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지방 현충시설 모충사 이야기

2편. 빗나간 모충사상...이원하와 청주 모충사

2022.01.28 | 조회 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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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1월 10일 당시 청주군 사주면 화흥리(현재의 청주시 모충동) 소재 모충사(謀忠社) 부지에 있는 충청병마절도사 홍재희(洪在熹, 1842~1895) 충혼비(忠魂碑) 앞에서 제사가 진행됐습니다.

제사는 조선총독부가 불멸의 애국옹이라 극찬한 이원하(李元夏)가 부회장으로 있는 모충회가 진행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모충회 회원과 관민 백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참석자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조선총독부가 임명한 박중양 당시 충북도지사였습니다.

 

엽기적 행각의 '모태친일파' 박중양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충북도시사를 지낸 친일파 거두 박중양. 창씨명은 호추시게요로 이토 히로부미의 양아들로 불렸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충북도시사를 지낸 친일파 거두 박중양. 창씨명은 호추시게요로 이토 히로부미의 양아들로 불렸다.

창씨명 호추 시게요(朴忠重陽) 박중양은 이토 히로부미의 양아들이라 불리며 친일에 앞장섰던 거물 친일파입니다.

박중양은 일제 치하에서 충남과 충북도지사를 지냈고 중추원 참의까지 지냈습니다. 19454월에는 일본 귀족원 칙선의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3.1운동이 벌어지자 자제단을 조직하여 운동의 확산을 막기도 했습니다.

그는 독립운동을 하다 변절한 친일인사가 아닌 태생부터 친일이었던 인물입니다.

박중양은 관비로 일본 유학을 하며 이토 히로부미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이토 히로부미의 부인이 물에 빠졌을 때 구해준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사건으로 이토 히로부미는 사례를 하려 했지만 박중양은 거부했습니다. 이후 이토 히로부미의 총애를 받은 그는 이토 히로부미의 양자라는 소문까지 났습니다.

이런 인연은 해방 후에도 이어져 박중양은 이토 히로부미를 이토 이라고 불렀습니다.

충북도지사 시절 박중양은 농번기에 길을 확장시키는가 하면 속리산 법주사 비구니를 겁탈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등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박중양은 일제 패망이후에도 독립운동가들이 잘나서 독립이 된것이 아니라 미군이 일본을 쳐서 우연히 독립된 것이며, 미국과 일본이 전쟁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독립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망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박중양은 195987세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천수를 누린 뼈속까지 친일인사였던 박중양. 그의 선정을 기록한 불망비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공주시 공산성에서 여전히 보호받고 있습니다.

 

명성황후와 함께 살해당한 충청 병마절도사 홍재희

모충사에 남아있는 충청 병마절도사를 지낸 홍재희의 영세불망비. 
모충사에 남아있는 충청 병마절도사를 지낸 홍재희의 영세불망비. 

이원하는 대한제국 진남영의 특무정교 출신의 군인이었습다. 진남영은 충의공 홍재희에 의해 설립됐습니다.

1887년 당시 충청 병마절도사 홍재희(洪在熹)는 병영의 청사를 창건하고 병사를 모집해 군사를 훈련시켰습니다. 이듬해인 1888년 진남영(鎭南營)의 영호가 하사됩니다.

홍재희는 이원하의 직속 상관이었습니다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양합니다.

1894년 갑오년 동학농민 전쟁 당시 왕실의 초토사가 돼 농민군을 진압하는 책임을 졌고, 이때 청나라의 군대를 끌어들여 일제가 조선침략을 첫발을 내딛게 했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습니다.

홍재희는 명성황후와 함께 빛을 보고 그와 함께 생의 마지막을 함께 했습니다.

홍재희는 무예별감(武藝別監)으로 무예청(武藝廳) 이라는 왕실 호위대 소속 일개 무사(武士)’였습니다.

그에게 출세의 기회가 온 것은 1882년 임오군란. 당시 반란을 일으킨 군사들은 별기군을 창설한 민겸호와 김보현을 죽인 뒤 명성황후를 죽이려 했습니다.

이때 궁녀로 변장한 무예별감 홍재희는 명성황후를 등에 업고 피신시켜 그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이후 충청병마절도사, 황실 호위부대인 장위영의 영관, 동학농민군을 제압하는 양호초토사로 승승장구했습니다. 홍재희는 나중에 이름을 홍계훈으로 개명했습니다.

18958월 당시 일본공사 미우라는 낭인을 동원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자행합니다. 이때 홍재희도 일본 낭인들에 맞서 싸우다 그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19231110일 청주 모충사의 제사는 이런 홍재희를 기리는 제사였던 것입니다.

모충사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진 이유

1923년 11월 14일 매일신보 기사. 기사에는 이원하가 부회장으로 있는 모충회가 박중양 충북도지사 등이 참여한 가운데 홍재희의 추모비를 다시 세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1923년 11월 14일 매일신보 기사. 기사에는 이원하가 부회장으로 있는 모충회가 박중양 충북도지사 등이 참여한 가운데 홍재희의 추모비를 다시 세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민원 동아역사연구소장이 작성한 논문 대한제국의 장충사업과 그 이념에 따르면 청주시 모충동에 있는 모충사는 일제강점기인 19148월에 세워졌습니다.

처음 세워진 장소는 모충동이 아니라 지금의 충북도청사 뒤에 있는 당산 북쪽이었습니다.

모충사는 1894년 갑오농민전쟁 때 목숨을 잃은 관군 73명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지어졌습니다.

모충회의 전신인 모충계가 주도했는데 모충계는 홍재희가 설립한 진남영 소속 군인들과 희생당한 관군의 유족들이 참여했습니다.

그렇게 유지되던 모충사는 일제에 의해 철거됩니다. 1923년 박중양이 지사로 있던 충북도와 일인들은 모충사를 허물고 그 자리에 일제 신사(神社)를 건립합니다.

그러자 모충회는 지금 서원대학교가 들어서 있는 청주군 사주면 화흥리(현 청주시 모충동)으로 모충사를 이전했습니다.

이들은 모충사를 이전하면서 땅에 파묻혔던 박재희의 영세불망비를 이곳으로 옮겨옵니다.

이런 사실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역할을 한 매일신보에 자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조선총독부와 충북도는 시구개정을 통해 각 지역의 읍성을 파괴했습니다. 매일신보의 기사를 풀어보면 홍재희의 영세불망비는 원래 청주읍성 근처에 있는데 시구개정을 이유로 청주읍성을 허물면서 비를 땅에 묻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날 제사는 홍재희의 충혼을 위로하는 자리였을까?

1894년 갑오동학농민전쟁 당시 목숨을 잃은 관군 73인인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청주 모충사 전경
1894년 갑오동학농민전쟁 당시 목숨을 잃은 관군 73인인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청주 모충사 전경

그렇다면 이원하가 부회장으로 있던 모충회가 진행한 192311월 제사는 과연 홍재희의 충혼을 위로한 걸까요?

모충회는 행사를 진행하면서 뼛속까지 친일파인 박중양 충북도지사를 불러들여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매일신보는 이날 행사를 두고 모충단이라는 것은 묻지 않아도 경성의 장충단처럼 왕사(王事)에 죽은 군인의 충혼을 치사하는 것이오.

그 충혼을 치사하며 단과 비를 유지 수호하는 것은 그 회원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거리로 족히 후대에 전할 말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원하와 모충회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원하는 이후 모충회장으로 있으면서 회원들과 함께 홍재희의 충혼비를 앞에 두고 일 황실을 향한 궁성요배 행사를 대대적으로 진행했습니다.

매일신보 192718일자 기사에서 확인됩니다. 기사는 모충회 회장으로 있는 이원하가 일 천황 요시히토의 죽음을 기리며 청주시 사직동 모충사에서 1백여 명과 함께 (궁성)요배를 했다고 전했습니다.

매일신보는 이원하와 모충회가 홍재희 비석을 세우고 이토 히로부미의 양아들로 불리는 박중양 충북도지사가 한 행사를 두고 이렇게 기사의 끝을 맺습니다.

상당산에 해가 떨어지고 무심천에 물소리 목매 칠 때 의지 없는 고혼은 홍 장군의 영혼을 중심으로 모충단과 충혼비가 서로 의탁하여 옛말을 하소연하면서 동고하던 친구의 따뜻한 정을 감사하며 영원히 청주를 진수하는 장성이 될 것이다.”


지역에 남아있는 수 많은 친일의 잔재들

이처럼 지역에는 아직도 수 많은 친일의 잔재들이 남아있습니다.

충북인뉴스는 오래전부터 이런 친일의 잔재들을 ‘비석이 가루가 될 때까지 잊지 말자’라는 시리즈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시리즈로 이동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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