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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세상을 먹어치운다(AI eats the World)

2025.12.17 | 조회 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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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테크, 스타트업 그리고 자본시장에 대한 2차적 사고를 공유합니다

Divided by Zero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IT테크, 스타트업 그리고 자본시장에 대한 2차적 사고를 공유합니다.

a16z의 마크 앤드리슨(Mark Andreesen)이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치운다(Software eats the World)"고 선언한 지 10여 년이 흘렀죠. 연말을 맞이하는 지금, 올해의 화두는 이제 "AI가 세상을 먹어치운다(AI eats the World)"죠.

얼마전, 영국의 테크 분석가로 유명한 (전)a16z 벤처파트너 베네딕트 에반스(Benedict Evans)가 이 화두를 통해 현 상황을 재조명했는데요.

지금 우리는 단순히 신기한 챗봇이 나온 게 아니라, 메인프레임에서 PC로, PC에서 인터넷으로, 그리고 모바일로 넘어갔던 것과 같은 거대한 플랫폼 이동(Platform Shift)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동은 우리가 알던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다소 혼란스럽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연 AI는 세상을 어떻게 먹어 치우고 있을까요?

9억 명

챗GPT의 주간 활성 사용자(WAU)는 8억~9억 명에 달합니다. 엄청난 숫자죠. 하지만 냉정하게 자문해봅시다. 현 시점에는 이걸 매일 몇 시간씩 쓰나요? 통계에 따르면 선진국 인구의 10~15%만이 매일 AI를 사용합니다. 나머지 대다수는 계정은 있지만, "이번 주에 이걸로 도대체 뭘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챗GPT는 아직 제품(Product)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엑셀(Excel)을 비유해서 보죠. 회계사에게 엑셀은 한 달 치 일을 10분 만에 끝내주는 기적의 도구입니다. 회계사는 하루 종일 엑셀을 켜놓고 살죠. 하지만 변호사에게 엑셀을 보여주면? "와, 계산 빠르네" 하고 끝입니다. 변호사의 업무는 엑셀 시트 위에서 돌아가지 않으니까요.

지금의 AI는 사용자에게 깜빡이는 커서와 빈 텍스트 박스만 던져줍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는 사실 "네가 알아서 사용법을 찾아내고, 네 업무에 어떻게 적용할지 스스로 연구해라"는 무책임한 요구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범용 인공지능과 대화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그저 '내 업무를 해결해 줄 버튼'을 원할 뿐이죠. 현재의 챗GPT는 변호사에게 주어진 엑셀일 뿐인거죠.

결국 AI는 채팅창을 벗어나야 합니다.

과거 오라클이나 엑셀이 그랬던 것처럼, 각 산업과 직무에 맞는 구체적인 SaaS로 언번들링되어야만 합니다. 변호사에겐 판례 분석 툴로, 마케터에겐 카피라이팅 툴로 쪼개져서 들어가야 진짜 소비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무제한 인턴

그렇다면 이 기술의 본질은 뭘까요? 이 AI 기술의 본질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비유는 ‘무제한 인턴’입니다.

이 인턴은 인터넷의 모든 글을 읽었고, 잠도 안 자고, 시키는 건 빛의 속도로 해냅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죠. 가끔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환각), 맥락을 파악 못 하며, 진실에 대한 감각이 없습니다. 그저 유저를 기쁘게 하기 위해 그럴듯한 답을 내놓을 뿐이죠.

이 인턴에게 회사의 운명이 걸린 계약서 서명을 맡기거나 수술을 시킬 순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 5년치 회의록을 요약해서 트렌드를 뽑아줘"라거나 "이 마케팅 문구의 변주를 50개만 만들어봐"라고 시키는 건 식은 죽 먹기죠. 인간은 그 50개 중 하나를 고르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서 AI의 가치가 드러납니다. AI는 정답을 내놓는 '계산기(결정론적)'가 아닙니다. 그럴듯한 다음 단어를 추측하는 '확률적 기계'입니다. 따라서 AI의 용도는 '정답 찾기'가 아니라 '초안 작성'과 '아이디어(사실 그보단 영감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도출'에 있습니다. 인간은 이제 AI가 쏟아내는 결과물을 검증하고 선택하는 편집장의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데이터 입력을 AI에게 시키고 인간이 검수한다? 그건 그냥 인간이 하는 게 더 빠를 수도 있습니다.

AI는 인간이 하기 귀찮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생성의 영역에서 빛을 발합니다.

딜레마

여기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생깁니다. 벤치마크 점수를 보면 오픈AI의 GPT, 구글의 제미나이, 앤트로픽의 클로드 등 프론티어 모델들의 성능 차이는 미미해졌습니다.

물론 제미나이3이 이번달 압도적인 성능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사실 일반 사용자 입장에선 그게 그거죠.

그런데 소비자 사용량을 보면 기형적인 구조가 보입니다. 오픈AI가 압도적이고, 그 뒤를 구글이 쫓고 있습니다. 앤트로픽 같은 곳은 성능은 좋아도 소비자 접점이 거의 없죠.

아이러니하게도 이 구조에서 오픈AI의 위치는 생각보다 취약할 수 있습니다. 오픈AI는 8억 명의 사용자가 있지만 '네트워크 효과'가 없습니다. 내가 챗GPT를 쓴다고 내 친구가 챗GPT를 써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또한 오픈AI는 자체 인프라도 없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매달 막대한 청구서를 받죠. 게다가 구글이나 애플처럼 OS나 브라우저 같은 배포 채널도 없습니다. 오직 브랜드와 기본값(Default)의 힘으로 버티고 있는 겁니다.

반면 메타(Meta)와 구글은 다릅니다. 이런 기업들은 자체 인프라가 있고, 수십억 명이 이미 쓰고 있는 앱(인스타그램, 유튜브, 크롬)이 있습니다. 모델이 범용화(Commodity)될수록, 승부는 누가 더 자연스럽게 사용자의 일상에 AI를 밀어 넣느냐는 배포 싸움으로 넘어갑니다.

이 대목에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역사를 참고할 수 있죠.

2000년대 초반, 웹(Web)이 등장하면서 윈도우 앱 생태계는 무너졌습니다. 모든 개발자가 웹사이트를 만들었지 윈도우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았으니까요. 마이크로소프트는 플랫폼 전쟁에서 졌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웹을 쓰기 위해 윈도우 PC를 샀습니다. 플랫폼 전쟁에선 졌지만, 디바이스 판매량은 폭발했죠.

애플의 현재 위치가 이와 비슷할 수 있습니다. 애플은 자체 챗봇도 없고, 검색엔진도 없습니다. "애플은 AI에서 늦었다"는 비판을 받죠. 하지만 AI가 정말 소프트웨어의 본질을 바꾼다면 어떨까요? 앱이 사라지고 AI 에이전트가 모든 걸 처리하는 세상이 온다면?

그래도 우리는 그 AI를 쓰기 위해 좋은 화면과 마이크, 하루 종일 가는 배터리를 가진 '기계'가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아이폰이죠.

애플은 AI 모델 경쟁에는 참전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 AI가 구동되는 최고의 하드웨어와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환경(온디바이스 AI)을 제공함으로써 이 판의 승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애플이 2년 전 보여준 시리(Siri), 애플 인텔리전스 데모는 비록 구현되진 못했지만, 완벽하게 통합된 AI 경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청사진이긴 했습니다. 구글이나 오픈AI도 아직 구현하지 못한 그 경험 말이죠.

버블?

경쟁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그럼 전체적으로 봤을 때 지금의 이 열풍은 버블일까요? 지난주 업로드된 하워드 막스(Howard Marks)의 메모에도 상세하게 강조되었던 이야기이지만, 세상을 바꾸는 기술은 언제나 버블을 동반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이 기술, AI의 물리적 한계를 모른다는 겁니다.

1995년에 세상은 모뎀 속도의 한계를 알았고, 초기 아이폰의 배터리 한계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모바일로 영화를 못 보지만 속도와 배터리가 얼만큼 향상되면 볼 수 있어"라고 예측할 수 있었죠. 하지만 AI는? 모델 사이즈를 키우면 정말 인간 수준의 AGI가 되는지, 아니면 어느 순간 성능 향상이 멈출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픈AI는 "내년에 박사급 AI가 나온다"고 하고,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는 "아직 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빅테크들은 공포에 기반한 투자(FOMO)를 감행하고 있는겁니다. "과잉 투자의 리스크보다, 투자를 안 해서 플랫폼 주도권을 뺏기는 리스크가 훨씬 크다"는 논리가 성립이 되는거죠.

하지만 설령 버블이 터진다 해도, 빅테크 깔아놓은 막대한 인프라(GPU, 데이터센터)는 남아서 다음 혁신의 토양이 될 겁니다. 마치 닷컴 버블이 광케이블을 남겨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시대를 열었듯이 말이죠.

기술은 보이지 않을 때 완성

짝사랑의 비극은 완벽한 이상형이 나타나지 않아 영원히 기다린다는 것이고, 결혼 생활의 비극은 그 이상형과 맺어졌는데도 여전히 치약을 중간부터 짜는 문제로 싸운다는 것입니다. (사실 에반스가 종교적 비유를 통해 표현한게 참 적절했는데, 모두에겐 부적절할 것 같아 다른 식으로 표현해봤습니다)

AGI도 마찬가지일지 모릅니다. AGI가 오지 않아서 계속 기다리거나(5년 뒤엔...), 혹은 이미 왔는데도(이게 AGI?) 세상은 여전히 엑셀을 쓰고 이메일을 보내는 시시한 모습일 수도 있죠.

전기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전기 모터’를 신기해했지만, 지금은 세탁기 안에 모터가 있다는 걸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AI가 진정으로 성공하는 순간은, AI 혁명의 완성은 터미네이터가 등장하는 날이 아니라, 우리가 'AI'라는 단어를 더 이상 쓰지 않고, 엑셀이 알아서 분석해주고 이메일이 알아서 써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그날일 것입니다.

기술은 보이지 않게 될 때 비로소 완성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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