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마를 통해 알아보는 26조 원 M&A의 진행 과정

SEC를 통해 공개된 어도비 - 피그마 M&A 비하인드 스토리

2023.02.21 | 조회 1.16K

CapitalEDGE 뉴스레터

글로벌 테크기업, 스타트업 및 벤처투자 뉴스에 '인사이트'와 '관점'을 담아 전합니다.

지난 1월 어도비 공시자료를 통해 상세하게 공개된 피그마 인수 과정, 빅테크의 대형 스타트업 진행과정에 대한 하나의 매뉴얼

작년 9월 15일, 어도비가 디자인 협업 소프트웨어 기업 피그마(Figma) 인수를 발표한 지 정확히 5개월이 지났습니다. 당시에도 인수 가격은 물론, 26조 원에 달하는 어도비의 과감한 베팅이 화제가 되었던 거래였습니다. 이전 뉴스레터에서도 두 번에 걸쳐 해당 M&A를 상세히 다루었었습니다.

보통 대형 M&A가 발표되고나면 누가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와 같은 해피엔딩 스토리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고는 금방 잊혀지곤 합니다. 하지만 M&A를 진행하는 입장에서, 그리고 실제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인수 발표는 사실 또다른 시작을 의미합니다.

우선 어도비와 피그마 팀은 꾸준히 인수통합 및 제품 번들링 전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거래가 종결된 상황도 아닙니다. 미 법무부의 반독점 심사가 남아있고, 사업을 영위하는 국가에서 합병으로 인한 경쟁제한에 대한 심사도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 인수 발표 이후 5개월이 경과한 현 시점에서 해당 거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시장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보고
  • 지난 달 어도비가 공개한 피그마 인수 과정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통해 빅테크 기업의 스타트업 인수가 어떤 과정으로 전개되는지 다루고자 합니다.
  • 마지막으로, 지난 주 피그마 창업자 딜런이 참석한 대담을 통해 26조의 엣싯을 경험할 30살 창업자의 이야기도 들어보고자 합니다.

 

어도비 - 피그마 M&A, 순항하고 있나?

최근 어도비와 피그마 인수와 관련하여 피그마의 절묘한 타이밍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5개월 전인 지난 9월만 해도 빅테크 기업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라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죠. 하지만 지난 3분기 실적 발표 직후인 11월부터 메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세일즈포스 등 대부분의 빅테크 기업이 구조조정에 동참하면서 어도비-피그마 이후 빅테크 주도의 빅딜 뉴스는 전무한 상황입니다.

아무래도 대형 M&A는 전사적인 경영 방향에 영향을 많이 받다보니 어도비의 피그마 인수 또한 한 분기만 늦어졌더라도 거래가 결렬되었을 것이라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또한 비자 - 플레이드(Plaid) 사례처럼 어도비 - 피그마 거래도 반독점 등 규제 이슈로 인해 승인이 지연된다면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1) 시장은 여전히 거래 파기를 원한다(?)

어도비의 피그마 인수 발표 당시 어도비의 주가가 30% 가까이 급락하며 투자자들이 실망감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이후 4분기 견조한 실적을 발표하며 주가는 서서히 회복되고 있지만, 지난 1월 있었던 미국 기술주의 미니랠리를 생각해보면 여전히 투자자들이 어도비의 미래에 대해 그리 열광하지는 않는 모습입니다.

어도비 주가는 최근 피그마 인수 발표 이전 수준까지 회복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지난 6개월 주가 수익률은 여전히 -16%에 달하며 이는 빅테크 기업 중 아마존과 함께 최하위 수준입니다. 경기 침체가 예상됨에도 사업 구조조정 및 운영 효율화보다 대형 M&A에 거금을 써버린 경영진의 판단에 대해 투자자들은 판단을 유보하는 모습입니다.

 

(2) EU는 경쟁제한여부 검토 중

지난 번 뉴스레터에서 언급한대로 최근 바이든 정부의 기조를 볼 때, 본 거래가 DOJ의 반독점 심사에서 난관이 예상된다는 점은 어느정도 예측가능한 사안이었습니다. 최근 빅테크 기업의 소규모 M&A라도 미래 경쟁 제한이 예상된다면 강경한 입장을 취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 15일에는 EU에서 해당 투자 건에 대한 검토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협업형 제품 디자인 및 화이트보드 소프트웨어 분야의 경쟁에 심대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언급하였습니다. 아직까지는 EU의 입장이 회원국의 요청에 따른 형식적인 절차이지만, 미국 DOJ 및 영국 반독점 심사의 결과에 따라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습니다. 

 

(3) 피그마 사업은 순항 중

하지만 당분간 독립적으로 운영될 피그마는 어도비를 발판 삼아 더욱 공격적으로 경영에 나서는 모습입니다. 피그마의 기존 사용자들은 어도비 인수 이후의 제품 경험에 대해 우려가 있었지만, 인수 당시부터 기대한대로 기존 어도비 사용자들이 대거 피그마로 유입되면서 통합 플랫폼에 대한 기대 또한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도비의 피그마 인수 이후 방문객 수가 급증하고 있는 피그마 (출처: Piper Sandler)
어도비의 피그마 인수 이후 방문객 수가 급증하고 있는 피그마 (출처: Piper Sandler)

특히 그림까지 그려주는 생성AI가 미래 기술의 핵심으로 부각되면서 디자인 협업 툴을 지향했던 피그마 또한 AI 기술을 위협이자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AI가 디자이너를 대체하기보다는 디자이너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관점인 것이죠. 인력 조정에 나서고있는 어도비와 달리 피그마는 4분기에도 공격적인 채용에 나서며 인재들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어도비 - 피그마 인수 진행과정

미국의 SEC에서는 인수, 합병 또는 주식교환이 예정된 거래에 대해 해당 거래와 관련한 상세 내용을 담은 공시문서 S-4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어도비는 피그마 인수와 관련하여 지난 1월 13일 상세 거래 내용과 관련하여 S-4를 공시하였으며, 이를 통해 해당 거래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흥미로운 점들을 짚어보면...

  • 어도비는 피그마의 시리즈D 라운드 이전인 2020년 초부터 인수 의사를 보여왔으며
  • 인수가 본격화된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를 거래에 초청하였으나 퇴짜를 맞았고
  • 피그마는 마지막까지 거래가격을 높이려고 했으나, 결국에는 애초에 어도비가 제시한 $20 billion에 거래가 체결되었습니다.

 

거래 진행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살펴보면...

😀 초반 탐색 전

  • 4월 20일: 어도비의 디지털 미디어 총괄 데이비드 와다니, 프로덕트 총괄 스캇 벨스키가 피그마의 창업자 딜런 필드에게 인수 의향 공식 전달
  • 5월 5일: 어도비와 피그마 NDA 체결 및 피그마 보안 정보 제공
  • 5월 25일: 피그마 이사회와 어도비 인수 제안 공유. 이사회에서는 1) 어도비와 논의 지속 2) 매도가격 높이기 위한 재무자문사 선정 3) 제3의 잠재적 인수자 접촉 결정
  • 5월 28일: 카탈리스트 파트너스(Qatalyst Partners)와 피그마 간 매도자문 계약 체결
  • 5월 29일: 피그마 CEO 딜런필드가 직접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 참여 의향 질의
  • 5월 30일: 카탈리스트파트너스가 마이크로소프트 의향 점검
  • 6월 1일: 마이크로소프트-피그마 NDA 체결
  • 6월 5일: 피그마 CFO와 어도비 경영진 미팅 후 인수 구조 등 논의
  • 6월 6일: 피그마는 인수 가격 제안을 위해 필요한 추가 정보 제공

 

📰 LOI 협상 단계

  • 6월 19일: 어도비 넌바인딩 LOI 제출 - 인수가 $20 billion | 50% 현금 + 50% 어도비 주식 | CEO 포함 핵심 직원들의 이탈 방지를 위한 추가 $2 billion 인센티브(Retention Pool) 설정
  • 6월 20일: 마이크로소프트는 더 이상 참여하지 않을 것임을 통보
  • 6월 21일: 피그마 임시이사회 진행 후 어도비가 제안한 기업가치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추가 협상 요구
  • 6월 22일: 딜런 필드는 어도비의 데이비드 와다니에게 전화해 주주들이 인수 가격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전달
  • 6월 30일: 딜런 필드는 어도비와의 추가 통화에서 $23 billion 인수가격과 $3 billion Retention Pool 제안
  • 7월 1일: 어도비는 $20 billion이 최종 제안 가격임은 변함이 없으나 기존 $2 billion의 Retention Pool은 고민해보겠다고 답변
  • 7월 4일: 어도비는 수정된 넌바인딩 LOI를 통해 Retention Pool을 $2.3 billion으로 상향 조정
  • 7월 5일: 피그마의 딜런 필드는 $21.5 billion 의 인수 가격과 $2.3 billion의 Retention Pool을 인수 조건으로 다시 제시. 또한 어도비의 주식으로 지불하는 50%에 대해 특정 시점에 전환비율을 확정한 후 추후 주가가 변동하더라도 최대 10% 범위까지만 이를 반영한 수 있는 Collar 조건 제시
  • 7월 6일: 어도비는 인수 가격 $20 billion이 최종 제안임을 재확인
  • 7월 14일: 어도비는 수정 제안을 통해 $20 billion 거래가격과 50%는 어도비 주식으로 지급하며, Collar 조건은 수용 불가하나 특정기간의 평균단가를 적용하는 방식 제안. 또한 거래 불발 시 어도비가 피그마에게 역수수료(Reverse Termination Fee)를 지급하는 조건을 제시
  • 7월 16일: 피그마 이사회 임원들은 추가로 어도비에게 가격 조정을 요구할 경우 거래 파기 가능성이 있음을 고려하여 최종 가격을 받아들이는 대신 역수수료 등 추가 조건은 계속 협상하는 것으로 결정

 

📣 배타적 협상 단계

  • 7월 20일: 어도비는 수정 제안에서 기존의 인수 조건을 확인하고, 거래파기에 따른 역수수료를 $1 billion으로 제안. 해당 내용을 바탕으로 배타적 협상권 확보
  • 7월 22일: 어도비의 상세 실사 개시
  • 7월 30일: 합병계약서 초안 작성
  • 8월 5일 - 24일: 합병계약서 조문 협상
  • 9월 14: 합병계약서 및 기타 거래 관련 계약서 작성 완료. 피그마 이사회 거래 최종 승인
  • 9월 15일: 장 개장 이전 계약서 서명 후 합병 발표

 

(오른쪽) 어도비의 협상을 진두지휘한 어도비의 CBO이자 디지털미디어 촐괄 데이비드 와다니
(오른쪽) 어도비의 협상을 진두지휘한 어도비의 CBO이자 디지털미디어 촐괄 데이비드 와다니

일반적인 M&A 사례에 비춰볼 때 어도비-피그마 인수 건은 큰 장애물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거래입니다. 실제로 26조 원에 달하는 대형 거래가 3달 만에 완료된 것이죠. 또한 피그마의 이사회가 거의 메일 미팅을 진행하며 인수 가격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이탈한 상황에서 마지막에는 욕심부리기보다 거래를 받아들이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거래 진행의 속도와 관련한 지표들을 보면...

  • 피그마가 재무자문사 선정에서 계약까지 걸린 시간: 3일
  • 마이크로소프트가 거래를 인지하고 NDA를 맺기까지 걸린 시간: 3일
  • 어도비가 NDA 체결 후 LOI 제출까지 걸린 시간: 45일
  • 어도비의 최초 LOI 제출에서 배타적 협상 계약까지 걸린 시간: 30일
  • 어도비가 최초 LOI 제출 이후 30일 동안 수정 제안을 제출한 횟수: 3회
  • 어도비가 배타적 협상권 획득 이후 최종 계약까지 걸린 시간: 60

거래 진행 속도로 미루어보건데, 창업자와 투자자들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거래에 임했다는 점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특히 공동창업자들은 처음부터 이번에 회사를 매각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를 초대하여 경쟁구도를 형성하려고 했지만 너무 일찍 이탈하는 바람에 최종 거래 가격 협상에서는 어도비의 협상력이 우위였다는 점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도비가 2020년 초부터 인수에 관심을 보이며 접근했다는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피그마는 어도비와 처음 논의를 진행한 2020년에는 곧바로 안데르센호로위츠 주도로 시리즈D를 완료하고, 2021년 초에는 어도비의 CEO까지 나서 인수 의사를 밝혔으나 다시 그 해 6월 12조 원 기업가치로 시리즈E 라운드를 진행하며 철저히 몸값과 협상력을 높혀온 모습입니다. 하지만 경기 하락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2022년 상반기에 세 번째로 인수 제안이 오자 적극적으로 어도비와의 협상에 나서며 결국 세기의 거래를 성공시킨 것입니다.

 

마지막 Fun Fact 하나, 어도비에서 본 건 거래를 주도한 데이비드 와다니는 피그마의 시리즈A를 리드한 Greylock Partners의 벤처파트너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파트타임 자문역과 비슷한 역할이죠. 분명 이러한 대형 거래에서는 추후라도 이해 상충이 발생하지 않도록 프로답게 일을 처리했겠지만 적어도 어도비와 피그마의 투자자 간에 어느정도 대화의 비공식 채널은 열려있었을 것이라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번 거래도 이런 거미줄같이 엮인 실리콘밸리의 파워 네트워크가 힘을 발휘한 거래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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