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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노동시장 이야기를 또 합니다. 어쩔 수 없죠. 계속해서 데이터가 나오고, 우리 세대에게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주제니까요. 그동안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것인가 같은 거대 담론에 가려져 있던 더 현실적이고 불편한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구요.
이 혁명의 본질은 AI가 인간의 일을 100% 완벽하게 해내는 데 있는 게 아니죠. 인간이 하던 일의 80%를, 10%의 비용으로 해낼 수 있다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기업들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느끼는 겁니다.
과연 이 80% 혁명은 우리 일자리의 풍경, 특히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이려는 젊은 세대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게 될까요?
비용 절감
기업의 AI 도입은 아래로부터의 혁신이 아니라, 철저히 위에서 내려오는 결정입니다. B2B 마케팅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6%가 AI의 가장 큰 영향으로 ‘효율성'을 꼽았죠. 이 목표는 곧바로 투자로 이어집니다. PwC 설문에서는 경영진의 88%가 AI 예산을 늘릴 것이라고 답했고요.
문제는 이 막대한 투자 뒤에 ROI(투자수익률)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력한 압박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하던 일의 80%를 10%의 비용으로 자동화할 수 있는 기술 앞에서 경영진은 두 가지 선택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 인력 증강: 기존 직원을 유지하고, AI에게 80%의 반복 업무를 맡긴다. 직원은 남은 20%의 고부가가치 업무(전략, 고객 관계 등)에 집중
- 인력 대체: 기존 직원을 내보내고 그 자리를 10% 비용의 AI로 대체한다. AI가 처리하지 못하는 20%의 업무는 기존의 다른 시니어급 인력에게 재분배
이상적으로는 인력 증강이 더 아름답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리해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경영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죠. 인력 증강을 위해서는 기존 직무를 완전히 재설계하고, 직원들을 재교육하고, 직원들이 창출하는 고부가가치를 측정할 새로운 성과 지표를 만들어야 합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복잡한 변화 관리의 영역이죠.
반면, 인력 대체의 ROI는 즉각적이고 명확합니다. “직원 한 명의 연봉 100%를 절감하고, AI 도입 비용 10%를 지출해, 순수하게 90%의 비용을 아꼈다.” 주주와 이사회에 보고하기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숫자죠.
결국 단기적이고 측정 가능한 성과 압박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기업에게 인력 대체는 가장 저항이 적은 경로가 되는 겁니다. 특히 정형화된 업무가 대부분인 신입 직무는 이 자동화의 첫 번째 타겟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경영진의 계산은 이미 채용 시장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마케팅 업계가 가장 먼저 반응하고 있죠. 이번 여름 발표된 조사에 따르면, 마케팅 에이전시의 44%가 이미 신입 채용을 줄였고, 13%는 아예 중단했습니다. 중대형 에이전시의 50% 이상은 향후 3년간 상당한 인력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죠.
특정 산업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른 조사에서는 기업의 52%가 AI 때문에 신입 포지션을 없애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AI 때문에 신입 역할이 늘었다고 답한 기업은 단 8%에 불과했죠.
수치로 증명된 사례는 훨씬 더 직접적입니다.
- 세일즈포스(Salesforce)는 고객 지원 업무에 자체 AI 플랫폼 ‘에이전트포스’를 도입해 연간 1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비용 절감의 이면에는, 약 9,000명이던 지원팀 인력을 5,000명으로 줄인 인력 재조정이 있었죠. AI 에이전트가 150만 건의 고객 문의를 처리하는 동안 수천 명의 일자리가 사라진 겁니다.
- 출장 및 경비 관리 회사 네이번은 이번 IPO 신청 S-1에서 AI 챗봇 에이바(Ava) 덕분에 매출 총이익률이 60%에서 68%로 개선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에이바가 인간 상담원의 개입 없이 전체 사용자 상호작용의 50%를 처리한 결과죠
결국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단어는, 재무제표의 언어로 번역하면 인건비 절감이 되는 셈입니다.
사라지는 사다리
이 80% 혁명의 가장 큰 피해자는 명확합니다. 바로 사회 초년생들이죠.
이미 지난번에 한번 다뤘던 지난 8월 스탠퍼드 대학이 발표한 연구는 이 불편한 진실을 데이터로 증명했습니다. 생성형 AI가 확산된 이후, AI에 가장 많이 노출된 직군(소프트웨어 개발자, 고객 서비스 등)에서 22~25세 근로자의 고용이 상대적으로 13% 감소했다는 겁니다. 충격적인 것은, 같은 직업이라도 경력이 있는 근로자의 고용은 안정적이거나 오히려 증가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AI는 경험 많은 전문가의 업무를 보강하는 역할을 하지만, 신입사원의 업무는 대체하고 있는 겁니다. 전문가는 AI를 부조종사로 활용해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하지만, 신입사원은 AI라는 더 저렴하고 효율적인 조종사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있는 거죠.
이 와중에 세인트루이스 연준은 더 우려스러운 데이터를 발표했습니다. 2019년 대비 2025년, 최근 대졸자(23~27세)의 실업률 증가는 경력이 더 많은 대졸자 그룹보다 3.5배나 더 높았다는 거죠. AI가 화이트칼라 신입 직무 시장을 직접적으로 타격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인 셈입니다.

경험 없는 경력직을 찾습니다?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 부분이지만 이 현상이 장기적으로 초래할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기업의 인재 파이프라인 붕괴일겁니다.
신입사원의 잡무는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것을 넘어, 그 과정에서 업의 본질을 배우고, 협업과 소통을 익히며, 미래의 중간 관리자 및 리더로 성장하는 필수적인 훈련 과정이었죠. 기업은 낮은 연봉을 주는 대신 이 훈련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암묵적인 거래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기업들은 이 비효율적인 훈련 과정을 AI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경력직이 수행하던 고차원적인 업무를 신입에게 바로 요구하기 시작했죠. 마치 수영하는 법도 모르는데, 바로 동해 한복판에서 헤엄쳐 나오라는 식과 같이요.
AWS의 CEO는 “신입 직원을 AI로 대체하는 것은 내가 들어본 가장 멍청한 생각 중 하나”라며, “10년 뒤에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사람들만 남으면 어떻게 할 건가?”라고 일갈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 겁니다. 정작 앤디제시는 인력축소를 가속화하겠다는 메모를 전사에 공유했으니, 아이러니하다고 해야할까요.
어쨌든 하지만, 이 추세는 앞으로 36개월 안에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보입니다.
AI 에이전트의 역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기업들의 AI 도입이 실험 단계를 넘어 전사적으로 확산되면서, 정형화된 화이트칼라 직무에 대한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겁니다.
지금 대학에 있는 신입생들에게는 매우 암울한 경고입니다. 사회에 나올 때쯤이면, 물론 우리나라는 아닐 수도 있지만, 많은 전문 분야에서 우리가 알던 전통적인 신입사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든 회사에 발을 들여놓고 차근차근 성장하는 경력의 사다리가 그 첫 번째 칸부터 부서져 버린 세상과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거죠.
결국 기업들은 10년 뒤의 인재 파이프라인이 망가지는 것보다 실적과 주주 가치를 선택할 겁니다. 그게 자본주의의 논리죠. 그렇다면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기업들이 더 이상 신입을 키워서 쓰지 않는 시대가 온다면, 과거 기업이 부담했던 그 막대한 훈련 비용은 이제 누가 감당하게 될까요?
값비싼 부트캠프를 전전하며 개인이 각자도생으로 해결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이 새로운 형태의 구조적 실업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결국 국가가 떠안게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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