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단산 LAB 의 단아입니다.
두번째 뉴스레터에서 이렇게 제 첫 인사를 하게 되네요.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고민을 하다, 얼마 전 좋은 기회로 하게 된 모교에서의 강연이 생각났습니다. 강연을 통해 제 커리어 발전과 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7년 전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박사 유학을 나왔습니다.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의 저는 유체역학이란 과목이 너무 좋아서, 책을 펼 때마다 설레고 심장이 떨렸었어요. 그래서 당연히 유체역학을 가장 잘한다는 기관으로 가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고, 결국 가족도 친구도 하나 없는 미국 땅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오자마자 감사하게도 보잉을 통해서 연구 펀딩을 받게 되었고, 제가 그 프로젝트의 책임연구자가 되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공부를, 가장 좋은 학교에서, 가장 좋은 펀딩 기회를 가지고 시작하는 건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고, 제 기분은 3만 피트 상공에서 날아다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놀랍게도, 막상 박사를 시작하고 몇년이 지나니 그 열정은 사그라들었고, 성취감과 설렘을 걷어낸 자리에는 박사 과정의 매일 만이 남아있었습니다. 반복되는 연구 발표와 논문 작성, 깊은 고뇌의 과정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습니다. 유체는 여전히 흥미로웠고, 비행기가 어떻게 나는지 여전히 신기했지만, 저는 비행기 날개 1mm 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평생 동안 고민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때쯤 깨달았던 것 같아요. 저는 공부가 좋았던 거지 연구가 좋았던 게 아니라는 것을요.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이를 오해하고 박사 과정을 시작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다뤄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저는 제게 지식이 차오르는 건 좋았지만, 연구 과정의 고뇌는 제게 조금 벅찼달까요. 그리고 저는 한 분야를 오래 동안 깊이 공부하는 것보단,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때 더 셀렌다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화하는 삶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몇 년은 다음 도전을 찾아 헤맸어요. 기계공학과였던 제가 머신러닝을 배우고 컴퓨터과학과 부전공을 하고, 메타 광고팀에서 데이터 사이언스 인턴도 해보고, 홀로 기차를 타고 반도체 학회도 구경 가보고. 그렇게 몇 년을 헤매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에 대해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유체 연구를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전 여전히 과학과 기계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유체 박사를 하면서 얻은 다양한 기술로,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올해 초 박사 학위를 마치고, 실리콘 밸리 반도체 관련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3만 피트 상공 위 비행기 시뮬레이션을 하다, 지금은 보이지도 않는 나노 단위의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인생이 참 신기해요. 지금은 버그로 고통받는 사회 초년생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지만, 새로운 배움 속에서 썩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새 분야에서의 도전, 더 넓은 시야를 갖고 보는 세상을 기대하고 있고, 또 많이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럼 행복하고 좋은 하루 되세요.
단아 드림.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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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라
심장이 떨릴만큼 좋아했던게 언제적이었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글이네요! 물리학도가 아니어도 다른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을만한 고민같아요. 앞으로 솔직하고 생생한 고민이 담긴 뉴스레터 기대할게요 :)
단산 LAB (112)
릴라님은 무엇에 설레셨는지, 지금도 그 일을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무엇이 되었든, 릴라님의 여정을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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