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생이 들려주는 '진짜 로스쿨'

정말 공부밖에 모르나요?

2025.11.22 | 조회 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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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들

20대 또래들의 커리어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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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김정훈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제 이름은 김정훈입니다.

저는 자율전공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해 국문과, 국어교육과를 거쳐 지금은 로스쿨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다른 길을 돌아오긴 했지만, 그 과정 속에서 제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발견해왔습니다. 지금은 하루 10시간씩 공부하는 로스쿨의 리듬 속에서, 제 성향과 가장 잘 맞는 공부를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실용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법의 힘, 논리를 세우고 근거를 찾는 과정이 저에게 오래도록 동력이 되고 있어요. 제 목표는 언젠가 법이라는 도구를 약자를 보호하는 데 쓰는, '부끄럽지 않은 법조인'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들려드릴 제 이야기가 같은 고민을 하는 또래들에게 작은 단서나 용기가 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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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선택 끝에 발견한 ‘내 진짜 방향ʼ


자율전공으로 대학을 입학하고, 2학년 때 국문과에 진학하셨어요. 보통은 쉽지 않은 선택인데, 어떤 생각에서 이러한 결정을 하신 건가요?

저는 사실 고등학생 때부터 국어를 좋아했고 나름 잘했어요. 그래서 대학 진학을 고민할 때도 ‘국어를 좋아하니까 자연스럽게 국문과로 가면 잘 맞겠지ʼ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고3 때 공부를 늦게 시작한 탓에 깊게 조사하거나 고민해보지는 못했고, 그냥 좋아하는 걸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죠.

학부는 자율전공으로 입학했지만 실제로 들은 수업 대부분이 국문과 수업이었고, 생활도 거의 국문과 학생처럼 했어요. 당시에는 ‘국어를 좋아하니까 이 전공이 나와 잘 맞을 것ʼ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자연스레 2학년 때 국문과로 진학하게 되었어요.

국문과에 진학했다가 재수 후 다시 국어교육과로 진학하셨어요. 어떤 배경이었나요?

국문과에 다니면서 현실적인 고민이 가장 컸어요.

국어국문 전공만으로는 취업이 쉽지 않다는 걸 직접 느끼면서, “나는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일해야 할까?" 라는 질문이 계속 따라붙었죠. 그러다 보니 교사 자격증이라는 확실한 안전장치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어요. ‘이 자격증이 있으면 어느 순간에든 다시 활용할 수 있겠다ʼ는 생각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저는 고등학생 때 국어라는 과목을 정말 좋아했어요. 그래서 중고등학교 과정의 국어를 평생 가르치는 직업, 즉 중등 국어교사라는 길이 오히려 더 저와 잘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실제로 저는 가르치고, 학생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런 면에서도 매력이 있었어요. 이러한 여러 생각들이 겹치면서 결국 재수를 결심하고, 국어교육과로 다시 진학하게 되었죠.

국어라는 학문 자체를 특별히 좋아했던 이유가 있었나요?

사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제가 좋아했던 건 ‘국어ʼ 그 자체라기보다 읽고, 이해하고, 정리하고, 다시 나만의 방식으로 쓰는 과정이었어요. 고등학교에서 그런 활동을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과목이 국어였으니까, 저는 그걸 국어를 좋아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던 거죠.

‘내가 좋아한 건 국어가 아니라 이런 사고의 과정 자체였구나ʼ라는 걸 깨닫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의 성질을 정확하게 이해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었죠. 그래서 꽤 오랜 기간 방황한 끝에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고요.

그런 이해와 깨달음에 이르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결정적인 계기는 국문과와 국어교육과 수업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하면서였어요.

배우는 내용들이 흥미롭긴 하지만, “이걸 어디에 활용할 수 있지?"라는 고민이 자꾸 들었거든요. 예를 들면 한국 최초의 번역 시집이나 고전 문학의 세세한 부분들… 지적으로 풍성해지긴 하지만, 제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좀 거리가 있었어요.

저는 좀 더 실용적인 분야, 직접적인 문제 해결과 연결되는 분야를 원하고 있었던 거죠. 순수 학문과는 맞지 않는 성향이었던 것 같아요.

 

45대 검찰총장 이원식 총장과 함께 찍은 사진
45대 검찰총장 이원식 총장과 함께 찍은 사진

그것이 알고 싶다! 로스쿨 생활, 사실은 이래요


그런 깨달음 후에 선택한 것이 법조인의 길이었군요. 로스쿨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셨어요?

사실 법에 대한 관심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고등학생 때 자치법정 프로그램에서 변호사 역할을 맡아본 적이 있는데, 그때 처음 “법"을 접했어요. 자연스럽게 변호사나 검사 같은 직업을 동경하기도 했고요. 다만 그땐 이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져서,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말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법조인의 길을 꿈꾸기에는 아직 스스로 이뤄낸 것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대학에 와서 여러 전공을 경험하면서 깨달은 건, 제가 텍스트를 이해하고 정리해서 다시 제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좋아한다는 점이었어요. 그리고 법 공부가 정확히 그 과정들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법은 결국 방대한 텍스트를 읽고, 논리를 구조화하고, 그것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일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법학의 매력을 강하게 느꼈던 것 같아요.

또 하나는 현실적인 측면도 있었어요. 한국은 법치국가라서 우리의 일상 대부분이 법과 연결 되어 있잖아요. 공부를 하다보니 “법을 잘 안다는 것 자체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메리트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법조인이 되지 않더라도, 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해두면 앞으로의 삶에 유용하게 쓰일 것 같았거든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길이 내가 가고 싶은 길일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조금씩 쌓였어요. 처음엔 막연했지만, 결국엔 법학이 제 가치관과 관심사, 성향과 가장 맞닿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로스쿨 진학을 결심하게 됐어요.

'어려워 보이는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라며 의심했던 순간은 어떻게 극복하게 되었나요?

말씀해주신대로 법조인의 길은 막연히 멋있어 보이긴 했지만, 동시에 너무나 어려운 길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처음엔 자신 있게 도전하지 못했고요.

그걸 극복하게 된 계기가 따로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눈 딱 감고 일단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뛰어들었어요. ‘안 되더라도 2년을 버리는 것뿐이고, 그런다고 인생이 망하는 건 아니다’. 이런 마음가짐이었어요. 겁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더라고요.

또 하나 제게 영향을 주었던 것은 과거의 작지만 강렬한 성공 경험들이었어요. 저는 고등학생 때 수학을 정말 못했는데, 어느 선배가 꼴찌에서 갑자기 전교 1등을 하는 걸 눈앞에서 봤거든요. ‘아, 하면 되는구나ʼ라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던 순간이었죠. 실제로 이후 저도 열심히 노력해서 고3 때 처음으로 수학 1등급을 받았고, 그때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제 안에서 일종의 ‘근거 있는 자신감ʼ이 되어줬어요. 그런 경험들이 쌓이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내가 안하는 건 있을 수 있지만, 못하는 건 없을 수도 있겠구나.ˮ

“안 될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는 것에 도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도전을 했을 때 실패의 기억은 금방 사라지지만, 성공 경험은 오래 남잖아요. 안 될 것 같은 일에 실패하면 ‘그래 뭐, 안 될 것 같았어ʼ 하면서 실망이 덜 크게 다가오니까요. 근데 만약 그 일이 성공하면 기대치가 낮았던만큼 성공했던 기억이 더 크고 더 오래 가는 것 같아요. 그런 기억들이 결국 사람을 계속 앞으로 갈 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로스쿨 진학 후, 서울에 처음 올라오던 날
로스쿨 진학 후, 서울에 처음 올라오던 날

그런 경험이 최근에도 있었나요?

실제로 로스쿨 준비를 함께 했던 분들 가운데 제가 성적이 가장 높은 사람은 아니었음에도, 서울로 지원한 건 저 뿐이었어요.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합격 가능성이 거의 없었던 도박이었지만 어찌되었건 먹힌 것이었죠. 그 때 확신했어요.

‘도전하지 않으면 가능성은 0%지만, 일단 도전해보면 기적처럼 작은 가능성이라도 생기게 되는구나.’

그래서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안 될 것 같아도, ‘일단 해보는 사람과 시작도 못 하고 포기하는 사람은 결국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저는 계속 전자의 선택을 하고 싶어요.

'계속 도전하라!ʼ 새겨두어야겠습니다. 로스쿨 공부, 힘들지는 않으세요?

사실 힘들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저는 로스쿨 공부가 제 성향과 정말 잘 맞는다는 걸 매일 느끼고 있어요. 공부량은 많은 것 같기는 해요. 지금도 공부하다가 잠깐 내려온 거고, 아마 인터뷰 끝나면 다시 올라가서 공부를 더 할 것 같아요.

요즘은 하루에 꼭 채워야 하는 공부량을 정해놓고, 그걸 끝내면 집에 가요. 보통 하루 8~10시간 정도 공부하게 되는데, 고3 때와 비슷한 양이긴 하지만 느낌은 완전히 달라요. 가장 큰 차이는 공부 자체가 너무 재미있다는 점이에요. 저는 원래 실용적인 공부를 좋아하는데, 법학은 그 특성이 정말 뚜렷해요. 일상과 직접 연결되고, 이해하면 바로 쓰일 수 있는 지식이라서 매 순간 동기부여가 되거든요.

그리고 법 공부를 하다 보면 어떤 개념이 오래 이해가 안 되다가 갑자기 ‘탁ʼ 하고 뚫리는 순간이 있거든요. 그 느낌이 굉장히 좋아요. 그 지적인 쾌감 때문에라도 오래 공부해도 쉽게 지치지 않아요.

법학관 데크에서 키울 나무를 심는 중인 또래 김정훈
법학관 데크에서 키울 나무를 심는 중인 또래 김정훈

미디어에 나오는 로스쿨은 경쟁이 굉장히 심한 곳이라고 들었는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경쟁이 치열하다는 말은 사실이에요. 다만 많은 분들이 떠올리는 ‘서로를 견제하고 압박하는 경쟁ʼ과는 결이 조금 달라요. 지금 저희 기수의 분위기를 기준으로 보면, 경쟁이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발생하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잘해보고 싶어서, 더 많이 알고 싶어서"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긴장감에 가까운 것 같아요.

모두가 스스로 지금 공부하는 부분을 깊게 파고들고 싶어서 달리다 보니, 같은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 사이에서 간접적으로 치열함이 만들어지는 거죠. 하지만 그 과정이 적대적이거나 폐쇄적인 분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아요. 오히려 반대예요. 수업을 못 온 친구가 있으면 녹음본을 공유하고, 정리한 필기나 판례 요약본을 단톡방에 올려서 서로 도와줘요. 시험 직전에는 “이거라도 보고 들어가라"고 말하면서 자료를 나누는 분위기도 자연스럽고요.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늘 생각해요.

물론, 미디어에서 나오는 것처럼 날 선 분위기의 로스쿨도 있다고 들었어요. 훨씬 더 치열하고 신경질적인 경쟁이 이루어지는 곳도 분명 존재하겠죠. 하지만 적어도 저희 동기들끼리는 대화를 나눠보면 모두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이 업계는 너무 좁다. 앞으로 평생 만나고 부딪힐 사람들인데 굳이 여기서부터 얼굴 붉힐 필요가 있을까?"

실제로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전국에 4만 명도 안 되고, 서울에서 실제로 일하는 변호사는 2만 명 정도라고 해요. 결국 다 서로 알음알음 연결되기가 너무 쉽고, 특히 또래라면 몇 다리 건너면 다 연결돼 있거든요. 게다가 로스쿨 3년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은 시간이잖아요. 그 긴 시간을 버티려면 경쟁보다 중요한 건 버티게 해주는 동료들이더라고요. 모르는 걸 서로 설명하다 보면 더 깊은 이해가 생기기도 하고, 공부가 막힐 때 함께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니까요.

제가 가진 또 다른 고정관념은 ‘로스쿨생은 모두 공부밖에 모른다ʼ 인데요, 실제로는 어때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밖에서 보면 로스쿨생은 책만 보며 사는 사람들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실제로 들어와 보면 정말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어요. 어떤 분들은 “어떻게 이 빡센 로스쿨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잘 놀 수 있지?ˮ 싶을 만큼 에너지가 넘치기도 하고요.

실제로 방어 철이 되면 “지금 당장 먹으러 가자!ˮ 하고 택시 타서 바로 떠나는 분들도 있고요.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바로 공항 가서 해외로 나가는 분들도 많아요. 하루 공부 끝나고 밤 10시, 12시에 술 약속 잡는 것도 흔한 일이고요.

그럼에도 이분들이 공부를 못 하느냐? 전혀 아니에요. 차이는 ‘얼마나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느냐ʼ에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새벽 두 시까지 술을 마셔도 그 다음 날 아침 8~9시에는 반드시 자리 잡고 공부를 시작해요. 또, 시간을 의미없이 흘러가게 만드는 것들은 철저히 차단해요. 특히 로스쿨에서 거의 안 보이는 게 딱 세 가지 있는데, 바로 ‘릴스ʼ, ‘쇼츠ʼ, ‘PC방ʼ이에요.

이 세 가지만 없어도 하루에 공부시간이 3~4시간은 금방 확보가 돼요. 그래서 공부할 땐 집중해서 하고, 놀 땐 아주 확실하게 놀아요. 단풍놀이를 가거나, 멀리 택시 타고 산책을 가거나, 함께 막걸리 마시며 쉬어가는 시간도 있고요. 놀지 않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거죠. 저도 로스쿨 오고 나서 이런 생활 리듬을 자연스럽게 배웠어요. 그러면서 ’아 내가 인생을 정말 비효율적으로 살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서울경제 2025 포럼에 참여한 또래 김정훈
서울경제 2025 포럼에 참여한 또래 김정훈

법학을 공부하며 이전과 달리 새롭게 배우고 깨달았던 것이 있다면요?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거예요.

법학을 공부하면 감정보다는 논리라는 틀로 세상을 해석하는 훈련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거든요.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왜 이런 결과가 나왔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식인 거죠.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배고파서 밥 먹었다"라는 상황에 대해 ’배가 고프다‘의 정의를 법전에서 찾고, 판례에서는 배고픔의 기준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를 찾고, 사안에 적용하면 ’몇 시간 동안 공복이었으므로 배고프다고 인정될 상당한 근거가 있다‘라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거죠.

법 공부도 마찬가지예요. 이걸 실제로 법에 적용하면 ’살인을 했다‘라는 상황에 대해 ’살인‘이 무엇인지, 판례에 따르면 어떤 행동까지가 살인으로 인정되는지 등등을 구조화해서 저 사람의 행동이 살인인지 아닌지에 대한 근거를 찾아나가는 거죠.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도 습관이 들어요. 내가 화가 났다고 해도 “왜 화가 난 거지?"를 먼저 생각해보게 되고요. 일상 속에서도 근거가 없으면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게 되고, 감정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일이 거의 없어지는 것 같아요. 물론 현실의 모든 일이 논리로만 설명되는 건 아니니까, 이성과 감성을 적절하게 조율하는 연습을 계속해서 해나가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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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생이지만 유튜버입니다


이렇게 논리적인 분이 대학생 때는 시집도 출간하셨다는 게 반전매력이죠.

사실 아는 분들은 아시는 내용이지만,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꾸준히 글을 써왔어요. 시집을 출간한 건 어떤 거창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보다는 그동안 쌓아온 글들을 ‘지금 정리하지 않으면 영영 묶지 못하겠다ʼ는 마음 때문이었고요.

고등학생 때부터 글을 쓴 이유는 단순했어요. 감정이라는 게 말로 잘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때마다 ‘이걸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언어로 정리 해보고 싶다ʼ는 욕구가 컸어요. ‘시’라는 건 결국 말로 표현되지 않는 지점을 붙잡아 표현해보는 작업이니까요.

마찬가지로, 사랑을 하면 사람들이 시인이 된다고 하잖아요. 사랑을 하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감정들을 계속해서 느끼게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언어로 표현해보려는 시도를 하게 되니까요. 저도 시를 처음 쓰게 된 건 사춘기 때의 감정들을 저만의 언어로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그렇게 쓰다 보니 한 권을 채울 만큼 시가 쌓여서 출판을 결심하게 되었어요.

시집 뿐 아니라, 바텐더 일도, 유튜브 제작도 하셨잖아요. 그런 동력은 어디서 나오나요?

돌이켜보면 어떤 계획을 세워서 이것저것 해본 건 아니었어요. 바텐더도, 유튜브 제작도 결국 “해보고 싶다ˮ는 단순한 마음에서 출발했으니까요.

바텐더의 경우는 원래부터 칵테일에 관심이 많았어서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어요. 하필 코로나 시기라서 신규 채용이 잘 없던 때였지만, 한 곳에 세 번이나 연락을 넣으니까 일단 면접을 보러 오라고 답장이 오더라고요.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됐죠

유튜브도 마찬가지예요. 콘텐츠를 남기는 걸 좋아했고, 기록하는 행위 자체에 매력을 느꼈어요. 특히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2020년대의 일상과 생각들을 나중에 돌이켜볼 수 있는 ‘발화 자료ʼ로 남겨두는 게 어떻겠냐는 동기의 말에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도 했고요. 그 시절 대구의 20대 청년들이 어떤 생각들을 하고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 기록으로 남긴다는 게 의미가 있어 보였거든요.

결국 제 동력은 하나였던 것 같아요. ˮ하고 싶은 건 해보자".

그 의미가 크든 작든, 해보면 결국 경험이 남고 사람이 남거든요. 저는 늘 그런 마음으로 움직여왔던 것 같아요.

인삼주 담글 인삼을 말리러 가는 또래 김정훈
인삼주 담글 인삼을 말리러 가는 또래 김정훈

Q. 그렇게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이나 통찰은 무엇인가요?

여러 가지를 경험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세상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넓다는 점이에요.

어떤 일을 해보든, 어디에 가보든, 늘 그 너머에 더 많은 세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경험이 쌓일수록 "아, 나는 아직 모르는 게 훨씬 많구나" 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한 가지 길만 걸었다면 “여기까지가 끝이구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여러 세계를 오가다 보면 늘 새로운 영역이 열리고, 또다시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더 많은 것들을 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조금 의외일 수 있는데, 완전히 다른 세계들을 겪어보면 오히려 공통적으로 통하는 가치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어떠한 태도가 사람들에게 신뢰를 형성하고, 어떠한 행동들이 사랑받을 수 있는지 같은 것들요. 접점이 없어 보이는 경험들이 사실은 하나의 가치로 묶인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Q. 앞으로 어떤 법조인이 되고 싶으신가요?

조금 상투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부끄럽지 않은 법조인이 되고 싶어요.

법이라는 건 결국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시스템이고, 그만큼 막대한 힘을 가진 도구잖아요. 그래서 그 도구를 어떻게 쓰는지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바라는 건, 그 힘을 약자를 보호하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데 쓰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내가 법조인으로서 하는 일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 그게 결국 제가 지향하는 법조인의 모습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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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지막으로 또래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요?

사실 이 질문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내가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조언 같은 말들을 떠올렸다가 전부 지웠습니다. 결국 이 한 마디만 남더라고요.

“잘될 거다."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남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 것 같고, 심지어 나 자신마저도 나를 못 믿겠는 순간이 오잖아요. 그럴 때일수록 스스로가 스스로를 믿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지탱해주기 시작하면, 조금씩 나를 믿어주는 사람도 늘어나고 나에게 다가오는 기회들도 자연스럽게 많아지더라고요.그래서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있든, 결국엔 다 잘 풀릴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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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빈의 프로필 이미지

    신동빈

    2
    20 days 전

    로스쿨생들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쓴다는 말이 와닿네요 저는 3가지 다 하고 있는데 오늘부터라도 효율적으로 쓰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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