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인공지능의 물리학적 기원" 이라는 제목의 강연에 참석했었습니다. 강연 연사는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인공지능과 뇌과학 쪽으로 연구 분야를 바꾼 교수님이었는데, 최근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Geoffrey Hinton 과도 개인적 친분이 있는 분이라 노벨상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올해 노벨 물리학상에 대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았던 참이라,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최근 많은 이슈를 낳았던 2024년 노벨 물리학상 이야기를 다뤄보았습니다.
2024년 노벨 물리학상은 프린스턴 대학교의 John Hopfield, 그리고 토론토 대학교의 Geoffrey Hinton 이 공동 수상했습니다. 노벨상 위원회는 현대 인공지능 기술의 근간이 되는 인공신경망의 발전을 주도한 공로를 선정 이유로 꼽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는 소식이었습니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많은 인공지능 관련 분야 종사자들 중에서도 "인공지능이 어떻게 물리학의 영역이냐" 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정도로요.
이번 주 제가 소속된 연구소에서 "인공지능의 물리학적 기원" 이라는 제목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연 연사는 Surya Ganguli 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마친 뒤 인공지능, 뇌과학 등의 주제에 몰두해 지금은 해당 분야에서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응용물리학과 교수입니다. (제가 박사 과정 첫 해에 수강했던 "이론 신경과학" 과목의 담당 교수님이기도 하셨습니다.) 실리콘 밸리 한가운데서 진행되는 인공지능 관련 강연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몰려, 연구소 정문에 차들이 줄을 설 정도였습니다.
강연 중 당연히 올해의 노벨상이 언급되었고, 강연 연사는 "인공지능의 발전 역사가 물리학과 무관하다는 건 무지한 발언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Hopfield 교수가 1982년에 제안한 Hopfield Network 는, 고체에서 원자들이 특정한 배열을 유지하고 자성을 띄게 되는 메커니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연관 메모리 (associative memory) 기능을 구현합니다. 원자들의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낮은 에너지 상태의 배열을 선호하게 되는 원리에서 시작해, 정보를 기록하고, 또 새로운 정보를 이미 기록된 익숙한 정보와 연관짓는 기능으로 발전시켰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Hopfield Network 를 접한 Hinton 과 공동 연구자들은, 이 아이디어를 한걸음 발전시켜 Boltzmann Machine 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킵니다. Boltzmann Machine 을 처음 소개하는 논문은 1985년 논문은 David Ackley, Geoffrey Hinton, 그리고 Terrence Sejnowski 셋이서 함께 쓴 논문인데, 앞의 둘은 컴퓨터 과학과 배경을 가진 것에 반해, Sejnowski 는 Hopfield 를 지도교수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좀 더 물리학 배경이 짙은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Hinton 은 컴퓨터과학과 교수, Ackley 는 Hinton 의 첫번째 박사 과정 제자, 그리고 Sejnowski 는 생물물리학과 교수였습니다.)
당시 Hinton 은 이 아이디어가 뇌의 핵심 작동 원리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요. 미래에 본인이 만약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고, Sejnowski 는 물리학자라는 이유로 수상하지 못하게 되면, 본인의 노벨상 지분을 Sejnowski 와 나누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이 연구가 뇌와 인공지능에 대한 혁신적인 발견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생리의학상도 아니고 물리학상을 받을 줄은 정말 예상치 못했던 거죠. Hinton 은 올해 물리학상 수상 후에 Sejnowski 에게 상금의 반을 나눠주겠다고 제안했으나, Sejnowski 가 거절하였고, 결국 상금의 일부는 인공지능 분야의 제일 주요 학회 중 하나인 NeurIPS (Conference on Neural Information Processing Systems) 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후에 Boltzmann Machine 은 몇단계 더 발전을 거쳐, 현대 인공지능 기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공신경망 (Artificial Neural Network) 까지 발전되었고, Hinton 은 이 발전 역사 전반에 걸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인공신경망을 근간에 둔 인공지능 기술은 우리의 일상 생활은 물론, 과학 연구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노벨상 위원회에서 이번 노벨 물리학상을 발표하고 선정 근거를 설명할 때에도, 현대 물리학 연구에서 인공지능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구라는 점을 짚으면서, 힉스 입자, 중력파, 블랙홀 등 수많은 연구 주제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추가적으로, (올해 노벨상 위원회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기초 과학 분야는, 특히 제 연구 분야인 대형 입자물리학 실험 분야는, 늘 첨단 인공지능 기술에 관심을 갖고 그 활용과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분야입니다. 1990년에 이미 "핵/입자 물리학에서의 인공지능 기술" 을 주제로 학회를 진행하고, 1992년 논문에는 인공신경망 계산을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하드웨어 설계, 그리고 RNN 같은 더 복잡한 인공신경망 구조 활용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을 정도로요.
이처럼, 인공지능 기술이 산업과 일상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고, 모두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건 불과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일이지만, 그 기술의 시작점은 물리적인 개념에서 받은 영감이었고, 발전사에도 적잖은 물리학자들의 기여가 있었습니다. 현대 인공지능 연구의 전선에 있는 Google, Meta, OpenAI, Anthropic 등의 기업에도 물리학 학위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고요.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노벨 물리학상이 인공지능 발전을 주도한 학자들에게 주어진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더 큰 그림에서 보면, 인공지능을 비롯한 수없이 다양한 분야에 물리학자들이 포진해있는 건 그렇게 새로운,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전기/전자 공학, 컴퓨터 과학 등이 자체적인 분야로써, 물리학으로부터 독립하기까지의 역사도 비슷했고, 미국에선 생물물리학이 하나의 새로운 연구 방향으로써 자리잡은지도 오래 되었으니까요.
그럼, 물리학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어디까지가 물리학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또, 왜 이런 새로운 분야의 발전에 종종 물리학자들이 끼어있는 걸까요? 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산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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