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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오펜하이머'를 기다리는 미국

대중 격퇴 전략을 준비하는 미국, 이를 후원하는 벤처캐피탈

2023.08.08 | 조회 639

CapitalEDGE

글로벌 테크 + 벤처 + 투자에 관한 '관점'과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영화 '오펜하이머', 왜 하필 지금일까?

 

8월 15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영화 '오펜하이머'가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7월 21일 개봉을 통해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경쟁작을 피해 개봉일을 한 달 가까이 조정했다는 추정과, '원폭투하'라는 주제를 '광복절'과 연계하기위한 의도된 개봉일 조정이라는 '썰'도 존재합니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비밀리에 시작된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인 '맨하탄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의 첨단 기술과 산업 역량을 집결시킨 해당 프로젝트는 결국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로 이어지며 프로젝트 그 자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됩니다.

영화 오펜하이머 미국 포스터
영화 오펜하이머 미국 포스터

단순한 영화적인 재미로 넘길 수도 있지만 '오펜하이머'란 영화가 2023년인 지금 미국에서 등장하여 인기를 끌게 된 배경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정재계는 80년만에 또다른 맨하탄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대상이 중국 공산당으로 바뀌었습니다. 반도체, 양자컴퓨터, AI, 핵에너지 등 모든 최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국 공산단의 추격을 뿌리쳐야 한다는 목표를 명확히 세운 미국은 조용히, 하지만 진지하게 대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023년 7월 26일 미 하원 공청회

미국에서 영화 오펜하이머가 개봉한지 5일 후, 워싱턴에서는 미 하원 특별위원회의 주도로 공청회가 진행되었습니다. '21세기 핵심 및 신흥 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리더쉽을 공고히 하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번 공청회에는 특이하게도 3명의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이 패널로 참여하였습니다.

이 중 눈에 띄는 곳은 단연 럭스 캐피탈(Lux Capital)이란 곳입니다. '과학'과 '기술'에 투자한다는 모토로 2000년 출범한 럭스는 현재 7조 원에 가까운 운용자산을 보유한 떠오르는 미국의 벤처캐피탈입니다. 상대적으로 틈새 분야에 투자해 온 곳이었지만 2017년 무기 개발 기업 안두릴(Anduril) 투자를 계기로 최근 급격히 사세를 키웠습니다.

Lux Capital의 공동창업자 Josh Wolfe의 백악관 공청회 동영상

 

"To compete with the CCP, we must remain united in our shared pursuit of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development to lead the globe in discovery and in influence." (중국 공산당과 경쟁하기 위해 우리는 과학의 진보와 기술 개발을 통해 전세계를 이끌고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단일 대오를 유지해야 합니다.)
"While the CCP’s Belt and Road Initiative seeks to entice the developing world through centralized planning, simultaneously spreading its surveillance and control with callous disregard for human and property rights, America must seize the opportunity to offer a free and democratic alternative by exporting US ingenuity with talent from anywhere." (중국 공산당의 일대일로라는 중앙 집중식 계획을 통해 개발도상국을 유혹하는 동시에 인권과 재산권을 냉정하게 무시한 채 감시와 통제를 확산시키려 하지만, 미국은 미국의 창의력과 인재를 전 세계에 수출하여 자유롭고 민주적인 대안을 제시할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Well imagine in a year, or two, or five that there is a cure for Alzheimer’s. But what if we found out that was tested on a million Uyghurs? When it comes to handling China, it’s about principles over profits." (만약 5년 이내에 치매를 치료하는 약이 발견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이 약이 수백만의 신장 위구르 인들에게 행해진 생체 실험을 통해 개발되었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중국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이익보다는 원칙의 편에 서야 합니다.)

중국 공산당과의 경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기초 과학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하고, 중국의 일대일로를 차단해야하며, 더이상 중국의 과학기술을 이롭게 하는 어떤 투자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다분히 정치적인 주장을 펼치는 이는 놀랍게도 민간 투자사인 럭스 캐피탈의 공동창업자 Josh Wolfe입니다.

전시 상황에서 옮고 그름보다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입니다. 중국과의 대결 구도가 자명한 상황에서 럭스 캐피탈의 포트폴리오 기업들이 미 국방부, CIA, NASA를 통해 대규모 수익을 얻고 있다는 비판 정도는 실리콘밸리의 '반애국주의' 정도로 치부되는 것이 요즘 미국의 현실입니다.

 

21세기 기술 경쟁의 후원자를 자처하고 나선 벤처캐피탈

미국의 벤처캐피탈 산업과 워싱턴 정계는 그 어느때 보다도 가까운 밀월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뉴스레터를 통해 소개한 안데르센호로위츠의'아메리칸 다이나미즘'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닌, 미국에서 벤처캐피탈들이 디지털 전환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국가 경쟁력 및 국가 안보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트렌드 변화를 기회로 보고 새롭게 '하드웨어' 투자에 뛰어드는 투자사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중 최근 눈에 띄는 곳으로 8090 Industries라는 투자사가 있습니다. '새로운 산업혁명'에 투자한다는 모토를 내건 8090은 핵에너지에서부터 친환경 다이아몬드, 3D 배터리까지 기초 과학과 연계된 혁신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8090 Industries의 주요 포트폴리오 기업
8090 Industries의 주요 포트폴리오 기업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손자이이면서 현재 '오펜하이머 프로젝트'라는 비영리 단체를 이끌고 있는 찰스 오펜하이머 또한 최근 8090 Industries의 오퍼레이팅 파트너로 합류, 핵에너지 혁신 분야의 차세대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미 소형 원자로 기업 Oklo 및 탄소 포집 인프라 기업 Noya에 투자한 바 있는 8090은 앞으로도 핵에너지 분야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한다는 계획입니다.

탄소 제로를 실현하는 새로운 핵에너지 기술에 집중하고 있는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손자 찰스 오펜하이머
탄소 제로를 실현하는 새로운 핵에너지 기술에 집중하고 있는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손자 찰스 오펜하이머

과거에는 전쟁을 위해 핵에너지를 사용하였다면, 이제는 탄소제로 에너지를 위해 핵에너지를 활용해야 한다는 찰스의 주장을 통해, 과거의 오펜하이머가 현재 미국 사회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여러가지 이유에서 '오펜하이머'는 지금 미국에게 가장 필요한 '아이콘'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모습입니다.

 

앞으로의 전망은?

지난 주 럭스 캐피탈과 8090 Industries는 나란히 '제리코 시큐리티 (Jericho Security)'란 기업의 프리시드 라운드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생성형 AI로부터 오는 사이버 공격을 AI로 막는다'는 아이디어를 내세운 제리코는 팀과 아이디어만 가지고 설립 3개월만에 230억 원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한 달만에 40억 원 규모의 프리시드 펀딩에 성공하였습니다.

Jericho Security 프리시드 덱 발췌
Jericho Security 프리시드 덱 발췌

기술의 개발 수준을 떠나 다분히 '중국'을 의식한 이러한 아이디어들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펀딩을 받을 수 있다는 분위기 자체가 최근 달라진 미국의 투자 환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기술, 그리고 미국의 국가 경쟁력에 이바지하는 기술이라고 하면 얼마든지 대규모 자금 조달과 정부 프로젝트 수주가 가능해질 정도로 미국 투자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직도 미국의 대중 전략을 바이든 정부의 외교 정책 정도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미국은 정부는 물론 의회, 재계와 투자 업계까지 이미 방향을 명확히 정하였으며, 최소 10년 이상 대결 구도가 이어질 것이란 점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에게 새로운 오펜하이머의 등장은 이제 시점의 문제이지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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