른이라는 도시의 감성을 다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더 풍부한 이 도시가 가진 매력과 메시지, 사람들의 정서를 화려한 그래픽들이 제한시키고 있다는 인상도 받습니다.

도시 브랜드 디자인이 잘 된 거지, 도시 브랜딩이 성공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뉴욕, 런던, 파리 등은 어떤 그래픽이 아니라 그 도시들에서 느꼈던 공감각적인 다양한 경험들로 느껴집니다. 그래픽화된 시각 경험이 주는 감동은 아주 일부입니다.

이런 이유로 도시의 경험이 입체화되려면 그래픽이나 로고 등의 가시화된 것들보다 도시가 품은 콘텐츠들이 살아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화려하게 수놓은 그래픽이 주인공이 아니라 도시가 품고 있던 콘텐츠가 주인공이 되고 그걸 그래픽과 로고와 슬로건등이 받쳐주는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에서 보신 포루투와 멜버른의 아이덴티티를 보고 이 도시를 방문하고 싶은가를 생각해 보면 저는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드릴 듯합니다. 디자인이 뛰어날지는 몰라도 그것 때문에 그 도시들에 매력을 느껴지고 방문하고 싶은지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간과 지역의 가시화

그래도 어쨌든 도시를 브랜딩 한다고 했을 때 ‘가시화’된 브랜드를 만드는 일, 도시 브랜드를 하고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는 시각적인 장치들을 활용하는 것일 겁니다. 특히 우리나라 지방 자치 도시들은 이런 가시화가 더 중요하겠죠. 어떻게든 기관에서 하는 일들을 시민들이 느낄 수 있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가시화를 목적으로 한 로고 중심의 도시 브랜딩도 한편으론 이해가 갑니다. '진짜' 도시 브랜딩은 사실 시간이 너무나 많이 걸리고 막대한 예산도 들어가는 문제기도 하니까요. 자자체장 4년의 임기로는 가망도 없는 얘기일 수 있습니다.

그럼 이쯤에서 우리나라 대표 격인 도시 브랜드들의 아이덴티티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서울입니다.

서울 도시 브랜드를 살펴보면 굉장히 다양한 역할을 하는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서울이라는 도시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상징마크(휘장으로 불리는)가 있습니다. 이 휘장은 서울이 경성일 때부터 생겨 거의 백 년이 넘게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1918년부터 1996년까지는 도식화된 형태를 사용해 오다가 1996년에 현대화된 지금에 휘장으로 리뉴얼됐습니다. 이 휘장은 서울 도심을 걷다 보면 동그란 맨홀 뚜껑을 가운데 적용돼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전에는 1918년 경성에서 썼던 맨홀 뚜껑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도시를 브랜드화한 작업은 2002년에 'Hi, seoul'로 시작했습니다. 2015년 'I.SEOUL.U'가 나오기까지 쓰였던 브랜드입니다. 휘장이 하기 힘든 시민들과 외국들에게 서울을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런 커뮤니케이션형의 브랜드가 필요하죠. 말을 걸듯이 편안하게요. 거기에 추가해 해치라는 캐릭터형 브랜드는 활동적이고 친근한 커뮤니케이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정책 브랜드 '동행, 매력'이라는 키워드를 강조한 시정 철학과 비전을 담은 정책 슬로건 브랜드도 있습니다. 이 브랜드는 시장 임기가 끝나면 거의 폐기되고 다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시의 정책별 분야 아이콘들
서울시의 정책별 분야 아이콘들

 

한 도시에 무슨 이렇게 브랜드가 많을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시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도시가 하나의 작은 국가라고 하면 국가가 담당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한번 위에 나열된 정책별 분과를 한번 살펴보면 알 수 있죠. 그런 다양한 관계 속에서 필요한 성격과 역할은 조금씩 다 다릅니다. 때문에 이렇게 상징마크(휘장), 도시 브랜드, 캐릭터 브랜드, 정책 브랜드로 4개나 되는 브랜드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요?

 

경기도의 경우에는 심벌마크(휘장)가 따로 있지 않은 거의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한 브랜드가 아닐까 합니다. 권위적이고 공식적인 느낌이 강한 휘장이 없이 도시 브랜드 마크가 휘장과 도시 브랜드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정책 브랜드는 단체장의 임기 4년 후 다시 교체됐습니다.

최근 '파워풀 대구'라고 교체한 대구 도시 브랜드도 말이 많았는데요. 18년 동안 사용해 오던 'Colorful Daegu'를 버리고 'Powerful Daegu'를 채택한 겁니다. 이 경우는 대구 도시 브랜드의 성격이 정책 브랜드화 됐다고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영문을 대신해 한글이 전면 나오는 형식은  글로벌한 커뮤니케이션이 크게 필요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줍니다. 대구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중심에 만족감을 주겠다는 의지가 보입니다.

반면 대전은 도시 브랜드 차원에서의 의미의 확장 내지는 관점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004년부터 16년간 쓰던 'It's Daejeon'이 대전이라는 지역 자체의 정체성의 표현이었다면, 새로 바뀐 'Daejeon is U'는 대전 시민들이 주인공으로 변환 사례라 하겠습니다. 어쩌면 도시라는 공간을 채우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곧 도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대구와 대전 모두 도시 브랜드는 바뀌었지만 도시를 상징하는 마크인 휘장은 그대로 유지되어 역사성과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진화는 없고 변화만 있는

새로운 단체장으로 바뀌고 세월이 변해 트렌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도시들은 매번 홍보물을 교체하듯 브랜드를 바꾸고 있습니다. 웬만큼 장수하는 기업 브랜드들보다 훨씬 짧은 수명을 가집니다. 저 멀리 고대 국가부터 이어져오던 도시의 지역성이 일반 상업적인 기업들보다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하다니요. 그러고 보면 역사성만으로 반드시 정체성을 대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변화하는 건 좋습니다. 다만 저는 '변화'의 관점 안에 '진화'가 사라진 게 아쉽습니다. 지역이라는 공간이 수십 년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변화하듯 도시 브랜드도 변화하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특히 가장 아쉬운 점은 도시 브랜딩의 변화의 중심에 슬로건과 디자인만이 도드라지게 보인다는 점입니다. 우리 도시가 이런 슬로건을 채택하기로 했다고, 이런 마크를 쓰기로 결정했다고 선포만 했지 그걸 위해 어떤 프로그램 어떤 콘텐츠와 캠페인을 통해 그 구호들을 실체화할지는 설명이 거의 없습니다.

만일 있더라도 그런 노력들이 시민들에게 닿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선언이나 구호뿐 아니라 도시의 활동들로 끝날 게 아니라, 도시 공간의 성격들이 어떻게 재구성되고 변화해 갈지 선명한 로드맵이 그려졌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그럼 어떤 도시 브랜드가 좋은 브랜드일까?

그래도 이 도시 브랜드는 브랜딩 활동을 잘하고 있네?라는 인상을 주는 브랜드가 있긴 합니다.

1편을 여기에서 마치고 2편에서는 '그렇다면 어떤 도시 브랜드가 좋은 브랜드일까?'라는 생각으로 살펴본 도시 브랜드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왜 그런 인상을 받았는지, 호감이 형성되어 갔는지에 대해서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럼 2편에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글. 우현수 @woohyunsoo

브랜드 컨셉 빌더 [브릭] BRIK.co.kr을 설립해 브랜드 스토리와 스타일 구축을 돕고 있습니다. 저서 <일인 회사의 일일 생존 습관>을 실천하며 더 나은 미래를 차곡 차곡 쌓아가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리포트에서 또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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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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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almost 2 years 전

    포르투 사례에서 오타가 많네요...ㅎ 푸르토였다가 포르투였다가 프로토였다가 프리토까지..ㅋㅋ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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