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핑포스트 #1] 발칙한 현대 커피 역사 이야기

신의 커피 게이샤, 가향커피의 비밀, 블루마운틴

2026.01.08 | 조회 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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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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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핑포스트

커피 비평 : 커피 한잔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커피는 저마다의 이유로 쓸모를 가지고 있다. 오늘 나는 다소 뜬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커피의 예술로서의 쓸모. 아마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바로 뒤로가기를 눌러버리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커피는 놀랍도록 예술을 닮아있다.

내가 15년간 커피를 즐겨올수록, 이 분야에 더욱 깊이 관여할수록 커피의 예술로서의 가치가 늘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것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에 있어 크나큰 장벽을 느끼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어렵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매일 그냥 카페인으로 마시던 커피에 너무 무겁고 큰 의미를 부여해버리는 행위가 거북하게 다가오기도 하며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며, 새로운 길에 대해 제시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다. 예술과 와인에는 있지만 커피에는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비평"의 세계다. 어렵고 수많은 커피를 소비자들에게 연결시켜주는 전문가 혹은 안내자의 역할이 부재되어 있다. 대부분의 글들은 내가 마신 커피에 대한 기록일 뿐이다.

그래서 2026년부터 나는 커피 비평이라는 문화의 시작을 살짝이나마 해볼까 한다. 커피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닌, 한 잔의 커피가 왜 가치를 가지게 되고 이 시대 맥락에서 어떤 커피를 반드시 마셔봐야 하는지에 대한 글이 될 것이다.

오늘의 글은 특히 중요하다. 내가 커피를 마셔온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커피의 가치체계는 그야말로 급변했다. 커피 산업의 발전과 사람들의 심리, 그리고 커피 문화의 발전을 따라서 그야말로 급변했고 성숙해가고 있다. 그래서 더 어렵다.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왜 지금 이런 커피들이 가치가 있는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내가 그 변화의 과정과 현대 커피의 역사를 나라는 사람의 시야를 통해서 정리해볼 것이다.

이 글만 읽어보면 커피를 마시는 눈이 조금 더 밝혀지리라 생각한다.

 

커피 애호가로 살아온 15년

일단 나는 전문가이거나 업계 종사자이기 전에 극심한 커피 애호가에 가깝다. 여러분도 커피업계에 들어오거나 커피 유튜버들이나 사장님들을 조금 더 깊이 알아가게 되면 각 사람마다 미쳐있는 분야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장비에 미쳐있고, 누구는 로스팅에 미쳐있고, 커핑에 미쳐있기도 하다.

나는 엄밀히 말하자면 커피의 다양성에 미쳐있는 사람이다. 새로운 커피를 맛보고 가치 있는 커피를 찾았을 때 너무나 큰 희열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런 삶을 15년간 살아왔고 아주 오래전에 큐그레이더라는 커피 감별사 자격을 획득했다가, 그것이 생각보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갱신은 하지 않았다. 그 뒤로는 카페도 몇 번 망하고, 로스터리도 운영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커피하는 사람이 산지는 한번 가봐야지 라고 했다가 지금까지 매년 한 달은 파나마에 머무르게 되었다. CoE라는 각 나라별 농부들의 커피 대회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대회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매년 심사를 하고 있으며, 매년 Best of Panama의 심사를 떠나고 있다(현재는 게스트 커퍼).

과거 베스트오브파나마의 심사위원을 한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머나먼 나라에 매년 500만 원 이상을 투자해서 올 사람들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지금은 파나마의 커피가 움직이는 돈의 액수가 달라졌고 관심도가 달라졌기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해서라도 심사위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진 것이다.

그렇게 현재의 나는 커피 산지를 10개 이상 다니며, 유튜브에는 커피 다큐멘터리를 만들고도 있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 종잡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내 스스로를 커피 맛보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고전시대: 싱글 오리진의 시대

난 스페셜티 커피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다. 어느 날 한 카페에서 맛본 커피 한 잔에서 느껴지는 "산미". 바로 그 시큼한 맛에 경악을 했었다. '이게 커피라고?' 난 못 먹겠는데? 근데 며칠이 지나고 그 커피가 다시 생각이 났다. 너무 궁금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왜 이런 커피를 마시는 걸까? 이것이 커피의 맛이라면, 또 다른 맛은 없을까? 그것이 내가 겪은 스페셜티 커피의 태동이었다.

핸드드립이 처음으로 한국에서 생겨나기 시작했고, 자가배전이라는 이름의 마이크로 로스터들이 한국에 급속하게 생겨나던 시절. 직접 커피를 볶는 것만으로도 손님들에게 신선하고 좋은 커피를 전해준다는 큰 메리트가 되었던 시절.

이 당시의 대부분의 커피 메뉴들은 다음과도 같은 이름이었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에티오피아 모카하라, 예멘 모카 마타리, 블루마운틴, 하와이안 코나, 콜롬비아 슈프리모, 과테말라 안티구아, 케냐 AA.

즉, 이때의 스페셜티 커피는 "싱글 오리진"이라고 불리는 각 나라별 차이에서 그 다양성이 발현되는 시기였던 것이다. 품종이 뭔지, 가공이 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누가 농부인지 어떤 지역에서 생산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고, 대체적으로 그 나라의 맛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구나를 예상해볼 수 있는 시기였다.

잘 돌아보면 그때 내가 느껴왔던 맛이라는 것은 단순히 각 나라의 떼루아뿐만 아니라 유행하고 있던 로스팅 포인트와 추출 방식과도 연관이 있었다. 가장 큰 예로 과테말라 안티구아는 화산토여서 스모키하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과학적으로 매우 잘못된 표현이었다. 실제로 이런 말은 책에도 많이 들어가 있었다. 화산토에서 커피가 자라면 오히려 농축된 과일 같은 느낌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당시 스모키하다는 표현이 있었던 이유는 로스터들이 과테말라 안티구아를 강하게 볶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때의 커피는 신비로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내가 해보고 싶은 대로 실험하고 분석하고 성장하는 것보다는 선배들이 해왔던 대로, 널리 알려진 대로 맛이 나오지 않으면 내가 잘못했다고 판단하던 시기였고 장인정신에 입각하여 커피를 만들어가던 감각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올드스쿨 매니아들은 여전히 이때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동네 방앗간 같았던 나의 소중한 카페와 색깔 가득했던 사장님들의 커피 한 잔은 나도 언젠가 커피하며 살고 싶다는 꿈을 만들어줬다. 나는 이때를 커피 고전시대라고 부르고 싶다.

사실 이 당시의 커피들은 대부분 커피다운 향이 중점적이었다. 커피에서 꽃향기나 과일향을 기대하기보다는 볶여진 향, 달콤한 향, 고소한 향들이 중점적이었고, 커피에서 산미가 느껴지는 것에 거부감이 컸다. 물론 내가 맛봤던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는 그 당시에도 아주 특별한 맛과 캐릭터를 가졌지만, 그 정도가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약배전 커피의 마지노선이었다.

나라별 커피의 차이가 존재하기는 했으나, 그보다는 더 잘 볶고 더 잘 추출해서 완벽한 커피 한 잔을 만들어가야겠다는 장인정신이 지배적이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급 커피인 블루마운틴, 하와이안 코나, 예멘 모카 마타리도 기존의 일반적인 커피들과 확연히 다른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일반 커피에서 한 끝 차이가 다른 정도였을 것이다.

그래서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비싼 커피와 일반적인 커피 사이의 변별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면 맛이 달라야 하는데, 그 차이가 너무 미세해서 전문가들도 다시 찾기 힘들 정도였다.

 

 

왜 그랬을까?

사실 지금 돌아보면 이 이유들이 마치 하나의 소설처럼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난 모든 커피에 대한 상상을 재료 중심으로 한다. 커피의 재료는 생두이다. 아주 작은 씨앗 하나. 도대체 이 안에 얼마나 많은 마법 같은 이야기와 향들이 숨어있기에, 커피 고전시대를 지나 현시점 1잔에 100만 원인 커피들이 등장하게 된 것일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커피의 재료인 생두들은 그 자체로 엄청난 가격 차이나 퀄리티의 차이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누누이 말하지만 이 모든 비교 기준은 현재를 바탕으로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커피의 선별과 구별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구분 기준은 "나라" 정도였다. 같은 나라에서 지역을 나누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그런 큰 틀에서만 재료를 나누다 보니 커피의 퀄리티보다는 나라의 특성을 구별하고 즐기는 시대였던 것이다. 사실 이 자체도 아주 매력적이었다. 지금 커피인들은 나라별 커피의 특색이 사라져서 아쉽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나라별로 커피의 맛을 구분하고 즐기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 시기를 거쳐왔기에 그때 느꼈던 커피의 신비로움은 지금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낭만적이었다.

 

 

세계 3대 커피

이때 세계 3대 커피가 있었다. 블루마운틴, 하와이안 코나, 예멘 모카 마타리. 블루마운틴과 하와이안 코나는 티피카라는 품종을 선별한 것이었고, 예멘 모카 마타리는 예멘이라는 독특한 떼루아와 상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나라별로 큰 틀에서 커피 맛을 구분하던 그 시기에 세계 3대 커피는 조금 더 세분화된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들의 욕구가 반영되어 있다.

낭만적이었지만 모든 게 불확실하던 시기. 커피인들의 마음에는 어떤 갈증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과학적으로 커피를 분석하고 싶다. 대중들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커피를 찾고 싶다.

이 시기에 나는 세계 최고의 커피라고 불리는 블루마운틴을 정말 많이 마시고 있었다. 솔직히 이 커피가 맛있어서라기보다 가격이 비싸고 세계 최고의 커피라고 불리는데 나는 도저히 왜 그런지 모르겠었기 때문이었다. 생두를 볶아서 먹어보면 야채향이 풍겼고 산미와 바디가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었다. 정말 온갖 블루마운틴을 다 마셔봤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커피를 업으로 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커피를 정말 과하게 좋아하는 유별난 사람 정도는 되었었다. 그래서 아파트 집에 로스팅을 하기도 했고 핸드드립을 하고 있었기에, 손님이 오면 그들은 나에게 소중한 손님이자 내 커피를 마셔줄 중요한 사람들이 되었다.

한날은 정말 정성스럽게 블루마운틴과 일반적인 콜롬비아 커피를 정말 정성스럽게 로스팅하고 추출을 했고 사람들에게 제공을 했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두 가지 커피의 차이를 물어봤다. "한 커피가 가격이 훨씬 비싸요" 그때 손님 한 분이 이야기했다. "와. 나는 구별이 안 가는데?" 가격 차이가 얼마인데 구분이 안 가냐고 하면서 마셔봤는데, 진짜 두 가지 커피가 흡사했다. 그 자리에서 내가 뭐가 블루마운틴인지 못 찾았던 것이다.

그 뒤로 나만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나는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본으로 떠났다. 블루마운틴 여행을 했다. 일본의 수많은 전통카페를 다니면서 블루마운틴만 마신 것이다. 그 당시 일본 블루마운틴의 가격은 거의 정찰제처럼 1500엔이었다. 100년 된 람브르에서도, 카페 바흐에서도, 키 커피에서도. 10군데 정도의 카페에서 일본의 블루마운틴을 마셔보면서 느꼈던 게 있었다.

분명 한국에서 내가 만든 블루마운틴과는 당연히 달랐다. 근데 그 차이가 어떤 면에서는 조금 미미했다. 10배의 가격 차이가 나는데 이 정도로 구분하기 어렵다면, 전문가들도 찾기 어렵지 않을까? 아무리 좋은 커피를 정성스럽게 손님께 제공해도 대부분의 손님들은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이것이 고전시대의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손님들은 로스터의 장인정신과 카페의 분위기, 커피의 신비로움에 매료되었지만, 커피인들이 아무리 좋은 커피를 준비해봐도 그 흔한 에티오피아를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마이크로랏의 시대: 구별의 탄생

이런 시대적 맥락에서 커피인들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단순히 세계 3대 커피뿐만이 아니라 좋은 커피를 구별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라별로 커피를 구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은 나라 안에서도 더 노력하는 농부들의 커피를 찾기 시작했고 따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품종, 가공, 떼루아라는 개념이 더욱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로 "마이크로랏의 시대"가 등장한 것이다. 이 당시의 마이크로랏은 200kg-500kg 정도 단위의 커피들이었다. 이런 개념은 CoE라는 대회를 통해서 더욱 강조되었고 시스템화되었다. 사실 커피를 하면서 내가 느끼는 점은 커피 산업의 발전은 단순히 좋은 퀄리티의 커피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일들은 한두 사람의 노고와 꿈을 바탕으로 한 "시스템"의 탄생에 있었다.

CoE가 탄생하면서 생긴 현상이 바로 이것이다. 농부들은 더 작은 단위지만 좋은 커피를 생산하면 더 많은 리워드를 받을 수가 있었고, 무엇보다 명예와 유명세를 얻을 수 있었다. 마치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이 경매로 낙찰받으며 이름이 알려지는 것과 비슷했다. 커피가 판매될 수 있는 단위가 적어진다는 것이 이토록 많은 것들을 바꿀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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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E의 작동 방식

CoE에 대해서 완전히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간단히 설명을 이어가보자면, 이 대회의 시작은 ACE라는 비영리 단체를 통해서 설립이 되었고, 대체로 운영하는 사람들은 산지에서 영향력 있는 농부, 커피업계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이끌어 갔다. 그래서 대체로 농부들의 입장을 잘 알 수 있다. 최근에는 CoE에 대해 비관적인 농부들도 많이 만나보기는 했지만, 이 업계에 준 영향은 분명 엄청날 것이다.

기본적인 개념은 각 나라별로 이 대회는 진행이 되고, 농부들로부터 일정량의 커피들을 제출받게 된다. 그리고 그 커피들 중에서 그 나라 전문가들이 맛을 보고 좋은 커피들을 선정한다. 이 커피들을 국제 커피 심사위원들을 초청해서 다시 한번 심사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단계에서 CoE 커피들을 맛보게 된다.

내가 느꼈던 CoE의 커핑은 "데이터"를 중요시한다. 한두 사람의 평가로 커피의 퀄리티가 결정되는 것을 지양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헤드저지도 심사위원들에게 강하게 무언가를 주장하지 않았다. 다만 놀라운 점은, 그 자리에 모인 각 나라의 영향력 있는 커피인들의 선호도가 상당히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같은 업계에서 좋은 커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있다 보니 트렌드에도 민감하고 퀄리티에 대해 늘 각자의 방식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인 것 같았다.

국제 심사위원들이 모든 커피들을 커핑하고 최종 Top 10을 선정한다. 그리고 마지막 날 세레모니를 하게 되는 형식으로 대회는 진행이 된다. 대회가 끝나면 심사위원들이 맛봤던 커피들과 똑같은 커피들이 순위와 점수가 공개된 채로 각 나라의 구매자들에게 샘플 배송이 된다. 이것은 유상 판매이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이런 유상 판매가 농부들에게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 뒤 일정 시간이 지나고 온라인 옥션을 통해 이 커피들은 전 세계로 판매된다. 그 결과는 온라인 사이트에 계속 드러나는 것이다.

 

 

다름의 가치

고전시대와 확연히 달라진 마이크로랏 시대의 변화 지점은 판매 단위가 적어졌다는 것도 있지만, 그런 만큼 커피들의 구별이 되기 시작했다. "다르다"라는 것의 가치를 사람들이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름의 시작점이 커피의 가공, 품종, 떼루아였다. 이때부터는 소비자들이 이 3가지 요소를 느낄 수 있는 커피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과테말라 안티구아가 아니라 과테말라 엘인헤르토 농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면 과테말라 엘인헤르토 농장의 파카마라 워시드가 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렇게 철저히 구별하고 선별된 커피들을 마시면서 알게 되는 것이다. "파카마라는 이런 맛이군?"

이것이야말로 현대 커피 미학의 시작과도 같다. 단순히 카페인의 소비를 위해 커피를 마시던, 공간의 소비를 위해서 커피를 마시던 흐름이 우리에게 커피도 미식의 경험이 될 수도 있음을 느끼게 했고, 어떤 면에서는 예술의 영역으로까지 올라갈 수도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소비자"들의 무관심이었다. 몇몇 소비자들은 이 세계에 푹 빠져들었지만, 그것은 정말 극소수였다. 과테말라 파카마라를 맛보고 커피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람들보다는 여전히 에티오피아 아리차 내추럴을 맛보고 커피가 이런 맛이구나 라고 하며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 더 많았기에, 단순히 이것으로는 부족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프로듀서들은, 농부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면 바뀔 수가 있다는 사실을. 이런 배경하에 그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게이샤 혁명: 신의 커피

1900년대에 파나마는 큰 위기를 겪고 있었다. 파나마의 전통적인 품종들이 전염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병충해에 저항성이 있는 품종들을 알아보고 있었고, 그로 인해 파나마 전역에 이런 품종들이 많이 심어져 있었던 것이다.

하루는 프라이스 피터슨이 자기 농장의 "솔로몬 밸리"라는 구역에서 모든 커피 나무들이 시들시들한데 한 그루의 나무가 건강한 것을 보고 그 나무를 옮겨 심게 된다. 커피 나무는 아주 잘 자랐고, 그 커피를 그의 가족들이 함께 맛을 보게 되었다.

"맛이 이상한데요? 제가 가공을 잘못한 게 아닐까요?"

그렇다. 이 커피는 그 어떠한 커피와도 다른 맛을 보여줬다. 커피 초보가 와서 맛봐도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는. 이 커피는 2004년 공식적으로 Best of Panama에 출품이 되었고, 모든 것이 바뀌게 된다. 그 자리에서 한 사람이 이야기한다.

"컵 안에서 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 뒤로 게이샤는 신의 커피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가고 있다. 게이샤의 탄생 이후로 20년이 지난 지금 무려 600배나 가격이 상승하기도 했다. 2004년 1kg에 7만 원이 옥션에서 낙찰된 파나마 에스메랄다 마리오 게이샤(최초의 게이샤)의 가격이었다면, 20년이 지난 2025년 파나마 에스메랄다 니도 게이샤 워시드는 1kg에 4300만 원이 되었다.

고전시대로부터 마이크로랏이 등장하고, 이런 시스템하에 게이샤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기존 마이크로랏의 시대에서는 소비자들이 고급 커피에서 다름을 느끼기 어려웠다면, 게이샤는 누구나 쉽게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맛과 우아한 향들을 보여줬다.

자스민, 베르가못, 향수, 오렌지 같은 전 세계 그 어떠한 문화권의 사람들도 좋아할 만한 향이 기본 노트들이었기에 게이샤를 찾는 문화권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뒤로 전 세계 커피 대회들은 모두 게이샤로 바뀌기 시작했다. 시작점인 파나마뿐만 아니라 모든 커피 생산지에서 게이샤를 심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느새 몇 년이 지나고 스페셜티 커피라고 부르는 이 세계는 게이샤와 게이샤가 아닌 커피로 나눠도 될 만큼 달라졌다. 맞다. 이것은 이제 돈이 되는 사업이었다. 게이샤를 잘 재배하고 좋은 맛을 만들면 찾는 사람이 전 세계 어디에나 있었다. 기존 커피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판매해도 잘 판매가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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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의 시대: 무산소 발효의 등장

근데 이제 다시 한번 새로운 문제에 도달하게 된다. 게이샤가 맛이 잘 나타나지 않는 산지와 농장들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맛이 있기는 하지만, 파나마처럼 초고퀄리티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파나마 게이샤처럼 엄청난 퀄리티의 커피를 만들려면 생산량을 늘리지 못했다.

파나마 게이샤는 희소성이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성장을 하고 있었다면, 그 반대편에 공산품으로써 확연히 다른 맛과 향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난 이 조차도 게이샤의 확연히 다른 맛이 준 충격이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이 드는데, 바로 무산소 발효의 등장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업계에 큰 충격을 줬었다. 내가 처음으로 맛봤던 무산소 발효는 시나몬 향이 진득하게 나타나는 커피였다. 어느 날 업계에 알고 계신 분이 아무런 정보 없이 커피 하나를 보냈다. 보통의 커피들은 누가 먼저 "이 커피에서는 이런 향이 나타납니다"라고 커핑 노트를 제공해줘야 "아 이 커피에서는 딸기향이 나타나는군"이라고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근데 그 커피는 아무런 정보가 없이도 나는 느꼈다. 이거 시나몬과 진저향이 느껴지는데? 그때의 희열감은 놀라웠다. 이거다. 커피 업계는 이 가공방법으로 혁신을 겪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커피를 만들어도 소비자들에게 외면을 받아왔었는데, 드디어 방법을 찾았구나.

시나몬향이 강하게 풍기는 이 커피는 코스타리카 엘디아만테 카투라 무산소 발효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난 그 뒤로 몇 년간 무산소 발효는 시나몬향이 풍겨야 성공적으로 가공이 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교육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종종 다른 중남미 국가에서 만들어진 무산소 발효에서 발효된 향들이 풍기면 이것은 가공을 잘못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산지를 알 수 없었기에 아주 단편적인 지식으로 이렇게 느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그로 인해 나는 한국에서 무산소 발효에 대해 그 누구보다 더욱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콜롬비아의 반전

그러다가 한 가지 사건을 또 겪게 된다. 콜롬비아에서 무산소 발효를 한 커피들이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는 매주 무료로 대구지역의 바리스타와 커피인들을 위해 커핑을 진행하고 있었다. 3-4만 원대의 콜롬비아 무산소 발효 커피 3가지와 10-20만 원대의 파나마 게이샤를 한 자리에 두고 커핑을 했고, 우리는 모두 놀라게 되었던 것이다.

무산소 발효는 시나몬향이 나타난다라고 했던 나의 생각을 비웃는 것처럼 콜롬비아 무산소 발효 3가지는 확연히 다른 3가지의 향을 만들어냈다. 리치, 레드플럼, 라임. 그 당시 참가했던 20명에 가까운 참가자들은 파나마 게이샤가 아니라 이 3가지 커피에 선호도를 표했다. 나는 도무지 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를 혼돈에 빠져들었다.

발효 기법으로 향을 이토록 강하고 다양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파나마의 떼루아와 품종은 무슨 소용이지?

그 뒤로 전 세계는 무산소 발효의 돌풍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CoE에서도,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도, 심지어 카페에서도 엘파라이소 무산소 발효는 늘 화제였다. 커피인들도 놀랐지만 소비자들이 맛을 보자마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장님 거기 커피 먹어봤어요? 진짜 그집 커피 잘해요." 가서 먹어보면 엘파라이소 리치였다.

이때부터 커피 업계는 혼돈을 겪기 시작했다. 로스팅 기술이나 추출 기술보다 엘파라이소 리치를 쓰면 그냥 손님들이 이 집 커피 진짜 잘한다가 되었으니, 몇몇 커피인들은 이런 현상을 아주 피로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가향 논란과 투명성

그리고 시나몬 게이트, 가향 논란들이 터지면서 무산소 발효 커피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커피 프로듀서들의 투명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커피에 물 말고 아무것도 넣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해서 찾아온 발효 기술입니다."

그래서 커피인들은 그들의 발효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 근데 한국의 커피인들이 그 특정 커피를 크로마토그래피 검사로 성분을 분석을 해본 결과 "프로필렌글리콜"이라는 유화제가 커피에서 발견된 것이다. 사실 식용으로 사용하는 성분이기에 아무런 문제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성분이 발견됐다는 것은 자연적인 발효가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한국 커피인들의 주장이었다.

그 뒤로 엘파라이소 농장의 커피를 수입해오던 한국의 파트너사는 그 커피를 더 이상 수입해오지 않기로 했고, 몇몇 다른 생두 업체들이 가져오게 되었다. 무산소 발효 커피를 쓰던 한국의 로스터들은 순식간에 부정직한 사람들로 함께 낙인이 찍혀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얼마 후 난 한국에서 한 커피 프로듀서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안드레스이고, 몇 년간 커피 발효만 연구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실제로 아로마 에센스를 사용하지 않고 발효와 과일을 통해 커피에서 새로운 향미가 나타나도록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모든 과정에 대해서 투명하게 늘 이야기해왔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하루 사이에 한국에서 부정직한 커피 프로듀서가 되어 있었다. 한 젊은 바리스타가 그에게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고 했다.

"너는 커피 업계에 혼돈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다. 순수하고 깨끗한 커피를 만들어라."

안드레스는 자신이 오랜 시간 동안 연구해온 모든 것들이 부정적으로만 보이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으나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순식간에 너무도 많은 일들이 커피업계에 벌어지고 있어서, 커피인들조차 적응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난 바로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고 우리 팀과 카메라를 들고 콜롬비아로 향했다. "가향 커피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모두가 부정직한 프로듀서는 아니었음을 조금이나마 한국 커피 씬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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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의 성숙

이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 컸다. 몇 가지 논란들에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휘둘렸고, 한국 사회는 가십을 너무 좋아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커피 업계는 무산소 발효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고, 전 세계 커피 프로듀서들은 더욱 정교하게 커피를 발효하게 되었다.

가공의 시대를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당시에는 단순히 가향, 컬처링 같은 무산소 발효뿐만 아니라 발효의 정도를 세밀하게 컨트롤하는 순수한 무산소 발효도 많이 실행이 되었다. 발효를 잘하면 커피에서 강력한 과일향이 풍기기도 했는데, 이런 커피를 "펑키"하다라고도 부른다.

이런 유행은 파나마에까지 퍼졌었고, 한동안 파나마 게이샤도 발효된 향이 강하게 나는 커피들이 높은 순위에 올라가기도 했다. 대표적인 농장이 파나마 데보라 농장이나 파나마 엘리다 농장이었다. 전 세계가 무산소 발효에 빠져있던 시기.

 

 

순수함의 시대: 또뚜마스의 등장

그러다가 정말 최근 또다시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된다. 2023년 Best of Panama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게이샤 내추럴 카테고리에 있던 한 가지 커피가 "워시드"의 맛이 났던 것이다. 근데 이 커피의 맛과 향이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몇몇 사람들은 "크리스탈" 같다는 표현도 했다.

순수함의 시대를 상징하는 커피는 그토록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파나마 또뚜마스. 이 농장은 그야말로 무명이었다. 지금은 그토록 비싸고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하는 그들의 게이샤가 아버지 산장 웰컴 티로 나올 정도였다. 아무리 그 농장의 커피가 맛이 좋아도,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없으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알려지기 어려운 것이다.

이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카린이 이야기해줬다. 어느 날 그들의 가족은 그래도 산장 주변에 커피나무를 많이 심어뒀으니, 커피를 제대로 시작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게이샤를 Best of Panama에 제출하고 2023년 처음으로 SCAP(파나마 스페셜티 커피 협회)에 가입을 했다.

모든 대회가 끝나고 마지막 세레모니 때 끝까지 그들의 이름이 불리지 않아서 당연히 예선 탈락을 했다고 생각했다. 근데 갑자기 1위를 발표할 때 또뚜마스 농장이 호명된 것이다. 모두가 놀랐지만, 그 자리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그들 자신이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사실 이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게이샤 커피를 선별해낸다는 것은 무엇보다 시장의 성숙도가 따라줘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가공이 잘되거나 향이 강한 커피는 누구나 찾을 수 있지만, 좋은 떼루아와 게이샤의 순수함을 잘 나타내는 커피를 찾아내는 일은 어지간한 전문가들이 아니면 오판하기가 쉽다. 근데 소비자들의 성장과 베스트오브파나마에 참석하는 심사위원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런 커피를 찾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첫 출전에 1위를 한 또뚜마스 농장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고, 가장 구하기 힘든 커피 1위가 되었다.

 

 

또뚜마스의 비밀

어떻게 또뚜마스는 이런 커피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첫 번째로 좋은 떼루아와 고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핸드메이드로 한다는 이 농장의 가치관은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커피 가공을 자연과 함께 만들어 가기도 한다.

발효를 숲이나 호수에서 진행을 하기도 했었는데, 이것이 엄청난 효과를 만들어냈다. 또뚜마스에는 놀랍게도 4계절 15-17도 사이를 유지하는 호수가 있었고, 이곳을 이끌고 있는 카린은 그 호수에 커피 체리를 발효하는 방식을 사용했었다. 근데 이 온도가 커피를 정말 깨끗하게 만들어줬던 것이다.

카린도 알고 했던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 뒤로 파나마의 수많은 커피 농장들은 커피를 발효할 때 물에 넣어서 하거나 15-18도 사이에서 발효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커피가 과하게 발효되지 않고, 굉장히 깨끗하고 순수한 과일향을 살짝 머금게 된다.

콜드 펄먼테이션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여기에 더해서 누구오 농장의 콜드룸 드라이까지 파나마 전역에 퍼지면서 그야말로 순수한 커피를 만드는 것에 프로듀서들은 모두 집중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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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의 시대: 희소성의 가치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순수한 떼루아의 맛을 보여준다는 말은 참 좋지만, 몇몇 프로듀서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 된다. 왜냐하면 자기 농장에 좋은 떼루아가 없으면 아무리 가공을 잘해도 커피에서 좋은 맛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이때부터 낮은 고도에 위치해 있던 농장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기 시작했다.

"커피가 자라는 고도는 단연코 커피 퀄리티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파나마 게이샤 커피 산업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엘리다 농장주 윌포드 라마스투스가 늘 하는 이야기다. 그는 바이어들이 농장을 방문하면 늘 그의 농장 곳곳을 다니면서 고도를 보여준다.

게이샤가 세계에 처음으로 알려지던 2000년대 초반에는 사람들이 게이샤는 1500m-1700m 사이에서 좋은 맛을 낸다고도 했었다. 근데 윌포드는 그런 통념을 무시해버리고 더 높은 고도에 커피를 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커피가 바로 엘리다 농장의 토레 Lot이었다. 1800-1900m 사이에 포진되어 있는 이 커피는 생산이 되기 시작하면서 모든 커피 대회를 휩쓸어 버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Best of Panama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한 농장이 엘리다가 되었다. 세계에 게이샤를 처음 알린 선구자가 에스메랄다였다면, 이 순수함의 시대를 훨씬 오래전부터 바라보고 준비해왔던 선구자는 엘리다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1800m의 도전을 멈추지 않고 2000m 이상에 아구아카티요라는 Lot을 만들었다. 그 커피는 역사적인 기록을 만들어내면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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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가 만드는 세 가지 가치

이때부터 새로운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높은 고도에서 커피가 자라면 3가지 특징이 생긴다.

첫 번째는 재배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사실이다. 진입장벽이 높아진다. 대부분의 커피 나무는 4년이면 첫 수확을 하는데 높은 고도에서 자라면 7년, 9년이 걸리기도 한다. 즉 시간이라는 가치가 나무에 들어가게 된다. 와인처럼 빈티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커피 나무의 수령이 커피의 맛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퀄리티가 압도적으로 변한다. 실제로 누가 마셔봐도 비교가 될 만큼 산미와 단맛이 좋아진다. 마치 정말 맛있는 귤과 조금 맛이 비어있는 귤이 있으면 누가 마셔봐도 본능적으로 어떤 귤이 좋은지 아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보여준다. 즉, 가치 판단이 정말 어려웠던 커피 시장에 고도는 확실한 차이를 보여주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마치 과일처럼.

세 번째는 희소성이라는 놀라운 가치가 생긴다. 자연스럽게 높은 고도로 올라갈수록 대지의 면적이 좁아지고 그곳에 커피나무를 키울 수 있는 사람도 줄어든다. 그로 인하여 2000m 이상의 커피는 이제 파나마에서 하이엔드 커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00m 이상이면 부르는 게 값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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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랏의 시대: 극한의 희소성

이런 현상들은 파나마의 다양한 옥션들에도 영향을 줬다. 40kg 이상의 단위로 진행되었던 Best of Panama가 각 Lot의 사이즈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의도와 상황이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결과는 혁신을 불러왔다. 가장 최근에는 20kg까지 줄어들었는데, 신기한 게 전체 옥션 낙찰가의 합은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양이 작다는 것은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커피 프로듀서들에게 불리한 것이었지만, 실제 시장에는 희소성이라는 가치를 불러일으키면서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희소성을 가장 잘 활용했던 것이 앞서 언급했던 엘리다 농장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이자 2000m 이상의 고도에서 자란 엘리다 아구아카티요가 옥션에서는 3kg 단위로만 출품이 되기도 했었고, 그 커피가 2024년 1kg에 1850만 원이 되면서 희소성의 가치에 대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줬다.

2025년이 되면서 에스메랄다 농장은 에덴이라는 초희소한 커피를 발표했다. 무려 800g만 생산된 커피였는데, 이 커피 또한 에스메랄다 옥션 역사상 최고가인 1kg에 2400만 원에 낙찰이 된다.

"나노랏"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맺으며

사실 이 모든 커피 역사의 맥락이 모든 커피 산업을 대표한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흐름이다. 내가 하고 있는 커피가 어떤 것인지, 단순히 농업인지 럭셔리 산업인지 결정할 수 있는 길이 스스로에게도 열려있는 것이다.

끝으로 에스메랄다 레이첼 피터슨의 강렬한 메시지 하나로 이 글을 마무리해보자면,

"커피가 남으면, 그냥 다 불태워 버려라."

그야말로 불같은 메시지 아닌가?

 

여러분이 마시는 커피가 우리의 삶을 결정합니다.
커피 산지를 다니면서 근본과 철학을 가진 커피들을 찾아왔습니다. 

이 커피들을 직접 맛보고 싶으시면, 블랙로드 성수점에 방문해주세요. 
블랙로드 성수 : 서울숲2길 19-18 2층 (100% 예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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