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보내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두 번째 편지부터 대지각을 해버렸다. 왠지 첫 번째 편지만큼 정보를 전달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들었다. 그래서 여러 번 수정하다 그냥 기록하고 싶은 것을 기록하는 발효 일기 같은 형식으로 보내는 것으로 하자고 결심했다!
저번 주에는 교토에 다녀왔다. 교토는 생각 이상으로 뜨거웠고 좋아하는 가게들은 여름휴가를 떠나버렸다.. 나는 왠지 모르겠지만 그 땡볕을 몇 시간씩 걸어 다녔다. 겨울까지도 거뜬할 만큼의 더위를 먹고 돌아온 것 같다. 그래도 좋은 책을 많이 만났고 오래된 카페에서 멍때리는 시간은 무척 좋았다.

만난 책 중 한 권은 발효에 관한 책이다! 한국어판으로는 번역이 안 되어있어서 이 책을 만났을 때 무척 반가웠다. 이 책에는 저자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접한 발효음식과 이야기가 담겨있다.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의 장독대가 사라진 것처럼 다른 나라도 비슷한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멕시코에는 푸르케라는 아가베의 수액으로 만든 술이 있다. 주로 지역의 양조장이나 집에서 만들어지며 발효가 너무 빨리 진행되어 수출이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푸르케도 과거에 국가에서 위생적이지 않다는 마케팅을 하며 없애려고 했고 그 대신 유럽과 미국에서 생산된 맥주나 콜라 등을 광고했다고 한다. 주로 '위험하다, 비위생적이다' 라는 말이 생활 발효문화를 없애는데 쓰이는 것 같다.

또 다른 챕터에서는 포도농장을 하며 와인을 만들며 언더그라운드 마켓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왔다. UN의 허가제도가 생기며 원래 판매하던 와인을 팔지 못하게 된 이 농가는 입소문을 통해 허가받지 않은 마켓을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의 와인 산업도 판매하려면 정해진 도수에 맞춰 가공 해야해서 그것을 맞추기 위해 설탕을 더 넣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기억 난다. 발효가 공장화 되는 흐름에는 까다로운 허가 제도가 생기고 전문적인 장비나 공간이 없으면 팔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 할머니가 추어탕집을 하시면서 동동주를 직접 만들어 파셨는데 아마 그것은 허가받지 않고 하신 것 같다. 할머니는 이미 언더그라운드 마켓을 실현하고 계셨다!
책을 읽으며 역시 발효 문화는 사람 - 지역 - 식물과 진하게 관계맺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음식이 우리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이 우리는 음식과 그 맛을 만들어낸 지역을 때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일본에서 지낼 때 처음으로 혼자 김장을 했다. 김치는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발효의 산미가 없는 일본의 김치는 한국의 김치와 전혀 다른 음식처럼 느껴졌다. 일본에서 만난 스리랑카 친구는 지갑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늘 조금 더 비싸도 인도의 쌀을 사 먹었다. 어느 날은 그 친구가 나를 위해 카레를 만들어줬는데 너무 맛있어서 나는 감탄과 약간의 질투(내가 아무리 해도 도달되지 않는 맛)의 마음으로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만드냐고 물었다. 친구는 어깨를 으쓱하며 '나 스리랑카 사람이야 우린 이걸 거의 맨날 먹는다고' 말했다. 마치 레시피가 유전자에 새겨진 것처럼, 한국인의 김치볶음밥 같은 걸까? 내 안에 새겨진 맛의 감각과 기억은 마치 모국어 같다. 아무리 한국이 지긋지긋하고 벗어나고 싶어도 유산 발효된 구미가 당기는 신맛의 아삭한 그 새빨간 음식을 그리워할 때면 그 땅이 그리워지고 결국 나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느낀다.
지역의 음식 대신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는 음식이 우리의 주식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그것이 마치 세상을 사랑할 이유 하나가 줄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다.
술지게미로 빵 만들기
요즘은 빵을 만드는데 빠져 있다. 인스턴트 이스트가 아닌 발효종을 사용하면서부터 수분율이 높은 빵은 한 번도 겉모습도 내상도 맘에드는 빵을 구워본 적이 없다. 교토에 있을때부터 구웠건만 전혀 늘지 않고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고 알쏭달쏭하다. 매주 한두 번 정도 빵을 굽는데 그렇게 실패하면서도 자꾸 새로운 시도를 한다. 최근 막걸리를 짜고 남은 술지게미가 한가득 있어 그것으로 빵을 구웠다.

첫 번째 빵은 르방(효모와 여러 균이 사는 발효종) 을 아예 넣지 않고 술지게미만 넣고 만들어보았다. 술지게미에도 빵을 만드는 이스트가 살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잘 부풀지도 않고 엄청나게 돌덩이 같은 빵을 구워버렸다. 내가 구운 빵 중 가장 돌덩이 같았다... 버릴까 하다가 한 입 맛을 보니. 이빨이 아프긴 한데 아니! 이 감칠맛과 구수한 맛이 너무 맛있는 것이다! 한 번 더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이번엔 병에 술지게미, 물, 설탕을 넣고 며칠간 발효해 효모물을 만들었다. 수분의 반을 대체해 구워보았다. 그랬더니 엄청 잘 부풀었고 겉모습은 꽤나 먹음직스러운 빵이 탄생. 그러나 안은 여전히 밀도가 너무 높았다. 다음엔 발효종과 술지게미를 함께 넣어 술지게미는 향을 내는 용도로만 사용하려고 한다. 빵은 내가 하는 모든 것을 통틀어서 가장 많이 실패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꼬박 하루 걸려서 만든 결과물이 처참하니 하루종일 우울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뭔가 실패가 디폴트 값이 된 느낌이다. 돌덩이를 구워내고 다음엔 진짜 감을 잡을 것 같다며 또 반죽을 만든다.

최근에 뭔가 감을 조금씩 잡고 있는 기분이 든다. 아주 훌륭한 사워도우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이탈리아분이고 설명은 아주 심플하지만 포인트를 잘 알려준다. 몇 번 폴딩을 하세요, 발효를 몇 분 어느 온도에서 하세요 같이 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폴딩을 왜 해야하는지 1차나 2차 발효를 왜 해야하고 어느 상태에서 멈추냐에 따라 어떤 형태의 빵이 되는지 알려준다. 정답은 없고 먼저 어떤 빵을 만들고 싶은지 상상해 보라고 했다. 무엇보다 손의 감각으로 반죽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다. 어쩌면 내 실패의 원인은 폴딩을 몇 번 하고 얼마나 발효하는지에만 집착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은 관찰과 감각하기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사랑하는 교토의 빵집 두 곳
나는 원래 빵보다는 밥파였는데 빵을 이렇게 사랑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교토에서 너무 맛있는 빵을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다. 교토에는 인스턴트 이스트를 쓰지 않고 빵을 굽는 곳이 많았다. 그 중 좋아하는 두 곳을 추려보았다. 여러분도 교토에 가게되면 꼬옥 방문해 보았으면 좋겠다.
soma
soma는 교토 우지에 있는 빵집이다. 이 빵만을 위해서 우지에 갈 이유가 충분하다고 장담할 수 있다. 나는 정말 맛있는 것을 먹으면 요리사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싶어지는데 이 빵집의 빵을 처음 먹었을때 그런 마음이 들었다. 뭐랄까 뭐든게 딱 적당한 넘치는 것 없는 맛. 그날 먹은 오렌지 초코 캄빠뉴가 아직도 그립다. 설탕에 살짝 절인 오렌지 필링과 초코칩, 통밀이 섞인 구수한 빵의 조화가 완벽했다. 이곳은 오직 사케가스의 힘을 이용해 빵을 만든다. 사케가스는 사케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로 우리나라의 술지게미와 비슷하다. 맛은 달콤 쌉싸름하면서도 살짝 치즈스러운 느낌이 난다.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국에 넣어 끓여 먹거나 야채를 넣고 재워 짱아찌처럼 먹는다. 빵에 넣으면 감칠맛과 유제품같은 치지한 맛이 조금 난다. 이 빵집은 국산 유기농 쌀을 이용해 술을 빚는 사케 양조장과 계속 거래하고 있다. 그날 나는 매장에 앉아 먹었는데 레몬과 아름다운 꽃이 담긴 물, 정갈한 사각 꽃 쿠키도 함께 내주셨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빵집이다.
hamaguchi shoten

이곳은 내가 살았던 쉐어하우스의 주인분이 하는 빵집이다. 일주일에 딱 하루, 토요일만 문을 여는 빵집. 집밥같은 빵을 판다. 그 주에 집에 있는 과일이나 채소, 사케가스를 이용해 빵을 굽는데 레몬의 효모를 이용해 구운 빵은 은은한 레몬 향이 나고, 매실로 구운 빵은 매실 향이나는게 포인트이다. 그때 처음 알았다. 세상의 모든 재료를 이용해 빵을 구울 수 있다는걸. 이스트는 세상 어디에나 있으니까. 가끔 보면 유카상 눈애는 보이지 않는 효모가 보이는 것만 같다. 늘 토요일 아침엔 기분 좋은 빵냄새로 눈이 떠졌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일어나 피리부는 소년을 따라가는 아이들처럼 빵냄새를 따라 가다보면 어느새 빵집에서 몇 개의 빵을 고르고 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주방에서는...

술지개미 식초를 만들고 있다. 술지개미와 물 1대1 넣고 잘 넣어주다 초막이 생기면 건져내고 그뒤에 쭉 두면 식초가 된다고..! 지금은 술맛만 나는 상태다.

자몽청을 만드려고 껍질 깐 자몽에 설탕 50%를 넣었는데 설탕이 부족했는지 술이 되어가고 있다. 탄산이 생기고 부글부글한다. 조금 더 단맛이 빠지면 보틀에 넣어 술처럼 먹으려 한다 ㅋㅋ

보통 케러웨이 씨앗을 많이 넣어 만드는데 나는 큐민밖에 없어서 큐민을 넣었다. 맛이 아주 강할 것 같고 어떨지 궁금하다.

발효음식은 아니지만 토마토 마리네이드가 최근 너무 맛있어서 샤인머스캣으로도 해봤다. 샐러리랑 양파도 넣었다. 크림치즈 바른 빵위에 올려먹으면 진짜 맛있다.
여러분은 잘 지내셨나요? 여러분의 주방도 궁금하네요. 근황이나 요즘 맛있었던 음식이나 레시피가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담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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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치
너무 재밌다..!! 난 발효가 요리에 있어서 어떤 정점이라고 생각 해왔걸랑요 궁극의 기술..이런 느낌.. 그래서 일본가서 학교다니고 싶고 그랬는데 초원이 이렇게 열심히 배우고 또.공부하고 집에서 연구하느라 모습 보니까 완전 멋지고 부럽고 근사~~~~ 가정연구자는 못되지만 초원의 연구를 계속 재밌게 지켜보겠음...
초원
헐 이런 감동후기를 남갸주다니🥹 더 열시미 하구시퍼지네요 고마워요❤️ 관심잇음 나중에 장담구기 함께해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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