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는 삶의 지경을 넓히고
규율은 삶의 깊이를 더한다.
요즘의 생각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한때는 재미와 규율은 상반된 것이라 생각했던 때가 있습니다.
둘은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겼던 것이죠.
어감상, 느낌상 이 둘은 그렇습니다.
규율은 억압의 느낌이 강하고
재미는 자유의 느낌이 강해서
상충되는 개념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꼭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느끼기 마련입니다.
재미와 즐거움은 금방 휘발되거나
자극의 강도를 높여야만 하는 굴레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규율이라는 것은 정반대입니다.
반복되고 규칙적인 것들은 어쩐지 지루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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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정답이라는 것은 없지만
저는 삶을 진공상태에 두는 것은
어쩌면 죽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떠한 상태의 머무름은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유지하기 위한 삶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도 의문입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고,
우린 그 속에서 삶이라는 것과
죽음이라는 결과를 맞이합니다.
그 과정에서 노화와 쇠락을 경험하고
이전 같지 않은 몸과 환경, 관계를 경험하며
마음과 세계관의 변화 역시 경험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에는 실제적 성장과 함께
사고의 확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춘기라는 시기는 사고의 확장에 겪는 혼란의 시기죠.
그리고 일정 수준이 되면 그때부터는
실제 세계의 확장이 일어납니다.
대학과 직장으로, 점점 세계가 넓어지며 자유의 영역이 확대됩니다.
어릴 때는 고민해야 했던 야식 같은 것들을
거리낌 없이 사 먹을 수 있는 때가 되면
진정한 어른이 된 것 같은 작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잠깐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 것인지,
우리는 쉽게 경험하고 접하게 됩니다.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신체적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런 것들이 불편함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쯤부터 우리의 인생은
확장이 아닌 보호와 유지에 집중하게 되고
우리의 생각 역시 그렇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자유를 외치던 사람도 규율을 중시하게 되고
기존의 틀을 깨는 것을 주장하던 사람도
점점 기존의 틀 안에서 작은 변화를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사람은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런 상태는
자신을 진공상태에 익숙하게 만드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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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저는 사람이 늘, 언제나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제게 선생님과 같았으나 지금은 작고하신 (실제로 뵌 적은 없습니다)
이어령 선생님, 류이치 사카모토, 박서보 화가님과 같은 분들은
자신의 삶이 마치고, 숨이 끊어지는 모든 순간까지 그런 삶을 살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듬으며 삶을 마감했고,
자신의 시간을 다듬으며 삶을 마감했고,
자신의 감각을 다듬으며 삶을 마감했습니다.
쇠퇴함과 더불어 살았고,
암과 더불어 살았던 그들은
자신이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움직였고 성장했습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사람은 늘, 언제나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몸의 쇠약함과 노쇠함이란 것은 어쩌면
마냥 슬퍼하기만 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저는 감히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미처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며
에너지의 소진이 빠른 만큼이나
효율적인 삶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몸의 연약할 때 찾아오는 통찰과,
천천히 걷게 되었을 때 오는 성찰 같은 것들이
그때가 되어 자리를 잡고 찾아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젊고, 힘이 넘치던 때와는 다른,
이때에는 할 수 없을 것들을
그때에는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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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모두가 다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대개 젊은 시절에 재미를 쫓던 사람은
나이를 들어 여전히 재미를 쫓고,
젊은 시절에 규율을 쫓던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규율을 쫓습니다.
우리는 전자를
나이를 헛먹은 어른이라 하고
후자를 꼰대라 지칭하곤 합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 많은 경우
그냥 꼰대가 되기는 합니다만.
(저 역시 그렇게 될 것이고
거부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나이를 헛먹은 꼰대가 될 것이냐
꼬장꼬장한 꼰대가 될 것이냐의 차이는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간혹, 인생과 삶의 그릇이 넓어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한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을 이해하며, 이해하기 위해
규율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분들을 시대의 어른이라 부르거나
선생님이라 부르곤 합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 중에 갑자기 그런 사람이 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젊은 시절의 선택들이 쌓이고 쌓여
그런 어른이 되게 했을 것이고,
그 어른에게 그것들은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꾸미거나 만들어낼 필요 없는 피부 같은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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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는 삶의 지경을 넓히고
규율은 삶의 깊이를 더한다.
젊은 시절에,
재미를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이것저것, 많은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지속해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것들의 참 맛과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아쉬운 시간들의 연속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늘 무언가 아쉽고,
늘 무언가 부족한 상태를 경험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재미와 함께
규율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를 깊이 알고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하고
하기로 했기 때문에 하는 무식한 때가 필요합니다.
무엇이든 늘 재밌고 즐거운 때는 없기에,
그 순간을 견뎌내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스스로와 정한 약속이자
책임감일 것입니다.
그 순간순간은 아주 괴롭고
대체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은 때이며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수히 많이 생각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지내고
아주 조금씩 한 발을 떼보고
하기로 했던 일을 하고 나면
우리는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지키지 않아 다행이었다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른다 하더라도
자신은 분명히 알고 있기에
그 대미지가 온전히
자신에게 남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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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정은 늘 요동칩니다.
이렇게도 하고 저렇기도 하죠.
감정 자체에 나쁘거나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냥 그런 것이죠.
그래서 감정에 너무 과한 공감은
때때로 위험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감정에겐 공감보다 이해가
조금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결정적인 것인지에 관한 이해 말입니다.
감정은 많은 경우 휘발성이 강합니다.
불타올랐다 금방 사그라들지요.
이를테면 불꽃같은 것입니다.
반면에 규율은 두꺼운 나무 같은 것입니다.
쉽게 불붙지 않지만,
불이 붙었을 때는 오래 지속되며
오히려 불꽃을 더욱 타오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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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는 삶의 지경을 넓히고
규율은 삶의 깊이를 더한다.
요즘의 생각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삶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저는 우리가 조금 더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
했을 때의 삶의 만족도를 상당히 높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굳이 무언가를 따르지 않아도
얼마든지 평생을 살 수 있습니다.
재미가 없어도, 규율을 지키지 않아도
문제 될 것은 없지요.
다만, 자신이 멋있다 생각하는 어른을 떠올려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반면 정말 저렇게는 되고 싶지 않다 생각되는 어른도 함께 떠올려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10년의, 혹은 20년 뒤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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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없습니다.
아마 각자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하는 이상향은 사람마다 다르고,
바라는 삶도 다르니까요.
다만 저는 늘 넓어지고 깊어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하기 싫은 일도
하기로 했으면 하곤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재미들을 찾기도 합니다.
저는 재미와 규율이 상반된 개념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이 둘은 오히려 상호보완적이며
삶을 지탱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보완적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치우치지 않은 삶이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이겠으나
가급적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흔히 말하는 워라밸 같은 것은 아니고.
감정과 규율,
이 사이에서 끊임없이
서로를 보완하며
나라는 존재를 보다 낫게 만들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생각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지, 그리고 무엇이 더 좋은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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