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AI의 ChatGPT가 AI 서비스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지만 막상 벤처투자자들은 아직까지 신중한 모습
지난 주, 컨텐츠 큐레이팅 사이트로 유명한 버즈피드의 주가가 일주일만에 4배 가량 상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컨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OpenAI의 인공지능을 사용하겠다는 발표, 그리고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와 크리에이터 팔로워 향상을 지원하기 위한 파트너쉽을 체결하였다는 뉴스에 시장이 반응한 것입니다. 메타와의 계약 규모는 약 120억 원($10 million)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버즈피드의 주가 폭등은 현재 OpenAI의 ChatGPT를 둘러싼 시장의 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120억 원 규모 계약으로 시가총액이 4천억 원 넘게 상승하였으니 또다른 버블의 전조인지도 모릅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주가 조작의 테마에 OpenAI가 등장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정작 OpenAI가 탄생한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들은 아직까지 상황을 관망하는 모습입니다. 불과 1 - 2년 전 크립토, Web3, 메타버스 테마에 편승하고자 매주 투자를 집행하던 열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OpenAI를 제외하고는 몇 건의 대형 투자 논의 소식이 들려오지만 이미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바 있는 기업의 팔로우온 성격이 강합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혁신의 역설'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OpenAI의 ChatGPT가 일으킨 반향이 워낙 커 아직까지 그 영향력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데이터 확보를 위해 개발자들에게 GPT-3 엔진을 제공해왔던 OpenAI가 돌연 직접 제품을 출시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GPT-3를 활용해 제품을 서비스해왔던 많은 AI 스타트업들이 고객 이탈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은 투자자들에게 더욱 많은 고민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인가?
OpenAI의 초거대 언어모델 GPT-3를 기반으로 마케팅 문구 및 블로그 자동 작성 서비스를 제공하던 텍사스 오스틴에 위치한 스타트업 JasperAI는 2021년 2월 서비스 출시 이후 불과 1년 반 만에 연환산 매출(ARR)이 천 억 원에 가깝게 성장한 AI 분야의 선도 기업입니다. 특히 지난 10월에는 Insight Partners, Coatue, Bessemer, IVP 등 유명 VC들이 라운드에 참여하며 무려 2조 원에 가까운 기업가치로 시리즈A를 완료한 바 있습니다.
문제는 대규모 시리즈A를 유치한 지 한 달 만에 OpenAI가 ChatGPT를 출시하자 고객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JasperAI는 한 달 평균 80달러에 가까운 과금 체계를 유지해왔는데 ChatGPT가 무료로 제공되면서 더 이상 JasperAI의 서비스에 가치를 느끼기 어렵다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플랫폼 - OpenAI'와 '어플리케이션 - JasperAI'의 역학관계는 아이폰 OS와 이를 활용한 앱의 관계에 가깝다는 평가입니다. 아이폰 출시 초기에는 부족한 노트앱 기능을 보완하는 '에버노트'가 인기를 끌었는데 애플이 노트 기능을 강화하면서 순식간에 시장 지위를 잃은 것과 같은 논리인 것이죠. 문제는OpenAI의 고객 확보 속도가 너무 빠르고, 앞으로 넓혀나갈 서비스의 범위 또한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아이폰 등장 초기에도 캐주얼 게임을 만들어 하루에 1억 원씩 매출을 올리던 인디 개발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LensaAI와 같이 프로필 사진을 아바타로 변환해주는 서비스의 매출이 급등하기도 하였습니다.
프로덕트 빌더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기회이지만 '제품의 바이럴'만큼 '회사의 영속성'을 고민해야 하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인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보면...
안데르센호로위츠(a16z)가 1월 19일 블로그에 게시한 '생성AI 플랫폼은 누구 몫인가?'라는 글에서는 이러한 고민이 잘 드러납니다. 현재 '생성AI' 서비스의 산업 밸류체인을 나눠보면
- JasperAI와 같은 어플리케이션,
- OpenAI와 같은 초거대모델 운영사, 그리고
- 이를 뒷받침하는 클라우드 및 GPU 등 인프라
세 단계로 나눠볼 수 있으며, 다들 나름의 고민을 안고 있는 상황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현재까지 대부분의 파이는 사실 세 번째인 인프라 사업자들의 몫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첫 번째, 어플리케이션의 '글쓰기 자동화', '이미지 생성', '코드 작성' 분야에서 이미 천 억 원 대 매출을 기록한 기업이 등장할 정도로 서비스 성장 속도가 빠르지만 JasperAI의 사례처럼 모델 기업이 어플리케이션으로 사업을 확장하자 고객 이탈율이 높아지는 등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번 ChatGPT의 사례처럼'자체 모델 없이 킬러앱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 직면한 상황입니다.
두 번째, 초거대모델 운영사도 나름의 고민이 있습니다. 바로 아직까지 명확한 사업모델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OpenAI의 경우 ChatGPT를 출시하며 바이럴의 중심에 섰지만 아직까지는 유료화 모델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한 상황입니다. 최근 유료화 모델 베타버전 사용자를 모집 중이지만 회사 자체 추산 기준 올해 2,500억 원 수준의 매출을 목표하고 있으며, 이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논의된 36조 원 기업가치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OpenAI의 GPT-3와 같은 폐쇄형 모델과 달리 오픈소스를 채택한 이미지 생성 모델 운영사 StabilityAI(스테이블 디퓨전)의 경우 LensaAI가 해당 플랫폼을 채택하면서 대규모 수익을 기대했지만 해당 앱의 바이럴이 한 달 천하로 끝나면서 여전히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에 대해 의문부호가 붙는 상황입니다.
결국 현재까지 돈은 대부분 클라우드 운영사인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이, 그리고 클라우드를 뒷받침하는 연산 능력을 향상시키는 엔비디아와 같은 GPU 기업이 벌어들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엔비디아 매출의 상당 부분은 '생성AI' 연산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초거대모델의 연산 능력이 중요해지면서 인프라 투자를 위한 경쟁 또한 심화되는 것입니다.
OpenAI는 2019년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Azure와 독점 계약을 맺기 전까지 구글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였는데, 당시 연간 지불한 이용료만 천 억 원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OpenAI의 파트너쉽이 구글의 검색을 위협할 것인지에 대해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단기적으로 노린 것은 클라우드 시장의 만년 2위에서 1위인 아마존의 AWS를 따라잡을 계기를 마련함과 동시에 3위인 구글의 추격을 따돌리는 전략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앞으로의 전망은
OpenAI가 앞으로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지에 따라 AI 스타트업의 운명이 결정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OpenAI의 계획을 직접 물어보는 것입니다. OpenAI의 수장인 샘 알트만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비교적 명확한 답변을 제시하였습니다.
OpenAI의 기술이 혁신적인 것 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정작 OpenAI의 가장 큰 기여는 '대화'라는 방식을 통해 AI 서비스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는 것입니다. 출시 5일만에 백만 사용자를 넘어섰던 ChatGPT는 이제 출시 40일만에 일일 사용자 천 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례 없는 사용자 확보 속도가 다른 스타트업에게는 당분간 또 다른 도전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사용자들의 눈높이와 기대 수준이 한 층 높아졌기 때문이죠.
OpenAI의 CTO인 그렉 브록만은 "2023년은 2022년 이전의 AI 발전이 얼마나 따분했는지 느끼게 될 한 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마 올해 상반기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들은 차세대 OpenAI를 찾기보다는 OpenAI의 다음 제품은 무엇인지, OpenAI가 투자한 스타트업에 어떻게 공동투자를 할 수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분주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