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철학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벤처투자가 랜디 코미사가 쓴 책, 승려와 수수께끼(The Monk and the Riddle)에는 다음과 같은 수수께끼가 나옵니다.
“계란을 1미터 아래로 떨어뜨리되 깨뜨리지는 않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비즈니스 코치로 일하며 다양한 고민을 가진 스타트업 창업가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제게 들고 오는 것은 투자용 사업계획서이지만 그들이 겪는 문제는 장표에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때문에 저는 창업가들이 들고 오는 외적인 문제와 내면의 욕구를 분리해서 보려고 노력합니다. 보이는 문제 이면에 자리한 욕구가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후속 투자를 받기 위해 IR(투자사업계획서) 코칭을 받고자 하는 A라는 창업가를 만났습니다. IR 장표를 넘겨보며 이야기를 나누려는 순간, A대표는 새롭게 피봇하고자 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타겟 시장에 대한 이해도나 솔루션의 타당성, 함께 하고 있는 팀의 전문성 등을 살펴보았을 때 해당 비즈니스 모델로 피봇하는 것은 무리한 선택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민하는 대표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던졌고, ‘공동 창업자B’의 정체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A는 ‘현재 잘 하는 것’에 집중해서 안정적으로 회사를 키워가자는 입장이었고 공통 창업가인 B는 ‘앞으로 잘 될 것’에 힘을 쏟아서 회사를 빠르게 궤도에 올리자고 했습니다. 결국 B의 의견이 이긴 것이죠. 새로운 사업의 잠재력에 대해서 동의했기에 B의 손을 들어줬지만 A대표는 어쩐지 의욕이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B에 대한 불만도 아니었고 본인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함도 아니었습니다. A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창업가가 흥미를 느끼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 과연 배부른 소리일지 생각해 봅시다. 어쩌면 이는 장기적인 성공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 요소일 수 있습니다. 열정이 바탕이 되었을 때, 창업가는 어려움과 실패에 직면했을 때도 굴복하지 않고 계속해서 전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게 됩니다. 또한, 자신이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서 일한다는 것은 그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가능하게 하죠. 이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스타트업은 빠르고 유연한만큼 다양한 역동을 겪게 됩니다. 보다 큰 시장을 향해 발을 내딛기도 하고 보다 잠재 가치가 큰 고객에게 손을 내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과정에서 창업가 자신이 가진 진정한 열정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개인적인 만족을 넘어서, 팀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고객과 시장에 진정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저는 A대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처음 창업하셨을 때 가졌던 비전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A대표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질문은 단순히 비즈니스의 성공 여부를 넘어서, A대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코칭이 진행되는 시간동안 A대표는 본인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았고, 결국 비즈니스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자신이 즐기고 열정을 느끼는 일에서 진정한 의미와 만족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스스로 도달했습니다.
결국 A대표는 과정에서도 즐거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모색해 보기로 했습니다. 몇 달 후, 공동창업자 B대표가 신사업부를 맡고, A대표는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을 통해 신사업부의 동력이 될 안정적인 자금조달에 기여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아주 가끔 ‘행복한 창업가’들을 만납니다. 제가 정의하는 행복한 창업가란 업계 1위에 있는 사람도, 투자를 턱턱 받는 잠재력 있는 아이템이나 뛰어난 팀을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내가 잘하거나 좋아하는 아이템을 연구하고, 리서치하고, 만들어 내고, 고객의 반응을 보는 모든 과정에서 순수한 몰입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이미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창업가입니다.
앞서 소개한 <승려와 수수께끼>에는 ‘창업가들의 미뤄진 인생계획’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만 투자받으면’, ‘이 아이템만 성공하면’, ‘이 기업을 성공적으로 얼마에 엑싯(Exit)하고 나면’ 이룰 수 있는 인생계획을 가리킵니다. 저자는 창업가들이 미루고 있는 언젠가의 행복을 지금 당겨와서 누리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우리에게 현재의 가치를 인식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독려합니다. 성공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 속에서 발견되는 작은 기쁨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언젠가'가 아닌 '지금 여기'에 집중해 보아야 할 이유입니다.
첫 수수께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계란을 1미터 아래로 떨어뜨리면서 깨뜨리지 않으려면, 우리는 계란이 지면에 닿기 전의 순간, 즉 과정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는 계란이 떨어지는 동안 깨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문제 해결에 있어 과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실제 해결책은 계란이 떨어지는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기 전의 과정에서 해답을 찾는 데에 있습니다. 창업가인 우리가 비즈니스와 인생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때, 결과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에서 가치를 찾고,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과연 당신은 행복한 창업가인가요?
한정현 gemma.han.kr@gmail.com | 코어피칭연구회 비즈니스 코치
비즈니스의 창의성을 연구하는 인사이더박스(Inside the BX) 대표이자 코어피칭연구회 정회원. 틀 안에서 생각하기 (Thinking inside the box)의 관점에서 초기 스타트업이 가진 자원과 기회, 잠재력을 재료로 비즈니스 모델과 IR 코칭을 진행하고 있다.
코어피칭연구회는 스토리가 아닌 내러티브 접근으로 남다른 관점제시, 재해석, 새로운 가치 발견을 해소하는 살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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