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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다고 인텔이 살아날까요?

국가 자본주의의 시대

2025.08.21 | 조회 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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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테크, 스타트업 그리고 자본시장에 대한 2차적 사고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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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반도체 제국의 황제였던 인텔, 요즘 어떻습니까? TSMC에겐 제조 기술력에서 밀리고, 엔비디아에겐 AI 칩 전쟁에서 완패하며 그야말로 지는 해 신세가 됐죠. 2024년에는 1986년 이후 처음으로 188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연간 손실을 기록했고, 야심 차게 추진하던 미국 내 공장 건설도 계속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몰락하던 거인에게 구원자들이 나왔죠. 하나는 미국 정부, 다른 하나는 소프트뱅크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에 따라 인텔에 주기로 했던 보조금을 아예 10% 지분으로 전환해서 미국 정부가 인텔의 최대 주주가 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거의 동시에, 마사요시 손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도 2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죠.

정부와 스마트 머니가 동시에 베팅하니, 인텔 주가는 오랜만에 급등하며 환호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인텔 부활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건 단순히 쓰러져가는 기업을 살리기 위한 정치적 인공호흡에 불과한 걸까요? 국가 자본주의라는게 되는 이야기일까요?

CHIPS Act의 기묘한 재해석

사실 이번 딜의 핵심은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을 완전히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원래 이 법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 비용이 아시아보다 비싸니, 그 차이를 보조금(grant), 대출, 세금 혜택 등으로 메꿔줘서 공장을 짓도록 유도하는 전형적인 산업 정책이었습니다. 기업의 소유권은 건드리지 않고, 단순히 당근을 주는 방식이었죠.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걸 뒤집었습니다. 상무장관 하워드 러트닉(Howard Lutnick)은 "왜 우리가 1000억 달러짜리 회사에 공짜 돈을 줘야 하나? 납세자에게 돌아오는 게 뭔가?"라며, "우리 돈을 주는 대신 지분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죠. 즉, 국가 안보를 위한 전략적 보조금이라는 개념을 납세자의 돈으로 투자해서 수익을 내겠다는 '상업적 투자'의 개념으로 바꿔버린 겁니다. 인텔이 받기로 한 보조금 약 109억 달러는, 마침 인텔 지분 10%의 가치와 거의 일치합니다.

이 교묘한 보조금의 '주식화'는 단순히 회계 처리 방식의 변경이 아닙니다. 이것은 미국 정부가 더 이상 시장의 심판이나 조력자가 아니라, 직접 경기에 뛰어드는 선수가 되겠다는, 즉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로의 전환을 알리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의 기묘한 동거

더 흥미로운 점은, 이 아이디어의 원조가 트럼프 행정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놀랍게도 이 주장은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2022년 반도체 지원법 논의 당시부터 줄기차게 외쳤던 내용입니다.

샌더스는 당시 "수익도 잘 내는 대기업에 아무 조건 없이 수백억 달러의 기업 복지를 퍼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국민 세금이 투입된다면, 정부가 그 회사의 지분이나 워런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죠. 물론 당시에는 급진적인 주장으로 치부되며 묻혔습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정반대편에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샌더스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쓰고 있는 겁니다. 물론 목표는 다릅니다.

  • 버니 샌더스: 기업의 이익을 국민과 공유하고, 기업 복지를 막자는 '분배'의 관점
  • 트럼프 행정부: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해, 납세자의 돈이 들어갔으니 확실한 거래를 통해 국가의 이익을 챙기고, 핵심 기업을 국가대표로 만들어 통제하겠다는 '국익'의 관점

목표는 다르지만 "세금으로 기업 좋은 일만 시킬 수는 없다"는 포퓰리즘적 비판에서 완벽하게 합치점을 찾은 거죠. 이 기묘한 '트럼프-버니' 연합은, 미국 경제 정책의 오랜 전통이었던 자유 시장 원칙이 얼마나 약해졌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소프트뱅크

만약 미국 정부의 지분 인수 소식만 터져 나왔다면, 시장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아마 "인텔이 얼마나 망가졌으면 정부가 직접 나서서 구제금융을 하나"라며 위험 신호로 해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주가는 오히려 폭락했을지도 모르죠.

바로 이 타이밍에 마사요시 손 회장의 소프트뱅크가 20억 달러 투자를 발표하며 판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미국 내 반도체 제조가 더욱 확대될 것이며, 인텔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는 손 회장의 발언은 시장에 "스마트 머니도 인텔의 미래를 밝게 보고 있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보냈습니다.

이 두 사건의 절묘한 타이밍은 우연이 아닙니다. 소프트뱅크의 투자는, 자칫 '정치적 구제금융'으로 보일 뻔했던 정부의 개입을, '민관이 함께하는 유망한 성장 투자'로 포장해주는 완벽한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정부는 인텔을 살릴 명분을 얻고, 소프트뱅크는 정부의 보증을 등에 업고 턴어라운드에 베팅하는 서로에게 윈윈인 셈이죠. 이 시그널링 전략 덕분에 인텔 주주들은 오랜만에 웃을 수 있었습니다.

삼성전자

이 사건은 인텔에게는 분명 한숨 돌릴 기회입니다. 하지만 그 불똥은 이제 삼성전자와 TSMC로 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역시 미국에 수십조 원을 투자하는 대가로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막대한 보조금을 받기로 되어있기 때문이죠.

러트닉 상무장관은 이미 "다른 기업들과도 인텔과 비슷한 방식의 거래를 모색할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삼성과 TSMC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소리입니다. 보조금을 받자고 약속하고 공장을 짓기 시작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보조금 대신 주식을 받아라"고 하니, 이건 사실상 창조적 갈취나 다름없습니다.

이 요구는 단순히 돈의 문제를 넘어서 국가적 자존심과 안보가 걸린 문제입니다.

삼성전자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분 참여는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이자 국가 경제의 기둥인 회사의 경영에 외국 정부가 개입하는 전례 없는 일이 될 겁니다. 경제 주권과 안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낳을 수밖에 없죠.

대만도 마찬가지겠죠. TSMC의 압도적인 기술력은 중국의 침공을 막는 실리콘 방패 역할을 해왔습니다. 미국 정부가 TSMC의 지분을 갖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미국의 보호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최첨단 기술이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대만의 전략적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 정부가 정말 이들의 지분을 원한다기보다는, 이 위협을 지렛대 삼아 더 많은 미국 내 투자나, 미군을 위한 반도체 우선 공급, 혹은 더 강력한 대중국 기술 통제 같은 다른 양보를 얻어내려는 협상용 카드로 쓸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과거의 산업 보조금이 이제는 노골적인 '강압적 경제 외교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겁니다.

국가 자본주의

그럼 본질적으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죠. 이렇게 한다고 인텔이 살아날까요?

단기적으로는 그래보입니다. 미국 정부의 든든한 뒷배와 소프트뱅크의 스마트 머니 수혈은 인텔이 TSMC와 엔비디아를 따라잡기 위한 막대한 설비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과 자본을 벌어주었습니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주가를 방어하는 데도 성공했죠.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떨까요? 정부가 최대 주주가 된 회사가 과연 시장의 경쟁 속에서 예전 같은 혁신과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정치적 입김이 경영 판단을 흐리게 할 위험은 없을까요? 2008년 금융위기 때 GM을 구제했던 미국 정부가 결국 100억 달러의 손실을 보고 나왔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인텔 사태가 미국이 주도했던 '글로벌 분업'이라는 반도체 생태계의 종말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 세계(미국)는 '효율'보다는 '안보'를, '협력'보다는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각자의 반도체 성곽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인텔은 살아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생존의 대가는, 더 비싸고, 더 비효율적이며, 더 분열된 세상일 수 있습니다.

인텔의 부활 여부를 넘어, 이번 사건이 열어젖힌 '국가자본주의'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앞으로 세계 경제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우리는 이제 막 그 서막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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