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나를 만든 경험
4월호의 주제는 '나를 만든 경험'입니다.
ㅇ
이번 4월 월간 커프레에는 6명의 에디터와 함께 4명의 객원 에디터가 함께 했습니다. 또한 좋은 사진을 전해주신 작가님도 계십니다.
목차
- 1. 프렌즈로 만든, 그리고 만들 - 예리
- 2. 삶, 그리고 일 - 민현
- 3. 어떤 경험이 나를 만들었나 - 녕
- 4. 청계산 중턱의 빨간 벌레 - 러브디카프
- 5. 시행착오 - 병규
- 6. 행복이란 무엇일까 - 릴리
- 7. 나를 만든 경험 - 케이
- 8. 이야기와 나 - 찰리
- 9. 물과 흙, 빛과 바람 - 소연
- 10. 일그러진 기질 - 토마스
- 11. 월간 효플리 - 효주
월간 효플리 링크
4월 월간 효플리 들으면서 읽으세요!
1.
프렌즈로 만든, 그리고 만들
예리
"인간의 마음은 백지와 같다. 어떠한 관념도 가지고 있지 않다.
지식의 재료인 관념은 오직 경험을 통해 써진다."존 로크
월간 커프레 에디터를 하겠다고 했다. 달마다 글을 발행해 내야 하니 일을 벌인 셈이다. 나의 백지를 채워줄 하나의 경험이겠거니 무모하지만 대담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내가 내 경험을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이번 달은 소재가 넘친다. 그래도 단연코 첫 글은 나와 커피에 관해 쓰기로 다짐했다. 내가 커프레에 오게 된 경험, 그래! 그 이야기가 딱이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커피란, 카페인을 몸에 집어넣을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 아무도 몰랐다. 주말마다 카페를 찾아 떠나고, 홈 카페를 위해 집을 바꾸고, 커프레에 글을 쓰게 될 줄. 이만큼 사랑하게 될 거라면 첫 커피가 뭐였는지, 어떤 원두였는지, 맛은 어땠는지 기록해 둘 걸…. 유치원 앨범처럼 몇 번을 꺼내보며 유난 떨었을 것이다.
다행히 프렌즈가 된 흐름은 빠짐없이 기억한다. 똑같이 후회하지 않으려면, 소중히 꺼내보려면 잘 적어두어야 한다. 특히나, 우연이 겹친 이 스토리는 전하기에도 좋다.
Montauk
출근길 우울한 조엘은 발렌타인 데이, 불현듯 몬탁행 기차를 탄다.
그리고 지워도 지워도 잊히지 않는 클레멘타인을 만난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서막이다.
그 종착지 이름을 딴 몬탁이라는 공간이 있다.
23년 추석, 가족과의 시간을 뒤로한 채 갑자기 몬탁으로 떠났다.
최애 영화 속 장소를 본떠 그랬을까 잘 모르겠다.
한창 유행하던 Anaerobic natural 프로세싱 원두.
탄산감이 느껴진다는 설명에 묘하게 끌려 주문한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결심했다.
아! 이 원두를 파는 로스터리는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가야겠다고.
PATH Roasters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서울역을 앞에 두고, 남산 타워를 뒤에 둔 작은 곳에 있었다. 메뉴는 보지도 않고 커피를 주문한다.원조의 맛을 꼭 봐야만 했다.커피를 한 모금, 두 모금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대화를 위한 공간, 고스란히 바 테이블에 녹아 있었다.
바 앞에 선 대표님은 망설임도 없이 주문하는 모습에 의아했다고 말한다.바에 앉은 나는 몬탁에서 놀래 찾아왔다고 답한다. 이 대화를 시작으로 2년째 나의 커피 방앗간이 되었다.
Lily
패스는 이름 따라 여러 사람이 지나간다. 언제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넘친다.
25년 1월, 급기야 Coffee Talk이 열린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멜버른의 커피 이야기. 주변에 드립커피를 알리던 때라, 다른 나라의 커피 세상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릴리, 그 꽃말과 같은 꿈의 시간을 보낸다.
항상 갈망하던 사람들은 만났다. 커피 얘기를 한 시간씩 나눠도 유난이라고 하지 않을 사람들.대화의 중심 릴리님은 이런 사람들이 모인 커프레를 소개한다. 그날은 모집 마지막 날이었고, 지원 마감이 4시간 남은 순간이었다.
귀가하는 버스에서 커피에 대한 열정을 뽑아낸다. 지원서 한가득 적어냈다. 그리고 난 커프레의 프렌즈가 된다.
이 글은 로크의 말 -마음은 백지고, 경험으로 써진다는- 로 시작했다. 경험이 소중한 나로서 참 공감되는 말이다. 밋밋했던 커피 생활에 써 내려간 커프레 여정이 참 사랑스럽다. 프렌즈로 만들 커피 생활도 기대된다.
그리고 앞으로는 월간 커프레에 하나씩 담아보기로 한다.
2.
삶, 그리고 일
민현
나를 만든 경험이라는 주제를 보자마자 떠오른 생각은 ‘그 많은 경험을 서술할 수 있을까?’였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부터 또렷한 기억까지. 지금의 나를 만들어온 경험을 주섬주섬 꺼내보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삶과 일에 대한 가치관을 만들어준 경험을 써 내려가 볼까 한다.
#1. 삶
내가 힘든 순간들은 제쳐두고 남이 힘들지 않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하는, 흔히 말하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 나의 20대는 나의 감정, 체력들은 무시하고 타인에게 집중했다.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구가 컸던 거겠지.
20대 후반에 접어들 무렵,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을 만났다. 고향을 떠나 허전하던 마음 한구석을 채워주듯 함께 있는 모든 순간이 즐겁기만 한.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마음을 내어주고 친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더욱 소중한 친구들이 생긴 거다. 일이 최우선이던 내 삶에 더 우선시되는 무언가가 생겨 꽤 들뜬 시간을 보낸 듯하다.
그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술자리. 그 누가 알았을까?
술잔을 기울이며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뒤바뀌어버릴 줄은.
친구가 마음에 둔 사람에게 ‘쟤 참 좋은 사람이야.’라는 나의 한마디는 술자리 안에서 퍼지고 퍼져 내 친구가 마치 그 사람에게 고백한 것처럼 웅성이기 시작했고, 친구는 나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험한 말을 쏟아내곤 나가버렸다. 그 당시에는 그 친구와 화해해야 한다는 생각에 앞뒤 상황 재지도 않고 연신 사과했지만, 친구들은 순식간에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언제 이렇게 울어봤나 싶을 만큼 많이 울며 마음을 다잡았던 그때의 기억.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 당시 함께 있던 한 친구가 미안하다며 연락을 해왔고, 그날의 상황을 전했다. 이미 술자리에서 내가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 옆에 앉아 즐거워하는 모습이 꼴 보기 싫다며 화가 나 있었고 내가 뭐라고 한지도 모른 채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는 모습에 그렇게 욕을 쏟아냈다고. 왜 그랬을까? 아, 이젠 상관없지 뭐. 그들은 얼마 되지 않아 다들 흩어졌다고 한다. 내부에서 갈등이 생겼다나. 물론, 그 당시 나와 함께 있어 준 친구는 여전히 적당한 거리를 두며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이 경험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남은 나를 쉽게 생각한다. 그러니 남이 아닌 나를 더 사랑하고 아껴주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당한 거리와 선이 없으면 분명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거리와 선. 늘 기억하자.
#2. 일
어릴 때부터 요리하는 사람들을 동경했다. 직접 하고 싶진 않지만, 그들의 열정을 엿보는 게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바리스타가 되고 나서 열정을 담아낸 결과물이 가지고 싶었고, 시그니처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마주한 라는 프로그램. 1시간 동안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그간 나의 작업은 우물 안 개구리의 소꿉장난이었음을 느꼈다. 말도 안 되는 재료로 말이 되는 요리를 만드는 프로그램.
정해진 시간 내에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이겨내며 만들어내는 메뉴들의 퀄리티 또한 남다른. 게다가 셰프와 셰프가 아닌 사람이 경쟁하는 모습이라니! 나도 셰프는 아니지만 커피로 요리할 수 있진 않을까? 라는 작은 희망과 용기가 생겼다. 커피로 요리하는 바리스타가 되어야겠다는 다짐하기에 충분했다. 익숙한 재료들을 조합하여 색다른 것을 만들어가자.
매번 정해진 재료 안에서 음료를 만들어내던 나에게 매우 큰 귀감이 된 경험. 한 잔의 음료로 바라보기만 했던 커피가 상상을 이뤄주는 하나의 재료로 보이기 시작했고, 무한한 확장을 해나갈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숨쉬는 생물이라면 숨이 멎기 전까지 굉장히 많은 경험을 한다. 그간 지나온 경험들로 인해 지금의 내가 있고, 지금의 경험들이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가는 건 분명하다. 어렵고 힘든 경험들은 지워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그런 경험을 거름으로 삼아 앞으로 마주할 여러 경험으로 인해 따뜻하고 긍정적인 에너지의 씨앗을 틔우는 사람이 되기를.
3.
어떤 경험이 나를 만들었나
녕
나를 만든 경험, 어떤 경험이 나를 만들었나 - 코어메모리 폴더를 열었다 닫았다, 앨범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아래서부터 위로 훑었다. 어떤 이야기를 할까, 뉴질랜드 워홀 얘기를 할까 산 넘어 산이었던 회사생활 그리고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해야하나, 아차차 제주살이도 있지 하다 이내 모두 접었다. 생각해보면 나를 만든 경험들은 거창한 것들이 아니었다. 다만, 나를 휩쓸고 지나간 것들이었지. 한바탕 휘저어지고 나면 가랑비에는 기꺼이 젖을 수 있는 배짱정도는 생겼다. ( 그런 배짱을 두고 내친구들은 나를 박다찢이라고 부른다, 박oo은 다 찢어•• ) 결국 나를 만들고 키운건 사건적인 경험이라기 보다는 버티고 지나온 시간의 축적이었다.
무언가 휩쓸때 먼 물결을 바라본다. 작고 사소하지만 큰 사건도 잊게하는 일상의 것들.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을 가져다 주는 건 아니지만 조금씩 힘을 모으게 해주는 것들. 그렇게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내게도 빛이 비춘다. 그럼 반틈 자라고 또 자라고, 나답게 나답게
4.
청계산 중턱의 빨간 벌레
러브디카프
어제 간만에 등산을 했어요. 오랜만이기도 하고 자의(?)로 선택한 등산이 아니었는지라 하기 싫은 마음을 한참을 다독이고 나서야 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일단 산에 오르기 시작하니 중간에 하산하고 않고 끝까지 오르고 싶더군요. 이왕 산에 올랐으면 정상을 찍고 내려와야 한다는, 스스로 만들어 낸 강박이 마음 속에 가득했습니다.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렇게 순탄치 않은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언제 정상에 다다를 수 있을지 조금 걷다가 멈춰 서서 위를 한 번 쳐다보고, 또 다시 걷다가 멈춰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나 확인하기를 반복했을 텐데요. 어제는 좀 달랐습니다. 그냥 걷기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거든요. 돌부리에 넘어지진 않을지 길을 살피고 보폭은 적당한지 제 발과 앞 사람과의 거리를 체크했지요. 오래 걸어야 할 테니 호흡에 집중하면서 코로 숨을 쉬고 입으로 내뱉는 한 숨, 한 숨에 공을 들였습니다.
그러다 땅 위에 난 이름 모를 식물의 잎사귀 모양이 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고 꼼지락거리며 사람의 발걸음을 피해 제 갈 길을 가는 신기한 벌레도 발견했어요. 평소 같으면 "꽥!"하고 소리를 지르며 질색했을 벌레지만 등산 중에 만나서 였을까요? 괜스레 동지같이 느껴지고 측은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힘내, 이 녀석아! 사람들 발 잘 피하고, 끝까지 살아 남아라!'하고 속으로 응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깨달은 것은 산을 오르는 게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꽤나 재미있다는 것이었어요. 숨이 차고 언제 다다를지 몰라 조급하고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나만의 속도에 집중하고 걸으면서 때때로 만나는 주위의 것에도 관심을 가지니 힘들기만 할 줄 알았던 이 여정에 즐거운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먼저 갈게요"라며 나를 휙 지나치는 사람들도 많고, 나보다 일찍이 출발했던 사람을 아주 가끔 내가 지나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러나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와 함께 이 길을 가는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과 우리 모두 각자 다른 속도로 가지만 같은 곳에서 만난다는 것이었어요. 이 사실이 저에게 큰 위로도 되었습니다.
등산하면서 느낀 바를 우리 인생에 적용한다면 제가 너무 오버하는 걸까요?
또 어딘가에서 힘들다며 주저 앉고 이번 생을 글렀다고 후생을 도모하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위기의 순간에, 또는 지루한 여정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그리고 꽤나 즐겁게 일어설 수 있는 무언가를 얻은 것 같았습니다. 어제 제가 느꼈던, 많은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실 뻔하디 뻔한 순간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치열하게 버텼을 지난 한 주,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는 주변 풍경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지며 나만의 속도로 걸어가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5.
시행착오
병규
내가 커피를 처음 만난 건 아마 17살 즈음이었다. 그때의 나는 커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커피’라는 음료를 마시는 것이었을 뿐, 그 이면에 있는 복잡한 과정이나 미묘한 맛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의 커피는 말 그대로 ‘그날그날’이었다. 무엇을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냥 팔팔 끓인 수돗물에 맞지 않는 필터를 억지로 끼워 넣고, 당시 구식이었던 핸드그라인더로 원두를 갈아 내린 커피였다. 그때의 맛이 매번 다르고 뭔가 쓴 맛만이 났지만, 그 맛을 나는 그냥 커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커피에 대해 점차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시행착오였다. 나는 여러 번 실패하면서 그 원인들을 하나씩 파악해 나갔다. 그러던 중, 내가 처음 커피를 배운 카페가 떠오른다. 그 카페는 집 뒤에 있는 오래된 곳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커피 내리는 방식이 그리 체계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카페에서 커피를 배우고 경험하면서, 나는 어느 정도 커피에 대한 이해를 쌓을 수 있었다. 비록 그때는 정확한 기술이나 이론을 알지 못했지만, 그때의 경험이 내가 커피에 대한 관심을 더 키울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이후, 나는 커피를 좀 더 깊이 배우고 싶어서 다양한 커피 문화와 사람들을 접하기 시작했다. 커프레나 다른 모임들을 찾아다니며, 커피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내가 커피를 더 잘 내리기 위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커피를 완벽하게 내린다고 자신할 수 없다. 지금도 내 커피의 기준은 계속해서 변하고, 아직도 많은 실험과 배움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좋은 커피를 내리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연구하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다. 그 커피가 잘 내려지기 위한 요소들이 있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그 커피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종종 간과된다. 나 또한 처음에는 그저 결과에만 집중했지만, 이제는 그 과정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때의 '시행착오'들이 나를 조금씩 성장시키고, 더 나은 커피를 내릴 수 있게 도와줬다.
그래서 이제는 완벽한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있냐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때때로 커피 맛이 별로 좋지 못한 경우도 있고, 새로운 추출 방식이 내 눈에 들어올 때도 있다. 그런 걸로 봤을 때 난 아직도 시행착오 중이다.
하지만 이 시행착오가 마냥 어렵거나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직접 해보면서, 어떤 것이 더 좋고 나쁘고를 가려보고, 내게 적합한지 아닌지를 전부 경험해보는 것. 이 과정 자체가 재밌고 더 나아질 내 커피 생활의 기대감으로 찬 시행착오는 참 즐겁다. 앞으로는 커피와 관련해서 또 어떤 시행착오를 경험해볼 지 기대된다.
6.
행복이란 무엇일까
릴리
행복이란 무엇일까?
돈이 많아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비싼 명품을 사고,
해외여행을 자주 다녀야 행복한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런 행위들을 반복한다 해도, 마치 구멍 난 장독대에 물을 채우려는 것처럼 결코 채워지지 않는 허망함에 빠질지도 모른다. 자극적이고 눈에 보이는 행복은 금세 싫증이 나고, 우리는 늘 더 크고 강한 자극을 찾아 헤매게 된다.
바쁘고 치열한 현대 사회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고, 꺼지지 않는 모닥불 같은 행복을 찾기 위해 나는 시작했다. 일상 속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소한 방법들을 하나씩 시도해보기로. 그 과정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 소소한 네 가지 방법을 소개해 본다.
<릴리의 소소한 행복 습관 4가지>
1.아침 운동
출근 전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면 자존감이 높아진다. 힘들고 피곤해도 끝까지 해냈다는 성취감, 마지막 1분, 마지막 1세트를 버티고 완수했다는 경험은 지금 내가 고민하는 다른 문제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된다.
2. 출근길 짧은 독서
1시간 정도 걸리는 출근길, 핸드폰을 붙잡고 릴스나 쇼츠를 보며 도파민을 충족하는 대신, 짧은 독서를 해보자. 항상 보내야만 하는 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가치 있게 활용하는 것. 짧은 글이라도 집중해서 읽으면 머릿속이 정리되고 하루를 차분하게 시작할 수 있다.
3. 점심시간 후 산책 또는 나를 위한 커피 한 잔
아무리 바쁜 하루라도 20분, 짧게는 10분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보자. 이 시간만큼은 업무에서 벗어나 오로지 휴식에 집중하기. 짧은 휴식이 주는 여유로움은 오히려 업무의 효율성을 높여 준다.
4. 고속터미널 꽃시장 다녀오기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에 끌린다고 한다. 고속터미널 도매 꽃시장에서 저렴하게 꽃을 사와 꽃병에 꽂아 보자. 단돈 만 원만 가져가도 여러 송이의 꽃을 구입할 수 있다! 나의 시선이 자주 머무는 집과 일터에 꽃을 두면,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마음을 정화해 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맑아지고, 언행이 부드러워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7.
나를 만든 경험
케이
안녕하세요. 케이입니다. 글을 작성하기 전에 월간 커프레의 한 편에 글을 기고할 수 있게 해주신 운영진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주제를 보자마자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글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여 원하는 결과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는 동안에 나를 더 깊게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를 모르는 분들이 계셔서 제 소개를 하자면 저는 카페 창업을 위해 10여 년간 준비한 사람입니다. 4년 전쯤엔 SNS의 중요성을 깨닫고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사진에 흥미가 생겨 지금은 스튜디오를 준비 중입니다. 이 과정을 설명해 드려도 이번 주제와 너무 잘 맞을 것 같지만 그보단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아요.
저는 INTJ입니다. 생각보다 낯을 많이 가리고 상상력이 많으며 이성적이며 계획형이죠. 시간이 지나면서 가끔은 감성적이고 무계획 형이 될 수도 있지만 앞에 두 가지, 낯을 가리고 상상력이 많은 점은 바뀌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가 ‘나를 만든 경험’의 결과물인 셈이죠.
저는 경험은 많으면 많다고 보는 주의입니다. 도둑질과 살생을 빼면 뭐든 해보라는 주의에요. 제가 이런 성격이 된 데에는 어릴 적 경험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은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부모님은 아주 어려서부터 맞벌이하셨고 덕분에 이사도 잦은 편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사주신 자전거를 도난당하거나 아버지가 사주신 장난감을 동네 형들에게 빼앗긴 기억들, 문방구 오락실에서 게임을 구경하느라 유치원을 못 간 이야기는 제 기억이라기보단 부모님의 기억에 가깝습니다.
제가 기억나는 어린 시절은 게임에서 사기를 당하거나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 부정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잦은 이사가 만들어낸 소심한 성격 때문이었을 테지요. 또한 이에 따라 사람을 사귈 땐 거리감을 두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입니다. 대신 소수의 사람이라도 친하다고 느꼈을 땐 가족처럼 대하는 편이었는데 이 또한 사회생활을 통해 또 한 번 바뀌게 됩니다. 나는 친하다고 느꼈던 감정이 상대방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죠. 그 뒤론 사람을 사귈 때 특정 거리 이상으로 가깝게 두지 않습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유지되는 제 성격 중 하나에요. (그래서 그런가 커프레의 슬로건이 참 편하게 와닿긴 합니다)
앞서 설명해 드렸지만, 저희 부모님은 맞벌이하셨어요.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어머니가 인형 눈알을 붙이는 일을 하신 것과 미싱 공장에서 일을 하셨던 것이 떠오릅니다. 덕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게임에 빠져 살았어요. 3살 터울의 사촌 형이 가지고 놀던 게임보이를 물려받아 게임팩에 바람을 후후 불어가며 게임을 하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그때 하던 첫 게임이 마리오였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의 상상력은 게임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게임 세상을 보며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머릿속으로 상상했어요. 길을 걷는 중에도 머릿속으로 게임이나 소설 내용을 생각한 적도 많았죠.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유독 만들기와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김영만 선생님의 만들기 프로그램을 보며 따라 하기도 하고 여름방학 숙제로 공작을 해간 적도 있었어요. 물 로켓 대회나 고무 동력 비행기, 필름 통으로 만드는 차, 같은 것도 떠오릅니다.
앞서 설명해 드린 두 가지 성격은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에 가장 잘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저의 경우는 더욱이 말이죠. 그래서 이번에는 최근의 경험들로 인해 바뀐 뒤에 두 가지 성격에 대해서도 말해볼까 합니다.
저는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편입니다. 특히 특정 감정에 대해선 무감각한 편이었어요. 남자 형제에 부모님 두 분도 무뚝뚝한 편이라 더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4년 전부터 사진을 배우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한 뒤론 꽤 감성적으로 바뀌고 있어요. (작년에는 인사이드 아웃2를 보면서 혼자 눈물을 훔쳤는데 옆에서 같이 보던 아내가 왜 우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사진을 찍다 보면 자신의 감정이 표출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런 사진들을 회고하면서 성격이 변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저는 어려서부터 계획적인 편이었습니다. 무엇을 할 땐 무조건 일정 계획을 짜는 편이에요. 이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가족 여행으로 어딘가를 갈 때면 분주하게 움직이며 짐을 챙기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죠. 특히나 일이 계획 때로 풀리지 않았을 때 화를 내는 모습까지 똑 닮았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무언가 일이 잘 안 풀렸을 때 격한 감정을 드러나는 종종 있었는데 이에 따라 주변 사람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 준 적도 많았습니다. 저를 반추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이러한 성격은 제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반성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덕분에 계획이 틀어져도 크게 동요하는 일이 줄어들었고 성격도 조금은 순하게 바뀌었어요.
이처럼 경험은 사람을 만들고 또 바꾸기도 합니다. 제가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경험 덕분이에요. 특히 저는 소비의 역사를 추천합니다. 소비와 경험을 착각하지 말라고 하죠. 하지만 저는 소비 또한 다른 의미의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구매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경험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는 바꿔 말하면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내부자로서 일하는 동안엔 소비자가 얼마나 만족하는지를 알 방법이 없습니다. 내가 손님으로 여러 카페를 돌아다니고 경험하고 좋았던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추려내는 과정 또한 경험이라 할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카페를 차리기 위해 돌아다닌 4년간의 카페 투어 또한 저에게 값진 경험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만든 경험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경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보는 편입니다.제가 추구하는 과정주의와도 맞물려 있어요. 현시대는 과정보단 결과를 중시하여 확실한 보상이 없으면 시도하지 않는 기획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지만 기획을 통해 실패하고 또한 보완하여 성장할 수 있는 법이죠. 그러한 면에서 저는 보상이 불투명할지라도 우선 과정을 즐기는 자세로 계속 시도해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8.
이야기와 나
찰리
적은 만남이었지만, 저에 대해 조금이나마 상상해보셨나요? 아프리카를 들락거리고, 커피에 중독되어 괴로워하다가 또 커피에 위로받아 푸릇푸릇해지는 어떤 사람을, 각자의 이야기로 떠올려본적 있나요?
커프레 분들이 상상한 저는 어떤 형태인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를 "모든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스페셜티 커피쟁이들이 커피에 담긴 이야기를 사랑하듯, 항상 그래왔듯이요. 산지는 어떠한 풍경일까? 가공은 어떻게 다를까? 어떤 사연이 담긴 농장일까? 이러한 이야기들은 말하지 않아도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담장을 조금 넘어… 저는 커피를 로스팅하고 추출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탐하고 싶은 욕망이 불타오릅니다. 특히 저는 마이크로 로스터 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더 애틋합니다. 피를 나누진 않았지만, 기쁨과 커피를 나누었고 또 무료함도 함께 나눴죠.
스페셜티 커피를 처음 만난 저는 집 주변 골목골목을 쏘다녔습니다. 익숙했던 길이 마치 아프리카의 평원 같았고, 저는 숨은 카페들을 사냥하는 사냥꾼이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세 곳의 로스터리는 제 삶을 완전히 푸릇푸릇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진 것은 열정뿐이어서, 매일매일 사장님들의 커피 이야기를 들으러 발길을 옮겼고, 점점 커피가 아닌 서로의 안부를 묻기 위해 방문하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안녕하세요~"라는 사장님의 따뜻한 인사가 "어~ 왔어"로 바뀐 순간, 이미 제 머릿속에는 수많은 커피 이야기가 살아 숨 쉬고 있었죠.
함박눈이 오는 날 함께 눈을 쓸며 커피를 마시고,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는 말하지 않아도 달려가 배수로 복구를 돕기도 했습니다. 경사가 있는 날에는 축하를 위해 방문하기도 했었죠. 그렇게 서로 다른 로스터리들이 모여 새벽까지 커피와 이야기를 나누던 하루가 떠오릅니다.
만약 혼자 커피를 공부했다면, 이토록 기쁘게 그리고 끈질기게 나아갈 수 있었을까요? 이러한 특별한 경험들은 우리 모두에게도 너무나 쉽게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운이 아니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지금은 이러한 소규모 로스터리들을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한 대학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아마 졸업 이후의 인생도 비슷하겠죠. 커피 산지의 촉촉하지만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듣고, 작은 로스터리의 개성 있고 단단한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요? 혹은 나를 구성하던 이야기들을 덮을 새로운 파도를 목격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 어느 것이든 기대되는 내일이네요!
9.
물과 흙, 빛과 바람
소연
차와 커피는 자라난 지역의 고도에 따라 왜 맛이 달라질까요. 같은 감자인데 강원도에서 자란 것과 제주에서 자란 감자는 무엇이 다를까요.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다 보면 결국 그 재료의 생애까지 살피게 되는 것 같 습니다. 그렇게 작물들이 자라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요. 그것은 커피, 차, 술과 같은 음료이든 음식에 사용되는 재료들이든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흔히 떼루아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곤 하죠. 작물이 자라며 마주했던 기후와 토양, 지형, 재배 방식과 같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 작물의 향과 맛과 물성을 만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만든 물과 흙, 빛과 바람은 무엇이었을까요.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영향을 받아온 수많은 삶의 요소 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보다 선택할 수 없었던 것들이 더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겪어온 각자의 경험들이 어떠하든, 지금의 나를 인정하는 것은 나를 만들어온 여정을 인정해주는 것 이기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이 글을 통해 건네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라 날 것이라는 겁니다. 나를 만든 경험만큼 중요한 앞으로의 나를 만드는 경험이요.
‘나를 기르는 일’. 외부에서 일어나는 바쁜 흐름에 떠밀려만 가다가 모든 것을 멈추고, 내부로 시선을 돌려 몸과 마음을 고민하게 되었던 어떤 시기에 떠올린 문장이었습니다. 일을 하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좋은 것이든 해로운 것이든 선택하는 모든 것들이 그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그 전까지는 ‘나는 다 자랐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해왔던 것 같습니다. 일의 능력이나 인격적으로 더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와 별개로 아이를 기르듯 자라나는 것은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그렇게 다 자란 어른이 된 것만 같던 어떤 시점은 오히려 철저히 스스로를 길러내야하는 날들의 시작일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를 잘 알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깨닫고, 그에 맞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물과 흙, 빛과 바람을 스스로에게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축축해진 마음을 보송하게 할 수 있는 것, 지쳐 있는 일상 속에 양분이 될 수 있는 것, 단단한 훈련의 마음이 필요할 때와 다정한 휴식이 필요한 때를 아는 것. 그렇게 자신을 헤 아리고 이해하며, 내게 맞는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만큼, 혹은 몇 년을 그렇게 나를 더 키우다 보면 그 때는 또 다른 나를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요.
가장 먼 타인처럼 스스로를 대하게 되던 날, 나를 기른 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밥을 지어먹었던 날들이 있습니다. 바쁜 흐름 속에서도 마음을 다해 끼니와 휴식을 챙기고자 했던 시절, 든든한 메뉴가 되어주었던 낫또를 떠올렸습니다. 냉장고에 낫또 몇 팩이 있으면 곳간이 가득한 사람처럼 괜스레 마음이 편했달까요. 당시에는 계란과 채 소를 넣어 낫또 비빔밥을 해먹었던 적이 많은데요. 요즘 들어 자주 해먹고 있는 낫또 볼의 레시피를 준비했습니다. 미리 밑준비를 해두고 조리가 아닌 조립만 하면 만들 수 있는 샌드위치형 밥 메뉴! 낫또는 호불호가 갈리는 식품이 지만, 좋아하는 분이라면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도 빠르고 건강하게 해먹을 수 있는 든든한 메뉴랍니다.
10.
일그러진 기질
토마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내 안에는 고쳐지지 않는 한 가지 기질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무언가를 마주하면, 그것이 온전히 이해될 때까지 철저히 분석하려는 성향을 지녔다. 이 기질은 단순히 배달 주문 시 1점부터 시작하는 리뷰를 살펴보는 습관에서부터, 커피의 로스팅과 생두의 품질을 따져내는 예민함, 폭로기사 속 오류의 세밀한 파고들기, 심지어 조직 내 구조적 문제를 짚어내는 것에 이르기까지 내 삶의 모든 장면에 스며들어 있다. 때론 그러한 세심함이 빛을 발하기도 하겠지만, 일상의 모든 순간에 이를 적용하다 보니 그 에너지 소모는 때때로 나를 지치게 하기도 한다.
이런 기질은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청소년기와 20대 초반의 나는 사람들의 작은 빈틈이 유독 선명하게 보였다. 순진하기 그지없는 마음에, 그 빈틈을 채워주어야겠다는 철없는 오지랖을 부리곤 했다. 내게는 그저 쉽게 메울 수 있는 허점으로 다가왔기에, 그들도 쉽게 메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주위의 반응은 내 의도와는 달리, “네가 누구냐”고 묻는 듯 날카롭게 돌아왔다. 결국 나는 많은 이들이 자신을 남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며, 스스로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현실을 자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동안 인간관계에 큰 환멸을 느끼며,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나는 눈에 띄게 나타나는 병적 증상을 완화하고자 정신과 상담 치료를 받았었다. 치료 과정 중, 나보다 훨씬 다양한 인간군상을 마주해온 의사가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말하길, 사람은 자신 앞에 놓인 것에만 온 힘을 다해 집착하며 살아가고, 자신의 약점이 드러난 것을 부끄러워하며, 그것을 보완하려 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변명으로 감추려 애쓴다는 것이다.
상담은 약 3개월간 이어졌고, 그 결론은 한 마디로 정리되었다. ‘내가 이 추악한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어느정도 규격화된 사회는 각자만의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가령 초등학교 때 중앙 계단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정해진 학칙이나, 선생님 전용 화장실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그러한 규칙들이 단지 ‘그렇게 해왔다’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비효율적이며 최적화되지 않은 법칙에 집착하고 고루하는 게으름을 납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개선할 의지조차 없는 게으름 속에서 보이지 않는 악취가 풍겨왔다.
물론, 그렇게 혹평하며 사람을 평가하고 재단질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쉽지만 사람에게 틀림은 존재한다. 그렇기에 법이 만들어지고, 철학이 존재하며, 도덕과 윤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성선설과 성악설 모두 결국 인간은 어떻게 이리 악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며, 악해지지 않기 위해 자아를 면밀히 성찰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프로이트는 성격발달에 대해서 결여된 것들은 의식화 과정을 통해 채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리차드 도킨슨은 자연선택적인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 개체 차원에서는 충분히 이타적인 행위를 선택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이 모든 철학과 이론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 인간 본연의 틀린 점을 수정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이 참된 개선의 노력을 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견딜 수가 없었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이 기질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 역시 나의 일그러진 틀린 점 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이제는 사람을 빠르게 파악하는 시선이 생겼고, 나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만한 이들과의 거리를 조절하고 있다. 발생할 수 있는 인생 오류 발생 비율을 줄이는 것이다. 차라리, 나를 아껴주는 이들에게 내게 남은 애정을 아낌없이 나누고 더욱 큰 보답을 하고자 한다. 긍정적인 생각만 하고 살기에도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다. 여전히 일그러져있는 기질이지만 내 주변을 챙기기도 어려운 현재는 이기적인 이타심으로 행복하게 채워나가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다.
11.
월간 효플리
효주
4월의 객원 에디터
- 케이 : 월간 커프레에 2회 연속
- 토마스 : 좋은 경!
- 민현 : 콩 볶는 대.
- 러브디카프 : 커프레, 막내
에디터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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