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료권을 넘어, 기능 중심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가보훈처 산하 보훈복지의료시설은 지난 수십 년간 국가유공자의 복지 향상을 목표로 전국에 걸쳐 체계적으로 확충돼왔다. 중앙보훈병원, 지방 보훈병원은 물론 요양병원, 요양원, 연구·교육기관 등 다양한 유형의 인프라가 그 예다. 이는 전쟁, 테러, 사고 등 ‘과거’의 재난에 대응한 제도적 산물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이 촉발한 의료 시스템의 시험대 앞에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바로 “재난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자 미래의 일”이라는 사실이다.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서 다수의 공공병원 전략 수립과 의료기관 기능전환 컨설팅을 수행해 온 캡스톤브릿지 고주형 대표는 “지금은 공공의료 범위에 특수 직군 의료를 품는 시대는 지나고 있다. 앞으로 공공병원이 ‘어떤 분야의 기능을 깊게 만드느냐’에 주목해야 할 때이다.”라고 지적한다.
대상자의 변화에 따라 공공의료 방향도 바뀌어야
보훈의료체계는 참전유공자, 전상군경(軍警), 공상군경, 순직군경, 제대군인 등을 대상으로 설계돼 있다. 이들 상당수는 과거 전쟁이나 대형 사건에서 피해를 입은 분들이다. 하지만 경찰, 소방 등 현대 사회의 새로운 고위험 직군이 보훈 범주에 포함되면서, 현대 사회에서 반복되고 있는 재난의 형태를 모두 포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화재, 구조, 감염병, 테러, 대형 교통사고 등 다양한 재난현장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직업적 특수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과 손상이 반복적으로 축적된다. PTSD, 화상, 근골격계 질환, 심혈관질환 등은 일반 공공병원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수준의 재활·정신·직업복귀 의료를 요구한다.
“특정 직군은 단순히 병이 생겨서 병원에 오는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의 지속적 노출’이 원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진단-치료-재활, 그리고 사회 복귀까지 연계된 전문경로가 필요하며, 이를 연구하는 체계 필요합니다.” - 고주형 대표
‘중진료권 중심’에서 ‘기능 기반 특성화’로
대한민국 공공의료 정책은 중진료권 기반의 필수의료 체계를 구축 중이다. 이는 지역 내 의료격차 해소에 필수적인 전략이지만, 재난의료는 동일한 기준으로 접근할 수 없다. 예컨대 지방의료원이나 적십자병원은 지역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지만, 재난의료와 같은 고위험·다영역 통합 치료 기능까지 수행하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 결과적으로, 기능별 특성화 병원 체계와 이를 뒷받침할 정책 인프라의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고 대표는 “이제는 ‘공공병상이 어디에 몇 개 있는가’보다는 ‘그 병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시대이다. 단순히 인프라를 전국화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재난대응 병상과 신속 전원체계, 연구개발과 교육 등 기능적 요소간 연계가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2026년 개원을 앞둔 국립소방병원은 단순한 의료시설 확충 이상의 정책적 상징성을 가진다. 경찰병원 역시 서울 외 지역에 대한 신축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으나, 군병원은 민간 개방이 제한적이어서 재난의료 공공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재난의료의 정책화”에 대해 강조한다. 단순한 시설 확충만으로는 부족하며, 병원의 정체성과 연구·교육·전달체계를 연계하는 융합형 전략이 요구된다는 것이 고 대표의 주장이다. 보훈의료체계가 유공자의 과거 상처를 보듬었다면, 이제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현재와 미래를 보듬을 공공의료가 필요하다. 이는 단지 특정 직군만을 위한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캡스톤브릿지 고주형 대표
공공의료, 이제는 재난의료 대응력을 키워야 할 때...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경찰종합신문
https://www.police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6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