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단산 LAB 의 산하입니다.
첫 뉴스레터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아무래도 요즘 제일 많이 하고 있는 생각, 대학원 생활에 대한 회고가 적절할 것 같더라고요.
군복무 때문에 휴학했던 2년 정도를 제외하면, 내년 여름쯤 약 6년 반 정도의 박사 과정을 마무리하고 졸업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평생을 물리학자로서 살 것이라고 꿈꾸며 2013년 유학 길에 올랐었는데, 11년 동안 전공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그 외에도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우주에 대해서 배우는 만큼,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 많이 배우는 시기였고,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난 무엇에 관심이 많은지, 어떨 때 행복한지를 잘 배운 것 같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늘 사람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어렸을 때 공룡이 좋고, 우주가 재미있던 흔한 이공계 성향의 아이였던 것도 사실이지만,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는 수학/과학 과목의 접근 방식과 관점이 제 성향에 더 잘 맞았던 게, 궁극적으로 이 길을 걷게 된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물리학을 전공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유도, 자연에 대한 호기심 못지않게 수학을 언어로 세상의 현상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이유였고요.
박사 과정에 진학해 세부 연구 분야를 고를 때에도, 특정 주제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가장 다양한 기술을 배우고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분야, 박사 과정을 끝내며 뒤돌아봤을 때 "아, 정말 다양한 도구들을 얻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정말 그 목적에 충실하게 살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수천명의 물리학자가 함께 일하는 유럽 핵입자물리 연구소 (CERN) 에서 연구하고 생활해봤고, 수백만 달러가 걸린 미국 정부의 연구 과제 리뷰 과정에도 참여해봤고, 클린룸에서 첨단 반도체 장비도 만져봤고, 학과 역사에 없던 수업을 처음부터 만들어서 가르치는 일도 해봤으니, 어디 가서 특이한 경험으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생겼달까요. 정확히 의도한대로 대학원 생활을 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굉장히 성공적인 박사 과정이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연구 주제나 결과보다는 경험과 기술 습득에 집중을 했던 탓인지, 제 연구 주제 자체에 깊게 빠져들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박사 과정 내내, 지금의 경험을 토대로 박사 과정 이후엔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 같고, 다양한 선택지를 꿈꾸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입자물리학을 연구하고 빅뱅이론을 논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실용적인 분야에 내 경험과 기술들을 적용시키고 싶다는 욕구가 컸던 것 같습니다. 공대생 아내를 만나서였을까요? 아님 실리콘 밸리에 살면서 이공계 학위와 전문성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을 많이 보아서였을까요? 아니면, 늘 속마음으로는 우주보다는 인간 세상이 더 궁금하고 좋았던 것이었을까요?
당장의 인간들의 삶과는 조금 동떨어진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것이 조금은 외로웠고, 늘 물리학 박사 과정 다음엔 뭘 할까를 꿈꾸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최근에, 박사 과정을 마지막으로 물리학 연구는 그만하고, 다른 직종으로 방향을 틀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제 졸업 뒤엔 물리학계를 떠나, 금융 계열 기업에서 연구직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박사 과정 못지않게 수학/과학적인 연구를 하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우주가 아니라 시장을 연구하고, 입자들간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사람들간의 상호작용과 경제적 의사결정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이 결정을 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고, 최종 결정을 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더 나누기로 하고요.
현재로썬 졸업 뒤 갈 길이 정해져서, 그리고 그 선택이 썩 좋은 선택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홀가분합니다. 졸업까지 마무리해야 할 일은 여전히 꽤 남아있어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기대되는 미래가 있다는 것은 썩 감사한 일인듯 합니다.
대학원 생활을 마무리하며 하고 싶은 이야기들, 그 동안의 경험들, 그리고 새로운 분야로 나아가며 느끼는 점들, 앞으로의 뉴스레터를 통해서 최대한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기를 꿈꿔봅니다.
산하 드림.
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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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현
예전부터 페이스북에서 올려주신 글을 읽으며 미국과 대학원에 대한 꿈을 키워온 독자입니다. 뉴스레터로 돌아오셔서 정말 반갑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과 정보 많이 부탁드려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단산 LAB (112)
오랫동안 함께해온 구독자 분이시네요 :)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오래 같이 생각을 공유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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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수
그동안 페북 페이지에 남겨주셨던 글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박사 졸업을 축하드리며,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겠습니다.
단산 LAB (112)
축하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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