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이야기

초원의 발효부엌 첫번째 편지

내일을 여는 발효 학교 이야기

2026.08.18 | 조회 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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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간 내일의 식탁이라는 단체에서 진행하는 내일을 여는 발효 학교라는 수업을 수강했다. 발효라는 넓고 무궁무진한 세계에서 본인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있어 좋았다. 수업을 들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나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잔뜩 메모했다. 수업의 첫날 가장 새롭게 와닿았던 것은 옹기와 장독대 이야기였다.

 

옹기, 장독대를 떠올리면 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식당을 하던 할머니 마당 한켠에 항상 놓여있었으나 아파트와 빌라로 이사를 가시며 창고 어딘가에 굴러다니던 모습. 시골에 가면 종종 보이지만 옹기 안을 슬쩍 들여다보면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거나 쿰쿰한 냄새가 나고 알록달록한 곰팡이들이 피어 도저히 먹을 없어 보이는 내용물이 들어있는 모습. 내게 장독은 정말 옛것에 고집 있는 사람이 아니면 굳이 쓰지 않는 물건이었다.

내일의 식탁 발효 수업 첫날 옹기에 관 이야기를 듣게되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옹기가 무척 지혜로운 물건이라는 것을. 흙으로 빚어진 옹기는 작은 모래 알갱이들 사이로 숨을 쉬어 발효를 원활히 되게 한다. 깨지지 않는다면 햇빛과 비바람에도 몇백 년은 끄떡없다. 깨진다면 토화현상이 빠르게 진행되어 다시 흙으로, 자연으로 돌아간다. 지역마다 옹기의 모양이 다른 것도 재미있다. 모양새에 대한 취향보단 환경의 영향이다. 추운 곳은 옹기의 입구가 넓고, 비교적 따뜻한 곳은 옹기의 입구가 좁다. 옹기란 냉장고가 없던 시절 음식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고민한 조상님 지혜의 총 집합체였던 것이다. 어떻게 우리 조상님들은 그것들을 알고 이런 요물을 만들었는지. 냉장고에 마구잡이로 모든 식재료를 집어넣는 현대인보다 훨씬 지혜롭게 느껴진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아파트에 장독대를 공간까지 설계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최근엔 도시에서 옹기를 보는 일은 정말 흔하지 않다. 대체 많은 옹기는  어디에 간 걸까? 장독대가 시대의 흐름에 자연스레 사라진 걸까 생각했다. 그러나 굉장히 의도적인 삭제 행위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충격이었다. 일제 강점기때 일본이 쇼유 제조공장을 만들어 간장을 없애려 하고, 간장을 쇼유로 획일화 시키려 했던 만행. 해방 쇼유공장을 받아 바꾸지 않고 간장이라는 이름으로 쇼유를 생산하고 있는 지금의 대기업들, 산업화를 위해 장독대를 옛것으로 취급하는 안티마케팅을 하거나 아파트 붕괴 사고의 책임을 장독대에 돌려버린 국가. 이러한 아픈 역사의 흐름속에서 집집마다 다른 미생물이 살았고 다양한 맛과 이야기가 담겨있었을 옹기들이 이제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 

다양한 맛을 잃어버렸고 잃어버리고 있는 지금 우리가 잃은 것은 단순히 맛 뿐일까? 우리는 맛 뿐만이 아니라 무엇을 잃고 있는걸까?

쇼유 조선간장 미소 된장 맛 비교 테이스팅 시간
쇼유 조선간장 미소 된장 맛 비교 테이스팅 시간

총 16가지의 장을 비교 해보는 시간. 일본 안에서도 한국 안에서도 다양한 스팩트럼의 장의 맛이 있다는 걸 혀로 감각했다. 짜고 복합적인 풍미를 가진 간장, 죽염으로 담가 유제품같은 치지한 느낌이 나는 된장, 살짝 산미가 있는 된장. 쇼유의 맛보다 한국 전통의 장의 맛이 더 낮설게 느껴졌다. 아마 나의 세대는 전통장으로 만든 한식을 거의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아닐까. 혀가 한국의 맛을 잘 느끼지 못하는게 아쉬웠다. 잃어버린 감각. 전통 장이 다시 활발해지기 위해선 그 맛을 먼저 알아봐야 할 텐데. 지금의 20대들은 그 맛을 잘 모르니 더욱 어려운 것 같다. 

같은 발효 조건에서 다른 쌀인 전통주 시음
같은 발효 조건에서 다른 쌀인 전통주 시음
나물 안주 + 약주와 탁주 시음
나물 안주 + 약주와 탁주 시음
실습중인 막걸리
실습중인 막걸리

발효 수업에서 가장 많이 시음한 것은 바로 술이었다. 전통주 양조장, 내추럴와인 양조장, 소주 수업 등등 술을 안 먹은 회차가 거의 없는 것 같고 늘 조금은 몽롱한 상태로 수업을 들었다(ㅋㅋ) 수업의 부작용은 감미료를 많이 첨가한 값싼 시중의 술을 못 먹겠다는 것.. 혀가 기나긴 발효가 만든 고급진 맛을 알아버렸다.

그러니 이제 돈을 아주 많이 벌거나 술을 만드는 수 밖에 없다.. 어떻게 쌀과 물 누룩만으로 이리 다양한 풍미와 맛을 내는지! 가장 기억에 남은 술은 수블가의 시다셔 약주이다. 화이트 와인같은 깔끔한 맛과 산미,  은은한 멜론같은 향이 느껴지는 술이었다. 이 약주를 나물과 페어링해서 먹으니 정말 감동의 맛이었다. 

 

생각해보면 처음 발효에 재미를 붙인 기억도 룸메이트와 막걸리를 만들면서다. 일본 워홀중 막걸리가 너무 먹고싶은데 맛 없어보이는 싸구려 막걸리만 판매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르쉐에서 딸기 도보로쿠를 마시게 되었는데 맛은 수제 막걸리와 굉장히 비슷하고 맛있었다. 그런데 소주잔 같은 작은 잔 사이즈에 무려 500엔을 하는 것이다! 챗 너무 비싸니 만들어봐야겠다 싶었다.

첫 막걸리 하지메짱
첫 막걸리 하지메짱

한국의 술은 쌀의 전분을 당으로 당화시키는 효소와 그 당을 알콜로 전환하는 효모, 유산 발효등이 동시에 이뤄진다. 이 모든 균들이 한국의 누룩엔 전부 산다. 그러나 일본의 코지에는 효소밖에 안 산다. 그렇다면 건포도를 물에 담궈 효모물을 만들고 코지와 요거트를 첨가하면 어떨까? 물, 찐밥, 코지, 건포도효모물, 요거트를 넣은 막걸리 실험이 시작됐다. 이름도 지어주고 따뜻하면 좋다길래 조끼도 입혀주고 매일 저어주니 이틀차 부터는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린다. 왠지 외로웠던 타지 생활에 미생물들의 존재감이 조금 든든하다. 5일차정도 되었을때 벌써 맛이 많이 시어져 발효 마무리. 넣어둔 쌀까지 같이 갈아버리고 그 자리에서 룸메이트와 조금씩 마셔보았다. 이거 술이 된 거 맞지? 산미는 강한데 단맛이 거의 없는 맛에 블루베리랑 같이 갈아보기도 하고 꿀을 넣어 먹어보기도 하다 결국 반 이상을 마셔버렸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니 우와! 우리가 진짜 술을 만들었어! 기쁜마음이 든다. 우리는 그 막걸리를 냉장고에 보관하며 두고두고 마셨다. 시간이 갈수록 숙성이 되서 그런지 점점 맛있어졌다. 강한 산미는 집술의 하나의 개성처럼 느껴졌다. 직접 만든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 만큼 행복한 일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의 포도로 내추럴와인을 파는 작은 알자스의 밭지도
한국의 포도로 내추럴와인을 파는 작은 알자스의 밭지도

발효수업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현장은 10년째 내추럴와인을 하고 있는 작은 알자스라는 곳이다. 한국산 포도로 내추럴와인을 만드는 곳인데 애초에 한국 포도는 당도가 높지 않아 와인을 만들어도 맛을 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심지어 효모도 설탕도 방부제도 따로 넣지 않는 내추럴 와인이라니! 심지어 퍼머컬쳐농법을 지향하고 있다니! 작은 알자스의 와인 맛은 처음 맛본 맛이었다. 신선하고 포도의 존재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맛. 알자스의 밭을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다양한 나무를 만날 수 있다. 처음 이름을 들어보는 여러 종류의 포도,  느티나무, 보리수나무, 사과나무, 밤나무, 수세미 등등 아직 큰 나무들은 아니었지만 여러 나무로 이뤄진 작은 숲을 걸으며 사람사는 사회도 이런 모양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양조장도 둘러보고 사장님의 이야기도 듣다보니 와인과 책을 안 살수 없었다. 버스로 돌아오는길 책을 읽으며 여러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한 마을에 양조장이 있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인 거야. 따뜻한 불씨를 가진 것과 같은 거야. 거기서 나온 한 병의 술은 그 마을의 모든 것을 봉인한 것과 같은 거지. 그 마을 언덕 땅의 성질을 이야기 하는 것이고, 포도가 자란 날들의 햇빛과 바람, 농부의 땀과 손길, 그에게 건넨 마을 사람들의 인사와 개 짖는소리, 그 모든 것이 들어 있어.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 43p

프랑스에 살면서 느낀 것은 이곳에는 각양각색 스타일의 사람, 각양각색의 생각을 가진 사람, 온갖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백 가지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는 것은 프랑스에 백 가지 맛이 다른 사과가 있기 때문일 거야."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 115p

 

여러 현장에 가고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건 모두 생각과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지역과 지역 사람들과 진하게 관계맺고 있다는 것이다. 어딘가에 이동하면서 발효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전통 발효를 이렇게 이야기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지역과 그곳에 사는 다양한 미생물과 식물, 동물과 새롭게 관계맺는 일이라고. 관계를 맺으며 변화를 관찰하는 일이라고. 그런 이야기들은 붕 떠있는 발을 다시 땅에 닿게 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세상의 선명도가 낮아지고 '나'만 존재하는 외로움이 들때, 오로지 소비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에게는 세상과 다르게 관계맺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 발효 문화 속에 있는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존재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변해가는 맛을 느끼고 맛을 통해 지금 '이곳'을 감각하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 속에.

앞으로도 다양한 맛을 느끼고 그 맛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경험을 많이 하고 싶다. 그런 이야기를 이 레터로 잘 기록해보려 한다.

 

지금 부엌에서는...

토마토 오픈 샌드위치
토마토 오픈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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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를 2% 소금에 절여 유산 발효했다. 피클국물과 올리브유에 절여둔 두부치즈를 바른 샤워도우빵에 유산발효한 토마토를 올려 샌드위치로 먹었다. 일반 토마토보다 감칠맛이 훨씬 좋았다! 여러분도 시도해보세요.

그리고

나물 공부를 해보고 싶어 나물 스터디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예를들어 하나의 나물을 정해 여러 시간대로 데쳐보고 여러 방식으로 무쳐서 먹어보는 것이다. 마지막엔 나물을 안주삼아 좋은 술도 나눠먹으면 좋을 것 같다 흐흐 관심 있는분 연락주세요😝

 

 

2026.08.18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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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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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가멜의 프로필 이미지

    가가멜

    1
    19일 전

    장독으로 시작해서 쇼유 이야기, 하지메짱, 나물 등등으로 이어지는 발효 이야기, 흥미진진하게 읽었어요. 리틀포레스트에서 나오는 것처럼 집에서 직접 막걸리 담가 먹는 것 해보고 싶어요. 시판과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기도 하고. 예원의 지경이 초원 저 지평선 끝까지 넓어지길 응원합니다! 덩달아 유익하고 재미난 이야기 함께 알게되어 기뻐요. 담주도 기대됩니다♡

    ㄴ 답글
  • 리코네의 프로필 이미지

    리코네

    1
    12일 전

    넘 재미있게 읽었어요. 예전에 저도 학교다닐때 발효를 참 좋아했고 그래서 전통주도 참 많이 만들었었는데 그때가 떠오르고요, 앞으로의 여정이 참으로 궁금합니다!! 응원!!

    ㄴ 답글
  • 나은의 프로필 이미지

    나은

    0
    12일 전

    와 신비로운 발효의 세계,,! 그리운 전통주 직접 만들어보기 작전으로 시작된 공부라니 전통주 러버로써 확 끌리고 공감됩니다🥹 기대하고 앞으로도 재밌게 읽어볼게요~~~ 연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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