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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정도 이제 다들 아시다시피 실리콘밸리와 펜타곤 사이에서 충돌이 벌어졌죠. 미국의 리딩 AI 연구소인 앤트로픽(Anthropic)이 자사의 AI 모델 클로드에 내장된 안전장치를 제거하라는 미 국방부의 최후통첩을 거부한 겁니다. 미군에게 AI의 기저 기능에 대한 무제한적인 접근 권한을 내어주는 모든 합법적 목적 기준을 수용하라는 펜타곤의 압박에도 앤트로픽이 사실상 꺼지라고 답하며 판을 엎어버렸죠. 일개 기업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 조직의 멱살을 쥐고 흔들게 된 꼴인데, 과연 글로벌 AI 산업의 지형과 자본 시장의 룰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을까요?

사건의 발단은 지난 1월 미 국방장관이 내린 메모였습니다. 180일 이내에 모든 DoD AI 계약에 모든 합법적 목적이라는 포괄적인 사용 권한을 명시하라는 지시였죠. 다만 작년 7월 2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고 이미 펜타곤의 핵심 파트너로 깊숙이 들어와 있던 앤트로픽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독배였습니다.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 CEO가 그은 레드라인은 단호했습니다. 첫째, 시민의 브라우징 기록이나 위치 데이터 등을 쓸어 담아 프로파일링하는 대규모 국내 감시에 AI를 쓰지 말 것. 둘째,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타겟을 정하고 공격하는 완전 자율 살상 무기에 모델을 통합하지 말 것. AI가 아직 아군 오인 사격이나 지정학적 확전을 완벽히 통제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는 기술적, 윤리적 판단이 깔려 있었습니다.
반면 펜타곤의 논리는 단순했습니다. "국가 안보를 위해 돈을 주고 샀으니, 어떻게 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한다"는 것이었죠. 합법성에 대한 판단은 군 내부의 절차에 따를 것이며, 민간 기업이 작전 지휘권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완강한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2월 27일 오후 5시 1분이라는 최후통첩 시한이 지나자마자, 펜타곤은 앤트로픽을 '국가 안보 공급망 리스크'로 지정해 버립니다. 미군과 거래하는 모든 파트너가 앤트로픽과 사업을 할 수 없게 묶어버리는 사실상의 사형 선고를 내린 겁니다.
오픈AI
재밌게도 앤트로픽이 쫓겨나며 생긴 거대한 진공 상태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최대 라이벌인 오픈AI에 의해 채워졌죠. 샘 알트먼은 펜타곤이 요구한 모든 합법적 목적 조항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넙죽 수용하며 군의 기밀 네트워크에 자사의 모델을 밀어 넣었죠.
사실 변명은 다소 기괴했습니다. 오픈AI 역시 대량 감시나 자율 살상을 반대하지만, 이를 계약서에 명시하는 대신 현장 배포 엔지니어와 알고리즘 분류기를 통한 기술적 안전 스택으로 군을 통제하겠다는 논리를 폈죠. 최고 기밀로 취급되는 미군의 작전을 일개 기업의 엔지니어가 감시하고 통제하겠다는 해명이었는데, 결국 매출을 위해 펜타곤에 투항해 놓고 기술적 핑계로 본질을 흐리려는 접근으로 읽혔습니다.
그렇다보니 대중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죠.
앤트로픽의 원칙 있는 거부와 오픈AI의 기회주의적 접근이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거대한 #CancelChatGPT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죠. 유저들은 챗GPT 구독을 취소하고 대거 클로드 생태계로 망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1월 말까지만 해도 미국 iOS 앱스토어 131위에 머물던 클로드 앱은 2월 28일에 단숨에 전체 무료 앱 1위로 수직 상승하며 챗GPT를 2위로 밀어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데이터 프라이버시와 헌법적 가치를 지키려는 앤트로픽의 선택이 얼마나 강력한 대중적 팬덤과 B2C 매출(MRR)로 직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된겁니다.
그래서 뭐?
트럼프 행정부가 앤트로픽의 목줄을 쥐고 흔들려던 시도는 미국 중심의 글로벌 AI 패권에 커다란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미국 정부는 언제든 국가 안보를 핑계로 민간 AI의 안전장치를 강제로 뜯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 생중계된 셈이니까요.
이 틈을 또 날카롭게 파고든 것은 프랑스의 AI 리더인 미스트랄 AI(Mistral AI)였습니다. 미스트랄AI는 미군의 감시망과 데이터 요구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주권 컴퓨팅을 전면에 내세웠죠.
BNP 파리바(BNP Paribas), 오랑주(Orange), 탈레스(Thales) 같은 유럽의 은행과 방산, 통신 기업들은 미국의 클라우드를 버리고 앞다투어 미스트랄의 품으로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요. 캐나다의 10억 달러 주권 컴퓨팅 투자나 인도의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구축 역시, 결국 미국의 변덕스러운 안보 정책에 종속되지 않으려는 전 세계적인 탈미국 러시의 움직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부차적은 이슈보다 재밌는 사실은 펜타곤의 블랙리스트 지정이라는 철퇴를 맞고도 앤트로픽의 기업 가치가 폭발적으로 치솟았다는 사실입니다. 국방부와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2월 말에 앤트로픽은 시리즈 G에서 무려 300억 달러의 신규 자금을 끌어모으며 3,8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불과 1년 반 전 시리즈 F 당시의 183억 달러에서 20배 가까이 폭등했는데요. 자본 시장이 미 국방부의 2억 달러짜리 계약 해지로는 앤트로픽의 폭발적인 성장성에 아무런 흠집도 내지 못하고 있다는거죠. 프라이빗 마켓에서는 이미 앤트로픽 주식을 사기 위해 기관 투자자들이 줄을 서고 있고, 2026년 말이나 2027년 초로 예상되는 IPO에서는 1조 달러 밸류에이션마저 거론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번 앤트로픽과 펜타곤의 충돌은 국가 권력과 거대 기술 자본 간의 힘의 균형이 완전히 역전되었음을 알리는 역사적인 변곡점입니다. 미국 정부가 공급망 리스크라는 무기를 휘둘렀음에도, 300억 달러의 돈뭉치를 들고 대기하던 벤처 캐피털 시장 앞에서는 철저히 무력했습니다.
소비자들은 개인정보 보호와 윤리적 가치를 지키는 기업에 기꺼이 지갑을 열어 압도적인 앱스토어 1위라는 매출의 철옹성을 쌓아주었고, 유럽과 전 세계는 미국의 안보 제국주의를 피해 주권 컴퓨팅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만들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보자면 국가가 기술을 통제하던 시대는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시장은 펜타곤의 규제 대신에, 거대한 자본과 소비자의 선택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질서에 의해 완전히 재편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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